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520화 (518/656)

제 520화

그 표정은 여태까지 진혁이 대외적으로 보여왔던 것과 달랐다.

마음 한구석을 망치로 맞은 것만 같다.

이것이 바로 그가 진짜로 짓는 표정이다. 무하마드는 잘 모르겠다던 말에 황급히 설명을 덧붙였다.

「…허브, 계열인데 생소하기도 하고 익숙한 것 같기도 하고. 먹어본 적은 있네, 하지만 이름은 정확히 모르겠어. 사프란의 향기가 짙은 데 비해서 아주 미미해.」

무하마드는 진혁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았다.

지금 이 대답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이자는 페드로의 요리가 준비되었건 금괴를 내밀건 상관없이 그저 떠나버릴 것이다. 진혁 같은 남자는 오직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일을 하는 것에만 흥미가 있을 뿐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는 아직 진혁이 무하마드의 무언가에 흥미가 있었다.

‘음식에서 무슨 맛을 느끼는지… 인가? 왜 그런 걸 원하지?’

작고 가느다란 촛불을 들고서 어둠 속의 미로를 헤매는 기분이다. 조금 전에 맛보았던 지고의 쾌락을 다시 복기하며 무하마드가 눈을 감았다.

「나는 이 허브의 이름을 모르겠어. 아시아의 허브 계열이라는 건 알겠는데…, 디아타의 결혼식장에서도 이 허브를 사용한 푸드 블록이 몇 가지 있었지?」

「어떤 것이었는지 기억나십니까?」

「베이글 중에서도 있었고.」

「베이글은 백여 종류가 넘었습니다만.」

「그 왜, 의자 쪽에 있었던 것 말일세. 둥근 테이블 위의 각진 의자들, 그리고 글라디올러스 꽃에 올라와 있었던 수술에도 있었고-」

진혁이 담담하게 말했다.

「맞습니다. 그 재료가 들어간 다른 음식이 기억나시는 게 더 있습니까?」

무하마드는 두뇌를 쥐어짰다.

차라리 이자가 돈이나 명예를 원했다면 쉽다. 돈이라면 그 역시 넘칠 만큼 가지고 있었다. 슈퍼카를 사주거나 비행기를 제공해도 된다. 하지만 이자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 왕족의 인정조차 원하지 않는 자는 그저 자신이 한 질문의 대답만을 바랐다.

그러니 지금 원하는 단 하나의 질문, 그것에 반드시 대답을 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글라디올러스! 글라디올러스가 있었네! 그 수술에서 그 맛이 살짝 느껴졌어.」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들보다는 좀 더 나을지도 모르겠군요.」

진혁이 말했다.

「미각과 후각을 좀 더 예민하게 갈고 닦으신다면 제가 만드는 음식을 드시고 저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아도 좋겠습니다.」

무하마드가 항의했다.

「잠깐, 난 지금도 미각과 후각이 대단히 예민한 편일세. 절대 미각이라고도 불린다고. 칠레산 토마토와 미국산 토마토를 구분하는 건 물론이고 각 재료의 특징과 맛을 꿰고 있지. 똑같은 재료라도 제대로 손질하지 않아 흙 한 조각이 들어 있어도 눈치챌 정도로 뛰어난-」

진혁은 무하마드의 말을 끊었다.

「스테인리스 보울에서 반죽한 빵과 목제 그릇에서 반죽한 빵, 도자기 그릇에서 반죽한 빵의 차이를 알아채실 수 있습니까.」

무하마드는 말문이 막혔다.

「그런 건 생각해본 적이 없네.」

그는 요리사가 손을 씻고 일하는지, 아니면 재료를 세척했는지에 대해서 아주 민감했다. 하지만 요리를 담아내는 그릇에는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환경호르몬 배출을 유의하며 플라스틱 그릇을 피하거나, 인테리어와 어울리는 분위기를 내기 위해 도기나 나무 그릇을 사용하는 경우는 있다.

하지만 빵을 만들면서 어떤 그릇을 사용했는지 누가 신경 쓴단 말인가?

그 식감의 미묘한 차이를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오른손으로 반죽한 빵과 왼손으로 반죽한 빵의 차이 같은 걸 누가 알겠냐고. 무슨 차이가 생기겠냐는 말이야.’

「그렇습니까.」

눈썹이 아주 약간 처지는 것이 실망하는 것 같기도 하다. 무하마드는 진혁을 실망케 하고 싶지 않았다. 원하는 것을 전부 다 들어 주고 싶었다. 그는 뒤늦게 첫사랑에 빠져 다른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십 대 소년처럼 절박해졌다.

「아니, 내가 알아보면 되지. 내 미각이라면 당연히 그 정도는 느낄 수 있을 거야!」

무하마드는 통통한 배를 내밀며 열심히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직 그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단 말일세, 여태까지 나의 미각을 온전하게 만족시키는 음식을 찾아본 적이 없네. 그런데 이렇게 완벽하고도 황홀한 음식을 보고서 사나이라면 그냥 보낼 수가 없네. 로열 페이스트리 수석 쉐프로 채용할 테니 이곳에 남아 나를 위해 빵과 케이크를 구워줄 수는 없겠나? 새로운 메뉴를 개발할 필요도 없고, 같은 음식을 계속해서 만들어도 되네. 연봉도 원하는 대로 부르기만 해.」

무하마드가 악어가죽 지갑에서 백지 수표를 꺼내어 내밀었다. 진혁은 그 수표에 시선을 주지 않았다.

「사실 제가 좀 바빠서 시간을 내기가 어렵습니다.」

「나도 바쁘다네.」

「그럼 저희가 만나는 건 어렵겠군요.」

진혁이 깔끔하게 물러났다. 조금 더 흥정을 해보려던 무하마드가 황급히 정정했다.

「시간은 부족하지만, 돈은 많지. 나는 전용기가 있네. 세계 어디라도 원하는 시간에 갈 수가 있어. 어디를 생각하고 있나?」

「서울에 있는 제 주방에는 제가 원하는 설비들이 전부 갖추어져 있습니다.」

무하마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비행시간을 생각하면 너무 멀긴 한데, 종종 아랍에 들르는 것은 어떨까? 내가 최고급 설비를 갖춘 전용 주방을 차려 주겠네. 아니면 뉴욕이라도 좋지! 이탈리아 쪽에 호텔을 갖고 있던데 거기는 어떤가.」

「실은 제가 결혼한 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바빴기 때문에 앞으로 아내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려고 합니다.」

「나는 아내가 넷인데, 율법에 따라서 네 명과 같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내가 4배는 더 바쁘지 않겠나?」

진혁은 시답잖은 소리를 무시하고 무하마드를 빤히 바라보았다.

무하마드가 헛기침했다.

「그러고 보니 한국의 주식에 투자하는 친구들도 있더군, 나도 이 기회에 한국에 투자 법인을 설립해서 사업을 해 보는 것도 좋겠어. 서울에 오래 있으면 만나기도 쉬울 것 같은데, 어떤가.」

진혁이 빙긋 웃었다.

「시간을 투자하실 수 있으시다면 둔한 미각을 훈련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서울에 일 년 정도 머무르시면서 주 2회 방문해 주신다면 한번 해보지요.」

무하마드는 억울한 듯이 항변했다.

「아니, 그러니까 내 미각은 둔한 편이 아니라니까!」

「저에 비하면 둔한 편이지요.」

「자네는 그게 직업이잖나.」

「절대미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수준이 낮습니다.」

「나는 나보다 미각이 뛰어난 사람을 본 적이 없네.」

「지금 보고 계시지 않습니까.」

「어떻게 된 게 말 한마디를 지지 않는군! 전에는 좀 더 과묵한 타입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진혁은 이 말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무하마드는 황급히 말했다.

「다음 주 화요일, 당장 그때부터 시작하지.」

진혁이 선을 그었다.

「제가 내놓는 음식들은 그 맛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전부 다 드셔야 합니다.」

「아니, 도대체 뭘 내놓으려고 그러는 건가?」

「하나라도 거절하신다면 애초부터 프로그램에 참여하실 수가 없습니다. 프로그램 제안서를 나중에 보내드릴 테니 직접 보시고 나서 결정하시지요.」

「알겠네, 알겠네!」

「그럼 저는 이만.」

진혁은 더 이상 그 자리에서 시간을 써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페드로라는 쉐프가 준비한 파스타는 분명 맛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의 요리라면 미미가 데리고 있는 쉐프들도 충분히 해낼 수 있었다. 미식가 황태명이 고르고 골라 남겨둔 쉐프들. 그들은 중식과 양식, 다양한 퓨전 요리를 넘나들며 맛있는 요리를 제공했다.

페드로 정도의 수준이라면 당장이라도 5성급 호텔의 수석 쉐프로 채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수천 개의 5성급 호텔이 있고 수천 명의 수석 쉐프들이 있다.

「알았다고! 그러면 다음 주에 한국에서 보겠네.」

◈          ◈          ◈

그날 저녁.

한국으로 돌아온 임진혁은 미미에게 양해를 구하고 혼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미각과 후각 촉각 등 감각을 증진시키는 프로그램을 짜기 위해서였다.

무하마드 왕자에게는 당당한 듯이 그런 프로그램이 있다고 했지만, 사실 그런 프로그램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암살자들이 독의 차이를 구별하기 위해서 감각을 예민하게 만드는 훈련이 있어. 대충 그걸 강도를 낮춰서 적용하면 되겠지.’

사실은 당장이라도 시작하고 싶다. 하지만 그 프로그램을 실행하려면 암실이 필요했다.

구식 사진관의 현상소와도 비슷한 공간이 될 것이다.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고 소음도 완전히 차단한 검은 방.

사람 한 명을 그 방에 집어넣는다.

시간의 흐름도 잃고 감각을 잃었다고 생각할 무렵, 절세 고수가 입술에 무언가를 갖다 대어 준다.

제일 먼저 시작할 것은 물이다.

센물인지 단물인지 구분해야 하는 것은 기초 중의 기초다.

이 물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어떤 성분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어야 한다.

먼저 물맛부터 구분하고 나서야 다른 음식 재료들로 넘어갈 수 있다.

진혁은 감각 증진 프로그램 기획서를 짜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후후후후후.”

감각을 증진하는 동안에는 식이 또한 제한해야 한다. 아무리 24시간 동안 검은 방에 집어넣고 몇 가지 맛을 체험했다고 해도, 나가서 다음 교육 전에 자극적이고 호화로운 향신료를 맛본다면 전부 엉망이 되어버린다. 날카롭게 벼린 칼날이 다시 무뎌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무하마드 왕자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이 정도 쉬운 조건도 맞추지 못한다면 내 지음이 될만한 자격이 없지.’

그 문제의 허브는 ‘쑥’이었다. 3그램도 되지 않을 정도의 소량이었다. 베이글에는 1그램 정도 들어있었던 듯싶다.

쑥이라는 이름도 모르지만, 아시아의 약초라는 사실을 맞추었다.

이 정도만 해도 대단한 것이다.

두어 시간 정도 집중해서 프로그램 기획서를 마친 진혁은 서류를 들고 나왔다.

아내에게 보여주고 의견을 듣기 위해서다.

스타일 팀원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마친 미미는 궁금해하며 진혁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하마드 왕자는 어땠어요?」

진혁은 아내에게 미팅 결과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키워 보기로 했습니다.」

「키운다고요?」

무하마드 왕자야말로 진혁을 키우고 싶어 했을 것이다.

미미는 이번에 무하마드 왕자의 과거 요리사 편력에 대해서 조사했다. 능력 있고 유능한 사람들에게 고액의 연봉을 제안해 스카웃하고, 수준에 미달하면 바로 해고한다.

언뜻 보면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커리어가 가장 빛나는 시기에 거액의 돈에 눈이 멀어 직장을 옮긴 요리사들은 해고당한 후 재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미미는 내심 진혁이 무하마드와 관계를 맺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무하마드가 진혁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일 줄은 몰랐다.

‘진혁 씨가 무하마드 왕자를 키운다고…? 왜…?’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진혁 씨에게는 무하마드 왕자님 같은 정도의 연령이라도 아이처럼 보인다는 사실은 알겠어요. 하지만 자녀를 원하신다면 저와 상의를….」

「그건 아닙니다. 이 계획서를 보시죠.」

미미는 묵묵히 서류를 넘겼다. 서류를 전부 읽은 후 그녀가 심각하게 물었다.

「…무하마드 왕자를 고문해서 죽이고 싶으신 건가요? 그렇다면 다른 좋은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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