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518화 (516/656)

제 518화

「뭐라고?」

「드시고 나면 생각이 바뀌실 겁니다.」

사실상의 선전 포고와도 같은 말에 페드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탈리안 쉐프 중에서는 빵도 직접 굽는 이들이 있다. 자신이 원하는 빵집에서 빵을 받는 것이 어려울 경우 따로 연습을 하는 것이다.

빵에 자신감을 갖고 있는 걸 보면 훌륭한 쉐프에게 전수받아 오랫동안 구워온 모양이다.

하지만 진혁은 자신이 있었다.

「메인 요리 전에 초콜릿 케이크라니, 그 다음 맛을 즐길 수 없게 되어버리잖습니까.」

페드로가 겉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진혁이 대답했다. 무하마드는 호탕하게 웃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궁금해지잖나. 임진혁 쉐프의 케이크를 먼저 먹겠네.」

「…!」

왕자가 퉁퉁한 손가락을 흔들어 보이자 페드로가 새로운 접시와 나이프를 가져왔다.

진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자신이 가져온 케이크를 꺼냈다.

무하마드 왕자 측에서 보면 정확히 삼각형처럼 보이는 모양으로 접시 위에 케이크를 세팅하고 그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무하마드가 두 눈동자를 번들거리며 말했다.

「어리석은 자들은 때로 예술이 음식보다 더 훌륭하다고 주장하고는 해. 음악은 귀를 즐겁게 해주고 미술은 눈을 행복하게 해주지. 하지만 그것뿐이지 않은가. 음식이야말로 진정한 예술이지. 훌륭한 음식은 미각과 후각, 촉각과 때로는 청각까지 네 가지의 감각 모두를 자극한다네. 불꽃 위에서 지글거리며 육즙을 토해내는 스테이크의 아름다움이 어째서 캔버스 천 위의 물감 자국보다 못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보고 듣고 만지며 맛보고 삼켜 자신의 몸속으로 받아들이기까지!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종합 예술이 아닌가.」

그는 단숨에 연설하듯 한 손에 은제 포크를 쥔 채로 말을 뱉어냈다. 진혁은 동요하거나 흔들리지 않은 채 한결같은 시선으로 무하마드 왕자를 바라보았다.

「그러니 음식이 예술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내가 얼마나 기뻤을지 상상해 보게나. 오만하고 자존심 높은 오마르 녀석이 클래식과 현대미술, 야구와 축구 등 우아하고도 아름다운 예술과 스포츠를 즐기며 자신의 취미가 제일 잘났다고 콧대를 들고 다니는 걸 보면서 부글부글 끓던 속이 싹 나아졌다고. 내가 눈여겨보는 걸 알면서 그놈이 귀신같이 자네를 채가서 그 말도 안 되는 건축 작업을 시키지 않았나.」

‘이 사람, 전부터 생각했지만, 말이 많군.’

사람이 어느 정도 이상 지위에 오르면 다른 사람들이 친절해진다. 네 네 하고 맞춰주며 이야기를 들어준다. 오마르 왕자도 그랬지만 무하마드 왕자 역시 말이 많았다.

「하지만! 이 펜로즈 삼각형 케이크가 정말로 맛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야. 부족한 요리 솜씨를 플레이팅과 미적 감각으로 커버하는 요리사들이 있단 말일세. 뛰어난 기획력이 있어 세일즈 포인트를 잘 잡은 사람들도 있지. 엉망으로 맛없게 만든 음식을 자칭 미식가들을 불러 칭찬하게 한 다음 적당히 포장해서 팔아치우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자네가 만들었다던 푸드 블록 기획이야 나쁘지 않았지! 하지만 백 명 이상의 페이스트리 쉐프들에게 만들어 놓은 레시피대로 뽑아냈을 뿐인지 아니면 자네가 만든 케이크가 정말로 맛있을지는 그 뚜껑을 열어 봐야-.」

이러쿵저러쿵 늘어놓지만 결국은 실력을 평가하고 싶다는 이야기다.

진혁이 피식 웃었다.

‘누가 누구를 시험한다는 거지.’

그는 시험을 받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 이 자칭 미식가라는 왕자가 과연 자신이 숨겨 놓은 맛이 무엇인지 찾을 수 있는지 궁금해서 왔다.

중년 남자의 방백을 들어 주려고 온 것이 아니다. 임진혁이 입을 열었다.

「그걸 알아보시려면 지금 케이크를 맛보셔야겠군요.」

자신에게 도취하여 멋대로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던 무하마드가 눈을 끔뻑였다.

「아, 그렇지.」

「이건 지금 드셔야 제일 맛있습니다.」

「그렇다면 바로 먹고말고.」

◈          ◈          ◈

무하마드는 나름대로 미각에 자신이 있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형제 중에서 유독 예민하고 섬세했다. 두 번째 부인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첫째 부인의 차남인 오마르와 나이가 같았다.

오마르는 키가 크고 잘생겼으며 머리가 좋았다. 같은 콩나물에 똑같은 물을 뿌리며 동일한 양의 햇빛을 뿌려도 어떤 콩나물은 쑥쑥 자라나고 다른 콩나물은 비실비실하니 시들하기 마련이다. 이 경우에는 무하마드가 비실비실한 콩나물이었다.

왕의 아들인 만큼 정치학과 세계정세, 외국어, 역사와 승마, 골프와 수영 그리고 악기 연주 등 다양한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같은 교사에서 다르지 않은 형태로 교육을 받으며 같은 음식을 먹어도 무하마드는 모든 면에서 오마르와 뒤처졌다.

밤에는 잘 자지 못해 뒤척였고, 낮에는 잠이 부족해 꾸벅꾸벅 졸았다.

오마르와 무하마드를 가르치는 교사는 점점 더 오마르에게만 신경을 썼다.

생일도 하루 차이밖에 나지 않았기 때문에 더 비교가 되었다.

둘째 부인인 어머니는 첫째 부인과 친자매로 같은 남자에게 동시에 시집을 왔다. 하지만 언니보다 몸이 약하고 아이를 갖는 것이 늦었다. 어머니는 무하마드를 비난하거나 혼내지 않았다. 그저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을 뿐이다.

더 기분 나쁜 점은 오마르 놈이 무하마드에게 뽐내거나 하지도 않았을 뿐이다. 그저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잘 하는 것을 당연시 여겼다. 왕의 아들이지만 모든 면에서 뒤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밤중에 침대에 누우면 사각거리는 이불 소리가 불쾌해 잠들기가 어려웠다. 존재하지 않는 벌레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오늘 식사로 올라온 치즈는 전에 먹던 거랑 다른데. 뭘 바꾼 거야?」

오마르가 말했다.

「똑같기만 한데 뭘 그래? 왜 그렇게 까다롭게 굴어. 사람들이 불편해하잖아.」

「….」

무하마드가 폭발했다.

「다르니까 다르다고 하는데 왜 그러는 거야! 정말로 다르단 말이야! 감촉 자체가 아예 다르다고. 넌 이것도 모르겠냐?!」

두 형제는 주먹다짐을 하며 싸웠다. 열 살 때의 일이다. 결국, 아버지인 왕이 개입해 싸움의 원인을 물었다.

왕에게 불려간 요리사는 치즈의 맛 차이에 대해서 설명했다.

「평소에 물소젖 치즈를 직접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농장에서 사 왔습니다. 이건 알아채기 어려운 부분인데 대단하십니다. 무하마드 왕자님께서는 감각이 아주 예민하시군요!」

무하마드는 마침내 자신이 오마르보다 뛰어난 점을 찾았다. 그것은 바로 감각이었다.

그가 밤에 잠들지 못했던 것은 청각이 예민했기 때문이다.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던 것은 다른 이들보다 시각이 더 예민해서 눈이 부시고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아들의 상태를 명확하게 파악한 왕은 무하마드가 다른 식으로 교육받도록 방침 자체를 바꾸었다.

무하마드는 요리사에게 고맙다고 했다.

그는 새로운 취미를 발견했다. 전에는 그저 생존을 위해 음식을 먹을 뿐이었다. 하지만 미각이 예민한 꼬마 왕자님을 위해서 요리사가 새로이 만들어 오는 음식들은 아주 흥미로웠다. 수수께끼를 푸는 것 같기도 했다. 미로 정원을 혼자 빙글빙글 돌다가 돌파구를 찾으면 즐거운 것처럼 기뻤다.

잘 만든 음식이 좋았다. 육즙이 풍부하게 흐르는 고깃점을 씹어 삼키는 것도 좋고 달콤하니 살살 녹는 크림을 핥는 것도 즐겁다.

어슴푸레한 조명 속에서 자신만을 위해 준비된 요리를 먹는 것은 무엇보다도 행복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 음식이나 먹을 수는 없었다.

흙손질이 제대로 되지 않은 채소 같은 것이 섞여 있으면 그 흙 비린내에 아주 민감해졌다. 그래서 그는 요리사들을 훈련시켰다. 외부에서 만난 요리사들이 만드는 식사는 좀처럼 즐길 수가 없었기에 세계 최고의 요리사들을 고용해 식도락을 즐겼다.

원하는 음식이 있다면 메뉴를 찾아보고 고용한 요리사들에게 만들게 하였다.

그중에서도 H 호텔 주방장 페드로는 발군의 실력을 자랑했다. 페드로의 실력이 너무나 뛰어난 나머지 다른 요리사의 요리는 혀에 차지 않을 지경이었다.

결혼식이나 연회 등에서 예의상 한두 입 음식을 맛보기는 하였다.

하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맛있는 외부 음식을 만났다. 세계 각국의 요리를 경험해본 무하마드에게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정원을 통과해 걸을 때부터 주변에서 강렬하고 달콤한 향기를 느꼈다.

슈가 아트 작품을 볼 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향기였다. 그때는 그저 식물 대신 설탕 장식물을 놓았나 보군 하고 지나쳤다.

하지만 연회장으로 들어서자 플레이팅부터 달랐다. 테이블 위에는 은 식기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는데 빈 접시 위에는 아무것도 올려져 있지 않았다.

손님들이 당황해할 무렵 웨이터가 등장해 이 접시 자체가 요리라는 사실을 설명했다.

접시는 바삭바삭한 비스킷이 들어가 있는 설탕 과자였다. 언뜻 보기에는 은제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들여다보거나 만져 보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놀라울 정도로 질감을 교묘하게 재현해 감각을 속였다.

이쯤 되면 맛이 없어도 감탄할 수밖에 없기 마련이다.

무하마드는 트릭아트처럼 이곳저곳 숨겨져 있는 요리를 찾아 연회장을 자유롭게 누볐다.

마치 그만을 위해 만들어진 놀이공원 같았다.

웨이터에게 설명을 듣지도 않았다.

향긋하고 달콤한 냄새를 좇아 손을 대면 그 자리에는 반드시 먹을 것이 있었다.

벽에 꽂혀 있는 작은 요리들.

서랍 손잡이, 화병에 꽂힌 꽃, 그리고 의자 뒤편의 장식까지.

다른 손님들이 먹을 것이 어느 파트인지 생각지 못해 헤매는 동안에도 그는 누구보다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청결하면서도 신선하고 복잡한 맛들이 오케스트라의 화음처럼 조화를 이루어 혀 위에서 팔딱팔딱 뛰어놀았다.

아무리 맛있는 것이라도 그 음식만을 계속 먹으면 질린다. 같은 자극에 둔감해지며 점점 더 강렬한 자극을 찾게 되는 법이다.

이런 요리를 개발할 줄 아는 쉐프라면 반드시 자신의 주방에 데려와야겠다는 욕심은 점점 더 확고해졌다.

페드로는 요리 솜씨가 좋으나 이런 식으로 혁명적이고 전복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창의력은 부족했다. 그의 요리는 접시 위에 올라가는 것으로 한정되어 있을 뿐이었다.

‘페드로와 임진혁 쉐프, 두 사람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한다면 내 식탁이 좀 더 풍성해질 거야.’

2억이 부족하다면 4억, 그것도 부족하다면 좀 더 지불하면 된다.

돈에 대한 욕구, 명예욕. 더 배우고자 하는 욕심.

무하마드가 봐온 요리사들은 대개 셋 중의 하나의 욕구로 움직였다. 이미 돈을 거절한 거로 봐서는 명예욕이나 학구열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첼시 갤러리에서 전시를 한다거나 등의.

‘꼭 데려오고 싶다.’

하지만 그러한 모든 생각은 초콜릿 케이크를 입에 넣는 순간 전부 잊혀졌다. 식감은 구름처럼 부드러웠다.

저절로 탄식이 흘러나왔다.

「…내가 여태까지 먹어왔던 케이크는 대체 뭐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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