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516화 (514/656)

제 516화

「시험이라고까지 할 것도 없군요.」

진혁이 싱긋 웃었다. 어렸을 때부터 다양하고 폭넓은 음식을 접해왔다면 그만큼 미각과 후각을 단련할 기회가 많았을 것이다. 부유한 이들만이 감각이 예민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저렴한 재료부터 고급 식자재까지 다양한 음식을 맛보고 편견 없이 모든 식재료를 구별하며 불호 없이 모든 음식을 즐기려면 아무래도 특정 시점에 경제적인 사정이 받쳐줘야 한다.

‘가족들이 그 역할을 해줄 수 있을까 싶었지만 말이야.’

진희 같은 경우에는 환골탈태 후 태극권을 함께 수련하며 전신을 포함해 감각이 더 예민해졌다.

하지만 감각이 예민해졌기 때문일까? 진희는 새로운 식재료를 맛보는 것을 꺼렸다. 기존에 익숙하고 좋아하던 식재료는 계속해서 즐겼으나 낯선 재료를 맛볼 때마다 원하는 것과 다른 맛이라며 괴로워했다.

기존에 먹던 비슷한 음식을 계속해서 즐기고 싶어 하는 것은 진희만이 아니었다.

부모님과 진희를 포함한 가족들은 익숙한 맛을 편하게 즐기는 것을 좋아했다. 익숙한 식재료를 다른 방식으로 손질하거나 소스 배합을 바꿔 보는 정도라면 모를까, 낯선 식재료는 거부했다.

진희 같은 경우에는 자기만 먹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권유하는 것도 싫어했다.

당장 곤충 다리 튀김만 해도 그렇다. 진희는 자기가 먹기 싫어할 뿐만 아니라 진혁이 미미에게 권유하는 것도 싫어했다. 반면에 미미는 연애할 때는 거리낌 없이 먹었으나 결혼하고 나서는 자신이 먹지 못하는 식재료 목록을 따로 전달해왔다. 부드럽지만 완곡하게 거절 의사를 표현한 것이다.

‘그래도 미미 씨는 제비집 요리부터 시작해서 상어 지느러미 등 온갖 희귀한 요리를 전부 즐기지. 이국적인 요리라고 해도 한두 번은 맛을 보고 나서 거절해.’

황미미 같은 경우는 진희보다는 후각과 미각이 덜 예민했다. 하지만 그녀는 중국의 온갖 고급 요리를 포함해 동서양의 요리를 전부 즐겨왔다. 하지만 그 본래의 미각은 아무래도 광둥 요리 쪽이다. 그래서 중국 지점에 내놓을 빵을 시식할 때에는 크게 도움이 되었다.

‘진희도 그런 면에서는 도움이 되지만 말이야.’

임진희 같은 경우에도 입맛이 지극히 한국적이고 대중적이었다. 유일봉이나 백진영, 김가영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해와 달>에서 신제품을 개발할 때마다 반드시 초청해서 시식회를 했다.

하지만 진혁에게는 ‘지음(知音)’을 향한 갈망이 있었다.

‘번데기는 먹으면서 왜 특정 몇 가지는 못 먹겠다는 거야? 다 똑같은 곤충인데.’

진혁이 보기에는 전부 사치스러운 생각이었다. 무엇이든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둬야 한다. 통통한 애벌레들은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다. 야산의 나물과 약초 중에서는 몸에 좋을 뿐만 아니라 맛도 좋은 것들이 꽤 있다. 물론 쓰거나 짭조름한 맛이 나는 것들도 있고 센 맛이 있는 것들도 있다.

절박한 생존 속에서 아무것도 가리지 않고 다 먹을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뛰어나고 예민한 미각을 갖고 있어 고급 요리의 식감 또한 즐길 수 있는 이.

그런 사람이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진혁은 꾸준히 지음이 될만한 누군가를 찾아왔다.

바리스타이자 동업자인 백진영은 미각이 예민했으나 진혁이 원하는 만큼은 아니었다.

지금 본점에서 보조 페이스트리 쉐프로 일하고 있는 김동진은 두 번째 후보였다. 백진영이 우연히 그에 대해 언급했을 때부터 진혁은 이 청년을 내심 염두에 두고 있었다.

어렸을 때는 부유한 가정에서 유복하게 자랐으나 가정 문제로 보육원에 들어가게 되면서부터 질이 낮은 음식을 먹게 되었다. 배경부터 진혁이 원하는 조건을 충족시킨다. 아직 어리고 많은 음식을 접해보지 않았으나, 그 문제는 진혁이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니 훌륭한 지음 후보였다.

하지만 소년은 자신이 먹어보지 못한 음식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그저 자신이 알고 있던 재료를 더 맛있게 하는 데에만 열중했다. 새로운 식재료를 탐색하고 시식하기보다 기존의 재료를 어떤 식으로 조합하는지에 더 열광했다. 진희와도 비슷한 타입이다. 대부분의 페이스트리 쉐프가 이러했다.

‘사람들은 완전히 새로운 맛을 부담스러워해.’

진혁은 사람들이 익숙해하는 맛을 사용하되 식감을 바꾸거나 온도를 바꾸는 등 다양한 방법을 사용해왔다. 낯선 재료를 익숙한 방식으로 제공하기 위해 찌기도 하고 굽기도 하고 삶았다.

‘스테인리스 그릇에 반죽을 했을 때와 도자기 그릇에 반죽했을 때의 맛 차이를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건가.’

같은 방법으로 같은 일을 계속해서 실패를 맛본다면 방법을 바꾸어야 한다. 그렇기에 몇 번의 실패를 거친 후 진혁은 지음을 찾는 여정을 중단했다.

대신 새로운 음식을 개발하는 데에 몰두했다.

부모님과 진희를 포함해 손님들은 그가 만든 요리에 열광했다. 하지만 그가 요리마다 하나씩 숨겨둔 미묘한 맛의 변주를 눈치채는 이는 아직까지 아무도 없었다.

지금의 삶이 불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청각장애인들만이 있는 세상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악사가 이런 기분일까.’

감각이 예민한 청각장애인이 있다면 눈앞에서 드럼 연주자가 드럼을 칠 때 둥둥 울리는 진동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는 하이햇이 쨍하고 울리며 나는 소리나 심벌즈의 따각따각 소리는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소리 없이 진동만을 감상한다 하더라도 음악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겠지.’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애초에 연주자가 의도한 것과 다른 영역에 있을 것이다.

시각장애인들만이 있는 세계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라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가 그려내는 찬란한 빛과 어둠의 세계는, 단지 오돌토돌하고 볼록한 물감 자국처럼 느껴질 뿐이다.

‘내가 의도한 맛을 포함해 모든 것을 전부 다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씨실과 날실이 교차하며 비단을 자아내듯 섬세하고 우아한 맛을 설계해도 아무도 이것이 어째서 아름다운지 설명하지 못한다. 그저 맛있다는 칭찬이 돌아올 뿐이다.

이번에 푸드 블록 생산 사업을 시작하면서 만난 페이스트리 쉐프 중에서도 꽤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정말로 진혁이 원하는 수준까지 미각을 끌어올린 이는 없었다.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는 맛이 숨겨져 있는 케이크, 그리고 빵.

진혁이 직접 설계한 푸드 블록은 대략 삼백여 개.

페이스트리 쉐프들이 하나둘씩 만들어 들고 오는 푸드 블록을 평가하면서 개발하다 보니 생각보다 가짓수는 적었다.

하지만 그 블록 중 일부에는 숨겨진 맛이 들어있었다. 아직까지 아무도 그에 대해서 진혁에게 코멘트하지 않았다.

진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잠깐, 그래서 무슨 시험 문제를 내려고 하는 건데?」

밥 앤더슨의 질문에 진혁이 대답했다.

「문제는 이미 출제되어 있습니다. 단지 답변이 돌아올지 아닐지 궁금할 뿐입니다.」

「무슨 문제를 언제 냈는데? 설마 나한테도 뭔가 테스트를 했나? 그런데 내가 몰랐나.」

밥이 황망해 하며 눈알을 굴렸다. 그는 과거에 있었던 일부터 하나씩 되짚어 보았다.

「내가 그때 펜로즈의 삼각형 케이크를 먹으면 안 됐던 거군! 내가 먹는지 먹지 않는지 테스트한 거지. 먹지 않는다면 진정 예술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고, 먹어버린다면 눈앞의 욕망에 굴복한….」

화가가 흥분해서 횡설수설했다. 진혁은 밥 앤더슨의 말을 잘랐다.

「아닙니다.」

「아니라고?! 그럼 나는 언제 시험했나?」

「밥 앤더슨 씨를 시험한 적은 없습니다.」

「그래? 그럼 이번에 무하마드 왕자를 시험한다는 이야기는 뭔데. 내 작품의 고객이기도 한 만큼 나도 알아야겠네.」

진혁은 물끄러미 밥 앤더슨을 바라보았다. 결연한 표정으로 주먹을 꽉 쥔 모습이다. 피부색이 어둡고 안색이 퀭하나 눈빛만은 살아있다.

‘해와 달’ 미국 프랜차이즈의 빵을 먹어가며 어찌어찌 버티고 있으나 여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에 치른 전시회 때문에

방금 전에 흥분해서 소리 지른 탓에 그 얼마 남지 않은 여명도 또 깎아 먹었다.

이번에 치른 전시회가 100일, 그리고 방금 성질낸 것으로 48시간 정도.

‘지금 자신이 그 성질 때문에 스스로의 생명을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나?’

다른 사람이 이런 식으로 캐물었다면 아예 대답을 해주지 않고 피했을 것이다. 하지만 밥 앤더슨은 미미가 제일 좋아하는 화가였다. 이자가 갑자기 쓰러져 죽거나 한다면 미미가 슬퍼할 것이다.

‘오히려 그림값이 오른다고 좋아할지도 모르겠는데….’

어쨌거나 진혁은 이자가 더 흥분하기 전에 진정시키기로 했다. 그는 자신이 염두에 두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디아타 공주의 결혼식에 참여한 사람이라면 최소한 하나둘은 맛보았을 겁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무하마드 왕자는 나와 있는 음식을 거의 다 먹다시피 했습니다. 원래 하루만 참석한다더니 엿새 내내 나와 거의 모든 푸드 블록을 맛보았지요.」

「그러고 보니 자기가 제일 많은 종류를 먹었다고 하긴 하던데.」

「그게 바로 제가 낸 문제였습니다.」

진혁은 더 설명하지 않았다. 밥 앤더슨은 팔짱을 끼고서 눈알을 굴렸다.

「잠깐, 그것 때문에 케이크를 연회장 크기로 확대한 건가? 원래는 그냥 웨딩 케이크였다고 들었는데.」

진혁이 피식 웃었다.

「그건 밥 앤더슨 씨의 상상에 맡겨 두죠.」

밥 앤더슨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 디너에 나도 참여해야겠어.」

「전에 이미 한 번 참석하셨다면 한 차례 더 참석하실 필요 없지 않습니까?」

「펜로즈 삼각형 케이크를 나도 맛봐야지.」

진혁이 선을 그었다.

「참가하는 거야 자유지만 저는 한 명분 케이크만 만들어도 됩니.다」

「에이~! 우리 사이에!」

「따로 주문제작을 하시던지요.」

「당연히 내가 먹을 케이크는 따로 주문할 셈이었지.」

화가가 킬킬거리며 웃었다.

「재료부터 달라지잖나. 돈 주고도 음식을 주문할 수 없는 이 슬픔을 아냐고.」

아무도 살지 않을 집을 설계하는 건축가는 점차 지쳐가게 마련이다. 인간은 누구나 인정받기를 원하며 자신의 수고가 보답받기를 바란다.

하지만 진혁은 돈이 있어도 집을 살 수 없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가 납득하며 말했다.

「무하마드 왕자 측에서 동의해서 셋이 함께 식사를 한다면 괜찮습니다.」

「아, 물론이지! 당연히 허락할 거야. 완전히 미술 애호가라고.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밥 앤더슨이 가슴을 치며 호언장담했다.

◈          ◈          ◈

「거절합니다.」

하지만 무하마드 왕자 측에서 보내온 답신은 달랐다.

「왕자님의 일정상 수요일 점심때에만 시간이 빈다고 하십니다.」

「수요일은 내가 병원에 가는 날이라서 도저히 일정을 뺄 수 없다고! 일부러 그러는 거야.」

밥 앤더슨이 가슴을 쳤다.

「빨리 수요일 안 된다고 다른 날 만난다고 해 봐.」

어린애처럼 고집을 부리는 모습을 보고서 진혁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도 목요일에 바로 출국해서 한국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뉴욕에 더 머무르는 건 어렵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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