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15화
“무슬림 결혼식이 이런 건 줄 몰랐어?”
“터키 쪽은 이렇지 않아. 다 같이 모여서 춤도 추고 논단 말이야. 사람들 만나기도 쉽다고.”
“무슬림이라고 해도 지역마다 다른가 보네.”
“나도 이번에 알았지.”
루이스가 구박했다.
“그래도 기획 단계부터 남자 결혼식장하고 여자 결혼식장이 달랐는데 아직까지 몰랐냐.”
“아우, 그럴 수도 있지! 푸드 블록 패스받으려고 얼마나 바빴는데. 언제 건물까지 들여다봐.”
“그래, 그래.”
◈ ◈ ◈
미미는 연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계방송을 통해서 진혁이 건설한 거대한 결혼식장을 보았다.
「방금 마녀의 집에서 나온 헨젤과 그레텔도 이 과자 사원을 보면 참지 못하고 달려들 수밖에 없을걸요. 새롭고 강력한 마녀가 있다고 해도 이 유혹은 견딜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달콤하고 은은한 향기가 풍기는 이 ‘과자의 성’은 이전에 기네스북에 올랐던 <먹을 수 있는 과자 집>들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깔끔하게 개별 포장되어 개봉하기 전에는 음식의 향을 느끼기 힘들 정도입니다. 즉 한 레이어와 다른 레이어 간의 구별이 확실합니다. 손가락만 한 크기로 친환경 포장된 에피타이저와 디저트는 그 어느 것도 5성급 호텔의 코스요리에 등장할만한 완성도를 자랑합니다. 벽을 따라서 하나씩 하나씩 먹다 보면 어느샌가 배가 가득 불러온다고 합니다. 입맛 까다롭기로 유명한 손님들이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리포터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아나운서 리가 뉴스 데스크에서 리포터의 말을 받아 말했다.
「정말이지 저희도 가서 먹고 싶을 정도입니다. 이쯤 되면 이미 케이크라고는 할 수 없지요? 건축물의 형태를 띠고 있는 이 식용 가능한 건축물은 안타깝게도 ‘세상에서 제일 비싼 케이크’의 기록은 깨지 못했습니다. 건설 단계에서 검토한 기네스북의 심사원이 이것은 케이크가 아니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데스크의 아나운서 스튜어트가 새로운 화면을 불러내어 비교했다.
「작년에 세계 최고가 케이크로 기록된 패션쇼 케이크하고 비교해 보죠. 400억 상당의 고가 다이아몬드를 아낌없이 사용하였고 16m 이상의 길이를 가지고 있었죠. 그 케이크도 장식이 많고 복잡하여 언뜻 보면 케이크라고 보기는 어려운 형태였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무대 층에 6층으로 빵을 쌓고 크림을 발라 일반적인 케이크의 형태를 갖추었죠?」
「예, 하지만 이번에 아랍 왕녀의 결혼을 위해서 만든 건축물은 푸드 블록이라는 형태의 미니 블록 바를 수만 개 만들어 벽의 빈 부분에 쌓아 올리는 형식으로 만들어졌죠. 혁신적일 뿐만 아니라 위생적이고, 환경 보호적인 면도 고려했습니다.」
아나운서가 숨차게 말했다.
「천재적인 아이디어라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2008년 당시 기네스북에 등재된 과자 집이 실제 비스킷을 구워 쌓아 올려 만들어진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이 집은 나중에 벌레들이 습격해서 엉망진창이 되었고, 쓰레기차를 불러서 청소해야만 했죠.」
「푸드 블록을 계속해서 만들어 리필을 해 줄 수도 있고, 벽 일부를 철거해 이동시켜 놀이 공원으로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신부의 부친이자 이 놀라운 기획 건축물을 의뢰한 오마르 왕자는 이 섬을 통째로 딸에게 선물했습니다. 딸인 디아타 공주는 결혼식장이 이대로 끝나는 것이 너무나 아쉽다며 1년간 개조를 거쳐 프라이빗 푸드 테마파크로 개장하겠다고 합니다.」
「결혼식장으로 시작해서 놀이공원으로 끝나네요.」
결혼식에 든 비용에 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디아타 공주가 이번에 증여받은 이 결혼식장은 아랍 왕가를 통틀어도 최고가에 속합니다. 1,000억 원에 달하는 가격 중에서는 섬값도 있다고 하지요? 섬을 증여하면서 낸 증여세 몇백억 원이 된다고 하네요.」
「작년에 왕가의 딸인 헬렌 공주가 결혼했을 때 왕족들의 호화 결혼식, 그들만의 잔치라는 이야기가 있었죠. 당시 웨딩 케이크에만 800억 이상의 돈을 사용하고, 시가 500억 상당의 요트에서 유명 가수를 초청해 요트 웨딩을 올리며 국민들의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헬렌 공주의 사촌인 디아타 공주는 자신의 결혼식장이 너무나 즐거운 장소였다며, 이 장소를 혼자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나누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주 놀라운 결단이었죠. 힘들게 일하는 국민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마르 왕자는 디아타 공주가 내놓은 아이디어에 흔쾌히 동의했다. 성실하게 납세한 국민들 중 추첨을 통해 일부를 푸드 테마파크에 초청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한 것이다. 진혁은 비교적 유통기한이 길며 가격대가 저렴한 푸드 블록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안타깝게도 이번 ‘결혼식장 기획은’은 오마르 왕자의 희망대로 ‘가장 비싼 웨딩 케이크’로 인정받는 데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아쉬워할 필요는 전혀 없어 보입니다. 기네스북 심사위원회에서는 이번에 이 카리브해 섬의 결혼식장이 기네스북의 세 가지 레코드를 동시에 갱신했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음식을 사용한 최고 높이 그리고 최장 길이의 건축물. 세계 최고의 비용을 들인 결혼식, 그리고 제일 많은 가짓수의 요리가 나온 결혼식이 되겠습니다.」
오마르 왕자는 이에 관련된 뉴스를 보며 킬킬 웃었다.
「무하마드가 속상해하겠구먼. 이번에 아주 자존심을 제대로 꺾어 줬어. 전에 이야기했던 대로 사례를 보냈네.」
사례로 받은 것은 이전부터 미미가 찾고 있던 미술품이었다.
「고마워요.」
고대 중국 신강에서 출토된 유물로, 오마르 왕자가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던 화로였다.
이전부터 황태명이 찾고 있던 몇 가지 유물 중 하나다.
이 화로가 아랍 왕실로 흘러갔다는 사실을 추적하는데 만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화로를 오마르 왕자가 가지고 있는지는 몰랐습니다.」
「그래도 흔쾌히 넘겨주셨네요.」
비서진의 말에 미미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
「이걸 원하는 티를 내지 않았으니까 그렇지. 욕심내는 것처럼 보였으면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었을 거야. 오마르 왕자는 뼛속까지 정치인이니까.」
그녀는 유리장 안에 들어있는 골동품 화로를 보며 팔짱을 끼었다.
「이건 할아버지가 계속 찾고 계시던 거니까 말이야. 진혁 씨도 관심이 있으실 게 분명해.」
「골동품을 수집하는 취미는 없으신 것 같았습니다만.」
「일반적인 의미의 골동품에는 관심이 없지만 특정한 물품에는 흥미가 있거든.」
그녀가 싱긋 웃었다.
「오마르 왕자의 언론사 쪽에 진혁 씨의 이력과 예술적 성과에 대해서 추가 홍보 자료는 제출했지?」
「물론입니다. 명일 보도 예정이라고 합니다.」
「진혁 씨에게 들어가는 인터뷰 요청은 전부 거절하고, 서면 인터뷰만 받겠다고 해. 서면 인터뷰 내용은 꼭 점검하고.」
「한 비서에게 다시 지시하겠습니다.」
오마르 왕자의 공격적인 홍보 전략과 더불어, 황 그룹에서도 보도 자료를 뿌렸다.
세계 각지의 언론에서 이 결혼식장의 테마 파크화가 기사화되었다. 자연스럽게 미미의 의도대로 이 시설을 기획한 이가 어떤 사람인지도 주목받았다.
「임진혁 쉐프는 최근 예술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밥 앤더슨과 함께 제작한 현대 미술 작품을 뉴욕 첼시 갤러리에 전시하는 등 혁신적인 행로를 달려왔던 그는 단순히 베이커리의 영역을 뛰어넘어 푸드 아트의 최전선을 달리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그가 창조해낸 이 기법을 푸드 아키텍처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환경친화적일 뿐만 아니라 실용적이기도 하지요. 이 ‘먹을 수 있는 건물’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웹사이트에서 공유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쉽게 끼우고 빼먹을 수 있는 장난감 타입부터 중세풍 성까지, 가상 3D 모형을 디자인할 수 있습니다. 푸드 블록의 생산을 책임지고 있는 ‘해와 달’ 은 한국의 작은 벤처기업이었으나 이번 기회에 다국적 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으며 최근 상장을 기획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랍 연방의 국민이 아니라면 어디서 이 ‘먹을 수 있는 건물’을 체험할 수 있을까요? 현재 미국 최대의 테마파크 허니랜드에서도 유사한 형태의 건물을 짓기 위해 접촉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믿을 만한 소식통에서는 황 그룹 소유의 중국 테마파크에서 제일 먼저 선보일 것으로 보입니다.」
임진혁은 바빴다.
푸드 블록을 구매하고자 하는 사람부터 아예 건축물 자체의 설계를 맡기려는 사람까지, 수 없는 사람들이 진혁에게 연락하고자 했다.
개중에는 밥 앤더슨도 있었다.
「그렇게 재미있는 일을 하려면 나도 불렀어야지!」
「왜요?」
「왜라니. 그 모스크 안쪽에 있는 펜로즈 삼각형을 내가 못 알아본 줄 아나? 지금도 아름답지만 내 예술적 감각이 더해지면 더 좋아졌을 거야.」
진혁이 미간을 좁혔다.
「콜라보레이션이나 다른 굿즈 작품은 제작하지 않으시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만….」
「이 정도 프로젝트라면 당연히 참여해야지! 다음에 또 어디 테마파크에서 한다고? 나도 끼워 주게.」
「그쪽은 아내가 맡아서 하고 있어서요. 비서 통해서 정식으로 의향을 타진해 보시죠.」
「앗, 베갯머리 송사 같은 거 없나?」
「….」
앤더슨이 농담을 섞어 말했다.
「그나저나 아랍의 무하마드 왕자라고 아나? 경매에서 내 그림을 자주 사 가는 큰손인데 말이야.」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특별히 기억하고 있지 않은 걸 보면 중요한 사람은 아닌가 봅니다.」
「이번에 자네가 디아타 공주의 결혼식을 아주 크게 했잖아? 그 공주의 삼촌일세. 자기 명의의 구단은 물론이고 재산이 엄청나게 많아. 입맛도 아주 까다로운 미식가야. 내가 살다 살다 나보다 더 입맛 까다로운 사람은 처음 봤다니까.」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지 알 것 같군요. 그런데 그 사람에 대해서는 왜 묻습니까?」
「이번 자선 경매에서 자네와 나의 예술작품을 성공적으로 팔았잖나? 거의 백억 가까이 받았네. 그 익명의 구매자가 사실….」
진혁이 눈썹을 추켜올렸다.
「그 자입니까?」
「그 자라니! 나이는 먹을 만큼 먹었지만 나름 왕자라고. 여하튼 그 사람이 작가들과 식사를 하기를 원한다고 하더라고. 그때 자네가 바빴으니 일단 나하고 먼저 디너를 했어. 자네를 로얄 페이스트리 쉐프로 초청하기로 했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하던데. 정말로 거기로 가기로 했나?」
앤더슨이 하는 말에 진혁이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말했다.
「아니오.」
「그렇지! 갈 리가 없다고 생각했어. 내 개인 쉐프로 지내달라는 말도 거절했는데 아랍 왕족에게 가서 고용된다니, 그럴 순 없지.」
「지금으로서는 다른 누구에게도 고용될 생각은 없습니다」
「황 그룹에서 거액의 투자를 받지 않았나?」
「투자자와 상사는 다릅니다.」
「그거야 그렇지. 어쨌든 <펜로즈 삼각형의 부재>의 구매자가 작가와 함께 식사를 하겠다는 요청은 무리한 건 아니지. 원래 ‘펜로즈 삼각형 케이크’를 한 번 더 구워줘 먹도록 하기로 하는 패키지였으니까 말이야. 그것도 거절할 건가?」
「… 으음.」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험을 내야겠군요.」
「시험? 무슨 시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