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512화 (510/656)

제 512화

「이걸 먹어도 된다고요?」

여자들만 있는 공간에서는 차도르를 쓸 필요가 없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리고 있던 무거운 겉옷을 벗은 여인들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살결이 비치는 얇은 드레스를 입고서 상의와 팔을 드러낸 이도 있고, 무릎 위까지밖에 오지 않는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자도 있었다. 한 명 한 명이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아름다웠다. 눈썹이 진하고 이목구비가 또렷한 아랍계 미인들을 여럿 소개받았는데 누가 누군지 구별할 수가 없었다.

「어쩐지 다과를 내놓지 않는다 싶었더니, 그렇게 깜찍하게 꾸며 놨단 말이에요? 오마르의 아이디어인가요?」

진희는 아까 소개받았던 이 여인이 신부의 언니인지 어머니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질문에는 대답할 수 있었다.

「오마르 왕자님께서는 딸에게 최고의 웨딩 케이크를 선물해주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임진혁 쉐프가 이 결혼식장을 기획하고 직접 만들었습니다.」

「정말로 아름다워요.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 집 속에 들어온 느낌이네요.」

사람들은 장식들을 보며 탄성을 질렀다.

「의자에 박혀있는 이 보석들도요?」

「슈가 젬을 맛보셔도 되고, 기념품으로 가져가셔도 됩니다!」

신부가 흐뭇하게 말했다.

「아버지께서 이 섬을 선물로 주셨어요. 오래오래 두고 아껴먹으라고 하셔서 무슨 말인가 싶었거든요. 이런 뜻이셨구나….」

그녀는 반짝거리는 다이아몬드 귀걸이를 만지작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너무나 아름다워요.」

「아까워서 어떻게 먹는담!」

신랑의 큰어머니가 물었다.

「어디선가 송로버섯 향이 나는데? 이건 뭐예요?」

「송로버섯 초콜릿 케이크예요, 진짜 맛있어요. 한 번 드셔보세요. 이쪽에 있는 음식들은 신선할수록 더 맛있는 음식들이니까 여기서부터 드시는 게 좋아요.」

「향이 진짜 강한데 초콜릿 맛이 지워지지가 않아. 밸런스를 잘 잡았네.」

「손가락만 한 데 아주 맛있네. 고수 향이 나는 미니 아이스크림이라니, 너무 귀엽고 신기해! 이국적인 맛이야.」

진희는 입가에 저절로 미소를 띄웠다. 자랑스러워서 가슴이 벅찼다. 세상의 온갖 부유함과 사치스러움을 전부 누려온 이들이 감탄을 금치 못하는 이 환경을 만들어낸 것이 임진혁이라는 사실이 뿌듯하다. 동시에 이 현장에 자신이 손을 보탰다는 사실도 기쁘고 설렌다.

손님들이 하하 호호 담소를 나누며 오가는 모습을 보니

“밤새우면서 만든 보람이 있네….”

정작 그녀는 여기에 있는 아름다운 음식들에 손대지 못했다.

「진희 쉐프님도 드셔 보시지 그러세요?」

「저는 괜찮습니다.」

진희는 정중하게 사양했다.

「어머나, 의자 뒤에도 뚜껑이 있네! 여기 들어있는 이건…, 화이트 초콜릿인가?」

「여기 이 탁자도 그냥 탁자가 아니네. 전부 먹어도 되나 봐요.」

즐기기 위해서 이곳에 와 있는 것이 아니다. 웨이트리스들이 제대로 안내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손님들을 접대하기 위해서 이곳에 와 있다. 진희는 자신이 왜 여기에 와 있는지 되새겼다. 익숙하지 않은 구두에 이슬람식 드레스를 입고 서 있는 건 꽤나 어색했지만, 미소를 짓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내가 언제 또 아랍 왕족들하고 어울려서 이런 데 와 있겠어.’

경쾌하고 우아한 음악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신부가 문득 중얼거렸다.

「덕분에 정말로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결혼식이 되겠어요.」

◈          ◈          ◈

진희는 알 수 없었지만 남자 결혼식장은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다과가 이쪽에 준비되어 있습니다」

「오! 이 벽 장식을 먹어도 된다구요? 고맙습니다.」

「어디선가 좋은 향기가 난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이곳에 준비된 모든 가구와 장식품은 드셔도 되는 겁니다. 자, 이렇게 잡아당기시면 벽에서 빠집니다.」

「오오오오!」

사람들은 결혼식장에서 뭔가를 먹거나 마시려고 하지 않았다. 무엇이 먹을 것인지 찾지도 못했다. 그래서 페이스트리 쉐프와 웨이터들이 다가가서 어떤 식으로 먹어야 하는지 알려주는 일이 꼭 필요했다.

자원해서 이 일을 맡은 마리오가 신이 나서 돌아다녔다.

악사들이 연주하는 음악부터 박자가 빠르고 흥겹다.

결혼식 전문 광대들이 돌아다니며 춤을 추기도 하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수염을 기르고 터번을 한 남자들이 웃고 떠들며 대화를 나누었다.

오마르 왕자는 진혁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아주 아름답군, 내 딸의 결혼식에 잘 어울려. 아주 좋아하겠어.」

진혁이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정작 아버지인 그는 딸이 결혼식장을 보면서 기뻐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나중에 사진을 통해 보게 될 것이다.

「신랑을 소개해주지.」

「안녕하시오.」

「혼인을 축하드립니다!」

신랑 역시 다른 나라의 왕족이었다. 이번 혼인을 통해 두 국가의 동맹은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미미가 이 혼인 동맹이 앞으로 국제 유가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언급했던 적도 있다.

진혁은 사업과 경영 쪽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미미와 병철 등 다른 이들이 충분히 알아서 잘 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관여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여겼다.

그보다 베이커리 품질의 관리와 신제품 개발 그리고 자신이 흥미를 느끼고 있는 일을 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덕분에 아주 멋진 결혼식이 되었습니다. 무하마드도 부러워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새신랑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는 무대처럼 마련된 한쪽 단상으로 올라가 천천히 옷을 벗기 시작했다.

신랑의 가족들 그리고 손님들, 광대와 악사들이 휘파람을 불며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좋아, 좋아!」

신랑은 내내 싱글벙글하니 웃고 있었다.

속옷까지 전부 벗고 나자 옆에 서 있던 하인이 새 옷을 건네주었다. 금사가 수 놓인 결혼 제복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햇빛을 반사해 눈부시게 빛났다.

마리오가 당황한 듯이 물었다.

“왜 갑자기 옷을 벗는 거지?”

“헌 옷을 새 옷으로 갈아입으면서 인생의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는 거야. 원래 식순에 있었는데 몰랐어?”

“그래서 여자랑 남자 결혼식을 따로 하는 건가?”

루이스가 어이없다는 듯이 마리오를 흘겨보며 말했다.

“멍청아, 신부는 안 해.”

진혁이 말했다.

“자, 그럼 저쪽을 봐줘. 난 이쪽으로 좀 가봐야겠다.”

남자들은 주변의 가구나 장식에는 관심 없이 자연스럽게 돌아다니며 담소를 나눌 뿐이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알려 줘, 알았지?”

진혁은 마리오와 루이스가 각각 다른 방향을 살필 수 있도록 적절하게 지시를 내렸다.

마리오가 환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하나씩 집어 먹으면 사람들이 신기해하면서 와서 먹을 거야.”

“… 넌 여기에 먹으러 온 게 아니야.”

루이스가 마리오의 귀를 살짝 잡아당겼다. 진혁은 피식 웃었다.

“루이스, 부탁해.”

“물론이지!”

진혁은 정원 쪽으로 나갔다. 고용된 안전 요원들과 웨이터들이 손님들을 살필 것이다. 브라이언 역시 저쪽에서 열심히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훌륭한 페이스트리 쉐프라면 어느 시점에서 손님들을 접대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는 자신이 데리고 있는 이들이 성장하여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기를 원했다. 이국의 왕과 왕족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흔한 것이 아니다.

‘아버지는 소망시의 좁은 가게 주방에서 평생 일하셨어. 그게 자신에게 제일 어울리는 길이라고, 그 일이 좋다고 하셨지. 하지만 진희도 그걸 원하고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야.’

셀러브리티들과 유명인들을 상대하며 고급스럽고 비싼 케이크를 주문받는 전문 페이스트리 쉐프.

작은 동네의 주방에서 단골손님들에게 빵을 파는 제과제빵사.

서울의 유명 프랜차이즈 제과점에서 건강에 좋은 빵을 기획하고 개발하며 판매하는 삶.

그 어느 쪽을 선택해도 괜찮다.

하지만 진혁은 임진희가 이런 길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했다.

‘원한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뭐든지 될 수 있어.’

빵과 크림, 초콜릿과 치즈.

식재료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사용해서 이렇게나 멋진 건물을 만들 수 있다.

진희만이 아니라 다른 페이스트리 쉐프들 역시 이번에 이 기획에 참여하면서 크게 성장했다.

‘150개의 블록을 만들게 한 점이 좋았어. 다들 잘 컸지.’

정원에 나간 진혁은 조형된 장식물들이 모두 멀쩡하고 안전한지를 살폈다.

「좋아, 나쁘지 않군.」

글라디올러스의 꽃잎을 살짝 매만지던 그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진혁이 눈썹을 추켜올리며 고개를 들었다.

「진혁 쉐프님! 이런 곳에 계셨군요.」

「처음 뵙겠습니다만?」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수염을 멋지게 기른 남자는 무하마드 왕자의 비서였다. 진혁이 싱긋 웃었다.

‘아, 그 서로 라이벌 의식을 느끼고 있다던 그 사람인가?’

「조카이기도 한 공주의 결혼식을 이렇게 훌륭하게 치러주신 점에 대해서 저희 왕자님께서 사례를 표하고 싶어 하십니다. 혹시 잠깐 와주실 수 있는지 여쭤보고자 하십니다만.」

진혁이 맹수같이 웃었다.

「지금은 이곳을 감독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직 제 일이 끝나지 않았거든요.」

뚝.

지금도 저쪽에서 어린 소년이 사탕 꽃의 줄기를 꺾는 소리가 들려왔다.

꽃을 꺾어서 먹는 것이야 상관없지만, 그럼 그 자리에 남아있는 꽃들이 휑해 보일 수 있다.

‘이쪽이군.’

진혁은 최소한 결혼식이 진행되는 며칠 간은 이곳이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하기를 원했다.

‘그냥 꽃을 아예 다 뽑아 버리는 게 좋을 수도 있어.’

마지팬으로 만들어진 꽃도 있지만, 소년이 꺾은 꽃은 소리로 들어보건대 프랑스식 슈가 아트로 만들어진 것이 분명했다. 길게 잡아뽑은 엿가락처럼 달콤한 꽃줄기를 토막토막 내어 소년에게 쥐여주면 좋아할 것이다. 애매하게 부서진 것이 남아있느니 통째로 줘버리는 것이 좋겠다.

임진혁은 빠르게 걸어 방금 소리가 들린 쪽으로 향했다.

「무하마드 왕자님께서는 오마르 왕자님보다 더 통이 크십니다! 분명히 크게 사례하실 겁니다!」

비서가 다급하게 쫓아오면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진혁이 느긋하게 대답해 주었다.

「의뢰는 비서를 통해서 문의해 주시길 바랍니다. 업무 중에는 따로 의뢰를 받지 않습니다.」

발걸음을 조금 더 빠르게 하자 비서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미로처럼 꾸며진 과자와 설탕 조각 정원 속을 지나 굽이굽이 골목을 돌아서 그는 소년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6, 7살 정도로 보이는 소년은 방금 꺾은 꽃을 손에 쥐고 서 있었다. 짙은 눈썹에 동그란 콧대가 오마르 왕자와 똑 닮아있었다.

‘오마르 왕자의 막내아들인가? 손자? 조카?’

진혁을 올려다본 소년이 황급히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진갈색 눈동자에 두려움이 얼핏 서렸다.

「이거 내가 일부러 꺾은 건 아니야, 바닥에 떨어져 있던 걸 주운 거야.」

진혁은 허리를 숙여 설탕 꽃줄기를 마저 바닥에서 뽑아냈다.

「이것도 가져가시죠.」

「엣?!」

「이건 사과 맛 사탕이고 이쪽 이파리는 포도 맛 사탕입니다. 두 개를 같이 먹으면 더 맛있습니다.」

「…나한테 화 안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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