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509화 (507/656)

제 509화

브라이언이 말했다.

“동화 속 과자 집 같은 걸 지으려는 거야?”

루이스가 기억을 되새겨 말했다.

“진혁, 이미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비슷한 시도를 했잖아? 의자와 식탁, 그리고 테이블 위의 꽃장식을 포함해 모든 것을 설탕 장식으로 만들었잖아.”

마리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개미와 쥐, 바퀴벌레가 습격해서 연회장은 엉망진창이 되었고.”

“아니, 식장 전체를.”

진혁이 싱긋 웃었다. 임진희는 새삼스럽게 진혁을 다시 보는 눈빛으로 뜯어보았다.

“웨딩 ‘케이크’로만 한정해서 생각해서 그렇구나. 스케일 진짜 크다… 돈은 엄청나게 들겠네.”

그녀는 얼마 전에 명동점 리모델링을 하면서 인테리어 비용을 지불한 경험이 있었다. 그녀가 물었다.

“실제 결혼식장 전부를 단것으로 꾸미겠다는 얘기야? 사탕으로 의자 만들 거야? 그럼 편하지 않잖아.”

“그리고 손님들이 하나씩 하나씩 가구나 식기, 집기를 뜯어 먹기 시작하면 흉측해질 거야.”

루이스가 다른 의견을 냈다.

“사람들이 벽을 뜯어먹을 때 이걸 예쁘게 먹어야지 하고 먹지는 않을 테니 말이야. 접시 위의 케이크가 모양이 망가지는 건 괜찮지만 사람들이 마시멜로 벽을 뜯어 먹으면서 손자국 남고 더러워지고 침 묻는 걸 생각하면….”

루이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진혁이 물었다.

“해봤어?”

마리오가 속닥거렸다.

“형이 축제 때 미니어처 초콜릿 분수를 만들었는데, 어린아이들이 손가락을 초콜릿 분수에 직접 찍어 먹으려고 하거나 해서 말리느라 애 좀 썼거든.”

“만들어놓고 유리장에 넣어놓고서 먹지 말고 구경만 하라고 하면 깔끔하기야 하겠지. 그런데 그건 이미 웨딩 케이크가 아니잖아. 그냥 설탕 건축물이지.”

진혁이 사인을 보내자, 한 비서가 벽에 설치된 스크린을 켰다.

화면에 올라온 영상은 금빛 무늬가 얼룩덜룩한 갈색 벽처럼 보였다.

“오?”

마리오가 엉덩이를 들어 좀 더 스크린 가까이 다가갔다. 스크린에 그림자가 생기자 잘 보이지 않았다. 루이스가 동생의 티셔츠 옷자락을 잡아 뒤로 끌어당겼다.

“이 멍청아. 니가 다 가리잖아.”

마리오가 자리로 돌아와 앉으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는 도트 그림처럼 보이는 벽을 손가락질하며 당당하게 외쳤다.

“나 이제 이거 뭔지 알아. 종이에 포장된 초콜릿을 연이어서 쌓아서 거대한 모자이크 벽처럼 만들었다고. 이제 사람들이 하나씩 까서 먹겠네.”

“동생아. 그건 가까이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단다.”

진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기둥과 벽을 쌓는다고? 건축 자재들 전부 먹을 수 있는 자재로 소포장을 해서 사람들이 하나씩 벗겨 먹는 거야?”

“사탕이나 초콜릿, 스니커즈 바 같은 걸 쌓아 올리면 아까 말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건 웨딩 케이크가 아니잖아. 저건 그냥 초콜릿 벽일 뿐이고.”

진혁이 자신이 어떤 것을 구상하고 있었는지 털어놓았다.

“땅을 사서 거대한 이슬람 사원을 건설하면 돼. 모스크 앞 정원에는 슈가 크래프트로 만들어진 나무와 그리고 화초들. 초콜릿 분수와 크림 소다가 흐르는 강을 만들면 좋겠어.”

루이스가 침을 꿀꺽 삼켰다.

“아랍풍의 정원이라, 아주 흥미진진한 작업이 되겠는데? 잠깐, 초콜릿 분수와 크림 소다가 흐르는 그 타일 역시 먹을 수 있는 재료로 만든다는 거지?”

“그렇지.”

“최소한 타일들, 사람들 발에 밟히는 부분은 대리석이나 스테인리스여야 하지 않을까?”

“당연히 바닥도 먹을 수 있어야지.”

“….”

진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벌레나 새, 쥐가 절대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게 가능해? 밀폐된 공간이라고는 해도, 사람들이 계속 왔다 갔다 할 거 아냐.”

“맞아, 포장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을 텐데.”

침묵하고 있던 브라이언이 진지하게 말했다.

“진혁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다. 덴마크 팀에서 만들었던 레고 블록 케이크를 보고 영감을 얻은 거지?”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맛과 색이 다르게 디자인한 블록을 레고 같은 느낌으로 쌓아 올릴 거야.”

마리오가 눈알을 굴렸다.

“벌써 다 생각해 놨잖아? 도대체 우리는 왜 불러서 물어본 거야?”

루이스가 동생의 말을 끊고서 말했다.

“자연분해 되는 종이나 비닐로 포장하면 되겠군.”

“투명한 랩 계열로 한다면 겉으로 보기에도 예쁘겠다. 그럼 우리한테 뭘 부탁하고 싶은 거야? 건물 디자인 같은 건 아예 건축가에게 맡기는 게 안전할 테고. 초콜릿이나 쿠키, 마시멜로 블록 같은 걸 디자인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거야?”

“응. 갑자기 커다란 건물을 지으라고 해도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잖아? 그러니까 각자 맛 계열을 설정해서 튼튼한 미니 블록들을 만들어 줬으면 좋겠어.”

진혁은 자신이 짜놓은 청사진을 설명했다.

“대강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건물과 기둥별로 맛을 다르게 할 거야. 시트러스 계열의 과일 맛, 그리고 천연 허브 계열, 커피와 향신료….”

진희가 자신만만하게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천연 허브 계열은 내가 맡을게.”

마리오가 즐겁게 말했다.

“그럼 나는 우유와 유제품 쪽을 할래.”

“나는 커피.”

모스크 건축이 다른 건물과 가장 크게 구별되는 점은 특유의 ‘돔’과 돔 위에서 뻗어 나가 있는 첨탑이다. 꿉바(Qubba)라고 하는 이 반구형 형태의 지붕을 보면 누구나 이 건물이 이슬람 양식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내부에는 특유의 아라베스크 무늬가 화려하게 장식되어야 한다.

실제 아랍풍 사원의 사진 자료가 몇 가지 지나쳤다.

브라이언이 물었다.

“사람이나 동물 조각 같은 게 전혀 없는데.”

“모자이크나 벽화도 없네.”

한 비서가 설명해 주었다.

“꾸란에서 진정한 창조주는 단지 하나님 한 분이시기 때문에, 인간이 동물이나 인간의 형태를 만들어 조각이나 그림으로 장식할 경우 우상 숭배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모여 있던 페이스트리 쉐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운종이 물었다.

“아니 그럼 웨딩 케이크에 신랑과 신부의 형상을 만드는 것도 안 된대요?”

“그건 상관없을 겁니다. 신에게 바치기 위해서 만드는 게 아니니까요. 세계에서 가장 호화로운 케이크에서도 슈가 크래프트 기법을 사용해 패션모델 여러 명을 만들고 의상과 장신구를 만들었으니까요. 그것도 아랍계 부호가 주문한 케이크였습니다.”

강운종이 눈을 깜빡였다. 유일봉이 물었다.

“그럼 형, 이번 웨딩 케이크는 어떻게 할 거야?”

“음?”

“건물을 짓는다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케이크 형상을 한 무언가가 있긴 있어야 할 거 아니야. 분수 가운데에 있든지 아니면 모스크 한가운데에 있던지, 그것도 다 생각해 놓은 거야?”

“대충.”

진혁이 피식 웃었다.

“그보다 미니 블록 개발과 디자인은 일주일 정도면 되지? 3개월밖에 시간이 없으니까, 양산하려면 시간이 모자라. 한 사람당 최소한 150개는 해 줘.”

진희가 비명을 질렀다.

“일주일?! 일주일에 백오십 개 맛을 가지고 오라고?”

그녀가 벌떡 일어나서 따지고 들었다.

“우리 다 지금 매일같이 일하고 있거든…?! 어떻게 일주일 만에 만들어?!”

“일단 디자인이 나오면 공장 설립해서 그쪽에 맡길 거야. 틀을 만들어서 그 위에 끼워 넣을 거니까, 블록이 다른 블록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도 괜찮아.”

“레고처럼 쌓지 않고?”

“몇 센티미터 높이로 만든다면 모를까. 20m 이상 높게 쌓아 올려야 하니까, 아무래도 틀부터 필요하지.”

“150개를 못 만들면 30개라도 내놔.”

“아니, 말은 쉽지! 그걸 그렇게 빨리 가져가야 하는 이유가 뭔데?”

진희가 쏘아붙이는데 한 비서가 대화에 끼어들어서 말했다.

“건축가와 3D 프린터 출력 업체를 섭외했습니다. 디자인이 나온다면 24시간 후부터 바로 생산을 시작할 수 있다고 합니다. 틀과 건설을 ”

진희가 한 비서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비서님… 진혁이가 이런저런 일을 벌여놔서 고생이 많으세요.”

“다른 사람들도 괜찮지? 정규적으로 하고 있는 일은 가능한 다른 사람에게 위임해 줘. 이번 일은 이번밖에 할 수 없는 특별한 이벤트니까 말이야.”

“알겠어요.”

“알겠습니다!”

마리오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좋아. 난 200개 만들게!”

루이스가 마리오의 등을 내리쳤다.

“또. 또, 말부터 하지 말고!”

“진혁아, 이백 개 만들면 인센티브 없어? 뭐 안 줘?”

임진혁이 마리오를 보면서 피식피식 웃었다.

“150개를 제출하라고 했다고 해서 그걸 전부 쓰려고 하는 건 아니야. 식감이나 맛에서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블록은 제작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완성도를 신경 써서 제출하도록 해.”

◈          ◈          ◈

6일이 지났다.

다른 페이스트리 쉐프들이 하나둘씩 블록 디자인을 제출하는 동안 진혁도 나름대로 바빴다. 그는 본점 근무를 쉬면서 건축가들의 도움을 받아 전체적인 정원의 조망을 짰다.

기존에 존재하는 어떤 이슬람 사원들과도 구별되는 독특한 설계였다.

그는 이슬람식 모스크에서 가장 흔히 쓰이는 중요한 장식이 어떤 것인지 살폈다. 그리고 모자이크를 이용한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들기로 했다. 신랑 신부의 모양을 만들고자 했으나, 종교적 특성상 인물의 형태는 피하고 기하학적인 무늬를 새로 고안했다.

추상적인 문양을 반복하여 독특한 형태를 만드는 아라베스크 무늬 역시 따로 만들었다.

반복되는 무늬가 아랍의 독특한 빵 모양이 되도록 신경을 썼다.

미미의 도움을 얻어 적당한 위치의 땅을 찾는 것도 잊지 않았다. 외국인은 땅을 구매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오마르 왕자에게 땅을 구매하도록 요청했다. 오마르 왕자는 진혁의 요구를 듣고 크게 웃었다.

「땅을 살 필요는 없네.」

「이미 생각해 둔 곳이 있으십니까?」

「결혼 선물로 딸에게 주려고 했던 곳이 있는데, 그곳에서 하면 될 것 같군.」

땅 문제가 해결되고 그는 바로 건물의 청사진을 공유했다. 오마르 왕자는 흔쾌히 수락했다.

「아주 현대적이고 아름답네!」

드높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두 개의 돔이 하늘을 향해 솟아있다. 하늘에 닿을 듯 높게 솟은 첨탑 그리고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 그리고 정원.

예상 손님은 약 1200명.

진혁은 손님용 의자와 탁자도 전부 먹을 수 있는 재료로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손님의 명단이 필요합니다.」

오마르 왕자가 목소리 톤을 바꾸었다. 그가 불쾌한 듯이 물었다.

「어째서 그런 게 필요한가?」

「성인과 유아를 구분하여 유아용 가구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 정도라면 문제없지, 하하하!」

어린아이용 탁자와 의자 그리고 성인용은 크기부터 달라질 수밖에 없다. 진혁은 결혼식장 전체 모형을 석고로 뽑아놓고 세부적으로 어떤 것을 더 만들어야 하는지 조정했다.

“… 경복궁 같아.”

석고로 만든 미니어처 모델을 본 진희가 눈을 비볐다.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난 네가 결혼식 아치랑 의자 몇 개 만들고 분수랑 벽 세우는 줄 알았어. 그런데 이걸 미니 블록으로 짓겠다고? 2개월하고 3주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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