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507화 (505/656)

제 507화

진혁이 물었다.

「형 싸움 잘해?」

「어?」

「진희한테 관심 있으면 일단 나랑….」

진혁이 싸워야 한다느니 어째야 한다느니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미미가 생글생글 웃으며 끼어들었다.

「병철 이사님도 진지하게 관심이 있으셔서 말씀하시는 건 아닐 거예요, 그렇지요? 그랬다면 직접 본인에게 정중하게 여쭤보셨겠지요. 물어보신 이유가 뭔가요?」

그녀가 깔끔하게 정리해주자 병철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왜, 어릴 때 걔가 완전 산목여고 여신이었잖아. 그때부터 인기 많았는데.」

「그랬어?」

「이번에 텔레비전 나오면서 진짜 더 예뻐졌잖아. 같은 회사 다니는 거 아니까, 옛 동창 중 하나가 연락해와서 묻더라고. 얘가 꽤 괜찮은 애라서 진희도 생각 있으면 다리 놓아주려고 했지.」

진혁이 미간을 좁혔다. 앤더슨이 말했다.

「진희라면 그 진혁 군 쌍둥이 말이지?」

「네, 맞아요.」

「젊은 애들은 좋겠구만, 연애도 하고.」

미미가 부드럽게 웃었다.

「병철 이사님 친하신 분이신가요? 소개받고 말고는 아가씨에게 직접 여쭤보아야 할 것 같아요. 하지만 묻기 전에 그 친구분이 어떤 분인지 설명은 해주셔야겠네요.」

그녀가 깔끔하게 정리하자 병철 역시 수긍했다.

「나쁜 앤 아닙니다. 사업하고 있고.」

「….」

대화가 오가는 동안 앤더슨은 눈을 감고서 빵의 식감을 즐겼다. 그가 말했다.

「맛있는 건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데도 먹을만한 건 그나마 이것밖에 없어. 요즘은 이거라도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다고.」

진혁이 웃었다.

「앞으로 더 먹을 수 있는 게 많이 늘어날 겁니다. 개발팀 인원 자체를 늘려서 더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래?」

저 멀리에서 윌리엄이 이쪽을 살피며 기웃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민병철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엄청 신경 쓰는데?」

미미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런 때일수록 더 당당하게 맞이해야지요.」

「하하하.」

◈          ◈          ◈

“제과제빵은 예술(art)이다.”

여기에 그 명제를 새로운 형태로 증명한 장인이 있다.

페이스트리 쉐프들은 서로 그렇게 이야기하지만, 그 누구도 이러한 형태의 도전을 한 적이 없었다.

음식은 음식, 그리고 예술은 예술. 서로의 영역 사이에는 명확하게 선이 그어져 있다. 화가는 작업실에서 작품을 창조하고 페이스트리 쉐프는 주방에서 제과를 굽는다.

하지만 임진혁 쉐프의 새로운 작품 ‘펜로즈 오각형’은 예술과 음식 그 사이의 경계를 뛰어넘었다. 이 명작은 첼시 갤러리의 전시에서 최초로 등장한 케이크, 즉 푸드다. 푸드 스타일리스트들은 음식으로 예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나 푸드 매거진을 장식하는 그 어떤 음식들도 전시되지는 못했다.

간혹 모형이나 미니어처 음식들이 전시되기도 하지만 그 어떤 것들도 현대미술 갤러리의 높은 벽을 넘지는 못했다.

하지만 임진혁 쉐프의 케이크는 이번에 그 예술적인 가치를 훌륭하게 증명했다.

서양화가 밥 앤더슨은 임진혁 쉐프가 제작했다는 사실을 명시하며 케이크를 전시하였다.

그는 이번 기회에 서양화가에서 행위예술가로 거듭났다. 케이크가 전시되면서 그 앞에는 48시간을 측정하는 타이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시한폭탄의 심지가 타들어 가는 것만 같은

48시간 즉 케이크의 맛이 최고에 달하는 시점에 사람들 앞에서 예술 작품을 먹어치웠다. 케이크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그는 자랑스러운 듯이 “케이크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맛있어야 한다. 이 케이크는 모든 것을 다 충족했다.”라고 선언했다.

이 퍼포먼스는 SNS에서 20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였다.

밥 앤더슨의 전시는 1일 입장 인원수가 제한되어 있다. 이 전시회는 5월 25일까지 첼시 갤러리의 에포르먼 전시관에서 열린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시간별로 10명씩만 참여할 수 있다.

현재는 케이크가 있던 자리에서 당시의 퍼포먼스를 녹화한 영상을 상영하고 있다. 더 이상 돌아가지 않는 냉동 전시칸만이 쓸쓸하게 그 곁을 지키고 있다.

밥 앤더슨은 이야기했다.

“임진혁 쉐프가 없었다면 이 작품은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물리적인 실체만이 아니라, 개념의 전환이 있습니다. 평면 속에서만 존재하던 불가능한 도형, 그는 그것을 입체로 만들어 현재로 불러냈습니다. 현실에 존재하는 불가능을 보며 충격받은 저는 그 예술 작품을 먹어야만 했습니다!”

그는 한숨을 쉬고서 다시 말했다.

“세상에는 먹어야만 드러나는 진실이 있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미술 작품이라도 누구도 봐주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지요. 그런 것처럼, 케이크는 아무도 먹어주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술 작품이자 동시에 케이크인 이 작품은 사라져야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는 퍼포먼스가 끝난 후 입가에 케이크 가루를 묻힌 채 허심탄회하게 본심을 털어놓았다.

…(중략)….

기사를 전부 본 미미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뉴욕에서 전시회가 마무리되는 것까지 보고 나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강변의 아파트에서 보이는 야경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어둠 속에 별 가루를 뿌린 것처럼 반짝이는 빌딩 숲을 보며 두 사람은 밤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주방의 식탁에 앉아서 진혁이 만든 케이크를

“좋은 기사에요.”

진혁이 말했다.

“이번에도 뉴욕 페이스트리 매거진의 리암 에이든이 쓴 기사로군요.”

“그 기자 글을 자주 보게 되네요. 이 사람을 스카웃해 와서 글을 쓰게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진혁이 피식 웃었다.

“어떤 사람들은 집단의 안이 아니라 바깥에 둘 때 더 좋은 경우가 있습니다. 그들을 들판에 풀어놓으면 제멋대로 호의를 가지고 다가와 친절하게 굴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억지로 우리 안에 집어넣으려고 하면.”

진혁이 더 말하기 전에 미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어요. 홍보팀에 꼭 불러오고 싶었는데 아쉬워요. 하지만 이러한 칼럼니스트는 회사가 아니라 외부에 있을 때 더 도움이 된다는 데에 저도 동의해요.”

진혁은 미미가 인재 욕심을 내는 것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래도 아주 잘 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사람을 중히 여기고 귀하게 써야 하니 말입니다.”

미미가 생글생글 웃었다.

“할아버지가 인재를 모래 속 보석같이 귀하게 여기라고 하셨어요.”

“그렇죠.”

미미가 뿌듯하게 말했다.

“베이커리 매거진만이 아니에요. 이것을 과연 예술로 봐야 하는가, 라는 논란이 현대 미술계에서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요.”

“그냥 케이크인데요.”

“갤러리에서 전시된 케이크지요. 연작 그림과 같은 시리즈로 충분히 상징성이 있는.”

그녀가 눈을 반짝거렸다.

“밥 앤더슨은 그림을 팔지 않아요. 자신의 미술관에서 전시하거나 기부할 뿐이죠. 뉴욕 현대미술관과 다른 두 미술관에 한두 점을 기부했을 뿐, 자신의 이름을 건 미술관에 전시하고 있어요.”

“그리고 미미 씨의 미술관에 한 점이 있지요.”

“맞아요. 자선 경매에 마지막으로 밥 앤더슨의 그림이 팔렸을 때, 그때 백만 달러를 호가했어요. 지금 그가 이번에 그림을 판다면 얼마가 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가 없어요.”

진혁이 미미를 바라보았다.

“그림의 가치를 돈으로 평가하는군요.”

“돈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지요. 하지만 아주 좋은 투자 상품이에요.”

미미가 눈을 번득였다.

“그리고 진혁 씨가 만드는 케이크도 예술 작품이에요. 그러니 앞으로 주문 제작을 받을 때는 진혁 씨에게 의미가 있는 분들이 아닐 경우 그만큼 대가를 지불하도록 해야 해요.”

진혁은 미처 거기까지 생각하지는 못했다.

“지금은 아예 개인의뢰를 받지 않고 있긴 한데.”

“네. 앞으로도 개인 의뢰를 받으신다면, 밥 앤더슨 씨처럼 유력한 인물의 의뢰에 한정해서 받는 것이 좋겠어요.”

진혁이 씨익 웃었다.

“…뭐, 하나에 몇 천만 원 정도 낸다면 케이크를 만들어줄 생각도 있습니다만.”

그는 농담으로 말했다. 하지만 미미는 진지했다.

“얼마나 자주요?”

“일도 해야 하고, 미미 씨가 좋아하는 맛도 개발해야 하니까 일 년에 두어 번 정도?”

미미가 진혁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사실은 이번에 이 케이크가 알려지면서, 제 대학교 때 친구가 진혁 씨에게 케이크 의뢰를 하고 싶어 했어요.”

진혁이 눈썹을 추켜올렸다.

“미미 씨 친구라면야 얼마든지 해줄 수 있지요. 돈을 받지 않아도 좋습니다.”

미미가 수줍은 듯이 말했다.

“삼백여 명이 함께 먹을 수 있는 결혼기념일 케이크를 만들고 싶어 하나 봐요. 아랍 왕족의 품위에 어울리는 거로요.”

“팔루데라도 해볼까요?”

“팔루데요?”

“아랍식의 얼음 디저트입니다. 기원전부터 전해 내려왔다는, 공식적으로 세상에서 제일 오래된 빙수죠.”

미미가 방긋 웃었다.

“친구가 생각하는 예산은 진혁 씨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좀 더 컸어요. 예전에 형이 만들었던 기념 케이크가 기네스북에 최고로 호화스러운 케이크로 남았다고 하더라구요. 한화로는… 어디 보자.”

황미미의 금전 감각은 진혁보다 훨씬 단위가 크다. 그런 그녀가 ‘크다’라고 말하니 임진혁은 호기심이 생겼다.

“형이 만들었던 기념 케이크가 얼마였길래요?”

“8000만 달러요.”

한화로 대강 계산해도 915억을 넘는다. 진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케이크에 보석을 사용했습니까?”

“예! 맞아요. 아랍 에미리트의 왕족이 자신의 딸을 위해서 만든 케이크예요. 색색의 다이아몬드와 루비, 사파이어를 아낌없이 사용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 월드 레코드를 깨고 싶다는 이야기입니까.”

진혁이 눈을 깜빡였다.

그는 고가의 보석을 사용하여 비싼 케이크를 만들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한때 누구도 범접할 수 없을 만큼 사치스럽게 살았던 적은 있다. 그래서 케이크에 보석을 사용하는 데 있어 두려움이 있지는 않았다.

“그건 재미있겠군요.”

진혁이 승낙하자 미미의 표정이 밝아졌다.

“좋아요! 재미있어하실 거라고 생각했다구요!”

그녀가 신나서 재잘거렸다.

“저희 그룹에서 광산과 보석 가공도 하고 있는 건 아시잖아요? 이번에 보석도 같이 팔 수 있겠어요. 쓸만한 걸 따로 빼놓아서 직접 고를 수 있게 해드릴게요.”

“하지만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진혁이 단서를 달았다. 미미가 생긋 웃었다.

“전시하지 말고 먹어야 한다는 거지요?”

“예.”

“친구에게 이야기해 둘게요. 걱정하지 말아요.”

진혁은 아까부터 신경 쓰였던 점을 물었다.

“그런데 그 친구 말인데, 아랍의 왕족입니까?”

“예. 제가 미국의 기숙사제 사립학교에서 유학할 때 2년 선배였어요. 같은 우등생 클럽에서 종종 마주쳤지요.”

미미가 어깨를 으쓱했다.

“당시에는 왕족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있었는데 말이에요. 이번에 사업상 거래할 일이 있어 만나게 되었는데 낯익은 얼굴이 나와서 보니, 고등학교 때 선배더라구요.”

진혁이 피식 웃었다.

“반가웠겠군요. 상의하고 확정되면 알려주십시오.”

“물론이죠!”

미미가 비서를 불러 지시했다.

“미스터 오마르에게 이전에 말했던 케이크 건에 대해서 조율하자고 연락을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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