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503화 (501/656)

제 503화

「호오.」

로마의 피자는 한 사람당 한 판씩 먹는 것으로, 크기가 그렇게 크지 않고 얇았다. 하지만 이번에 카를이 구워온 피자는 크기부터 달랐다.

「기술이 많이 느셨군요.」

진희라면 아마도 ‘패밀리 사이즈’라고 칭했을 법한 거대한 크기다. 하지만 두께가 달랐다.

이전과 같은 반죽의 양을 사용하되 더 얇게 만들었다. 이전에 일부러 두껍게 만들었던 것이 아니다. 더 변화하고자 하는 열정을 가지고 오랜 시간 연습했을 것이다. 진혁은 흐뭇한 시선으로 아버지뻘 되는 주방장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부담스러웠는지 카를이 고개를 돌리며 흠흠, 헛기침했다.

「식기 전에 먹기나 하지.」

겉면이 파삭 부서지는데 안쪽은 쫄깃하다. 만족스러운 식감, 그리고 쉬이 찢어지는 신선한 루꼴라 잎까지.

진혁은 이 피자에 만족했다.

「맛있네요.」

짧고 간결한 칭찬.

카를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많이 만들다 보면 자연스레 느는 거야.」

피자 시식을 마친 후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오래된 목제 조리대와 스테인리스 수도 시설은 구석구석까지 잘 닦여 있었다. 주방장이 애정을 가지고 관리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이전에 본 형편없는 주방들과는 비교할 수 없다.

진혁이 싱긋 웃었다.

「요즘 여기 빵을 먹으러 멀리서도 많이들 찾아온다고 들었습니다.」

「단골보다는 뜨내기손님들이 많지, 꼭 좋은 건 아니야.」

「그렇습니까?」

「이름값만 보고서 멀리서 찾아오는 관광객 손님보다는 가까운 곳에서 한결같이 와주는 분들이 좋아.」

「저희 아버지께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도 한 동네에서 계속 오래 영업했던 제과제빵사라고 했지? 유행은 한순간이지만 지역주민들은 이곳에서 계속 살잖나. 그러니까 알고 계신 거지.」

카를이 혀를 쯧쯧 찼다.

「진짜 이탈리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아야지.」

「글쎄요, 여기야말로 관광객들이 오기 딱 좋은 위치 같습니다. 저희 집은 관광지가 아닌 소도시에 자리 잡고 있거든요. 볼만한 게 전혀 없습니다.」

이곳은 로마의 변두리에 있으나 명실공히 관광지다. 오데스깔끼 호수를 보기 위해서 오는 사람들이 호텔에 숙박하면서 동시에 빵도 사 먹는다.

호텔 내부의 자체 베이커리가 유명세를 타면서, 풍광과 빵 맛을 동시에 즐기기 위해 오는 손님들도 늘었다.

「관광객들에게도 매력적인 레스토랑이 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질을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진혁은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똑바로 말했다.

카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 번만 왔다 가는 손님들이잖은가.」

「정말로 마음에 들면 두 번, 세 번 오겠지요.」

「흐음.」

카를이 고개를 들었다. 도어맨 안토니오가 슬금슬금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렇지! 계절마다 계속 와주시는 손님들도 계시지 않습니까? 당장 생각나는 건 어디 보자, 해링턴 씨 부부 정도일까요. 이맘때쯤이면 와주시니까 그분들이 오시면 아~ 곧 계절이 바뀌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해링턴 부부라면 그분들이군요.」

진혁이 낯익은 이름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손님들과 함께 우리도 나이 들어가는 거지.」

「그러고 보니 임 대표님도 알고 계신 분 아니십니까? 저녁 식사 자리에서 마주치실 수도 있겠군요.」

「예.」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어맨이 소곤거렸다.

「마침 와 계십니다만, 올해는 해링턴 부부가 아니라 부인분과 아드님만 오셨습니다. 그러니 놀라지 마세요.」

「흐음?」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누구랑 같이 왔건 그다지 상관하지 않았다.

다만 호텔의 실질적인 소유자로서 직원들의 대화에 선을 그을 필요를 느꼈다.

「다른 손님들의 사생활에 대해서 언급해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 예, 예, 조심하겠습니다.」

진혁이 주방을 둘러보는 사이에 미미는 비서들을 대동하고 지배인 실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서류 점검을 마치자 어느덧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

웨이터는 미미를 제일 전망이 좋은 테라스 자리로 안내했다. 비서진과 스타일 팀이 그 뒤를 따랐다.

그녀는 왕 비서에게 속삭였다.

「미리 예약해 두었으니 스타일 팀원들하고 비서들도 적당한 자리에서 식사를 즐겨 주세요.」

「감사합니다!」

직원들이 테라스 자리와 거리를 둔 곳으로 사라졌다.

깔끔한 레이스 테이블보가 덮인 테이블에는 장미꽃이 한 송이 꽂혀있었고 두 사람분의 테이블웨어가 준비되어 있었다.

미리 앉아있던 진혁이 손을 흔들었다.

「서류 점검은 어땠습니까?」

인사 없이 용건만 대뜸 말하는 말투에도 이미 적응된 지 오래다. 간만에 사생활이 보장된 공간에서 미미가 준비되어 있던 와인 잔을 들어 올렸다.

이탈리아식 식전주인 아뻬르띠보(Aperitivo)로 준비된 술은 가벼운 스파클링 와인이었다.

와인이 테라스의 창문을 통해 내리쬐는 달빛을 받아 이태백의 시처럼 투명하게 빛나고 빛났다. 미미가 손가락에 끼고 있는 다이아몬드 반지 역시 함께 반짝거렸다.

「미리 준비할만한 시간을 주지 않았다는 걸 고려하면 아주 못한 편은 아니에요. 그래도 개선할 부분이 많으니 비서 한 명이 남아서 사흘 정도 머무를 예정이랍니다.」

미미는 나름대로 만족한 것처럼 보였다.

「보고한 것과 실제 매출 간의 격차도 없고, 이 정도라면 나쁘지 않아요.」

「좋습니다.」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식전주를 마시자 곧 안티파스토(Antipasto)가 나왔다.

「부팔라 포르마조입니다.」

동글동글하니 눈사람처럼 접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하얀 치즈 곁에 붉은 토마토와 새까만 올리브가 송송이 둘러싸고 있는 요리였다.

부팔라 포르마조(Bufala formaggio)는 물소젖으로 만든 생 치즈 계열의 샐러드다.

「인근의 농장에서 200여 년간 계속 생산해 오고 있는 최고급 물소젖 치즈입니다.」

진혁은 턱을 괴었다.

「모짜렐라 치즈와 물성이 비슷해 보이는데.」

대개 한국에서 접하는 치즈는 물소젖이나 염소젖이 아니라 우유로 만든다. 그가 한국에서 본 모짜렐라 치즈 역시 이런 식으로 생겼다. 미미가 미소지으며 설명해 주었다.

「최초의 모짜렐라 치즈가 물소젖 치즈였을 거예요.」

웨이터가 설명해주었다.

「부인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맞습니다. 저희 할아버지 시절에는 물소젖으로 만든 것만 모짜렐라라고 불렀는데, 1900년대 초반부터는 우유로 만든 치즈도 모짜렐라라고 부르기 시작했지요.」

진혁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저도 우유로 모짜렐라 치즈를 만들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는 나이프를 들어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치즈를 절반으로 갈랐다. 올리브와 바질, 토마토의 향과 어우러진 쫄깃한 식감이 상쾌했다. 미미에게 조금 덜어 주고 나서 그는 한 입 맛을 보았다.

「확실히 소젖과 물소젖 맛이 다르긴 하군.」

전채를 즐기는 동안, 누군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헝클어진 곱슬머리에 정장을 걸쳐 입은 백인 청년이었다.

「임 쉐프! 안녕하십니까, 본즈 해링턴입니다. 해링턴 클리닉에서 뵈었죠.」

「아.」

진혁이 가볍게 목례를 했다.

「이쪽은 저희 어머니이십니다. 이전에 만나 뵈셨다고 들었습니다.」

「제 아내인 미미입니다.」

본즈 해링턴이 흥분해서 말했다.

「오실 거라고 얘기는 들었는데 이렇게 정말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미시즈 임, 처음 뵙겠습니다.」

「반가워요.」

「이 임 쉐프님이 제가 심근경색으로 쓰러졌을 때 적절한 조치를 취해 주어서 제가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미시즈 임, 이분은 제 생명의 은인이에요. 아주 대단한 분을 남편으로 두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런 일도 있었지.’

잠시 미국 출장을 갔던 무렵에 있었던 일이다. 본즈는 이탈리아인처럼 끊임없이 찬사를 늘어놓았다. 미미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어요?」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태도를 보고 진혁이 피식 웃었다. 본즈가 신나서 말했다.

「그럼요! 진혁 쉐프님이 구해주시지 않았으면 화장실에서 쓰러진 채로 발견이 늦어졌을 겁니다. 인적이 드문 곳이었거든요.」

미미가 환하게 웃었다.

「진혁 씨는 능력은 물론이고 선한 마음씨도 갖추고 계시지요.」

두 사람이 찬사와 칭찬을 주고받았다. 밝고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미미는 뒤에서 어두운 표정으로 서 있는 부인을 신경 썼다. 미미는 탁자 밑에서 진혁의 손을 살짝 쥐었다가 놓았다.

‘음, 신경 쓰이나?’

진혁은 자연스럽게 해링턴 부인에게 말을 걸었다.

「이번에는 아드님과 함께 오셨군요.」

부인이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큰아들은 갑자기 병원 경영을 맡게 되어서 정신이 없어요. 그래서 둘째 아들과 같이 왔지요.」

진혁이 눈썹을 추켜올렸다.

「에드워드 해링턴 씨가…?」

「남편이 떠난 지 좀 되었어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잠시 침묵이 자리했다. 미미가 잠시 진혁의 의향을 살핀 후 해링턴 모자에게 물었다.

「나눌 이야기가 많을 것 같은데, 합석하시지 않으시겠어요?」

「물론입니다, 영광이지요.」

「고마워요.」

자리를 옮긴 후 네 사람은 조용히 식사를 하였다.

요리가 나올 때까지 진혁과 해링턴 미망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미와 본즈 해링턴만이 서로 음식을 칭찬하며 띄엄띄엄 대화를 나누었다.

첫 번째 코스 요리인 프리모 피아토(Primo piatto)로 나온 걸쭉한 수프에는 감자와 돼지고기가 들어가 있었다. 감자 전분이 듬뿍 들어있어 걸쭉한 수프를 본즈가 칭찬했다.

「여기는 음식들이 전부 맛있어요.」

그리고 다시 조용해졌다.

진혁은 이전에 보았던 에드워드 해링턴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말이 많았으며 자존심이 셌고 고집이 셌다.

전형적인 노인이었다.

하지만 진혁은 그를 아주 어리게 봤었다.

‘벌써 죽었구나.’

임진혁이 놀라지 않은 것에 비해서, 오히려 미미가 더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에드워드 해링턴과는 친분을 나눈 적이 없었음에도 말이다.

미미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분이 그리우시겠어요.」

노부인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동안 식기가 달각거리는 소리와 와인을 마시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해링턴 미망인이 차분히 입을 열었다.

「여기에 혼자 오니까 기분이 이상해요.」

본즈 해링턴이 어머니를 위로했다.

「어머니, 혼자는 아니지요. 제가 같이 있습니다.」

「그이는 항상 바쁜 사람이었거든요. 그래서 몇 년간은 제가 이곳에 홀로 왔었어요. 병원이 바쁘거나 위급한 환자가 많을 때는 함부로 자리를 비울 수 없으니까 이해했지요. 저희 아버지도 시골 의사였고, 말을 타고 왕진을 다니시곤 했거든요. 한밤중에 누군가 출산하기라도 하면 연락을 받자마자 달려가시곤 했어요. 그래서 남편이 항상 일 때문에 바쁘다고 하고 병원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도 그러려니 했지요.」

그녀는 살짝 눈물을 보였다.

「제가 이런 말을 할 일은 아니지만 말이지요. 진혁 쉐프님이 조금 원망스러울 때도 있어요.」

미미가 눈썹을 추켜올렸다. 그녀가 무어라 말하려 하는데 진혁이 먼저 대답했다.

「흠?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이는 정말로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당신이 만들어 준 빵을 먹고 나서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됐어요. 둘이서 여행도 가고, 시간을 많이 보냈지요. 그랬더니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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