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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의 베이커리-502화 (500/656)

제 502화

“호호호호, 다 가족이잖아요.”

미미는 싫지 않은 듯 웃어 보였다. 아버지는 복합적인 재료를 오랜 시간 동안 끓인 국물의 맛을 음미하며 눈을 감았다.

“전에 며늘아기를 소개하는 자리에서도 한 번 먹었지? 그때 너무나 맛있어서 이만한 음식이 다시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먹어도 맛있네.”

“그때도 황 쉐프가 요리했어요.”

“아, 그러냐.”

“그나저나 진희 너 이번에 새로 만든 구름빵 말고, 또 다른 아이디어는 없어? 미국 쪽에서는 보내려고.”

“환자들을 위한 빵을 더 만들라는 말이야?”

“음, 개발비는 따로 줄게.”

진희가 환하게 웃었다.

“아, 얼마든지 있고말고, 이번에 영양학 공부하면서 생각했는데 필수 미네랄 섭취를 증가시킬 수 있게 말이야….”

당장 연애를 하고 있지 않아도, 결혼을 하지 않아도 그녀는 충분히 즐거워 보였다.

자신의 삶에 만족하면서 현재에 충실하다.

진혁이 문득 말했다.

“진희 너는 결혼 안 해도 돼.”

“뭐?”

“내가 오래오래 살아서 옆에 있으면서 돌봐 줄 테니까 말이야.”

진희가 숟가락을 무기처럼 휘두르며 말했다.

“이 자식이 미쳤나?! 차라리 혼자 늙어 죽으라고 악담을 해!”

“엥?”

이번에는 분명히 진희의 마음을 살펴서 얘기했다고 생각했는데 또 이런 반응이다. 예상치 못한 응대에 임진혁이 얼떨떨하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미가 조용히 손을 뻗어 진혁의 귀에 속삭였다.

「여보…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부모님이 그 광경을 흐뭇하게 웃으며 바라보셨다.

“오누이가 나이 먹고서 사이가 좋으니까 좋구나.”

“아빠, 눈치 없는 소리 좀 하지 마세요. 쟤가 지금 나한테 막말을 하고 있는데. 자기는 결혼했다고 나는 하지 말라는 거야, 뭐야.”

진혁이 진중하게 말했다.

“진희 너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그렇게 어린애처럼 굴지 않아도 돼.”

“와! 이제는 아예 나이 얘기를 하네! 우리 쌍둥이인 건 알아?!”

어머니가 아버지와 시선을 교환했다. 어머니가 킥킥 웃었다.

“진희야, 이 꿔바로우는 먹어 봤니? 찹쌀 껍질이 바삭바삭한 게 아주 맛있어.”

“음.”

미미가 거들었다.

“황 쉐프가 만든 꿔바로우는 한국식이 아니에요. 한국에서는 찹쌀을 입히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지만요.”

“어머. 이게 찹쌀이 아니야?”

“100% 감자 전분으로 튀긴대요.”

어머니가 눈꼬리를 추켜올렸다.

“감자가 이렇게 바삭해질 수가 있구나.”

“고기도 더 얇아서 튀김옷과 완전히 하나가 되지요. 끓는 기름에 한 번, 두 번, 세 번까지 튀겨야 그 맛이 나온다고 해요. 한국식보다 더 신맛이 강한 소스를 내요.”

“이거 이렇게 익숙해지면 동네 중국집에서 탕수육 먹기가 힘들다니깐. 바삭함의 정도가 달라.”

“당신은 그래도 잘 먹잖아요.”

식구들이 다시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탁자 밑에서 미미는 진혁의 손을 꽉 잡아 주었다.

◈          ◈          ◈

3개월이 지났다. 한국의 교육 법인 창업이 마무리되어갈 무렵, 로마에서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영업을 재개한 호텔이 좋은 성과를 올리고 있으니 임 씨 부부를 초청하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이런 이야기가 있어서 이번에 가 보려고 합니다.」

진혁은 그 호텔의 오븐을 다시 한 번 써 보고 싶었다. 이번에는 가서 화덕 피자를 구워 보고, 비장의 토마토소스 방법을 배워 올 생각이었다.

「저도 같이 가서 직접 보고 싶어요.」

미미가 한마디 하자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비서팀이 비행기를 예약했다. 두 사람은 오후 일정을 바로 정리하고 피우미치오 공항을 향해 떠났다.

진혁은 미미의 팔짱을 끼고서 비행기에서 내렸다.

그녀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같이 오니까 좋네요.」

「그렇군요. 여기서는 현지의 치아바타를 꼭 먹어 봐야 합니다. 한국에서 굽는 것과는 밀가루의 종류, 그리고 사용하는 채소의 질, 화염의 정도까지 모든 게 다 달라요」

진혁이 호텔에서 꼭 먹어야 할 음식들에 대해 설명하는 도중 수행하던 한 비서가 누군가를 발견했다.

「운전사분이 저기 와 있네요.」

「어서 오십시오!」

이전에도 그를 담당해주었던 자였다. 그는 쾌활하게 일행들에게 인사했다.

「오늘도 호텔부터 가십니까? 아니면 시장부터 가서 재료를 먼저 보실 겁니까?」

진혁은 미미의 상태를 살폈다.

중국의 상하이에서 로마까지 직항으로 12시간이나 비행했다. 넓고 편안한 전용기를 타고 왔지만, 평소보다 더 피곤해 보였다.

미미가 피곤해 보이는 안색으로 물었다.

「진혁 씨는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지쳐 보이니 호텔로 바로 갑시다. 먼저 쉬도록 하죠.」

그는 미미의 등에 손을 가볍게 가져다 댔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신혼부부가 서로 애정을 표현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진기를 일부 주입받은 미미는 금방 기운을 차렸다.

「시장에 가고 싶으면 시장으로 가요.」

「음, 아닙니다.」

운전사가 캐리어를 실으며 기운차게 말했다.

「그럼 호텔로 먼저 가겠습니다!」

드라이브하는 동안 보이는 청명한 하늘은 이전과 다르지 않았다. 서울이나 상하이처럼 고층 빌딩들이 거의 없이, 올망졸망한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유럽 특유의 건물들 사이로 심심치 않게 공사장이 보였다.

운전사가 즐거운 듯이 이야기했다.

「요즘 호텔이 아주 잘 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숙박하지 않는 손님들도 빵 맛이 좋다고 꽤 오는 모양이던데요.」

「호오.」

진혁이 씩 웃었다.

「그게 바로 내가 원하던 방향입니다.」

◈          ◈          ◈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본 사람은 낯익은 얼굴이었다.

‘도어맨 이름이 안토니오였던가? 전형적인 이탈리아인이었는데.’

「미스터 임! 드디어 도착하셨군요!」

도어맨 안토니오는 처음으로 유치원에 갔다가 돌아와 엄마를 본 어린아이처럼 두 사람을 반겼다.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를 본 열성 팬 같기도 했다. 그는 펄쩍펄쩍 뛰어오르며 짐을 받아들려고 했다.

「다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미시즈 임께서도 이번에는 함께 오셨군요.」

로비까지 걸어가는 짧은 기간 동안에 진혁은 열 번이 넘는 감사의 말을 들었다.

「충분한 지원 덕분에 리모델링도 무사히 마쳤고, 영업도 재개했습니다. 아름다운 고전 건축의 미 역시 사라지지 않았고, 여기에서 일하던 사람들도 가족같이 끈끈하게 남아 있지요. 이게 다 미스터 임이 살펴 봐주신 덕분입니다. 오! 그리고 부인분께서는 정말로 아름다우십니다! 천상에서 온 천사라고 할지라도 빛이 바랠 만큼 아리따우십니다. 능력 있는 남자와 아름다운 여자, 두 분이 참으로 잘-.」

미미는 아름답다는 칭찬을 받는 것은 좋아했지만, 능력을 과소 평가받는 것은 좋아하지 않았다. 미미가 눈꼬리를 추켜올리고 무어라 입을 열려고 하던 참이었다.

「짐을 내려놓고 와서 주방을 보고 싶은데.」

진혁은 그 대화를 아예 잘라 버렸다.

「물론입니다, 물론입니다!」

미미가 손짓했다.

「저는 호텔의 재무제표를 보고 싶어요.」

안토니오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보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탈리아어로 되어 있을 겁니다.」

「괜찮아요, 제가 직접 읽으면 되니까요.」

「이런, 이런! 우리의 아름다운 이탈리아어를 하실 수 있군요! 그러면 짐을 내려놓으시고 난 후 지배인에게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뒤에서 묵묵히 따라오고 있던 비서진과 스타일 팀은 작은 방으로 향했다.

진혁과 미미는 스위트룸에 들어섰다.

“호오.”

「어머나.」

미리 직원들이 신경 썼기 때문인지 침대에는 장미 꽃잎이 뿌려져 있었다. 민감한 진혁에게는 지독할 만큼 강한 장미 향이 방 전체를 뒤덮었다. 새빨간 꽃이 화려하게 피어있는 꽃바구니와 웰컴 카드, 그리고 고급 샴페인 한 병이 보였다.

미미가 킥킥 웃었다.

「이건 아예 허니문 취급인데요?」

진혁은 미미를 힐끗 보았다. 기분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그가 시원스레 말했다.

「샴페인을 한잔하시겠습니까?」

「그럼 딱 한 잔만요. 여기 있는 테라스에서 마시면 되겠어요.」

그녀는 스카프를 벗어 걸어두고, 또각또각 걸어 테라스의 탁자에 앉았다. 흰색 덩굴 문양이 음각된 금속제 탁자와 의자는 고풍스러운 건축 양식과 잘 어울렸다.

그녀는 병을 만져보더니 고개를 살짝 저었다.

「샴페인이 조금 미지근해졌어요.」

진혁이 웃었다.

「데우면 되지요.」

중국 출신인 미미는 와인도 차가운 것보다는 따뜻하게 마시는 것을 즐겼다. 그녀는 턱을 괴고서 남편을 지켜보았다.

진혁은 검지를 탁하고 튕겼다.

손가락을 움직일 필요는 없으나 아내를 위한 퍼포먼스다.

길쭉하고 투명하여 황금빛으로 빛나는 샴페인 병이 둥실둥실 날아와 진혁의 손에 잡혔다.

그는 그 병을 살짝 잡았다가 바로 떼었다.

「이제 먹기 좋은 온도가 되었을 겁니다.」

「고마워요.」

그녀는 더 이상 이런 종류의 행동에 놀라지 않았다.

「앗.」

샴페인 병의 코르크 마개가 톡 하고 하늘을 향해 뛰어올랐다. 마개는 곧 침착하게 탁자 위로 내려앉아 제 자리를 찾아갔고, 병 속에 담겨 있던 액체가 하늘을 향해 뛰어올랐다. 한순간 중력을 거스르는 것처럼 보였던 황금빛 물줄기는 곧 포물선을 그리며 미미가 손에 들고 있던 잔 안으로 안착했다.

「딱 좋은 온도예요.」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언제든지요」

진혁이 싱긋 웃었다. 그는 샴페인을 들어 병째 한 모금 마셨다. 목으로 술을 넘기며 목젖이 꿀럭거린다. 미미는 그 모습을 보고서 웃었다.

「이제 다 마셨으니까 내려가야겠어요. 불시에 재무제표를 보고 싶거든요.」

「준비할 시간을 주지 말자, 이거군요.」

「영어 데이터를 추가로 만들어서 보내는 거니까, 원 데이터를 보고 싶어요.」

「좋은 생각입니다.」미미는 입고 들어왔던 편안한 복장을 정장으로 다시 갈아입었다. 선명한 노란색 블라우스와 검은색 슬랙스였다. 그리고 도수가 없는 사각 안경까지 착용했다.

「좋아, 내려가자고요.」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던 진혁이 물었다.

「나도 옷을 갈아입어야 하나?」

「저는 전투 복장으로 갈아입어야 하니까 그렇고, 진혁 씨는 괜찮아요.」

그녀가 씨익 웃었다.

「나이 어린 여자라고 우습게 보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니까 직선적인 옷을 입어서 좀 더 프로페셔널한 느낌을 주지요.」

「흐음.」

진혁은 패션에 전혀 관심이 없었기에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조금 후에 보자고요.」

그녀는 먼저 스위트룸을 나가서 지배인 실로 향했다.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비서진들이 합류해 여럿이 함께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진혁은 혼자 주방으로 향했다.

「카를! 오랜만입니다.」

「여어.」

50대 주방장은 이전에 보았을 때보다 머리가 희끗희끗해져 있었다. 그는 안토니오처럼 웃음으로 진혁을 반기지는 않았다. 그저 무뚝뚝하게 바구니를 하나 내밀었다.

「이전에 고르곤졸라 피자가 맛있다고 했었지? 그래서 방금 미리 구워 놨어. 아내하고 같이 가져가서 먹게나.」

퉁명스러워 보이지만 그 행동에는 정감이 넘친다. 이 주방장은 나이는 훨씬 젊지만, 어딘가 아버지와 비슷한 데가 있었다.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진혁은 방금 구워내어 바삭바삭한 고르곤졸라 피자를 한 입 베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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