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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의 베이커리-501화 (499/656)

제 501화

진혁은 그 마음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고마우면서도 애틋하고 사랑스럽다.

나비가 날아오르는 것처럼 마음 한구석이 간질간질했다.

그리고 동시에 어깨가 무거워졌다.

‘미미 씨가 나중에 후회할지도 몰라.’

영원의 무게를 알지 못하는 이가 하는 맹세.

한 걸음 뒤로 물러나게 된다.

‘과연 지금 그녀가 느끼는 이 감정이 영원할 것인가?’

그는 깊은 눈으로 상대를 응시했다.

지금 그와 그녀가 이야기하는 세월은 짧지 않았다.

1, 2년이 아니다.

십 년 단위로 말할 세월도 아니다.

백 년, 이백여 년…, 그 정도가 지나면 이미 누가 자신의 후손인지 좇아갈 수조차 없다.

‘설령 무공을 익힌다고 해도 그녀가 과연 미래를 견딜 수 있을까?’

진혁은 혼인도 하지 않았고 극히 가까운 일부 수하들에게만 무공을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그 제자들은 재능이 뛰어난 자 한두 명을 제외하고 전부 그보다 먼저 죽고 말았다.

광안마와 혈도객 모두 그보다 먼저 죽었다.

진혁은 차분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쉽지 않을 겁니다.”

그는 처음에 제자들의 후손들을 챙겨 보려 했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무가의 자손들은 한두 세대가 지나기도 전에 날뛰다가 멋대로 금방금방 죽어버렸다.

눈 깜빡하는 사이에 훌쩍 컸다가 금방 죽어버린다.

핏줄을 중요시 여기며 장자를 우선하여 무예를 계승하는 정파의 혈손이라면 다를까 싶었다.

하지만 혈도객의 사촌이 낳은 후손들은 그 녀석을 전혀 닮지 않았다.

챙겨줄 필요가 없는 놈들이었다.

두어 세대쯤 지나면 누가 누구의 혈연이라 하기도 어려울 만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피가 흐려지게 된다. 그 사실을 차치하고서라도, 그 후손은 제자가 아니다.

그것을 깨닫는 데까지 또 수년을 보냈다.

“당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전부 없어질 겁니다. 나무는 베어져 사라지고 건물은 무너지고 새로 지을 거예요.”

담담한 목소리에 미미가 눈을 크게 떴다.

호수처럼 깊은 진갈색 눈동자 안에 자신이 담겼다. 놀라울 정도로 무표정해 보이는 모습이다.

진혁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정명한 안광을 마주 보지 못하고 미미는 고개를 숙였다.

“견디기 어려울 겁니다.”

아직 스물다섯 살도 되지 않은 아내는 너무나 어렸다.

그녀는 온실 속에서 사랑받으며 귀하게 자랐다.

풍랑이라고는 겪어본 것은 기껏해야 아버지와의 갈등 정도다.

“도시의 이름이 바뀌고, 나라가 새로 세워집니다. 말이 변하고, 문화가 변합니다.”

진혁이 차분하게 말했다.

그는 지금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자신이 아끼고 소중하게 여겼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며 전부 스러져가 사라져 버리는 감각.

환골탈태한 무공의 고수라면 누구나 겪는 일일 것이다.

그 감각을 통해서 현세(現世)에 대한 미련을 떨치고 성불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더 깊은 감정을 갖게 되는 이들도 있다. 혈연을 포기하지 못하고 가문의 태상 장로로서 모든 것에 관여하는 이들도 있다.

진혁은 둘 다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무림 강호가 아니라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 가족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제자가 죽고 후손들이 변해가도 괜찮았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그가 되찾은 가족들이 다시 사라져버린다면 어떨까.

아직 오지 않았지만, 필연적으로 올 수밖에 없는 미래의 일.

자신이 생각해도 두렵기만 한데, 그 무게를 미미에게 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달에 사람을 보내는 시대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금 시대는 과거와 변화 속도가 달랐다.

‘정보화 시대는 농경 사회보다 훨씬 빠르게 변화하지.’

화약과 인쇄 기술의 발전 따위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다.

월드와이드웹과 SNS의 발전으로 눈 한 번 깜짝하는 사이에 수많은 정보를 교환할 수 있다. 지구 건너편에서 일어나는 일을 순식간에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바다 건너에 있는 친인척과도 얼마든지 시차를 넘어 연락할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책 한 권을 필사하려면 몇 달씩 걸리던 때와 달리 지금은 기계를 사용해 사진을 찍을 수 있으며, 그러한 정보를 바로 저장하고 공유할 수 있다.

수백 수천 만의 글자를 데이터화하여 저장하는 일이 아주 쉬우며 누구라도 할 수 있다.

진혁은 간단한 태극권의 비급을 만들어서 진희와 미미에게 공유했는데, 적는 데에 시간이 걸렸을 뿐, 두 사람에게 발송하는 데에는 0.1초도 걸리지 않았다.

‘진작 이런 기술이 있었다면 제자 키우는 것도 아주 쉬웠을 텐데 말이지.’

지식을 공유하기가 아주 쉬우며, 원한다면 무엇이든지 공부할 수 있다. 당장 제과제빵의 기술만 해도 초보적인 단계라면 얼마든지 영상을 통해 공부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가 정말로 두려워하는 점은 다른 데에 있었다.

십 년 전에는 스마트폰이 없었으며, 이십 년 전에는 컴퓨터가 활성화되어있지 않았다.

‘십 년 후, 이십 년 후에 도대체 이 사회가 어떻게 변해있을지 알 수가 없어.’

하물며 백 년 후, 이백 년 후에는 어떻게 될까.

그는 과연 자신이 그때 어떻게 살고 있을지 전혀 상상할 수가 없었다.

과학자들은 인간의 유전자 구조를 분석하여 복제 인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다. 윤리적인 문제 때문에 실용화되지는 않았으나, 그 기술을 악용하는 이들은 여기에도 있었다.

일부 조직에서는 건강하고 연고 없는 이들을 데려다가 장기를 떼 부유한 계층에 팔기도 한다.

흑점에서 살아있는 어린아이들의 간을 떼어다가 부유한 병자들에게 먹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윤리학과 철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는 여전했다.

그리고 진혁이 말하지 않은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지금은 너무 늦었어.’

지금 당장 무공 수련을 시작한다고 해도 과연 그녀가 그 경지까지 도달할 수 있을는지는 모른다.

진혁은 차라리 진희가 더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그 녀석이 손녀딸에게 무공을 가르치지 않은 이유는 간단해.’

미미에게는 재능이 없다.

근성이 부족하다거나 머리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무공 수련은 기본적으로 육체를 단련하며 단전에 내공을 쌓는 것으로 시작한다.

내기를 잘 쌓을 수 있는 체질은 따로 있다.

진혁은 그러한 체질이었으며 진희 역시 그랬다.

진희와 미미가 비슷비슷하게 수련을 한다면 더 금방 차이가 날 것이다. 미미가 이십 년간 수련을 쌓아도 진희가 십 년간 한 것과 효과가 비슷하리라.

그는 부드럽게 말했다.

“그렇게 치열하게 무공을 쌓으며 고통을 겪을 필요가 없습니다. 광, 아니 황 어르신이 무공을 전수하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세상 모든 일에는 기회비용이라는 것이 있다.

“당신은 젊고 아름다우며 부유하기까지 합니다. 경영과 관리 능력도 뛰어나지요.”

그녀는 무리를 이끄는 데에 능숙했고 사람들 사이에서 빛났다. 드라마에서 연기를 할 때도, 그룹의 부하들을 이끌 때도 그랬다.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수행하며

지금 이대로도 이 삶을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있다.

그는 그녀가 폐관 수련을 하여 무공에 삶을 바치기를 바라지 않았다.

“현재 즐기고 있는 일상을 완전히 포기해도 불가능할 수 있는 목표입니다.”

“….”

현재와 유리(遊離)되어 홀로 수련해도 그 결과에 닿지 못할 수 있다. 진혁이 물었다.

“그래도 하고 싶습니까?”

진갈색 눈동자 속 홍채가 투명해졌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나올 듯 촉촉해진 눈동자로 그녀가 대답했다.

“저는….”

나비가 날개를 퍼덕이는 것처럼 연약하고 작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진혁은 그녀가 어떤 대답을 하는지 똑똑하게 들을 수 있었다.

◈          ◈          ◈

임 씨 가족은 한 달에 한 번씩 가족 모임을 한다. 부모님이 편하도록 소망시에 있는 진혁의 자택에서 진행했다.

서울에서 초빙해온 쉐프가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중식과 한식을 섞은 코스 요리를 내놓았다.

미미는 언제나처럼 호스티스가 되어 식사를 주재했다. 그녀가 쉐프를 소개했다.

“오늘의 요리를 맡은 황 쉐프입니다.”

“소흥황주를 넣은 본토 불도장이 메인 요리입니다. 말린 전복과 해삼, 오골계와 비둘기 알, 송이버섯과 죽순 등 건강에 좋은 재료들이 담뿍 들어가 있습니다. 다른 관리를 하지 않고 이것만 드셔도 피부가 깨끗해지고 오장이 맑아질 겁니다.”

쉐프는 자신만만하게 선언하고 자리를 떠났다.

팔팔 끓는 냄비를 중심으로 온갖 요리들이 줄줄이 나왔다. 진희는 고기 요리를 중심으로 젓가락을 누볐으며 아버지는 군침을 흘리며 불도장을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먼저 불도장을 덜어 주고 그 다음에는 미미를 챙겼다.

“우리 며늘아가 먼저 드세요.”

미미는 진혁의 앞에 그릇을 밀어 놓았다.

“진혁 씨가 먼저 드세요.”

진희가 스스로 국물 요리를 뜨면서 말했다.

“엄마, 둘이서 알아서 챙기고 있네요. 엄마가 챙겨줄 필요가 없어요.”

“아유, 얘는.”

어머니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그나저나 너는 좋은 소식 없니?”

진희가 단호하게 선언했다.

“이렇게 볼 때마다 연애 얘기하시면 저 집에 안 옵니다.”

“그래, 그래. 엄마가 잘못했어.”

어머니가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아버지가 피식피식 웃었다.

“나한테는 그런 얘기 꺼내지 말라더니 당신이 먼저 하고 그래.”

어머니와 아버지가 조그만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며 미미가 생글생글 웃었다.

어머니가 미미에게 물었다.

“요즘 따라 더 이뻐 보이네. 뭔가 하고 있는 거라도 있어?”

미미가 아닌 진희가 바로 대답했다.

“진혁이가 태극권이란 운동을 가르쳐 줬는데 그거 하면 피부가 진짜 좋아지더라고요. 체력도 금방금방 붙어요. 엄마하고 아빠한테도 가르쳐줬다고 하던데?”

“아유, 그거 하긴 하는데 어렵더라. 진혁이가 해 주는 거하고 아닌 거하고 달라.”

진혁이 부드럽게 웃었다.

“매일 꼭 꼭 하세요. 제가 매주는 아니더라도 2주에 한 번은 와서 자세를 봐 드릴게요.”

어머니가 화색을 하며 무어라 대답하려고 하는데 아버지가 딱 잘라 거절했다.

“바쁜데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 네 일 하는 데 집중해야지.”

어머니가 시무룩해 보이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건 그래. 너희가 이렇게 바쁜데 자주 들러 주잖니. 며늘아기야, 이렇게 매달 오지 않아도 돼.”

“제가 부모님이 없어서 그런지 두 분이 진짜 부모님같이 다정하게 대해주셔서 자주 오는 거예요.”

“아이고, 말도 예쁘게 하네!”

화기애애한 분위기 가운데 미미가 진희에게 물었다.

“아가씨. 공부를 더 하고 싶으세요? 아니면 가르치고 싶으세요?”

진희가 놀란 듯 탕수육을 집던 손을 멈추고 대답했다.

“어, 음. 지금 생각해보지는 않았어요.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하고 나서 공부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그때 알아보려고 했어요.”

“대학원에 진학하신다면 본사에서 지원하는 장학금 프로그램을 이용하셔도 좋고요. 한국 내도 좋고 해외로 가셔도 돼요. 연 1만 달러까지는 지원해주니까요.”

“!”

“가르치는 데에 관심이 있다면 파트 타임 강사로 조리고등학교에서 오셔도 좋고요. 당장은 아니어도 괜찮으니까, 관심 생기면 이야기해 주세요.”

진희가 양손으로 미미의 손을 잡았다.

“언니! 제가 언니라고 부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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