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500화 (498/656)

제 500화

진혁이 심각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며 아버지가 물었다.

“그래, 말해 봐라.”

“어디 안 좋은 건 아니지?”

어머니가 걱정스럽게 진혁의 손을 어루만졌다.

“그런 건 아닙니다.”

염려가 가득한 그 시선을 보자 확신이 생겼다. 진혁이 입을 열었다.

“사실은 말입니다…, 저는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습니다.”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듣고서 아버지가 웃어넘겼다.

“하하, 농담도.”

어쩌면 이 말부터 시작하지 않는 편이 좋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혁은 이번에는 정말로 이야기할 생각이었다.

“이번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하시면서 제가 군대를 다녀오고 난 이후에 크게 변했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실은 저는 군대만 갔다 온 게 아닙니다….”

진혁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어떤 일을 겪어왔는지 모두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다.

미미의 조언에 따라 진혁은 그가 저질러야 했던 많은 살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저 아버지보다 더 나이를 먹고, 무공을 수련하고, 종교의 교주 지위를 이어받았던 나날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가치관도 다르고 말도 통하지 않는 세계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다.

그 이야기의 대부분은 그리움으로 가득했다.

“현대가 그리웠습니다.”

한밤중에 거리를 돌아다녀도 네온사인 불빛이 번쩍이며 살아있는 도시를 떠올렸다.

24시간 열려 있는 편의점과 온갖 편리한 물건들을 판매하는 마트와 백화점을 원했다.

세계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도 순식간에 알 수 있는 텔레비전과 인터넷, 신문과 뉴스가 있었으면 했다.

하지만 제일 중요했던 것은 단 하나뿐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진희가 보고 싶었다.

말이 많아 귀찮다고만 생각했던 이모님 한 분 한 분 모두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욕설 섞어 말하지만, 그 말투에는 애정이 섞여 있었다는 사실을 늦게야 알았다.

진혁이 토로하는 진심을 듣고서 아버지도, 어머니도 말이 없었다.

어머니는 그저 진혁의 손을 꼬옥 잡아주었다.

“…많이 힘들었겠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많이 놀란 것처럼 보였다.

진혁은 전부터 아버지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어렵게 꺼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그 새벽의 이야기다.

“제가 제대한 다음 날 아버지가 해 뜨기 전부터 깨워서 빵집에 가자고 하셨지요. 그리고 그날 제가 따라갔잖습니까. 하지만 회귀하기 전에는 따라가지 않았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출근하시는 길에 넘어져서 팔을 다치셨어요.”

“…!”

아버지의 사고, 그리고 가게에 닥친 빚, 식물인간으로 오랫동안 누워있던 자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머니가 암 진단을 받기까지 했다. 잊고서 살았지만 이야기하면서 진혁은 다시 울컥했다.

“그동안 저는 오랫동안 누워 있었습니다.”

식물인간 상태였지만 모든 것을 듣고 있었다. 뿌리부터 썩어들어간 대들보는 필연적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대들보가 무너진다면 집은 더 이상 형체를 유지할 수 없다.

이야기가 전부 끝났다.

진혁은 부모님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후식으로 나온 매실차가 차갑게 식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도자기로 된 자그마한 잔은 흙의 질감을 그대로 살리며 유약을 바른 것으로, 가영이 만드는 것과도 유사했다.

그는 그 잔을 손으로 쥐고 작은 불꽃을 일으켜 보였다.

염화기공의 2성을 이루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간단한 기술이다.

“!”

“진혁아, 위험해!”

어머니가 깜짝 놀라서 맨손으로 불꽃을 덮어 끄려 했다. 두려워하지도, 꺼리지도 않았다. 진혁은 어머니가 화상을 입기 전에 황급히 불꽃을 잠재웠다.

“매실차가 식어서요.”

어머니가 진혁을 나무랐다.

“그래도 위험하잖니. 그러다가 다치면 어떡하려고.”

진혁은 아직 중요한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그가 입을 열려는 순간 아버지가 찻잔을 맨손으로 쥐었다.

방금 전까지 차갑게 식어 있던 도기가 따끈따끈하게 달아올라 있다.

“….”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생각에 잠긴 것처럼 보였다.

침묵이 종보다 더 무겁게 내리 앉은 순간, 어머니가 말했다.

“그래서 나한테 건강검진을 하라고 했구나.”

“예?”

“진희야 그렇다 치고 너까지 검진을 꼭 해야 한다고 그렇게 고집을 부리더니.”

“예.”

어머니는 진혁의 손을 꼬옥 잡았다.

“네가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하건 상관없단다. 넌 내가 직접 낳은 내 아들이야.”

어머니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보, 당신도 뭐라고 말 좀 해 봐요.”

“….”

아버지는 말없이 매실차를 마셨다. 차를 마실 때 호로록 소리가 났다. 음료나 물을 마실 때는 소리 없이 마시는 아버지다.

‘아버지도 동요하신 거야.’

아버지의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지금 이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어머니는 거짓이라고 치부하지도 않았고, 믿을 수 없다며 화를 내지도 않았다.

진혁을 미친 사람 취급하지도 않았다.

“여보, 자랑스러운 아들이잖아요. 그렇게 고생하면서 여기까지 온 우리 진혁이한테 뭐라고 말 좀 해 봐요.”

어머니가 그렇게 이야기해주시자 마음이 뭉클해왔다.

정말로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네가 내 아들이 맞다고 확인받고 싶었다.

‘어머니.’

진혁은 애틋한 시선으로 어머니를 보았다. 아버지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진혁아, 네가 말하는 그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와 은효가 아니구나.”

“…!”

어머니가 놀라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 말이 맞다.

진혁이 애써 외면해왔던 진실이다.

잊혀진 시간 속, 회귀 전의 두 사람.

그 부모님 두 분은 쓸모없는 아들놈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바쳤다. 집안의 돈이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는 와중에 집은 물론이고 정말로 중히 여기던 가게까지 포기하였다.

그리고 그 후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진혁은 모른다.

진혁이 고개를 떨구었다.

아버지가 진혁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절에 가자꾸나.”

“…예?”

“니가 아프다면 나나 네 엄마 둘 다 당연히 집안 기둥뿌리 뽑아서 고치려고 하겠지. 그렇지만 귀한 아들놈이 그것 때문에 평생 부채감을 갖고 사는 걸 원하지는 않을 거다.”

아버지는 힘있게 진혁의 어깨를 쥐었다. 두드리는 것처럼 강한 힘이었다.

“그렇지만 네가 얼마나 무거운 마음으로 과거를 지고 있었는지는 알겠다.”

진혁은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이 부모님은 그 부모님이 아니야.’

지금 여기에 있는 이 부모님은 오직 진혁을 아낄 뿐이었다.

아무런 고난도 겪지 않으셨다.

사고를 당하지도 않고 암에 걸린 적도 없다.

진혁이 빵집 일을 하지 않겠다고 다투었던 아버지가 아니다.

그는 이 부모님을 실망시킨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절에 가서 두 사람을 위해서 기원을 드리자꾸나. 향을 사르고 부처님께 인사를 하면 마음이 편해질 거다.”

아버지는 다정하게 말했다.

진혁이 딱 잘라 말했다.

“절은 싫습니다.”

어머니가 거들었다.

“진혁이도 교회에 가고 싶은가 봐요, 여보.”

“아니요! 아닙니다!”

◈          ◈          ◈

이틀 후, 진혁은 미미가 머물고 있는 중국의 저택을 방문했다.

공식적으로는 중국 지점에 파견 보낼 페이스트리 쉐프를 선발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미미의 얼굴을 보자마자 진혁이 꺼낸 이야기는 다른 것이었다.

“미미 씨, 덕분에 무사히 이야기를 끝냈습니다.”

“잘됐네요!”

미미가 생긋 웃었다.

“처음에는 꿈인 것처럼 이야기를 들려 드리는 것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공을 보여 드리기도 했지요.”

“이제 정식으로 물엿 만드는 방법을 전수해 주셨나요?”

“예. 하지만 의식하고 하려고 하니까 더 잘 되지 않는다고 하네요.”

미미는 읽고 있던 보고서를 덮으며 말했다.

“장 쉐프님의 보고서랍니다. 읽어 보실래요?”

“명동점에 있는 그 페이스트리 쉐프 말입니까?”

“예. 이 파견 임무를 그만두고 싶다고 하네요.”

진혁이 눈살을 찌푸렸다.

“한국에서 일하는 게 마음에 안 든다고 합니까?”

장 쉐프와 정 비서는 철저한 면접과 사전 조사 끝에 선발된 사람들 중 가장 우수한 성적을 낸 두 사람이었다. 진혁이 ‘이 정도라면 괜찮을지도’ 하고 인정하기도 했다.

미미가 빙긋 웃었다.

“진희 씨가 정말로 마음에 들었대요.”

“하?”

“아예 임무를 그만두고 싶다고 하네요.”

진혁이 언짢아하며 말했다.

“지금 연애를 임무라고 생각하고 있었단 말입니까? 근성부터 썩었군요.”

그녀가 생글생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면접과 선발 과정을 거치면서 사소한 오해가 있었나 봐요. 지금은 전부 시정했답니다.”

“음.”

“그룹에 대한 충성보다 진희 씨를 우선으로 한다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봐요. 진혁 씨 생각은 어떠세요?”

진혁이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진희는 직장에서 연애할 생각은 없다고 합니다.”

미미가 짧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럼 아예 애들을 다 치워버릴까요?”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그들이 빠지면 당장 일손이 모자랄 테니까요.”

“그것도 그렇네요.”

왕 비서가 따뜻한 차를 내왔다. 두 사람은 찻잔을 사이에 놓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해와 달의 문양이 새겨진 도자기 찻잔을 응시하며 진혁이 말했다.

“이번에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어떤 건데요?”

“지금의 부모님은 충분히 행복하시고 건강하십니다. 잘 지내고 계십니다.”

미미가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하지만 저는 두 분에게서 과거의 부모님을 계속 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전의 부모님에게 제일 필요했던 것은 경제적인 여유였다. 병원비를 만들기 위해서 가게와 집까지 팔아버리고 나자, 그럭저럭 먹고 살던 중산층 가족의 삶은 순식간에 지옥으로 추락해버렸다. 그래서 그 처절하고 비참한 삶을 보상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진혁은 부모님이 사업적으로 성공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금전적으로 무언가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부모님이 원하는 건 그게 아니었어.’

하지만 현재의 두 분은 지금 자신들이 필요한 만큼의 돈은 충분히 벌고 있다. 이제 돈보다 삶의 여유를 즐기기 시작하는 시점이었다.

“저는 그분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멋대로 혼자 오해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진희에게 필요한 것도 마찬가지구요. 지나치게 독선적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미미가 홍차 잔을 집어 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느끼셨군요.”

“그래서 묻고 싶습니다. 미미 씨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미미가 눈을 크게 떴다.

“예?”

“미미 씨가 정말로 뭘 원하는지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녀는 눈을 깜빡이면서 생각에 잠겼다. 짙은 속눈썹 아래, 진갈색 눈동자가 한순간 반짝였다.

“지금 저도 진희 씨와 같이 태극권을 배우고 있잖아요.”

“음.”

“그건 무공이라기보다 양생을 위해서 하는 운동이 아닌가요?”

그녀가 단호하게 말했다.

“할아버지는 저에게 무공을 알려 주지 않았어요. 저도 심법을 수련해서 내공을 쌓고 싶어요.”

“!”

“제가 먼저 죽지 않을 수 있을 만큼 강해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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