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495화 (493/656)

제 495화

“연애는 자기가 알아서 하는 거야. 아무리 남매라도 그렇지, 참견할 수는 없어. 내가 형 연애하는데 뭐라고 했다가 얼마나 구박받았는지 알아?”

마리오가 상식적인 의견을 냈다. 김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세상 모든 배우자가 미미 회장님처럼 인내심이 깊은 게 아니에요. 그걸 일반적인 경우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요. 이번에 결혼하자마자 해외 출장이니 뭐니 계속해서 자리 비우지 않았어요? 둘이 주말부부도 아니고 거의 월말 부부잖아요.”

“음.”

“그런데도 사이가 좋잖아요? 그게 진짜 신기한 일이라구요. 그만큼 서로 신뢰하고 있으니까 가능한 거죠.”

마리오가 물었다.

“가영 씨는 연애를 오래 했나?”

“그렇게 길게 한 건 아니에요.”

진혁이 팔짱을 끼고서 말했다.

“부모님과 상의를 해 봐야겠다.”

임진혁은 바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사위로는 어떤 사람이 좋으세요?”

전화기 너머에서 기쁨에 가득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희가 누구 만난다니?”

“아니요.”

“그럼 왜?”

“어머니 아버지 보시기에 어떤 사람이 진희 짝으로 어울릴까 싶어서요.”

“우리가 보기에 말이냐? 그게 뭐가 중요해. 진희가 좋기만 하면 되지.”

“진희가 어떤 남자를 좋아하는데요?”

“왜, 너 몰랐니? 그 텔레비전에 나오는 아이돌 있잖아.”

“예?”

“아시아 최고의 가수니 뭐니 하면서 여럿이서 몰려다니는 애들.”

“그게 누군데요?”

어머니는 그룹명을 알려 주었다. 짧은 통화를 마친 후 진혁은 가영과 마리오에게 물었다.

“세나리온이라는 그룹을 알아?”

“당연히 알죠!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요.”

“많이 유명해?”

“진혁 쉐프님보다 더 유명할걸요.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물어보면 백이면 백 다 안다고 할 걸.”

◈          ◈          ◈

그날 저녁, 진혁은 자택으로 돌아갔다. 미미와 저녁 식사를 함께하기 위해서다.

미미는 병원에서 퇴원한 후 서울에 머무르는 중이었다. 한 달 정도 더 머물며 사업 관련 일을 처리할 예정이다.

오늘 요리사가 내놓은 요리는 궁보계정이었다. 닭고기를 땅콩과 채소, 매운 고추와 함께 볶은 사천식 요리다.

바삭바삭한 궁보계정과 따끈한 흰밥은 서로를 위해 태어난 것처럼 아주 잘 어울렸다.

따끈따끈한 닭 다리 살을 한입 물고서 미미가 반문했다.

“진희 아가씨하고 결혼할만한 사람이요?”

“아무래도 같은 여자니까 잘 알지 싶어서 말입니다.”

진혁이 진지하게 말했다.

“한족 여자라면 벌써 결혼해서 아이를 두었을 나이기는 하죠. 하지만 한국에서는 좀 더 늦게 결혼하지 않나요?”

“어, 그렇긴 합니다.”

미미가 눈을 깜빡였다. 그녀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남자를 소개시켜 주려고 했을 때를 떠올려 보았다.

“아가씨가 남자를 만나보고 싶대요?”

열다섯 살이 넘었을 때부터 아버지는 여러 남자를 데리고 와서 소개시켜 주었다. 모두가 집안이 좋고 교양이 있는 이들이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교제하거나 약혼으로 이어지면 좋겠다고 하셨다.

하지만 미미는 그중 누구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자신을 갈고닦는 데 바쁜 와중에 누군가를 억지로 만나도 귀찮고 번거로울 뿐이다.

“그건 물어보지 않았는데요.”

그래서 그녀는 지금 진희의 입장을 십분 이해했다.

“먼저 진희 아가씨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인하고 난 다음에 진행하는 것이 좋겠어요.”

미미의 말에 진혁이 미간을 좁혔다.

“직접 대놓고 소개해준다고 하면 무조건 거절할 겁니다. 일에 집중하겠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자연스러운 만남을 원하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미미가 물었다.

“아가씨 이상형은 어떤 사람인데요?”

“이런 사람이요.”

진혁이 사진을 내밀어 보여 주었다. 유명한 연예인의 사진을 본 미미가 물었다.

“팬심으로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과 결혼하고 싶을 정도로 좋아하는 건 다를 텐데요.”

“음, 그건 그럴 수 있겠군요.”

진혁이 순순히 인정했다. 미미가 싱긋 웃었다.

“그런데 어떤 이유 때문에 진희 씨에게 남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셨어요?”

“요즘 일이 너무 많은 것 같아서입니다.”

“일…?”

미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게를 운영하는 경영자의 업무와 제과제빵사의 일 두 가지를 함께 하다 보니까 바쁜 것 같더라고요. 새로운 빵을 개발하고 만드는 일에 이번에 유튜브 촬영까지 같이 하게 되니까 시간을 더 뺏겼나 봅니다. 어머니께서는 진희가 한 달에 한두 번밖에 연락하지 않는다고 걱정하시더라구요.”

진혁이 설명하는 이야기를 듣고서 미미가 한쪽 눈썹을 추켜올렸다.

“그럼 남편이 필요한 게 아니네요. 전문 경영인이나 제과제빵사를 고용하면 되겠는데요?”

고슬고슬한 흰밥을 한 수저 뜨며 진혁이 대답했다.

“일만 하기보다 좀 더 자신의 인생을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좁은 빵집 안에서 아무도 만나지 않고 종일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까요. 지금 한창때인 나이니까 나가서 다른 사람들도 만나고, 친구도 사귀고 하면 좋을 텐데요. 20대는 두 번 오지 않습니다.”

“아하.”

미미가 이해한 듯이 웃었다.

“그러면 이렇게 하면 되겠네요.”

그녀가 이야기한 것을 듣고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미미는 바로 왕 비서를 호출했다.

“…최소한 자신의 몸은 지킬 수 있을 정도일 것, 그리고 한국어가 유창했으면 좋겠어요.”

진혁이 몇 가지 덧붙였다.

“가족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유능해야 합니다. 회계와 인사 실무 쪽의 경력이 있었으면 좋겠군요.”

왕 비서가 물었다.

“지금 그러니까 진희 점장님을 보필할 만한 인재를 선발하려고 하시는 겁니까? 어떤 형식으로요?”

“일단은 업무 내용을 밝히지 않고 20대 후반의 미혼 남성을 중심으로 지원서를 받도록 해요. 면접을 통과한 이들과 제가 개인 면담을 거친 다음에 원하는 이에 한해서 자연스러운 만남을 연출하면 되겠어요.”

왕 비서가 임진혁과 미미를 바라보았다.

단순히 비서와 제과제빵사를 고용하려고 하는 것이라면 굳이 20대 미혼 남자를 고를 이유가 없다.

그는 황미미의 의중을 짚었다.

“진희 점장님 모르게 남편감 후보를 선발해서 주변에 대기하게 하는 거군요.”

“호호호.”

황미미가 웃었다.

“믿을만한 인재라면 외부에서 찾아도 좋아요. 가능하면 한국계로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왕 비서가 인사를 하고서 자리를 떴다. 진혁이 미미에게 말했다.

“고마워요.”

“뭘요, 이제 가족인데요.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지요.”

◈          ◈          ◈

앨리슨의 ‘방방곡곡 베이커리 찾아가기’ 채널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이미 팬층을 확보한 가수나 연예인들의 경우 채널을 오픈하면 순식간에 10만 명, 20만 명의 팔로워가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일반인이 처음 시작한 채널이 두어 달 만에 30여만 명에 도달했다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다.

앨리슨이 말했다.

「전부 <해와 달>의 도움 덕분이에요. 초반에 임 씨 가족의 베이킹 이야기가 큰 도움이 됐어요.」

「앨리슨 씨가 성공적으로 이끌어갔기 때문입니다.」

「아닙니다. 초반에 임운정 제과제빵사님의 이야기가 좋았어요. 현대 한국의 60대는 전쟁 후에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들이지요. 쌀밥과 반찬만 먹으며 살아오던 소년이 처음으로 빵 맛을 보고, 맛있는 빵을 만들려고 했던 이야기. 그게 참 좋았습니다. 시청자분들도 노력과 성실함으로 차곡차곡 쌓아온 삶을 보고 좋아하시지 않았을까 싶어요.」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앨리슨을 배웅한 후 진혁은 오랜만에 가족들을 만났다. 소망시에서 올라온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진혁아, 네 일은 잘 되어 가냐? 로마 호텔은 어떻니?”

“지난주에 정식으로 오픈했습니다. 평도 나쁘지 않아요. 이번에 앨리슨이 가서 촬영도 할 계획입니다.”

소소한 사담을 나누다가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이번에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인터뷰가 들어왔지 뭐냐.”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네요. 어떤 인터뷰인데요?”

“글쎄, 제과제빵 쇼 프로그램에 호스트로 나가는 것 같던데. 그런데 할지 말지는 좀 고민 중이야.”

“아빠, 왜요?”

진희가 묻자 아버지가 대답했다.

“하면 좋기야 좋겠지. 하지만 이미 너무 유명해졌다는 생각이 들어. 외부에서 손님들이 많이 와서 단골손님들이 오기 어려운 것도 그렇고. 가게를 오래 비워두는 것도 좋지만은 않아.”

“그건 그렇지요. 아버지 하시고 싶으신 대로 하세요.”

고양이 진호를 안은 채 어머니가 웃었다.

“여보, 사실은 텔레비전에 나가고 싶어 하고 있잖아요. 하고 싶으면 솔직하게 이야기해요.”

아버지가 헛기침했다.

“어허. 남자가 진중하게 일을 해야지,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입만 살아 떠들고 다니는 건 난 별로다.”

진희가 킥킥 웃었다.

“아빠가 지금 하는 제과제빵학과 부교수 일이 그거 아니에요? 돌아다니면서 애들한테 떠들어 주는 거.”

“떠들어 준다니! 애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거지.”

“그게 그거죠. 텔레비전 방송에서 말하는 게 뭐 별건가.”

아버지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내 생각에 그거는 남자다운 일은 아니라고 본다. 그냥 자기 할 일 묵묵히 하는 게 좋지.”

“아버지 편한 대로 하세요.”

어머니가 진희에게 시선을 돌렸다.

“진희 너는 어떠냐, 새로 들어왔다던 제과제빵사는 어때?”

“일을 아주 잘해요. 너무 잘해서 걱정일 정도야.”

“잘하면 됐지, 뭐가 문젠데?”

“여기 와 있을 스펙이 아니거든. 저번에 보니까 외국어도 유창하고, 경력도 화려해. 여기에 왜 왔는지 모르겠어.”

진희가 투덜거렸다.

“그리고 너무 친절하고 사근사근해서 이상해요.”

“그래?”

어머니는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의아해했다.

“네가 사장인데 아무렴 당연히 상냥하지 않겠니?”

“그런가? 그래도 아침에 와서 커피를 타준다거나 할 필요까지는 없을 텐데.”

진혁이 자연스럽게 끼어들었다.

“내가 진영이 형이랑 근무할 때도 형이 아침마다 커피 내려 줬는데. 미각 감별사가 필요하다고 했어.”

“백진영 사장님은 바리스타니까 그렇지. 그런데 이 사람들은 바리스타가 아니라구.”

“제과제빵사도 커피 머신을 사용할 수는 있잖아.”

“그거야 그렇지.”

어머니가 경쾌하게 물었다.

“잘생겼니?”

“엄마! 나 직장에서는 연애할 생각 없어요.”

“왜? 너 하루에 14시간 이상 가게에 처박혀 있잖니. 거기서 안 하면 어디서 하겠어.”

“군대에서도 상사와 부하 사이에는 연애 금지잖아요.”

아버지가 물었다.

“어떤 사람들이길래?”

“그룹 본사에서 파견직 형식으로 나온 사람들인데, 둘 다 오버 스펙에 잘생겼어요. 페이스트리 정 쉐프님 오고 난 다음부터 매출이 얼마나 늘었는지 몰라요. 이 사람 보고 쫓아오는 여자 손님들이 한둘이 아니라니까요. 장 비서님은 또 어떻구요.”

“그래? 둘 중 누가 더 마음에 드는데?”

“솔직히 말해서 마음에 들기보단 짜증이 나요.”

“왜?”

“내가 밤새워가면서 죽어라 노력해서 개발한 웰빙 빵 덕분에 매출이 120%로 늘었거든. 그런데 잘생긴 제과제빵사 한 명 들어오니까 매출이 200% 늘었어. 이거 뭔가 빡친다.”

“….”

진혁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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