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494화 (492/656)

제 494화

“그래요? 그럼 잘 부탁합니다.”

◈          ◈          ◈

사흘 후.

‘소망 베이커리’에 대한 소개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왔다.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는 ‘옥빵상제’ 김도을은 올라온 영상을 보고 이맛살을 찌푸렸다.

“구독자 30명이라…, 이건 너무 멀었는데. 영상 질도 좋고 시간도 괜찮은데, 딱 우리 프로그램만큼의 구독자만 더 있었어도 좋았겠다.”

반면에 진혁의 부모님은 아주 좋아하셨다.

“30명이나 영상을 봐주다니 좋구나. 우리 단골손님들은 다 왔나 봐.”

“내가 저런 이야기를 저렇게 했다고? 아주 멋있게 나왔네.”

어머니는 이모들과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신랑이 멋있게 나왔다며 자랑을 했다. 물론 진혁에게도 걸었다.

“진혁아, 느이 아부지가 얼마나 멋있게 나왔는지 봤니? 피부 화장 같은 거 안 해도 얼마나 멀끔한지 몰라.”

‘그야 환골탈태를 했으니까 그렇죠.’

“예, 어머니.”

어머니가 신나게 자랑하는 것을 들어주고 진혁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 진혁이 한 비서를 바라보았다.

“유튜브가 이렇게 반응이 없는 게 일반적인 일인가?”

한 비서는 유튜브 분석 자료를 읊어 주었다.

“일반적으로 첫 영상이 폭발적으로 알려지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유튜브에 영상을 한 편 올린다고 해서 바로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가 전국적으로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반응이 없으면 곤란하다.

‘소문을 내려면 제일 인기 많은 홍루에 가서 알려 줘야 하는데 말이지.’

그는 나름 정보 조작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가난한 이들에게 소문을 퍼트리고 싶다면 만두 하나 쥐여주면서 거지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면 된다.

부유한 이들에게 이쪽에서 조작한 정보를 흘리고 싶다면 환희당을 이용한다. 일월신교의 환희당은 기녀와 악사들이 소속되어 있는 부서다. 신분이 높고 부유한 한량들은 베갯머리에서 기녀들이 속삭이는 말을 쉽게 믿었다.

글줄 깨나 읽는다는 지식층에게 소문을 유포하려면 방을 붙이는 것이 좋다. 악성 루머를 퍼트리기에 딱 좋다.

진혁이 턱을 괴었다.

“어디 대자보라도 붙여서 홍보하면 어떨까.”

한 비서는 진혁의 제안을 자연스럽게 무시하고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임 대표님처럼 기존에 어느정도 유명세가 있고 프로 편집팀과 함께 시작한다면 예외가 될 수도 있지요. 두 번째 영상에서 임 대표님이 함께 등장하시는 건 어떠십니까?”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내가 주인공이 되어 버리니까, 오히려 주객전도가 되잖나.”

이번에는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고 싶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자신은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고 싶었다. 한 비서가 말했다.

“아들을 잘 키운 아버지라는 이미지는 아주 좋습니다. 그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아버지를 소개하는 인사만이라도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 다음에 빠지시면 될 것 같은데요.”

진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는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막 단축키를 누르려는 모습을 보고서 한 비서가 다급하게 물었다.

“설마 회장님께 연락하시는 겁니까?”

“이런 류의 홍보와 마케팅은 나 말고 미미 씨가 훨씬 잘 알 것 같아서 물어보려고 하는데.”

“그러실 필요는 절! 대! 없습니다. 회장님이 미리 말씀해주신 대로 방송사에서 뉴스로 나갈 수 있도록 조처하겠습니다. 신문에도 인터뷰 기사를 내보낼 겁니다.”

“호오.”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보면 방이나 대자보를 붙이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다.

‘당연히 봉화를 올리는 것보다 텔레비전과 라디오가 효과적이지.’

한 비서는 갑자기 뉴스의 홍보 효과가 얼마나 클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임진혁은 잠시 듣다가 그 말을 끊고 물었다.

“그런데 요즘도 뉴스나 신문을 보는 사람들이 많던가? 유튜브나 SNS 같은 데서 하는 편이 좋지 않나.”

“유튜버 옥빵상제 님이 협조하시겠다고 연락해왔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홍보를 해주실 듯합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체구도 조그맣고 주눅 들어 있던 중학생 김도을. 매일 도시락으로 치즈 케이크를 싸갈 정도로 진혁이가 만든 빵을 좋아했다. 그 조그맣던 어린애가 무럭무럭 커서 지금은 진혁을 적극적으로 도우려고 한다.

“그거 기특하네.”

진혁이 피식 웃었다.

“도을이 녀석, 많이 컸다.”

“마리오 씨도 자기 채널에서 적극적으로 홍보하겠다고 합니다.”

“두 사람이 호의로 해 주는 건 고마운 일이야. 하지만 제대로 대가를 지급하도록 해. 그리고 다른 페이스트리 쉐프님들에게도 연락해 봤으면 좋겠군. 유튜브 채널로 유명한 제과제빵사들이 몇 명 있잖아? 아예 서너 명 초청해서 아버지의 빵을 드셔 보시게 하면 어떨까.”

진혁은 이전에 환희당에서 새로운 홍루를 개업할 때 어떻게 했는지 막연하게 떠올렸다. 유명한 숙수를 초청해 요리를 하고, 귀한 손님들을 모셔 자연스럽게 소문이 나게 만들었다.

“아버지의 빵은 그냥 보는 거로 부족해. 아무래도 사람들이 와서 먹어 보는 게 좋겠는데.”

“염두에 두시고 계신 쉐프님들이 계십니까?”

“시몬 리옹 쉐프도 좋고, 지난번에 대회 준비 때문에 왔던 사람들을 부르면 좋겠군. 아 참, 이번 대회에서는 제프리 디버 쉐프가 괜찮았어. 안토니오 바트 쉐프도 그렇고.”

한 비서가 의아해했다.

“모르셨습니까?”

“응?”

“제프리 디버 쉐프는 사업체에서 공금을 횡령한 것이 발각되어 페이스트리 쉐프 협회에서 강제 탈퇴가 되었습니다. 이번에 꽤 시끌벅적했습니다만.”

“그래? 미각이 예민한 사람이었는데 아쉽군.”

한 비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그 사람을 쓰시고 싶으십니까?”

제프리 디버가 공금을 유용해온 것은 맞다. 하지만 황미미가 조사해서 투서를 보내지 않았다면 그 사실은 밝혀지지 않았을 것이다.

임진혁이 모르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그런 건 아니야,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지.”

한 비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네.”

한 사람의 인생을 파묻어 버린 거나 마찬가지다.

지금 와서 다시 진혁이 손을 내민다면 미미가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한 비서가 임진혁에게 이 사실을 말했다고 오해할지도 모른다.

그는 오래 평온하게 직장 생활을 하고 싶었다.

‘황태명 어르신께서 미미 양을 챙길 때 같아.’

미미는 임진혁에게 극진하게 대했다. 진혁을 함부로 보는 사람들을 좌천시키고, 진혁의 가족 일을 자신의 일처럼 돌보았다.

제일 촉망받는 젊은 비서를 임진혁에게 붙여 주기까지 했다.

진혁이 한마디 더 했다.

“실력이 좋다고 해서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을 데리고 올 수는 없지. 의사소통 방식이 완전히 독불장군이던데? 그런 사람들이 들어오면 잘 되던 팀도 깨져 버려.”

한 비서는 최대한 일거리를 줄이고 싶었다.

“그렇다면 방금 말씀하신 인원들만 초청할까요? 이번에 여름에 제과제빵 대회를 열게 된다면 어차피 그때 오시긴 할 텐데, 그때 아예 함께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럼 그건 그렇게 해주고.”

다행히 임진혁은 그 이야기를 받아들였다.

◈          ◈          ◈

<소망 베이커리>의 촬영이 무사히 끝났다. 원래 15분짜리 유튜브 1편의 동영상이었으나, 인터뷰가 길어지고 빵 소개도 들어가면서 5편까지 늘어났다.

처음에는 고작 서른 명밖에 되지 않았지만, 뉴스와 신문에서 소개되고 제과제빵 유튜버들이 홍보하면서 어느덧 구독자 1천 명까지 훌쩍 뛰었다.

진혁이 불만을 표했다.

“아직 너무 늦지 않나?”

“대표님, 이 정도면 아주 높은 수치입니다.”

며칠 동안 잠을 못 자서 피곤해 보이는 한 비서가 차분히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이제 명동점 촬영을 시작하면 또 달라질 겁니다.”

“내일인가?”

“예.”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통역은 마리오가 하던가? 이건 정규 업무가 아니니까 추가 수당은 꼭 챙겨 줘.”

“알겠습니다.”

한 비서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무언가 묻고 싶은 기색이었다. 진혁이 한 비서를 보자 그가 신중하게 물었다.

“비서 근무의 추가 수당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잠깐, 여태까지 추가 근무한 건 수당이 없었어?”

“추가 근무를 한 경우에는 있지만 시간 외 재택 업무의 경우에는….”

진혁이 단호하게 말했다.

“한 비서는 그룹 본사 소속이니 미미하고 이야기해 봐. 내가 긍정적으로 이야기해 놓지.”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그냥 이야기하지 않으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          ◈          ◈

다음날, 해와 달 명동점.

진희는 유창한 영어로 앨리슨을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앨리슨 씨 말은 많이 들었어요.」

「딸까지 빵을 굽는다니 정말로 베이킹 패밀리네요. 유전적인 걸까요?」

「손재주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게 맞는데, 빵 취향은 다 달라요. 환경 때문인가 싶기도 해요. 똑같은 빵 반죽이라도 다른 온도, 다른 틀에서 구우면 완전히 다른 맛이 나잖아요? 저나 진혁이도 그런 게 아닐까요.」

통역을 위해 따라온 마리오가 놀랄 정도였다.

“진혁아, 진희 씨는 통역이 필요 없는데? 국내파인데 너만큼 술술 말하네. 나 왜 불렀어?”

“그러게.”

혹시나 해서 따라온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촬영을 구경하러 와 있던 김가영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진희 언니 미국 간호사 한다고 영어 자격증 준비했다고 들었어요. 원래 이민 가고 싶었다고 하더라구요.”

“미국에 이민을?”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데.’

처음 들어 보는 이야기에 진혁이 눈을 크게 떴다.

“왜, 한국 간호사들 미국으로 많이 간다고 하긴 하던데. 한국이랑 대우도 그렇고 일하는 것도 천지 차이라더라. 그런데 프랑스엔 아무도 안 오더라고.”

마리오가 거들었다.

“진혁 씨는 모르셨어요? 공부하고 싶었다고 하더라구요. 전에 일하던 병원은 석박사 학비가 자기 부담인데, 미국 쪽은 일하는 도중에 학교 다니면 학비도 내주고 그런대요.”

안쪽에서 촬영하던 감독이 외쳤다.

「문 닫겠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조심할게요.」

마리오가 외쳤다. 진혁이 중얼거렸다.

“그런 얘기는 정말로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어.”

“언니가 지금은 건강 빵 만드느라 정신없잖아요. 그 와중에도 방송통신대에서 식품영양학 공부도 하고 있던데.”

“!”

결혼한 이후에는 진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거의 신경을 쓰지 못했다. 매번 증가하는 매출과 순이익에 대한 대차대조표만 받아 보았을 뿐이다.

“제과제빵사 일을 하면서 빵집 운영까지 하면 너무 바쁠 텐데. 그 와중에 잠을 줄여가면서 공부까지 한단 말이지.”

“진희 언니는 진짜 열심히 살지. 내가 공무원 시험 준비 할 때도 저렇게까지 하진 않았어. 내가 고3 때 저렇게 살았으면 벌써 서울대에 갔겠지.”

가영이가 조잘거리는 데에는 신경 쓰지 않고 진혁이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안사람이 필요해.”

뜬금없는 말에 마리오가 물었다.

“안사람? 안사람이라니?”

“지금 진희가 매일같이 잠을 쪼개서 일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잖아. 거기에 공부도 하고.”

“그런데?”

“결혼하니까 아내가 내조를 해서 일하는 데 아주 좋아지더라고. 진희한테도 내조할만한 사람이 필요해. 알아봐야겠다.”

“잠깐, 그건 아닌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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