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493화 (491/656)

제 493화

마리오는 경쾌하게 운전했다. 콧노래를 부르며 서너 시간이 지난 후에야 소망시에 도착했다. 앨리슨은 진혁이 비서를 통해 미리 알아봐 준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촬영 장비를 챙겨 ‘소망 베이커리’로 향했다.

「한국 건물들은 키가 작고 다닥다닥 붙어 있네.」

「응, 이쪽 지방은 특히나 건물 키가 작은 편이야. 그래서 하늘도 잘 보이고 좋지?」

「그러게. 진혁 쉐프가 만드는 케이크에 하늘 테마가 왜 많은지 알겠어. 이런 하늘을 보고 자라면 그럴 수밖에 없겠다.」

아까 빌딩 끄트머리에 걸려 있던 해는 벌써 지평선 너머로 가라앉았다. 이제 막 어둠이 내려앉는 때, 그윽한 남빛 하늘 아래 조그마한 창들이 별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오래된 동네의 알록달록한 간판.

붉은색 벽돌집.

해가 져도 영업하는 편의점과 카페.

「여기 편의점은 오후 8시가 넘어도 영업을 하네?」

「8시는 무슨, 24시간 해.」

「대단하다.」

소망 베이커리에 들르기 전에 스튜디오에 가야 했다. 미리 의논한 대로 스태프들을 소개받기 위해서다.

「어?」

기껏해야 한두 명이 있을 줄 알았던 앨리슨은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조명 기사입니다.」

「촬영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연출 칼슨이오.」

「음향을 담당하는 제이슨입니다.」

「감독입니다.」

스태프가 다섯 명이나 대기하고 있었다. 도와줄 사람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많을 줄은 몰랐던 앨리슨이 머쓱하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대본은 미리 받았습니다. 장소도 확인했습니다. 인터뷰는 스튜디오에서 하실 거지요?」

「예, 하지만 빵집 내부 촬영은 이제 가면서 하기로 했으니까요. 그리고 가서 듣는 이야기가 더 진정성 있을 수도 있으니 봐서 더 좋은 인터뷰를 따려고 합니다.」

조명 기사가 물었다.

「스튜디오 이쪽에 이렇게 조명을 설치하려고 하는데 괜찮으십니까? 두 분이 나란히 이야기하실 건지, 아니면 임운정 사장님을 부각하실 건지요.」

「사장님이 나오고 저는 목소리만 들어갑니다.」

조명 기사가 샘플을 보여 주었다. 한 명을 촬영할 때 세 개의 조명이 한 사람을 내리쬐며 밝게 만들어 준다.

「그러면 이런 스타일로 가려고 합니다.」

「네, 네. 좋아요.」

그밖에도 의논할 것이 많았다. 앨리슨은 한참 동안 여러 사람과 쑥덕거리며 의논을 마쳤다.

그들은 본격적인 촬영을 위해 소망 베이커리를 향해 출발하였다.

다른 이들은 별도의 촬영용 차량에 탔으나 앨리슨은 마리오와 함께 둘이서 타고 왔던 차에 탔다.

「룰루루~.」

마리오는 휘파람을 불면서 경쾌하게 운전했다. 아무 생각 없이 행복해 보였다. 앨리슨이 차 안에서 마리오에게 말했다.

「아니 이분들은 어디서 오신 거지? 완전 프로잖아.」

「촬영 스태프가 와서 도와준다고는 했잖아.」

「이렇게까지 본격적으로 나와줄 줄은 몰랐지! 나는 그냥 알바 한둘이 와서 카메라 들어주는 줄 알았는데 말이야. 이거 그룹에서 밀어주는 프로젝트야? 이럴 거였으면 왜 나 같은 애랑 같이 하는 거지?」

앨리슨이 긴장해서 횡설수설했다.

「편하게 해, 편하게.」

「저 사람들이 왜 나랑 같이 작업을 하는 거지?」

「돈을 받으니까.」

「난 아무것도 보여준 게 없는데 어째서 나한테 이렇게까지 투자를 하는 거야.」

마리오가 씩 웃었다.

「네 영상 포폴 보여 줬어.」

「뭐? 언제?」

「내가 우리 제과학교 졸업 인터뷰 보여줬어. 그때 네가 인터뷰어 했잖아.」

「야, 그게 언제 적 일인데!」

「걱정하지 마, 잘 할 거야.」

두 사람은 금방 소망 베이커리에 도착했다.

마리오가 앨리슨을 소개시켜주었다.

「오늘 인터뷰할 앨리슨입니다.」

“마리오 친구라며? 반가워요.”

「반가워요.」

마리오는 적당히 통역을 해 주었다.

“임 아부지 사장님! 밖에서 들어가시는 장면부터 찍자고 하는데요. 괜찮으세요?”

“마리오, 그냥 사장님은 떼고 불러라. 그 호칭은 대체 뭐야?”

운정이 흔쾌히 동의했다. 그리고 촬영이 시작되었다.

촬영 팀이 따라붙고, 앨리슨이 질문을 시작했다.

그는 제일 먼저 떠오른 의문부터 물었다.

「임운정 제빵제과사님, 낡은 조리복을 입고 계시네요? 화장도 안 하셨고요. 스타일리스트도 와 있는데 일부러 하지 않으신 건가요?」

임운정이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얼굴에 분가루를 칠하고 빵을 만들면 안 되지. 거기에 뭐가 들어가 있는 줄 알고.”

마리오의 통역을 듣고 앨리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손으로 하지 얼굴로 반죽하는 건 아니잖습니까?」

“그거야 그렇다고 해도, 일하다 보면 손으로 얼굴을 만질 수도 있잖나. 우리 가족들, 내 식구 같은 손님들이 먹을 빵이야. 먼지 한 톨도 들어가지 않게 하고 싶은데 분이나 눈썹 가루 같은 게 들어가면 좋지 않아.”

「그렇게 들으니 임운정 제과제빵사님의 제과제빵에 대한 태도가 얼마나 진지한지 알 수 있네요. 내 가족이 먹을 먹거리를 만드는 것처럼 하고 계시는군요.」

“당연하지.”

질문이 오가는데 두 사람 모두 어색했다. 앨리슨은 프로페셔널한 직원들 사이에서 자신감 없이 끌려다녔다.

감독은 앨리슨을 어떻게 보조할지 대본을 보며 확인해 주었다.

「먼저 반죽하는 모습부터 찍고, 이때 말을 건다고 했지요?」

「맞습니다.」

「아예 들어가서 재료를 준비하는 장면부터 찍는 게 어떻겠습니까? 쓰지 않을 거면 나중에 편집하면 되지만.」

「그게 낫겠네요, 그러면 그렇게 합시다.」

그는 마음을 다잡았다.

‘이 정도 멤버면 내가 발로 찍어도 잘 나올 수밖에 없겠다. 이 수준에 부끄럽지 않게 해야지.’

긴장한 것은 앨리슨만이 아니었다. 오늘 첫 촬영을 할 임운정 역시 뻣뻣하게 굳어있었다. 반면에 장은효는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았다.

「긴장하지 말고 편안하게 평소처럼 하세요.」

임운정은 카메라 앞에서 긴장하는 것 같았는데, 가게에 들어서는 순간 온화한 표정이 되었다.

그 뒤를 따라 들어간 앨리슨 역시 깨달았다.

‘전혀 긴장되지 않아. 갑자기 마음이 편해졌어.’

어째서 가게 안에 들어오는 순간 평안해지는가.

첫 촬영은 임운정이 작업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시작했다.

「자, 주방에 들어올 거니까 손부터 씻어 주세요. 마스크랑 장갑도 끼고, 여기 신발도 소독하고.」

카메라맨이 미리 달아둔 내부 카메라도, 그리고 실내조명 역시 완벽했다.

앨리슨은 임운정에게 이것저것 물어가며 촬영을 진행했다.

바깥에 주차한 촬영용 차량에서 모니터를 통해 지켜보고 있던 감독이 말했다.

「기획서랑 경력 보면 완전 초보 같더니 안에 들어가니까 잘 하네. 배짱이 있으니까 좋군.」

조명 기사가 말했다.

「이거 기분 탓인지 모르겠는데 저 가게 안에 들어가면 마음이 편해져요.」

카메라 기사가 카메라들을 살피며 말했다.

「그렇지? 산림욕 하는 기분이야.」

감독이 눈을 크게 떴다.

「그래? 난 안 들어가 봤는데. 나도 들어가 봐야지.」

「그나저나 이건 무슨 촬영이길래 우릴 다 불렀대요?」

「제과제빵 가게 소개 인터뷰. 여기만이 아니라 몇 군데 더 갈 모양이던데」

「다음 가게는 어딥니까?」

「못 들었어? 명동 <해와 달>이잖아.」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에게 장은효가 다가왔다.

“여기 이것 좀 먹으면서 하세요.”

어제 아버지가 따로 구워놓은 빵들이다. 진혁이 개발한 이후로 꾸준히 베스트셀러인 블랙 앤 화이트 크림 소라 빵, 그리고 토마토를 올린 블랙 어니언 타르트. 헌드레드 초콜릿 쿠키까지 있었다.

「맛있게 먹겠습니다!」

「고마워요.」

장은효는 인사를 하고서 다시 가게 안으로 돌아갔다.

감독은 초콜릿이 발려진 소라 빵을 집어 들었다.

「이거 특이하게 생겼네.」

그는 빵을 한입 물고서 눈알을 굴렸다.

「너희 이거 먹지 마라, 내가 다 먹을래.」

감독은 봉지 속에 담겨 있던 크림 소라 빵을 전부 꺼내서 자기 앞으로 가져갔다. 식탐이 없고 음식을 잘 나눠주던 감독이 그렇게 행동하자 조명 기사가 말했다.

「아니, 무슨 맛인데요? 다섯 개나 있는데 왜 혼자서 다 먹으려고 합니까.」

조명 기사가 크림 소라 빵 하나를 자기 몫으로 끌어당기자 카메라맨도 손을 내밀었다.

「워, 나도 그럼 그것부터 먹을게요.」

감독은 얼른 크림 소라 빵을 욱여넣었다. 그리고 남은 것도 뜯어서 한입 베어 물었다.

그동안 조명기사는 크림 소라 빵의 비닐을 벗겨서 크림을 핥아보았다.

「와, 이거 진짜 맛있네.」

「초콜릿이랑 같이 섞여 있는데 생크림 맛이 묻히지 않네. 크림이 들어있는데 빵이 눅눅하지도 않고. 겉모양과 느껴지는 맛이 달라.」

「빵이 말랑말랑하고 포슬포슬해요.」

「흐, 이렇게 맛있는 빵은 진짜 오랜만에 먹어본다.」

저마다 감상을 이야기했다.

「이 어니언 타르트도 먹어보자.」

빵을 우물거리다가 감독이 문득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앗, 여기 카메라 좀 돌려줘!」

「으아! 죄송합니다!」

카메라맨이 어니언 타르트를 입에 문 채 카메라를 조종했다.

「그래도 인터뷰이가 아니라 인터뷰어가 카메라에서 빗나가있어서 다행이네」

「2번 카메라에서는 보이니까 편집단계에서 손보겠습니다.」

「넋 놓지 말고 잘해라.」

「넵!」

그들은 순식간에 빵을 전부 먹어치웠다.

감독이 짧게 평가했다.

「왜 이런 시골 동네까지 우리를 스카웃해 불러왔는지 이해가 안 됐는데, 이제 알겠군.」

「비행기까지 제공하면서 시골로 불러서 뭔가 싶었는데 말이에요 이런 시골구석에 이렇게 맛있는 빵집이 있다니 대단해요.」

「제대로 찍어서 멋지게 알려 주자고.」

◈          ◈          ◈

그날 밤.

어머니는 진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진혁아, 오늘 그 촬영 팀 왔다 갔다.”

“어떠셨어요?”

“아휴, 네 아부지가 얼마나 난리를 피웠는지 몰라. 미미가 스타일 팀을 보내줘서 메이크업도 받고 헤어도 했는데 말이야, 아주 나는 주방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했어. 분가루가 날리느니 어쩌느니 하면서 말이야!”

진저리치는 것 같으면서도 자랑하는 듯한 말이었다.

“내가 반죽에 손을 댈 것도 아니고 빵에 콤팩트를 갖다 댄다는 것도 아닌데, 주방 위생이 얼마나 중요한지 주절주절 떠들더라.”

“하하! 아빠가 촬영 때문에 긴장하셨나 봐요. 아버지는 뭐래요?”

“촬영하면서 아주 좋아하더라고. 언제부터 빵을 좋아했는지, 어렸을 때 추억의 빵이 뭔지. 왜 빵집에서 일할 시작을 했는지,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면서 아주 신나 있더라고.”

밝은 목소리를 듣고 진혁이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네요. 진작 찍을 걸 그랬습니다.”

“맞다, 그 촬영본. 우리도 빨리 보고 싶은데 언제부터 볼 수 있는지 아니? 마리오가 시간이 좀 걸릴 거 같다고 하더라.”

“일주일 정도 걸린다고 하던데요?”

“그 정도면 금방 볼 수 있겠네! 내가 산목아파트하고 니 이모들한테 다 자랑했어. 다들 유튜브에 언제 나오나 손꼽아 기다리고 있어.”

“그래요, 어머니. 최대한 빨리 나오자마자 연락 드릴게요.”

어머니와 통화를 마치고 진혁이 전화를 끊었다. 곁에서 통화 내용을 듣고 있던 미미가 웃으며 말했다.

“진혁 씨.”

“네?”

“비서에게 말해 놓을게요. 하루면 편집까지 다 끝내고 업로드할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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