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86화
「어떻게 해서 이 케이크를 세웠는지 알아냈어.」
「응?」
「무시무시한 도박이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을지 상상할 수조차 없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한 건가? 그냥 심을 집어넣으면 쉽잖아.」
진혁이 간단하게 대답했다.
「이편이 더 맛있습니다.」
「심지를 넣거나 넣지 않거나, 그 정도의 맛 차이를 구분해서 느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걸. 애초에 심지를 넣어서 구웠을 때 그 맛이 달라진다고 심지를 넣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발상이 달라.」
진혁은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프리 디버는 뛰어난 미각을 통해 진혁이 어떤 식으로 케이크를 세웠는지 파악했다.
「단단하게 구웠어.」
「응?」
「무게 중심 부분이 미묘하게 맛이 달라. 자기 자신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을 정도인가? 그저 깔려있는 치즈 케이크를 제외하고서는 아주 달라.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하지? 아무리 여러 차례 구워서 연습했다고 해도 자기 가게나 집 아니냔 말이야. 화력도 뭣도 모르는 대회용 주방에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사람들 앞에서 케이크가 무너질까 두렵지도 않았나? 이게 바로 모험이라고. 케이크에 씹다 이빨 부러질 사탕을 투하하는 것 말고.」
제프리가 흥분해서 이 말 저 말을 쏟아내기 시작하자 아서가 말렸다.
「자, 자. 제프! 다른 참가자에 대한 평가는 이따가 한꺼번에 하자고.」
반면에 안토니오는 제프리가 한 말에 관심을 보였다.
「그러고 보니 과자에 단단해 보이는 부분이 있었어. 조금 더 바삭한 부분이었는데, 지금 그런 것 따위로 무게를 지탱할 수 있었다고 하는 건가?」
「그래, 과자는 아래쪽이 조금 더 무거워. 자세히 보면 모양도 미묘하게 약간 다르지? 케이크도 마찬가지야. 아래쪽이 좀 더 조밀하고, 위쪽으로 가면서 공기층이 더 많아져. 그렇게 해서 세웠어.」
「아래쪽이 무거우면 세우기 쉽기야 하지. 그건 아주 당연한 물리법칙이야. 그렇다고 해서 지금 이 정도 크기의 케이크를 굽기로 조절해서 세웠다고? 제정신인가?」
「화력 조절을 하는 능력이 아주 천재적이야.」
진혁이 싱긋 웃었다.
「반죽도 다릅니다.」
「하? 이게 다른 반죽이라고?」
「재료는 같습니다. 배합 비율만 조금 다를 뿐입니다.」
임진혁이 반죽하는 것을 신경 써서 관찰하고 있던 안토니오 바트가 흥미롭게 말했다.
「분명히 반죽할 때는 한 종류처럼 보였는데.」
진혁이 싱긋 웃었다.
「한꺼번에 했습니다.」
「나보고 하라고 해도 내가 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빵의 아래쪽을 단단하게 구워서 세웠다라, 아니 그렇다고 해도 지금 이렇게 기역 모양으로 빵과 과자를 세우는 게 가능하냐고.」
「불가능한 것 같지만 아까 서 있었지 않나.」
「허허허허.」
심사위원들은 의문에 휩싸여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제프리는 자신이 추측한 것을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그래서 당과류를 제출해야 할 때 다양한 걸 구우면서 화력을 테스트해 본 건가.」
다른 심사위원들 역시 동의했다.
「지금 제출한 케이크. 모양은 퍼즐처럼 기이하지만, 그 재료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그리 특이한 것들은 아니야. 그에 비해서 당과류는 더 단순했지.」
「심플 이즈 베스트(Simple is best), 자네들도 알지 않나? 많은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단시간에 구워낸 빵을 봐야 그 페이스트리 쉐프의 실력이 어떤지를 알 수 있어. 복잡한 기교와 특이한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이 정도의 맛을 끌어냈네. 수없이 많은 빵을 맛봐온 우리들이니 이게 얼마나 더 대단한지 알 수 있지 않나.」
「짠맛, 단맛, 신맛, 쓴맛, 매운맛. 이 빵과 케이크는 단맛과 짠맛의 균형을 잡아서 담백하게 만들었어. 이 맛으로 가족들을 형상화한 건가?」
「비슷합니다.」
진혁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을 천천히 정리하면서 말했다.
「저는 평범한 가정에서 화목하게 자랐습니다. 아버지께서 가장 좋아하는 치즈 케이크와 어머니께서 좋아하는 푹신한 달걀 수플레, 그리고 저와 쌍둥이인 진희가 즐기는 당근 케이크. 어머니가 데려오신 길고양이인 진호가 없어서 못 먹는, 글루텐 프리 고기 빵을 만들었습니다. 이걸 그대로 쌓기만 하면 한 종류의 맛이 지나치게 진해지기 때문에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크기를 조절했고, 호두 등 견과류를 넣었습니다.」
「자네 최근에 결혼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아내 없이 이전 가족들만 만들었나? 아내는 가족이 아닌가?」
제프리가 따지듯이 물었다.
심사위원이 개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며 무례하기까지 하다.
안토니오 바트와 아서 J. 클라크가 눈빛을 교환했다. 아서가 물었다.
「이건 지나치게 개인적인 질문이 아닌가?」
「부부 생활에 문제를 겪고 있건 말건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일이지. 하지만 그게 케이크에는 드러나야 할 것 아닌가? 지금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먹는 간식을 우리한테 먹였잖아!」
진혁은 빙긋 웃으며 답변했다.
「고양이가 좋아하는 영양분을 중심으로 새로 빌드업했을 뿐, 고양이용은 아닙니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간식입니다.」
「그래, 그건 그렇다고 쳐. 하지만 아내는? 뭐 별거라도 해? 사이가 안 좋나.」
다른 페이스트리 쉐프들에게 했던 것에 비해 질문이 훨씬 더 무례해졌다. 안토니오가 말리려 했으나 진혁은 동요하지 않고 대답했다.
「별거는 아니지만, 부부가 항상 옆에 있어야 한다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지금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고, 저 역시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일월신교의 일반 신도들은 이른 나이에 결혼한다.
10살이나 11살 정도에는 약혼을 하고 늦어도 15살 전에는 모두 결혼을 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이른 시기다.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는 하급 신도들만이 그렇게 일찍 결혼하는 것은 아니다.
무공을 익히는 신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찌감치 결혼해 아이를 둔 후 함께 무공을 수련한다.
남자들은 어느 정도 이상 나이가 되면 마을로, 다른 지방으로 내려가 교의 일을 한다.
반면에 부인과 자녀들은 십만대산에 남았다.
황미미는 연기와 사업 때문에 바빴고, 진혁은 대회 출전과 제과제빵 일이 분주했다.
하지만 서로 독립적으로 자신의 일을 하며 존중해 주었다.
진혁이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고 하면 미미가 드러나지 않게 내조하였다. 진혁 역시 비슷한 존재가 되어 주고 싶었다.
「제 아내 되는 사람은 치즈 케이크를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치즈 케이크를 매주 선물로 보냈습니다. 케이크를 보내고 돌아오는 과정에, ‘치즈’ 자체를 좋아한다기보다는 부드러운 식감을 좋아하더군요.」
마침 진혁이 미미에 대해 언급하는 순간, 관객석의 뒷문이 열렸다.
어둡게 그늘져 있던 관객석 한구석에 한순간 눈부시게 빛이 비쳤고, 미미와 스타일 팀 그리고 경호원들이 걸어들어왔다.
그녀는 눈에 띄지 않게 뒷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임진혁은 아주 잠깐 입을 다물었다.
‘그렇지않아도 도착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진혁은 그녀가 공항에 내릴 때부터 어디쯤인지 대강 파악하고 있었다.
본래대로라면 조금 더 일찍 왔어야 했는데, 길이라도 잃은 건지 운전기사가 길을 조금 돌아서 왔다.
「임진혁 쉐프?」
진혁은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띠고서 말을 이었다.
「아내가 좋아하는 것은 치즈의 맛보다는 부드러운 식감입니다. 입안에 넣으면 아이스크림처럼 사르륵 녹는, 그런 식감을 즐깁니다. 그래서 이번에 크림치즈 케이크는 물론이고 수플레 역시 재료가 허락하는 한 최대한 부드러울 수 있도록 고려했습니다. 한 종류의 식감으로 통일하면 맛이 단조로워질 수 있으므로….」
제프리 디버가 흥분해서 임진혁의 말을 가로챘다.
「표면은 단단하면서도 속이 부드러운 것. 그리고 표면부터 촉촉한 안쪽까지 말랑하면서 보들보들한 건 맛이 다르지. 그래서 구우면서 세우려고 한 건가?」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요. 아내는 제가 무엇을 한다고 해도 응원하고 지지해 줍니다. 간혹 신혼인데 이렇게 서로 떨어져 있어서 되겠냐며 묻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미미 씨가 열심히 사는 만큼 저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임진혁은 열렬한 사랑에 빠진 남편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사실을 이야기하는 르포 기자처럼 보였다.
관객석에서 마리오가 진혁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저게 결혼인지 홈마 팬질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루이스가 낯선 단어에 반응했다.
「홈마 팬질?」
「나도 잘 모르긴 하는데, 아이돌이나 배우 팬들 중에 따라다니면서 멋지게 사진 찍어주는 사람들이 있거든. 그 대상을 ‘최애’라고 하는데 내 최애가 숨을 쉬면 숨을 쉬어서 좋다 하고 모든 걸 찬양한다니까.」
「그래.」
안토니오 바트가 중재했다.
「다음 심사를 계속해야지.」
「들어가 보게나.」
「감사합니다.」
진혁은 인사를 하고 자리에서 돌아섰다.
「그렇지, 이 요리에는.」
페이스트리 쉐프 일이 쉽다고 생각하면서 일을 시작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그 일이 힘들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