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485화 (483/656)

제 485화

미미가 앞서 걸어갔다. 그 바로 뒤에는 미미를 항상 따라다니는 팀원들이 종종걸음치며 쫓았다.

헤어 스타일리스트가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팔을 조금 잡아당겼다.

「대회가 끝날 때 맞춰서 오게끔 해 달라고 한 비서님이 연락했잖아.」

「아, 맞다. 케이크에 미미 회장님이 없다고 했지.」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놀라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녀는 소곤소곤 말했다.

「기사님한테도 전달되어 있지?」

「아까 내가 전달했어.」

그들은 앞에서 걸어가는 미미를 힐끔 보았다.

「절대로 회장님이 알게 해서는 안 돼.」

「상처받으실 거라고.」

「맞아, 맞아.」

공항 바깥에서는 운전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경호원 중 한 명이 캐리어를 가지러 간 사이, 미미와 스타일리스트들은 차량에 탑승했다.

헤어 스타일리스트가 운전사에게 윙크를 했다.

「조심히 가요.」

「알겠습니다.」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미미는 즐거운 듯이 스마트폰을 켜려고 했다.

「지금 케이크 심사받고 있으려나? 아까 그 영상 좀 다시 틀어 줘.」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미미 아가씨, 저 좀 잠깐 봐 보세요.」

「응? 왜?」

「이쪽 눈화장이 살짝 번진 것 같아요.」

‘나이스!’

헤어 스타일리스트가 미미에게 보이지 않는 옆에서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미미가 눈살을 찌푸렸다.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황급히 말했다.

「어어, 그렇게 하시면 웃음 주름에 화장품이 끼어서 더 번져요.」

미미가 장난스럽게 투덜거렸다.

「언제는 웃는 게 더 예쁘다고 많이 웃으라더니!」

「당연히 웃는 게 훨씬 더 아름다우시죠. 하지만 지금 번진 부분을 닦아 드리고, 가루를 훨씬 덜 쓰는 방향으로 다시 해드릴게요.」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크림 팩트를 꺼내어 퍼프에 고운 크림색 가루를 묻혔다.

「오랜만에 만나니까 가장 예쁜 모습을 보여주고 싶으실 거 아니에요? 헤어도 다시 만져 드릴 테니까 잠깐 이쪽으로 고개 좀 돌려 보세요.」

헤어 스타일리스트도 휴대용 드라이기와 헤어 에센스를 꺼냈다.

「오케이. 고마워.」

「자, 회장님. 눈 감으시고요.」

◈          ◈          ◈

임진혁의 케이크는 언뜻 보기에는 평범해 보였다. 하지만 케이크가 실린 카트가 점점 더 가까워지면서 심사위원들은 이상한 점을 느꼈다.

「이거, 뭔가 중간 중간에 틈이 있는데?」

제일 먼저 그 이상한 점을 눈치챈 것은 제프리 디버였다. 아서 J. 클라크가 대답했다.

「틈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 거겠지.」

제프리는 아서의 대답을 듣지도 않았다. 그는 이마를 찌푸리면서 눈을 가늘게 떴다. 진혁의 케이크를 자세히 보기 위해서다.

「허어.」

임진혁은 케이크 카트를 밀면서 서두르지 않았다. 그가 천천히 다가오는 동안, 심사위원들은 케이크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세상에.」

「정말로 비어 있군!」

「3D 퍼즐도 아니고 어떻게 저렇게 만든 거야?」

「엄청나.」

본래 심사하기 전에 이런 식으로 감상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은 호기심을 감출 수가 없었다.

「주제는 뭔가, 어떻게 만들었나?」

안토니오가 물었다.

「주제는 가족입니다. 케이크는 수플레와 크림치즈, 그리고 호두 당근 케이크입니다. 닭고기와 칠면조 고기를 넣어 구운 빵을 곁들였습니다.」

「….」

「그래. 그렇게 만들었겠지. 그런데 어떻게 해서 케이크를 띄웠나? 심이라도 박았어?」

제프리가 입꼬리를 올린 채 물었다. 진혁이 싱긋 웃었다.

「잘 만들면 됩니다.」

「….」

제프리 디버가 무어라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벙긋거리는 동안 안토니오가 말했다.

「커팅해주게나.」

「예.」

진혁은 빵칼을 들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허공에 뜬 케이크를 잘랐다. 자르면서 자연스럽게 빵칼을 눕혀 자른 케이크를 칼 위에 올리고, 그것을 먼저 접시에 내려놓았다. 놀랍게도 가운데에 뾰족하게 솟아 있던 수플레 케이크가 서 있었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한 거냐고?! 저 수플레 케이크는 왜 같이 잘리지 않고 남아 있는 건데.」

「수플레 케이크가 치즈 케이크와 함께 잘린다면 뭉개지니까 일부러 저렇게 간격을 두고 따로 자르는 것 같은데.」

「그러니까 지금 빙 둘러서 자른 게 아니고 한 번에 잘랐잖아. 그런데 가운데의 케이크를 어떻게 남기고 잘랐냐 이거지.」

「그보다 저게 어떻게 저런 식으로 공중에 떠 있을 수 있는지가 의문이야! 안쪽에 시리얼 심이라도 있나?」

「지금 부드럽게 잘리는 걸 보면 안쪽에 라이스 시리얼 같은 걸 넣은 것 같이 보이지는 않는데.」

「낚시용 실 따위를 넣은 케이크를 어디 사람이 먹을 수 있겠나!」

진혁은 물 흐르듯이 유려한 자세로 케이크를 잘라내어 착착 접시 위에 놓았다. 심사위원의 말에 대답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물론 그런 건 넣지 않았습니다.」

심사위원들은 홀린 듯이 케이크 자르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아, 벌써 다 잘랐나?」

「고맙네.」

안토니오 바트는 가타부타 말없이 접시를 들어 올려 케이크를 살폈다. 몽실몽실하니 부풀어 오른 수플레 케이크는 언뜻 보면 일반 가정에서 어머니가 구워준 것처럼 평범해 보였다. 보기 좋게 갈색으로 익은 윗면과 통통하니 솟아 겹겹이 층이 지어진 옆면에서 갓 구운 빵 특유의 향내가 나서 코를 간지럽혔다.

「수플레는 향이 약한 편인데 신기하게 치즈 크림이나 다른 케이크에 가려지지 않았어.」

저절로 입안에 침이 고이는 향이었다. 그는 나이프를 수플레 케이크에 갖다 댔다. 푹신한 케이크는 포크에 눌리면서 한순간 푹 들어갔다가 곧 탱탱하니 다시 부풀어 올랐다.

「호오.」

놀라울 정도의 탄력성을 보니 점점 더 맛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안쪽에는 예선에서도 맛보았던 진한 블루베리 잼이 아주 살짝 들어있었다.

‘양이 내 취향에는 좀 적은 편인데.’

아주 짧은 생각이 안토니오 바트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수플레 케이크 같은 경우에는 보통 잼을 별도로 내놓아 취향에 맞게 발라 먹도록 배려한다.

하지만 지금 같은 경우에 잼을 함께 내놓았다면 분명히 심사위원들은 다른 케이크에도 잼을 발라 보았을 것이다.

치즈 크림 케이크나 미트 브레드에도 잼을 바르며 어울리는지 평가해야 한다.

「흐음.」

아마도 그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이렇게 내부에 잼을 숨겨 내놓았으리라.

평가를 위해서 그렇게 했다면 나쁜 선택은 아니다.

‘이런 식으로 평가 기준까지 고려하기보다는 좀 더 제멋대로 만들고 싶은 걸 만드는 페이스트리 쉐프인 줄 알았는데 말이지. 이전 대회보다 조금 변했나?’

막상 케이크를 한 입 입에 넣고 나니 안토니오 바트는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웃.」

케이크는 폭탄처럼 입안에서 터져 흘렀다. 빵이 아니라 생크림에 가까울 정도로 식감이 부드러웠다.

‘세계 정상급 대회에 이런 메뉴를 내놓은 이유가 있었군.’

그 어느 특급호텔 주방장이라도 이 수플레를 이 디저트 메뉴에 내놓는 데에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빵의 식감 그 자체만으로도 완성도가 엄청나게 높았다. 구름처럼 보들보들한 촉감에, 과하게 달지 않으면서도 심심하지 않다. 누구라도 불만을 표할 수 없을 만한 적절한 당도다.

‘14~15브릭스인가?’

당도에 대해서 잠깐 평가했을 뿐인데 수플레 케이크는 벌써 입안에서 녹아서 사라져 버렸다. 안토니오는 수플레 옆에 놓여 있던 과자를 집어 들었다.

언뜻 보면 이탈리아식 빵인 그리시니를 닮았다. 이 과자의 생김새는 평범하나 윤기가 흐르는 것이 범상치 않았다.

「흠….」

빵이나 과자가 반짝반짝 빛나며 식욕이 돌게끔 하려면 시럽을 바른다. 설탕 시럽을 바르기도 하고 특정 당류를 바르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과자에는 그런 종류의 제품이 발라져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조명을 받아서 빛이 났다.

「호오.」

입안에 넣자 이 과자는 파삭하니 바로 부서졌다. 방금 전에 맛본 수플레와는 전혀 다른 궤도의 식감이다. 비스킷처럼 살짝 짠 듯한 맛이 나지만 결코 소금 덩어리와 같은 맛은 아니다.

‘항상 중도를 지키는 것이 제일 어려운데.’

방금 전에 맛본 달콤하고 푹신한 수플레의 맛을 지울 만큼, 딱 그 정도만 달다.

그는 과자를 한 입 먹어본 후 바닥에 남아있던 수플레를 조금 긁어먹었다. 이번에는 조금 전에 맛본 과자의 맛이 깔끔하게 지워졌다.

‘호오.’

수플레와 과자 중 어느 쪽을 먼저 먹어도 상관없는 구조다. 프랑스 팀의 페이스트리 쉐프는 한 가지 재료로 메인 케이크를 통일해서 일체감을 주었다. 반면에 영국 팀의 페이스트리 쉐프는 버터를 쓰지 않으면서 초콜릿을 주재료로 사용해 세부적인 작은 책들과 케이크가 어우러지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 임진혁이라는 쉐프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 문제에 접근했다.

‘맛의 정도를 조절하고 식감을 다르게 했어.’

나트륨이 식품 내에 얼마나 들어있는지에 따라 짠맛은 다르게 나타난다. 염도가 0.1% 이하라면 매우 싱거운 맛이 될 것이고, 0.5% 정도라면 일반적인 한국인의 입맛에 적당한 맛이 된다. 임진혁은 이 과자의 염도를 다른 케이크에 들어있는 단맛의 정도에 맞추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설마 다른 케이크도 그런가?’

식품이 얼마나 짠 지는 염도계로 측정할 수 있다. 당도는 굴절식 당도계를 이용해 재면 된다. 액체의 농도에 따라 빛의 굴절 각도를 측정하여 얼마나 단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미 구워낸 케이크의 당도를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시피 하다. 굽기 전에 알기도 어렵다.

같은 반죽에 동일한 양의 설탕을 사용했더라도 어떤 부재료를 투입했으며 오븐에서 어떻게 구워졌는지에 따라 단맛이 다르게 나타난다. 빵의 맛이란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떻게 조절한 거지.’

질문하면서도 안토니오는 그 답을 알고 있었다. 연습, 그저 수많은 연습.

그 이외의 수단이 있을 리가 없다.

치즈 케이크는 고소한 치즈의 맛을 살렸으며, 고기가 들어간 빵은 담백하면서도 아주 조금 짭조름했다.

호두를 넣은 당근 케이크는 놀라울 정도로 당근의 단맛을 잘 살렸다.

안토니오 바트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완성도가 낮은 것이 섞여 있을 법도 한데.」

빵과 케이크, 그리고 과자.

모두 식감이 전혀 다르다. 맛도 다양하다. 달콤하며 새콤하고 담백하고 짠데도, 그 강도가 비슷하다.

「이건 철저하게 계산해서 만든, 과학자의 요리야.」

아서 J. 클라크가 중얼거렸다. 안토니오 역시 그 평에 동의했다.

「나는 자네가 단순해 보이는 케이크를 만들었다고 오해했네. 하지만 이렇게 맛을 단순하게 하여 오히려 통일성을 부여하다니, 그게 더 놀라운 일이야.」

제프리 디버가 말했다. 그는 눈가에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그래서 도대체 이것들을 어떻게 세운 건데?! 빵을 먹어봐도 도저히 알 수가 없잖아.」

아서 J. 클라크가 놀라서 물었다.

「제프 자네 울었나?」

「울다니, 내가 왜 울어!」

「자네는 원래 케이크가 맛있으면 울잖아.」

제프리는 손수건을 꺼내서 황급히 눈가를 닦았다. 하지만 눈동자는 여전히 충혈되어 있었다.

「조금, 아니 맛있긴 했지만 울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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