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484화 (482/656)

제 484화

한쪽 날개가 부러진 슈가 크라운이었다.

조그마한 설탕 보석이 박힌 왕관은 한쪽 날개가 부러졌어도 예뻤다. 시중에 돌아다니는 관련 상품을 전부 파악하고 있는 안토니오 바트도 카탈로그에서 본 적이 없는 것을 보면 이 또한 직접 만들어낸 것이 분명하다.

「서프라이즈! 입니다.」

제프리 디버가 주먹을 쥔 채로 테이블을 탕하고 두드렸다. 큰 소리는 아니었으나 작지도 않았다. 다른 심사위원들이 흠칫하고 놀랄 정도였다.

「여기가 자네 가족들의 크리스마스 연회장 같은가? 이런 장난은 사양하고 싶군.」

불쾌한 반응을 보이는 심사위원이 있는 반면에, 즐거워하는 심사위원도 있었다. 아서 J 클라크는 기쁜 듯이 말했다.

「놀라움을 주고 싶었던 거군? 이쪽 내 케이크에는 뜬금없이 아몬드가 하나 통째 들어 있는데.」

「맞습니다. 모든 심사위원분에게 각자의 놀라움을 제공하고 싶었지요. 마술의 기쁨이란 놀라움에서 나오는 거니까요.」

「사순절 때 어머니께서 구워주신 케이크 안에 커다란 콩이 하나 들어 있고는 했는데, 그때 생각이 나네. 나는 이게 마음에 들어. 케이크 속에서 콩을 발견했을 때의 그 기쁨 말이야. 내가 콩을 찾으면 어머니께서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주셨는데, 그게 좋았어.」

「왕이 되는 게 아니라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다고?」

「그래, 어머니는 아주 바쁜 분이었거든. 직장에서 일하고 돌아오니까 거의 유모하고 시간을 보냈어. 그런데 사순절 때에는 드물게 어머니와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단 말이지. 내 케이크에서 콩이 나오기를 기대하면서 양손을 모으고 오랫동안 기도했었어. 깍지를 세게 끼면 소원이 더 잘 이루어질 것 같아서, 손이 저릿저릿해질 때까지 놓지 않았단 말이지.」

「아서, 네 어린 시절 추억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이런 식의 서프라이즈는 불쾌할 뿐이야. 그리고 이런 류의 당과가 안쪽에 들어 있다면 그 주변의 맛이 변하지 않나. 심사위원들에게 돌아가는 케이크는 모두 같은 맛이어야 한다고. 그러니 이건 아주 나빠!」

「하지만 케이크를 잘라서 주다 보면 누구는 딸기를 두 개 받고 누구는 한 개 받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그것 가지고서도 맛이 다르다고 트집 잡을 셈인가?」

아서와 제프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안토니오는 책 한 권 한 권을 펼치듯이 신중하게 쿠키를 하나하나 살폈다. 그는 쿠키를 두어 개 먹어보고서 말했다.

「이것들은 전부 버터를 사용하지 않은 쿠키와 케이크로 통일했군.」

「맞습니다! 알아봐 주시는군요」

캘러한은 안토니오를 똑바로 보면서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얼그레이 홍차 초코 쿠키나 초콜릿 캐러멜 쿠키 어느 쪽도 버터를 전혀 쓰지 않았습니다. 화이트 코코넛 블론디나 건포도 스콘 쪽도 마찬가지죠. 이 정도로 다양한 맛이 있으니 어느 정도 통일성을 주어야 합니다.」

「그걸 버터를 일부러 배제한 초콜릿으로 통일한 거군.」

「예.」

「코코아 파우더나 카카오닙, 화이트 초콜릿부터 다크와 밀크 초콜릿까지 이것저것 골고루 사용했어.」

「이렇게 쿠키 정도의 분량이라고 해도, 이만큼 다양한 종류를 만들려면 그만큼 시간이 들었을 텐데 말이지.」

「책장에 한 종류의 책만 꽂혀 있다면 그건 이미 서재가 아닙니다. 뭐, 저자의 창고 정도일까요.」

「하하하, 그거야 그렇지!」

「수고했습니다, 캘러한 쉐프. 이제 돌아가 주십시오.」

모카 F. 캘러한이 자리로 돌아가는 그 짧은 동안 제프리 디버는 폭풍같이 비난을 퍼부었다.

「어린아이가 서재에서 책을 읽으면서 자랐다는 이야기는 알겠어. 하지만 이 북케이스 케이크가 가족이라는 주제에 적합한지는 잘 모르겠군.」

아서 J. 클라크가 턱을 괴며 말했다.

「가족을 무엇으로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애초부터 이 주제를 정한 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형태의 가족들에 대한 담소를 하기 위함이 아니었나?」

제프리 디버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닌데?」

「아니, 네 개인적인 생각 말고.」

안토니오 바트가 입을 열었다.

「단순히 기계적으로 빵을 만든다면 그게 공장에서 기계로 구워내는 빵과 다른 게 뭔가? 차세대의 페이스트리 쉐프들은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해. 그리고 우리들은 그걸 평가하러 여기에 와 있지. 뛰어난 실력과 기술, 철학을 말이야. 캘러한 쉐프가 책을 가족으로 생각하는 것이 별난 일이긴 한데 말이지. 하지만 이 사람이 한부모 가정에서 자랐다면 어떤가, 그게 문제가 되냐고? 아이가 이혼 부모 아래에서 자랐을 수도 있고, 삼촌이 대신 키워 주었을 수도 있지. 누군가에게는 거북이가 유일한 가족일 수도 있어. 우리는 지금 이자의 가족에 대해서 평가하려고 와 있는 게 아니라, 이 자가 스스로 ‘가족’이라고 규정하는 범위를 제대로 표현했는지만 평가하면 되는 거야.」

안토니오의 이야기에 다른 심사위원들이 찬성하자 제프리 디버는 벌레를 씹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그건 그렇다 치자. 그렇다고 해서 캘러한이 케이크에 이물질을 넣은 게 정당화될 수는 없지.」

「킹스 케이크라면 어디에나 들어가 있는 것인데도 말이지?」

「누가 부드러운 케이크를 먹으면서 단단한 것이 씹힐 것이라 예상하겠나? 이게 킹스 케이크라는 걸 알고 있었다면 아예 처음부터 조심하면서 먹는 방식부터 달리 했겠지. 케이크를 휘젓고 이물질이 있는지부터 살폈을 걸세.」

「나도 그 점에서는 동의해.」

심사위원들이 분분히 저마다 의견을 이야기하는 동안 안토니오 바트가 정리했다.

「여러분, 페이스트리 쉐프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다음 팀은… 폴란드.」

사회자가 소리 높여 외쳤다.

「케이크를 준비해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두어 팀의 케이크가 지나갔다. 화목한 가정 출신이라는 점이 물씬 드러나는 집 모양의 케이크였다. 심사위원들은 이 무난한 케이크에 대해서 나쁘지도 좋지도 않다는 애매한 평을 주었다.

참가자가 내려간 이후 안토니오 바트가 말했다.

「가족이 테마인 만큼 분명히 이런 케이크를 내놓을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제프리 디버가 동의했다.

「하지만 이건 실제의 가족이라기보단 동화 속 과자 집을 형상화한 것처럼 보이니까 문제지. 주제에 대한 생각 없이 자기가 만들기 쉽고 만들어 본 걸 답습하려고 하니까 이렇게 되는 거야.」

여러 명의 심사가 특별한 일 없이 지나고, 토마스 닐슨 크리스티얀센의 심사 차례가 되었다.

「덴마크 팀은 케이크를 가지고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네.」

덴마크의 작은 도시에는 레고 그룹의 본사가 있다. 할아버지 혼자 운영하는 자그마한 목공소에서 출발했던 회사다. 지금 그 목공소는 허물어버린 지 오래고 20여 층이 넘는 현대식 건물이 서 있다.

토마스는 그 빌딩을 만화적으로 생략한 회색 건물을 만들었다. 그 건물만 있었다면 다들 그런가 보다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건물의 아래쪽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흐릿한 인상의 사람들, 몇십 명의 인간들이 양팔을 들어 빌딩을 떠받치고 있다.

비교적 정교한 건물에 비해서 사람은 일부러 대강 만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인상 깊었다.

그리고 그 빌딩에서 벗어난 구간에 한 명의 사람이 서 있었다. 조리모를 쓰고 하얀 쉐프복을 입은 이 인형은 누군가에게 인사라도 하듯이 한 손을 들고 있었다.

브라이언이 말했다.

“존경스럽군.”

“어떤 점이?”

“자기가 어떻게 느끼는지 전부 이야기한다는 거 말이야, 프랑스 남자들에게는 쉬운 일이지만 덴마크 남자들에게는 아주 어려운 일이라고.”

“흐음.”

“온 세상이 다 알고 있는 일이라도 그걸 인정하는 건 쉽지 않아.”

브라이언이 진혁에게 말하는 동안, 심사위원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심사위원이 물었다.

「토마스 닐슨 크리스티얀센 쉐프, 케이크에 대해서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 가족들은 가족 회사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그 가족의 역사에 함께하기를 바랐지요. 어렸을 때는 저도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아주 어려웠지요.」

「여기 혼자 따로 서 있는 사람이 당신입니까?」

「그렇죠.」

토마스가 웃었다.

「뜻은 충분히 알겠습니다. 노골적이지 않으면서도 알기 쉬운 방식이군요. 그렇다면 맛을 볼까요?」

토마스는 천천히 칼을 들어 빌딩을 조금씩 잘라냈다. 빌딩이 잘라지면서 짙은 붉은색 잼이 꿀렁하니 비쳐 보였다.

「여기 있습니다.」

「레이어드한 잼이 인상적인데.」

「신선한 딸기 잼이지요.」

「꼭 피 같아」

「때로는 이 회사가 가족들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흡인기 같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가는 것이 꺼려졌죠. 하지만 그래도 이곳은 가족들이 피와 땀으로 일군 회사입니다. 아주 소중한 곳이지요. 제가 그곳에 있지 않다고 해서 가족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걸 깨닫는 데에 아주 오래 걸렸습니다.」

제프리 디버가 비웃듯이 말했다.

「가족들과 퍽 거리가 있어 보이긴 하는데.」

아서 J. 클라크가 상체를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잘 들었네.」

「그래서 어떤 케이크인가?」

「생딸기 잼을 곁들인 생강 레몬 파운드 케이크입니다.」

「그것만?」

토마스 닐슨 크리스티얀센이 침착하게 대답했다.

「호두와 밤 파운드 케이크, 장미 향 파운드 케이크, 그리고 아몬드 파운드 케이크입니다.」

토마스는 천천히 케이크를 잘라냈다. 촉촉해 보이는 호박색 단면이 드러나면서 꿀렁하니 붉은 딸기잼이 흘러나왔다.

접시 위에 조각조각 올라간 케이크를 받은 심사위원들은 저마다 포크를 들어 올렸다.

「그럼 시식해 보자고.」

안토니오 바트는 호두와 밤 케이크를 한입 물었다.

「바삭하고 안은 촉촉해, 좋은 파운드 케이크야.」

아서 J. 클라크도 칭찬했다.

「딸기잼이 좋아. 이건 지나치게 달지 않고, 파운드 케이크하고도 잘 어울리는군. 적당한 당도를 잘 찾았어.」

「괜찮은데.」

다른 이들도 호평을 했다.

「감사합니다.」

토마스 닐슨 크리스티얀센은 가벼워진 표정으로 등을 돌려 내려갔다.

그는 무거운 짐을 어깨에서 내려놓은 것처럼 홀가분해 보였다.

심사위원 중 한 명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모습이 멋있어.」

「주제를 제일 훌륭하게 맞추었지.」

「전혀 동떨어진 것을 갖다 대는 것보다 훨씬 낫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는 성숙한 모습이 보기 좋군.」

제프리 디버가 말했다.

「그럼 다음 국가는 누구지?」

「한국이지.」

「자, 그럼 빨리 빨리 진행하고 밥을 먹으러 가자고.」

◈          ◈          ◈

「한국 팀은 케이크를 가지고 나와 주십시오.」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 막 도착한 황미미는 스마트폰을 켜서 방송을 보기 시작했다.

무대 위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저절로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오늘도 치즈 케이크일까요?」

「크림치즈 케이크가 포함된 것으로 보입니다. 앗, 그쪽이 아니라 이쪽입니다!」

비서가 안내하는 쪽과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던 미미가 황급히 방향을 바꾸었다.

「방송을 보면서 걸어가는 건 안 되겠네.」

「당연하죠!」

따라가던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눈을 흘겼다.

「조심하셔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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