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82화
닭고기와 칠면조 고기.
소량의 통밀가루에 직접 손질해서 다진 후 익힌 고기를 넣고, 오븐에 구워낸다.
당연히 고양이가 먹을 음식이니 소금을 넣지 않았다. 설탕 또한 금지다. 오직 버터와 적은 양의 통밀 그리고 고기가 들어 있을 뿐이다.
진혁이 집에 들를 때마다 종종 만들어주면 고양이 진호가 환장하며 달려드는 간식이다.
‘저번에는 아버지가 사람 음식인 줄 알고 집어 드시기도 하셨지.’
그리고 의외로 맛있다며 감탄하셨다. 오랜 시간 우유에 담가 잡내를 제거하고 우유를 깨끗이 씻어내어 헹궈낸 다음에 버터를 발라 구워낸 고기는 따로 간이 되어 있지 않아도 담백하고 씹는 맛이 좋았다.
하지만 진호를 위한 케이크가 맛있는 것과 접시 위에 있는 다른 케이크들과 어울리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진혁은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별도의 수단을 강구했다.
「하, 정말로 다시 봐도 신기하기만 하네.」
간이 되어 있지 않은 조그마한 케이크는 일부러 조그맣게 만들었다. 케이크라기보다 육전(肉煎)이라고 해야 할까, 고기 빵에 가까운 물건이다. 그렇기에 지나치게 덩어리가 크거나 양이 많아지면 다른 케이크의 맛을 해칠 우려가 있다.
‘조그만 게 맞지.’
진호가 고양이치고는 덩치가 크지만 인간에 비교할 수는 없다.
진혁은 이 작은 고기 빵을 배치하면서 가족 간의 관계도 역시 고려했다.
진호 고양이는 모든 가족을 사랑하지만, 어머니를 제일 아끼고 사랑한다.
그렇기에 이 고양이 빵은 반드시 어머니 케이크 곁에 있어야 했다. 수플레 케이크와 고기 빵은 맛 역시도 잘 어울릴 것이다.
임진혁이 모든 것을 완성하고 나서 팔짱을 끼고서 바라보는 동안, 심사위원들의 카운트 소리가 들렸다.
「5! 4! 3! 2! 1!」
「그럼 조금 후에 심사를 시작하겠습니다, 결승 본선에 참가하신 페이스트리 쉐프 여러분들은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숫자가 울리는 동안 브라이언이 말했다.
「사람들이 이걸 보면 정말로 널 다시 평가하게 될 거야. 걱정되지 않아?」
「뭐가?」
「너는 아직 너무 어리고, 경험도 없는데 굉장히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거잖아. 유명해지고 성공한 만큼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도 많아질 거고, 너에게 바라는 것도 생길 텐데…, 그런 것들이 신경 쓰이지는 않아?」
진혁이 피식 웃었다. 정말로 필요 없는 걱정이었다. 그는 지금 이것보다 훨씬 더 성공했던 적이 있었으며, 더한 요구를 받았던 적도 있었다.
어린 나이에 무공의 천재라 일컬어지며 일월신교의 소교주가 되었을 때, 다른 교주 후보들은 암습과 독으로 그를 맞이했다.
그에 비하면 제과제빵 레시피를 원한다느니, 빵을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느니 하는 그런 이야기는 정말로 소소한 여흥에 불과하다. 설령 그가 지금 이 대회에서 우승하거나, 아니면 입상한다고 가정해 보자. 시기와 질투를 하는 이들은 어디에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임진혁을 죽이려고 덤벼들 일은 없을 것이다.
‘뭐, 그래도 상관없지만 말이지.’
음해와 시기를 하여도, 설령 만에 하나 물리적인 수단을 강구해 오는 이가 있다고 하여도 진혁은 전부 처리할 수 있는 자신이 있었다.
그가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다만 하나, 가족들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치거나, 자신을 오해하는 일 말이다.
제과제빵계의 원로나 슈퍼 스타 쉐프니 하는 사람들이 자신과 잘 지내고 싶어 한다면 대응할 가치가 있는 경우에 한해서 제대로 맞추어 주면 된다. 그들이 질투하거나 엉뚱한 행보를 보여도 어떻게든 맞춰 줄 수 있다.
‘얘는 지금 와서 나를 질투하는 건가?’
진혁은 브라이언의 안색을 살폈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는 진심으로 진혁을 걱정하고 신경 쓰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브라이언의 아내가 이른 나이에 변호사로 꽤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기도 하다. 일찍이 어린 나이에 성공한 사람들이 오히려 시기를 받으며 괴로워하고 슬퍼하는 모습들을 보아왔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보통 이런 질문은 대강 흘려 버리나, 진혁은 이 질문에 진심으로 대답해 주기로 했다. 브라이언이 진정 염려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괜찮아.」
자세한 설명은 없었지만, 브라이언은 그대로 납득했다.
「그래. 네 말을 듣고 있으면 세상에 어려운 일이 전혀 없는 것 같다. 원하는 대로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는 느낌이야. 네가 고민하거나 후회하는 일은 전혀 없는 것처럼 보여.」
「나도 사람인데 당연히 그런 일이 있지.」
브라이언이 궁금해져서 물었다.
「뭔데?」
「치즈 케이크를 미미 씨한테만 보낸 거.」
「하하.」
브라이언은 예상외의 답변을 듣고 웃음을 터트렸다.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은 안 들어?」
「그럼 그 사람들이 보는 눈이 없는 거지.」
「푸으하하하핫!」
브라이언은 아까보다 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다른 부스의 사람들이 놀랄 정도였다.
「한국 팀은 엄청나게 자신만만한가 본데.」
「지금 웃을만한 여유가 있나?」
긴장하고 초조해하고 있던 다른 부스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고서야 브라이언은 자신의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 ◈ ◈
「그럼 지금부터 본선 심사를 시작하겠습니다.」
당연하지만 심사 자체도 영어로 진행되었다. 한 비서는 진혁의 부모님에게 이 심사 내용을 대강 번역해 주었다.
“이제 시작할 모양입니다.”
“저번에 진혁이 따라서 대회 왔을 때는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앉아 있었는데. 한 비서님 덕분에 이번에는 다 이해를 하면서 넘어가네. 고마워요, 고마워.”
“아닙니다,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요.”
한 비서는 겸손하게 말했다.
“며늘아기는 이제 온다고요? 데리러 나가지 않아도 되나?”
“운전 기사님이 모시러 가셨습니다.”
“그렇구나, 지금 만드는 것도 봤으면 좋았을 텐데.”
한 비서는 눈을 깜빡였다.
“어쩌면 조금 더 늦게 오시는 것이 좋을 수도 있습니다.”
“예? 왜요?”
“음, 지금 만들고 계신 케이크의 주제가 ‘가족’이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들었는데.”
“브라이언 쉐프님과 이야기를 나누시는 걸 들었는데, 저기에 포함되어 있는 사람이….”
한 비서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침묵했다. 아버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기랑 밀가루랑 섞어서 빚어서 굽고, 수플레 케이크하고. 돔형 케이크에, 당근 케이크.”
어머니가 손가락을 꼽아 보았다.
“다섯 명, 맞는데.”
“안타깝게도 그 고기와 밀가루가 고양이인 모양입니다.”
“….”
“….”
어머니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아버지는 황망해 하며 이마를 짚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마리오가 낄낄거렸다.
“진혁이가 아직 부모님 품에서 독립을 못 했는데요.”
루이스가 진지하게 말했다.
“이전에 대회에서 만들었던 주제를 피하려고 했던 것일 수도 있어. 이미 사랑이란 주제를 한 번 만들었으니까 의도적으로,”
“그때는 며늘아기랑 연애할 때가 아닌데.”
“으음.”
루이스가 말했다.
“마리오하고 저는 이따가 대회가 끝나는 대로, 급하게 귀국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진혁이하고 인사를 하고 가려고 했는데 못하고 갈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생각보다 대회가 길어져서요.”
마리오가 루이스를 보면서 눈을 깜빡거렸다.
“형, 진혁이랑 밥 먹고 가자며? 대회 끝난 소감도 듣고 싶다고 했잖아.”
루이스는 마리오의 발을 콱 밟았다.
“어머니께서 빨리 돌아오라고 하셨어. 밤 비행기로 떠나는데 짐 챙기는 데만도 버겁다. 그래도 결승 결과까지는 보고 가야지.”
마리오가 동의했다.
“그거야 그렇지.”
“그래, 형 배웅도 안 할 셈이야?”
“알았어, 알았어. 따라가면 되잖아.”
“고맙다.”
장은효가 피식 웃었다. 그녀는 루이스가 어떤 의도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눈치챈 것처럼 보였다. 반면에 임운정은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루이스는 눈치 없는 동생이 친구의 역사적인 첫 부부싸움에 끼어드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래요, 두 사람 다 다음에 또 봐요. 한국에는 언제 들어온다고 했더라?”
“여름에는 다시 귀국할 일정이 있으니 따로 찾아뵙겠습니다.”
한국어로 오가는 대화를 듣고 있던 밥 앤더슨이 엄지와 검지로 수염 자국을 매만지며 물었다.
「그런데 지금 저 사람은 어떻다는 거지?」
무대 위에 서 있는 것은 주느비에브였다. 그녀의 케이크는 웨딩 케이크를 닮아 있는 3층 장식 케이크였다. 이제 막 케이크를 잘라 내어 심사위원 앞에 올려 놓는 순간이었다.
한 비서가 앤더슨에게 대답해 주었다.
「이제 심사를 시작하려는 모양입니다.」
「저 아가씨, 도살장에 끌려 올라가는 소 같은데.」
주느비에브는 경직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참가자용 마이크를 통해 증폭된 음성이 무대와 관객석 전체에 울려 퍼졌다.
「저에게는 누구보다도 소중한 세 분의 할머니가 계십니다. 무화과처럼 특별하고 독특하신 분들이지요. 그래서 저는 무늬가 있는 무화과 열매를 기본으로 하여 오렌지와 민트, 그리고 바닐라로 확장한 세 층의 케이크를 만들었습니다. 장미 정원을 사랑하신 분을 위해서는 로즈워터를 가미하고 장미 꽃잎 장식을….」
첫 마디를 뱉을 때는 처음으로 교단 앞에 선 신입 교사처럼 어설퍼 보였다. 하지만 할머니라는 단어를 발음하면서 주느비에브의 목소리에 생기가 돌아왔다.
「저 아가씨 이제 살아났네.」
밥 앤더슨이 중얼거렸다. 루이스가 동의했다.
「너무 긴장해서 설명도 못 할 줄 알았는데 좀 살아났네요.」
마리오가 말했다.
「저 정도 배짱은 있어야 이런 대회에 나오는가 봐. 나도 다음에는 꼭 본선에 나와야지.」
「그래, 그래. 꿈을 크게 가져라.」
관객석에서 강 씨 형제가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는 동안 무대 위의 주느비에브는 점차 긴장을 풀었다.
할머니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살아 계실 적 자신을 아껴주셨던 세 분들은 지금 자신이 이곳에 올라와 있는 것을 본다면 기뻐하시면서 응원할 것이다.
「5월마다 활짝 피어나는 장미꽃을 손수 돌보셨던 분이셨죠. 저의 특별한 분인 앙쥬, 마리안느, 마리 세 분께 이 케이크를 바칩니다.」
그녀는 헌사와 함께 자신만만하게 이야기를 끝마쳤다.
제프리 디버가 웃었다.
「이 세 종류의 케이크는 어떤 순서로 먹어도 괜찮은가?」
「물론이지요, 쉐프!」
아서 J. 클라크가 물었다.
「그렇다면 제일 맛있게 먹으려면 어떻게 하면 좋은가?」
「어느 방법으로 드셔도 전부 잘 어울릴 겁니다.」
「그럼 우리가 먹어볼 수 있게 잘라 주시게나.」
「예, 쉐프!」
주느비에브는 케이크를 조심스럽게 잘랐다. 세 종류의 케이크 모두가 적당한 분량으로 들어가도록 신경을 썼다.
‘장미 꽃잎 역시 모두 골고루 돌아가야 해.’
제프리 디버가 제일 먼저 스푼을 들었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세 케이크 가운데 단면이 연녹색으로 보이는 것을 한 스푼 떠올렸다.
「이게 민트 무화과 케이크인가 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