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481화 (479/656)

제 481화

진혁이 가볍게 윙크를 해 보였다.

「만드는 모습을 보면 이해할 수 있게 될걸.」

스케치만 보았을 때는 분명히 하나의 케이크처럼 보였다.

하지만 진혁이 실제로 만든 것은 기괴하게 생긴 과자와 빵, 케이크들이었다.

어느 시점부터 브라이언은 진혁이 뭘 하고 있는지 전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진혁이 어떻게 하는지 어느 정도 따라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누구나 케이크를 구울 때 일반적인 규칙을 따른다.

재료를 고르고 손질한 후에 반죽을 만들고 반죽이 부풀어 오르는 동안 아이싱을 만든다. 버터크림일 수도 있고 다른 종류의 크림일 수도 있다. 구워진 케이크를 식히고 난 후 아이싱을 발라 장식하고, 다른 재료를 준비하였다면 그 또한 사용한다.

케이크 틀은 보통 원형이나 사각형, 드물게 직사각형 모양을 쓴다.

이번에 진혁은 그 순서를 따르지 않았다.

진혁은 다섯 종류의 반죽을 한꺼번에 시작했다. 어떤 것은 빵 반죽이었고, 과자 반죽도 있었다. 평범한 케이크 반죽도 섞여 있었는데 브라이언이 모르는 재료가 담뿍 들어갔다. 더군다나 함께 사용한 틀 역시 신기한 물건이 많았다. 진혁은 즉석에서 종이를 접어 새로운 틀을 만들어 냈고 그 틀 안에 유산지를 넣고 반죽을 부어 넣었다.

그 반죽들 모두 아무리 봐도 도안과는 전혀 다른 생김새였다.

브라이언은 혼란에 빠졌다. 그전에는 진혁과 함께 연습해온 경험을 통해 상대가 무엇을 할지 예상하고 있었고 진혁이 말을 하지 않아도 묵묵히 보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무엇을 도와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진혁이 뭘 하고 싶은지도 몰랐다.

결국, 진혁의 지시를 받아 하나씩 하나씩 도왔다.

「만드는 방법을 보아도 전혀 이해할 수 없는걸.」

「미안하다.」

「응?」

「네 이해력이 내 생각보다 좋지 않아서.」

「야, 임마! 차라리 욕을 해!」

「이 정도로 욕을 하면 안 되지.」

「….」

브라이언은 입을 다물고 진혁을 도왔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카운트 다운이 점차 얼마 남지 않았다.

제한시간이 5분 정도 남았을 무렵, 브라이언은 비로소 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느님 맙소사. 이렇게 하는 게 가능할 줄이야. 진짜 미친 짓이다. 하나만 무너졌어도 완전히 망했을 거야! 무슨 깡으로 이런 걸 계획한 거야?」

「내가 …없이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는지 보고 싶어서.」

「잘 안 들렸어, 그나저나 네가 네 능력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시험해 보는 건 좋지만 그걸 꼭 대회장에서 할 필요는 없지 않겠어?」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네.」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어쨌든 이미 만들었으니까.」

「하하하.」

완성된 케이크는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었다.

케이크와 빵, 과자로 만들어진 3D 퍼즐.

브라이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미친 모자 장수가 만든 케이크 탑 같네.」

반죽이 같다고 해서 모두 똑같은 맛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디서 무엇으로 얼마나 구웠는지에 따라서 맛이 달라진다. 그리고 조그마한 컵케이크나 홀케이크로 굽는 수플레 케이크를 다른 모양으로 구우면 식감이 바뀐다.

‘그리고 식감이 바뀌면 맛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지.’

극히 미미한 차이라도 이러한 세계 대회 급에서는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하지만 진혁이 샘플로 여러 개 구워낸 빵은 그 바뀐 맛도 나쁘지 않았다.

브라이언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놀라고 있는 동안 진혁이 반문했다.

「모자 장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잖아.」

「흠.」

「가끔 보면 넌 정말 다른 세상에서 살다 온 거 같다니까. 아, 아닌가? 한국에서는 루이스 캐롤이 별로 유명하지 않은가?」

「뭐, 그런가 보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한국을 포함해 세계 각국에서 유명한 작품이지만 지금 이곳에는 그 사실을 정정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진혁은 방금 자신이 깨달은 사실을 곱씹고 있었다.

‘역시 진기를 불어넣지 않고도 얼마든지 좋은 케이크를 만들 수 있어.’

그는 일부러 이번에 최대한 진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아버지가 진기를 담아 물엿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신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일인데 아버지는 해내었다.

본래 임진혁보다 아버지가 제과제빵 실력이 훨씬 뛰어났다.

하지만 진혁은 무공 실력에 힘입어 아버지의 기술을 전부 익혔다.

청출어람.

푸른 물감은 본디 쪽에서 나왔으나 쪽보다 더 푸르다. 제자가 스승보다 더 뛰어날 경우에 쓰는 말이다.

진혁은 너무나도 쉽게 아버지를 뛰어넘어 버렸다. 그리고 지금 그 아버지가 다시, 진혁의 실력을 따라잡고 있다.

이 상황이 되자 진혁은 호기심이 생겼다.

‘내가 진기를 사용하지 않을 때 어떤 빵을 만들 수 있을까?’

무공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무학(武學)의 관점에서 바라본 제과제빵이었다.

모든 길은 결국 하나로 통한다.

‘결국, 이것도 무학(武學)과 다르지 않아.’

입문자들은 외공을 익히며 무공 수련을 시작한다. 혹독한 육체적인 수련을 버틴다. 대개는 외공으로 입문하게 되며 드물게 명문가의 자손이거나 기연을 얻은 경우 일찍이 부터 내공 수련을 하게 된다.

하지만 무엇부터 시작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공부터 시작했다면 외공을, 그리고 외공부터 시작했다면 내공을 쌓아야 한다. 내공과 외공의 조화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형태(形態)를 중요시 여겨 초식을 완벽하게 수련하고자 한다.

평생 빵을 구워온 아버지는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물엿에 진기를 주입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마치 외공의 고수가 외부에서 배우지 않았는데도 자연적으로 내공을 깨달은 것과도 비교할 수 있다.

하지만 절정의 고수가 되고 나서 벽에 닿았다면 어느 순간 형(形)을 버려야 하는 순간이 온다.

‘케이크로 만든 공간, 비어 있기에 더 의미 있는 곳들.’

지금이 바로 진혁에게 있어 ‘형’을 버리는 순간이다.

케이크는 본디 둥글거나 각지거나 한 형태를 이룬다. 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은 것들을 모으고 싶었다.

‘반드시 그 모양이 아니라도 괜찮아.’

치즈케이크라고 해서 원형이어야 할 필요가 없고, 수플레 케이크라고 해서 작은 컵케이크여야 할 필요는 없다.

아버지 역시 지금 단계에서 좀 더 수련을 쌓고 나서 좀 더 경지에 달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이제 진기를 주입하지 않고서도 빵 본래의 맛을 살리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다.

‘아버지를 보지 못했다면 나도 지금 이 방향을 떠올리지는 못했을 거야.’

아버지께서는 자신이 더 이상 진혁에게 영향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아버지가 계시지 않았다면 몰랐을 세계다.

‘앨리슨이 아버지에 대해서 세상에 알리기로 한 건 아주 잘된 일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진혁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관객석에서 나누는 대화를 전부 듣고 있었다.

그리고 세상의 다른 사람들이 아버지에 대해서 아는 것만으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셔야 해.’

내가 가족에게 고맙다고 마음속으로 아무리 말한들 소용이 없다.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알아도, 정작 아버지가 모르면 어떡하나.

아버지는 자신이 진혁에게 끼친 영향을 과소평가했다. 반면에 진혁의 재능을 과대평가하면서 자신이 없었어도 진혁이 충분히 뭐든지 할 수 있었을 거라고 주장했다.

‘아버지에게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솔직하게 이야기해 본 것이 언제지?’

그동안 정말로 바빴다. 진혁은 자신이 몇 달간 무엇을 했는지 행적을 짚어 보았다.

결혼을 하였고, 회사를 키우기 위해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며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자신의 실력을 더욱 늘리기 위해 대회 참가를 준비하고서 새로운 케이크와 빵을 개발했다.

아내에게 매일 먹을 분량의 케이크를 만들어 꾸준히 보내왔다.

그러던 와중에 부모님이 뉴욕을 방문하여서 뉴욕 공원의 케이크를 만들어 드리기도 했다.

하지만 부모님이 뉴욕에 오지 않았다면 과연 진혁이 그 케이크를 만들었을까?

아내에게 신경 쓰는 만큼 부모님을 배려했는가?

마지막으로 부모님에게 케이크를 구워 드렸던 때가 언제였는가.

‘내가 너무 소홀했어.’

자신의 결혼식 때에 아버지와 진희가 케이크를 구워 왔을 때 제대로 고맙다고 했었나.

생각해 보면 아버지와 정말로 모든 것을 털어놓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때는 그때뿐이었다. 강남의 H & J 카페 앤 베이커리에 대해서, 진로에 대해서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때 말이다.

회귀했다는 것도, 무공을 익혔다는 것도, 사람을 죽였다는 것도.

그 어느 것도 고백하지 못했다.

아버지에게 솔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은근히 깊은 대화를 피했다.

주변 사람들에 비해서 덜 늙어가는 부모님.

언젠가 밝혀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뿐이었다.

‘용기가 없었어.’

조금만 더, 지금 이대로의 평온을 유지하고 싶다.

진혁은 눈앞의 케이크를 바라보았다.

부드럽고 낭창낭창한 수플레 케이크는 다른 케이크들보다 길다. 평범해 보이지만 실은 누구보다도 가족들을 사랑하는 어머니를 뜻한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크림치즈 케이크는 둥글었다. 평범한 12인치 홀케이크가 아니다. 에스키모의 이글루처럼 완벽한 반구형이다.

세상은 아버지에게 다정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자신을 깎아가며 희생했고, 진혁은 그런 아버지가 모난 데 없이 둥글둥글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세 번째 케이크는 진희를 위한 것이었다.

호두를 넣은 당근 케이크는 임진희의 입맛 그대로일 뿐만 아니라, 설탕을 넣지 않고 나한과 가루를 사용하여 건강에도 좋다. 견과류 알레르기가 없다는 가정하에 당뇨 환자들에게도 권할 수 있는 훌륭한 케이크다.

이 케이크의 특별한 점은 성분에 있지 않았다. 생김새에 있다.

이 당근 케이크의 모양은 길쭉한 수플레 케이크나 둥그런 크림치즈 케이크와 아예 궤가 다르다.

‘가장 아래에 있으면서 모든 것을 뒷받침하고 있어. 꼭 진희 같지.’

올록볼록하게 불룩한 부분도 있고 패여 있는 부분도 있다. 길쭉한 수플레 케이크 주변을 빙 두르고 있으며, 동시에 반구형의 치즈 크림 케이크 역시 감싸고 있다.

서로 간격을 두고서 닿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미묘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 모양이다.

임진희는 가족들이 고난을 겪었을 때 모두를 한결같은 애정으로 받쳐주었다. 돈도 시간도 모두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가족이 산산조각나지 않도록 기둥처럼 지탱하는 역할을 했다.

회귀하기 전에는 몰랐다. 하지만 회귀한 후 어른스러워진 임진혁은 진희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보고 나서 비로소 깨달았다.

그녀는 진혁이 어머니의 생일이나 두 분의 결혼기념일 같은 기념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을 때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상기시켜주었다. 진혁이 너무나 많은 일을 할 때는 부모님에게 진혁이의 일을 줄이자며 이야기하였다.

그녀는 보이지 않는 사이에 가족 사이의 관계를 부드럽게 완충하는 쿠션이자 연결하는 접착제와도 같은 역할을 다해온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진혁과 가족들 사이에서 진희가 보이지 않게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었는지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집 막내.’

고양이에게도 인간에게도 맛있는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 고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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