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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의 베이커리-476화 (474/656)

제 476화

「예? 당연히….」

자신이 계획한 순서대로 먹어보았다. 하지만 방금 제프리 디버가 어떤 순서대로 맛을 보았던가?

주느비에브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양쪽 손을 등 뒤로 옮겼다. 하지만 양팔 모두 팔꿈치까지 떨리고 있었기에, 손을 숨겨도 잘 보였다.

안토니오 바트가 정리했다.

「쉘과 후르츠 살사는 잘 어울립니다. 하지만 녹아버린 레쥬올레와 눅눅해진 하드 쉘은 안타깝습니다. 레쥬올레 없이 하드 쉘과 후르츠 살사만 있었어도 좋았을 것 같습니다.」

「각자의 취향에 맞게 접시 위에서 완성되는 디저트라고 하려면, 어떻게 해도 맛있는 답이 나왔어야지.」

「심사는 끝났습니다, 주느비에브 쉐프.」

그녀는 어깨를 늘어뜨리지도, 눈물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등을 돌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누구라도 그 떨리는 손을 볼 수 있었다.

그 다음 차례는 영국이었다. 캘러한은 자신이 만들어낸 작은 케이크 앞에 서서 심사를 기다렸다.

제프리 디버가 날카롭게 물었다.

「이 칙칙한 벽돌 같은 건 뭔가?」

「브라이튼의 여름 바다입니다.」

「호오?」

「런던에는 일 년 내내 비가 온다고 하지만, 브라이튼의 여름은 건기에 가깝습니다. 거의 비가 오지 않지요. 그래서 가끔 오는 비는 귀하고 소중합니다. 비가 올 때 회색빛으로 물드는 칙칙한 세상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보석 같은 광경이죠.」

캘러한은 제프리의 날카로운 질문에 주눅 드는 일 없이 능란하게 받아넘겼다. 팬도 많고 안티도 많은 인플루언서다운 태도였다. 아서 J. 클라크가 미소지었다.

「아까 덴마크 팀의 올블랙 쿠키 바도 그렇고, 요즘은 무채색 디저트도 꽤 늘었죠.」

「식욕 떨어지는 회색하고 초콜릿 색깔을 똑같이 비교하면 그렇지.」

「이 디저트는 반드시 회색이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캘러한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는 빵 자르는 칼을 꺼내 들었다.

「지금부터 그 이유를 바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심사위원들의 앞에는 저마다 1인용 분량이 올라간 접시가 놓여 있었다. 그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제가 이 케이크를 반으로 자를 때 심사위원 여러분도 저와 똑같은 동작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특유의 제스처인 윙크도 잊지 않았다. 제프리 디버는 캘러한의 윙크를 보고서 못내 이맛살을 찌푸렸다.

「퍼포먼스라.」

「자, 그럼 시작할까요?」

별달리 특별할 것도 없어 보인다. 컵케이크를 두 번 쌓아 올린 것처럼 생긴 회색 케이크. 아주 오래된 화석 같기도 한 것이 전혀 식욕을 돋우는 모양새는 아니다.

안토니오 바트는 진지한 표정으로 캘러한을 따라 했다. 그는 칼을 들어 회색 케이크의 가운데에 내려놓았다.

「으음?」

무언가 단단한 것이 느껴졌다. 안토니오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캘러한이 의기양양하게 미소지었다.

「어때요, 느껴지십니까?」

제프리 디버가 말했다.

「딱딱한데? 이걸 뭐 어쩌라고.」

「그대로 짓누르세요.」

말하는 것과 동시에 캘러한이 칼을 내리찍었다.

파삭.

무언가 깨지며 안쪽에 있는 것이 흘러나왔다. 회색이었던 작은 이단 케이크는 안쪽에서부터 천천히 노란 색깔로 변했다.

아래쪽 절반은 선명한 노란색으로, 위쪽은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덴마크 팀이 예선에 내놓았던 알록달록한 빛깔의 레고 케이크처럼 원색이었다.

화사해진 케이크는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르게 맛있어 보였다. 가장자리에 뿌려진 갈색과 흰설탕, 그리고 푸른색 시럽은 비로소 바다처럼 보였다.

「바다에 떠오르는 해 같은 건가?」

「브라이튼의 해안에는 작은 섬이 있지요. 그곳에 떠오르는 여름 해입니다.」

평소라면 시니컬하게 반응했을 제프리 디버도 호의적으로 말했다.

「뭐,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네.」

오히려 아서 J. 클라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 이거. 어떤 식으로 한 거지? 색깔이 확 바뀌었는데. 즙 같은 거라고 하기에는 위쪽까지 색깔이 다 물들었고.」

「마술사에게 트릭을 물어보시면 곤란하지요.」

아서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제프리가 킥킥 웃었다.

「먹어 봐, 그럼 알 수 있을걸.」

패션후르츠 필링이 든 망고 케이크 섬.

트릭은 어렵지 않았다. 그는 단단한 캔디 2개 안에 각각 다른 색깔의 짙은 과즙을 넣었다. 그 과즙이 보드라운 케이크 사이로 퍼지도록, 즙이 퍼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놓았다. 빨대를 꽂아서 케이크를 구웠고, 그 빨대를 무사히 빼냈다. 그리 어렵지 않은 트릭이었다.

「호오, 패션후르츠 필링에 망고라. 그리고 포도즙, 셋 다 잘 어울리는데.」

안토니오 바트는 케이크를 절반으로 잘라 그 속임수를 밝혀냈다.

「퍼포먼스 적인 면도 좋군.」

「어린아이들만이 아니라 성인들이 보아도 빠져들 수밖에 없는 디저트야.」

스크린에 비추어지는 그 광경을 보며 브라이언이 말했다.

“너 같은 짓을 하는 사람이 있네.”

“나 같은 짓이라니?”

“안쪽에 함정 카드 같은 걸 숨겨 놓고, 사람들이 놀라면 기뻐하잖아.”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저건 사람들이 좋아하는 퍼포먼스잖아? 전에 비슷한 걸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생각이 나네.”

“아.”

“하지만 난 저기서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어.”

“뭐가?”

“접시 위에 먹을 수 없는 것이 있잖아.”

마침 제프리 디버 역시 같은 이야기를 했다.

「방금 전 매직 쇼는 아주 훌륭했어, 과연 마술사라고 할 만해. 하지만 이 설탕과 솜사탕이 과연 이 망고 패션 후르츠 케이크에 필요한지는 모르겠는데.」

「바다를 표현하기 위해서….」

「먹을 수 없는 것이 접시 위에 올라가 있어야 할 필요가 있나?」

브라이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 사람은 항상 저런 식으로 날카롭다니까. 그러잖아도 준비하느라 고생한 페이스트리 쉐프들한테 해도 해도 너무해.”

“뭐, 다들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 전부의 시선을 한순간에 사로잡아버릴 정도로 마술적인 디저트였습니다. 디저트의 주제가 놀라움이라면 만점이 아니었을까요?」

「접시 위에서 완성되는 요리, 의 다른 버전 같았습니다.」

「맞아요, 아까의 하드 타코 쉘이나 소스와는 달랐죠. 내가 직접적으로 어떤 행동을 하고, 그 행동이 디저트를 완성시킨다.」

「계산된 동작을 통해 멋진 결과를 끌어냈습니다.」

「이런 페이스트리 쉐프들만 있다면 제과제빵계의 미래도 밝지 않겠습니까.」

방금 전 한 깜짝 쇼 덕분인지, 먹지 못하는 장식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마술사 캘러한은 꽤 좋은 평가를 받았다.

브라이언이 진혁을 힐긋 보았다.

“기분은 좀 어때?”

“아무렇지도 않은데.”

“라이벌들이 칭찬받으면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불안해지지 않아?”

진혁이 피식 웃었다.

“전혀?”

“…나는 말이지, 너한테 있어서 제일 본받을 점은 성실하고 노력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단 말이야?”

“그런데?”

“하지만 사실 정말로 닮아야 할 부분은 멘탈이 아닌가 싶다.”

“하하하. 뭘, 이 정도 가지고.”

“이 정도가 아니라니까. 지금 페이스트리 월드 챔피언십에 올라와 있다고. 그것도 본선이고, 지금 네 미래의 경력을 좌우할 판정이 내려질 텐데.”

브라이언이 불안한 듯 자신의 귓불을 만지작거렸다. 진혁은 고개를 저었다.

“틀렸어.”

“응?”

브라이언이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진혁이 손가락을 두 개 꼽으며 말했다.

“간식은 이미 만들었으니까, 지금 와서 뭘 한다고 해도 판정이 바뀔 일은 없지. 그리고 내 미래의 경력은 이런 수상 경력에 좌우되지 않아.”

“지금 <해와 달> 베이커리 체인의 규모를 보면 그거야 그렇겠지. 그래도 수상을 한 것과 하지 않은 건 큰 차이가 있잖아?”

진혁이 피식 웃었다.

“브라이언. 이 대회는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 맞춘 디저트를 만들 수 있는가, 없는가를 평가할 뿐이야.”

“그…그렇지? 그 다른 사람들이 제과제빵계의 기라성 같은 페이스트리 쉐프들이라는 점을 빼면…?”

“내 기준이 저 사람들보다 높아.”

“뭐?”

“그리고 아버지 기준이 내 기준보다 높고. 그러니까 지금 그런 걸 걱정할 필요는 없어. 일단은 카트에 디저트를 옮기는 거나 좀 도와줄래?”

“앗, 미안, 미안. 이쪽으로 옮기면 되지?”

두 사람이 담소를 나누는 사이에 마술사 캘러한의 심사가 끝났다.

「다음에는 한국 팀이 디저트를 제출하겠습니다. 예선 때부터 놀라운 완성도의 케이크를 내놓아, 우승 후보로도 꼽히기도 한 임진혁 쉐프입니다.」

진혁은 카트를 슬슬 밀면서 심사위원들 앞으로 다가갔다.

여유 있는 걸음걸이, 그리고 넓은 등.

임진혁의 뒷모습을 보며 브라이언이 중얼거렸다.

“너는 어떻게 지금 이 순간에도 긴장하지를 않냐. 정말 멘탈 하나만큼은 강철 같네.”

◈          ◈          ◈

임진혁이 제출한 당과는 다른 페이스트리 쉐프들이 제출한 것과 궤가 달랐다.

다른 페이스트리 쉐프들이 만든 디저트보다 놀라울 정도로 크기가 작았다.

다른 이들이 성인 주먹 크기의 두 개 정도 되는 양의 디저트를 만들었다면, 임진혁은 혼자서 검지만 한 크기로 세 개를 제작했다.

놀랍게도 그렇게 조그마한데도 불구하고 완성도는 뒤처지지 않았다.

「반짝반짝하는 게 아주 예쁜데요.」

무대용 촬영 조명 아래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비늘의 섬세함.

금방이라도 뛰어오를 것 같은 생동감.

하얀색과 연분홍빛, 그리고 짙은 검은색. 세 마리는 저마다 비늘 색이 달랐다.

서로 동떨어져 있는 물고기들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는 듯 도약할 준비를 한 모습이었다.

「물고기 세 마리라, 기독교적인 모습 같기도 하네요.」

「팔딱팔딱 금방이라도 살아서 펄쩍 뛰어오를 것 같군.」

심사위원들은 저마다 짧은 감상을 이야기했다. 안토니오 바트가 대표 격으로 질문했다.

「이 간식이 어떤 면에서 고향의 여름을 대표하고 있습니까?」

「여름 시냇가에서 흐름을 거슬러 오는 물고기입니다. 초콜릿과 치즈를 사용해, 계절 과일을 레이어드했습니다.」

「세 가지가 맛이 다른가요?」

「재료는 같지만, 배합 방식이 다릅니다. 이건 드셔 보시면 알 겁니다.」

「요즘은 페이스트리 쉐프들이 대범하군. 전혀 긴장한 것 같지 않네.」

아서 J. 클라크가 중얼거렸다.

주느비에브 같은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긴장해 있던 페이스트리 쉐프는 심사를 받고 실망하고 기가 죽어서 다리로 돌아간다.

하지만 지금 두 사람은 달랐다. 조금 전에 심사를 받았던 마술사 캘러한도 그렇고, 지금 심사 중인 임진혁도 전혀 긴장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먹으면 좋겠습니까?」

안토니오 바트가 물었다. 그는 임진혁의 모습을 보자마자 입안에 저절로 침이 고이는 것만 같았다.

‘이전에 만들었던 케이크나 간식도 전부 다 맛있었지.’

그는 과거에 맛보았던 환상적인 케이크들을 떠올리며 잠시 눈을 감았다. 알 수 없는 기대감이 바트를 휘감았다.

진혁이 간단하게 말했다.

「아무렇게나 드셔도 됩니다.」

「하지만 제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나?」

임진혁이 빙긋 웃었다.

「그 방법은 직접 알고 계실 텐데요.」

「뭘 말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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