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475화 (473/656)

제 475화

아버지가 중얼거렸다.

“우리 동네 어디에 저런 물고기가 있었나? 붕어나 가물치라면 모를까.”

“여보,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의 눈에 있는 거예요.”

“응?”

“당신 눈에는 그냥 칙칙한 붕어처럼 보여도 진혁이 눈에는 저렇게 반짝반짝 예쁘게 보였던 거지.”

“그런가?”

어머니는 두 손을 모아쥐고서 무대를 응시했다.

“이마에 땀도 안 나네. 우리 아들 체력 좋은 것 좀 봐. 상은 안 타도 좋으니까 건강했으면 좋겠어.”

“그거야 그렇지만 이왕 나간 김에 상도 타오면 좋지.”

아버지가 솔직한 마음을 토로했다.

밥 앤더슨이 한 비서에게 물었다.

「두 분이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 겁니까?」

「진혁 이사님을 응원하고 계십니다.」

「나도 응원한다고 이야기해 주세요.」

「네.」

「그리고 저 물고기 말인데 정말로 예쁩니다. 고향의 여름이라고 했으니 여름 물고기일 텐데. 한국에는 저런 물고기가 흔합니까?」

한 비서는 이 질문을 임운정과 장은효에게 옮겼다.

방금 전까지 이런 물고기를 본 적이 없다던 임운정이 당당하게 말했다.

「아무렴요, 아주 흔하지.」

장은효는 임운정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여봇.”

임운정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했다.

“진혁이 눈에 보이는 물고기니까 한국에 흔하게 있겠지.”

한국어 대화를 듣지 못한 밥 앤더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못 보던 모양이다 했습니다.」

한국어와 영어 대화를 전부 이해하고 있던 마리오가 큭큭 웃었다.

「큭큭큭.」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앨리슨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촬영을 하러 가면 그 물고기도 보러 갈 수 있을까? 이번에 진혁이가 대회에서 만든 물고기랑 같이 오버랩해서 보여 주면 좋은 영상이 될 것 같은데.」

「어? 음, 어. 그건 진혁이한테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

「괜찮다고 하시지 않을까? 후. 지원받으면서 세계 곳곳의 빵집을 촬영할 수 있다니 너무 신나. 전부 마리오 네 덕분이야. 임 쉐프님 가게도 기대되고 말이지.」

마리오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눈알을 굴렸다. 뒷자리에 앉아 있던 루이스가 참견했다.

「빵집 촬영을 하는데 굳이 주변 자연경관까지 찍을 필요가 있을까? 주제에서 벗어나잖나.」

“루이스 형, 형이 최고야.”

마리오가 조용히 웅얼거렸다. 앨리슨은 루이스의 말에 납득했다.

「그건 그렇네, 주제에 일관성이 있어야 하니까. 대회에 나오는 각자의 고향, 이런 건 완전히 다른 주제로 새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되겠다.」

「아무렴, 그렇지.」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진혁은 디저트를 완벽하게 완성했다. 한순간 화면에 반짝이는 물고기들이 비추어졌다가 곧 사라졌다.

다른 이들 역시 디저트를 완성한 것이다.

어머니는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야기했다.

「진혁이가 만든 디저트들은 너무 예뻐서 먹기가 아까울 때가 있어요. 저것도 너무 예쁘네.」

밥 앤더슨이 중얼거렸다.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그래도 먹지 않으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아까부터 곁에서 듣고 있던 리암 에이든이 끼어들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런 대회라면 전시용 하나, 그리고 감평용으로 따로 만듭니다. 때에 따라서 장식 스킬을 테스트하는 대회에서는 식용이 아닌 케이크 틀 겉에 재료만 식용으로 해서 만들기도 하지만 이런 세계 정상급 대회에서는 그렇지 않죠.」

밥 앤더슨이 눈썹을 추켜올렸다.

「기자 양반, 그러면 만들어도 먹지 않는 케이크가 실제로 있긴 있다는 이야기네?」

「예, 입상한 케이크와 디저트 작품은 당분간 케이크 보존관에서 전시됩니다. 페이스트리 쉐프 지망생들이나 현직 관계자들, 일반인 등등이 와서 볼 수 있게요.」

밥 앤더슨은 크게 놀랐다.

「아니, 그런데 임진혁 쉐프는 왜 나한테 꼭 그 케이크를 먹어야 한다고 우긴 거지? 설마 그냥 자존심 꺾기였나?!」

한 비서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이사님이 뭘 꼭 먹으라고 한 적이 있었습니까?」

펜로즈 삼각형.

입체로는 존재할 수 없는, 평면적인 구조의 도형.

하지만 진혁은 그것을 만들어 냈다.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

그 모습이 실제로 구현되었을 때, 과연 어떤 화가가 망설임 없이 그것을 먹을 수 있었을까.

진혁은 차마 먹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밥 앤더슨에게 그것을 먹으라고 강요했다.

해적선 위에서 양손을 묶인 채 바다에 직접 빠지는 것과 같은 심정으로, 밥 앤더슨은 그것을 먹어야 했다.

그리고 너무나 맛있었다.

왜 먹으라고 했는지 알 수밖에 없는 맛이었다.

선명하고 뚜렷하며 유일하지만, 너무나도 순간적인 예술이었다.

「후우. 나도 왜 그랬는지는 알아. 진혁 쉐프는 이미 한 분야의 거장이지. 그래서 나에게 깨달음을 주고 싶었던 거야. 보이는 것에만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것에 대해서 말일세.」

밥 앤더슨이 독백처럼 중얼거리는 말에 한 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 이사님은 젊지만, 식견이 넓으십니다.」

「맞아, 아주 훌륭해. 보면서 배운다네.」

그렇게 말하는 밥 앤더슨 역시 계속해서 스케치북에 연필을 긋고 있었다.

단순히 선 몇 개를 그었을 뿐이다. 그래도 누구나 진혁이라고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특징이 잘 드러나 있는 그림이었다.

리암 에이든이 조용히 말했다.

「저는 뉴욕 베이커리 매거진의 기자입니다만, 선생님께서 그리신 그림이 너무나도 훌륭합니다.」

줄리아가 옆에서 리암 에이든을 툭툭 건드렸다. 그녀는 남편이 이 유명한 화가를 몰라본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연스럽게 끼어들었다.

「밥 앤더슨 씨께서 인물화도 그리시는 줄은 몰랐어요.」

리암 에이든은 화들짝 놀랐다. 그는 지나가던 노인이 스케치하는 줄 알고, 신문에 그림을 실어 주겠다고 하려던 참이었다.

밥 앤더슨 정도 되는 화가에게 그런 제안을 했다가는 뺨을 맞아도 모자랄 판이다.

화가의 이름은 알았지만, 얼굴은 몰랐기 때문에 할 뻔한 실수다.

두 사람에게는 다행히도, 밥 앤더슨은 에이든 부부가 주고받는 눈빛 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임진혁 쉐프와는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어서 말이야, 하하.」

줄리아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아시아 한정으로 콜라보레이션도 하셨죠?」

「그렇지, 잘 알고 있네. 내 팬인가?」

「밥 앤더슨 씨의 작품은 현대 미술에 있어 큰 지평을 이루셨잖아요? 팬일 수밖에 없지요.」

「하하하! 고맙네, 고마워.」

리암 에이든이 무대를 보았다.

「아, 이제 심사를 시작하는군요.」

◈          ◈          ◈

「총천연색에서 올블랙이라니, 색깔을 대단히 과감하게 쓰는군.」

붉은색과 노란색, 초록색 등 다들 자기 나라 국기에 사용된 원색을 사용했다.

키즈용 디저트 시장에서는 오히려 알록달록한 원색을 사용하는 경우가 잦다.

아이들이 자신이 이름을 알고 있는 색깔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친근감을 갖기 때문이다.

반면에 의류나 자동차 등에서 자주 쓰이는 색상인 ‘검은색’은 디저트에서는 찾기 어렵다.

지금 이 쿠키 바도 말은 블랙이지만 실제 색깔은 검지 않았다.

「블랙이라니, 이 쿠키 바는 검은색이라기보다 진갈색에 가까운데.」

토마스 닐슨 크리스티얀센은 굳은 표정으로 자리에 서 있었다. 그는 덴마크의 밤에 대해서 설명했다.

「밤이 깊은 만큼 별이 밝습니다. 한여름 덴마크의 여름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확실히 시선을 끌기는 하는데.」

「독특한 색깔만큼 맛있을지는 두고 봐야죠.」

심사위원들은 저마다 쿠키 바에 손을 가져갔다.

칼로 자르거나 포크로 집을 필요가 없다.

이러한 종류의 간식은 바로 손으로 들어서 먹는 것이 제맛이다.

언뜻 달콤한 듯싶더니 바로 씁쓸한 맛이 확 끼쳐왔다.

별 모양의 과자가 바삭하고 부서지면서 옅게 바른 다크 초콜릿이 살짝 녹아내린다. 그리고 큼직하게 자른 아몬드가 조각조각 씹혔다.

「견과류를 넣었네요.」

「오트밀 쿠키와 견과류라. 기본적인 조합인데.」

아서 J. 클라크가 평했다. 안토니오 바트가 짧게 말했다.

「술을 넣었군.」

「무슨 술이지?」

아서가 궁금해하는데 제프리 디버가 핀잔을 주었다.

「블랙 진이잖아, 이것도 모르나.」

긴장한 토마스 닐슨은 그대로 서 있었다. 심사위원들이 서로를 구박하건 말건 눈치채지 못했다.

안토니오 바트는 가볍게 인사를 하였다.

「맛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정진하기를 부탁합니다. 그럼, 들어가시죠.」

「감사합니다.」

토마스 닐슨이 자리로 돌아갔다. 브라이언이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평이 좋은데.」

「글쎄.」

「다음에는 프랑스인가?」

진혁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크린 위에 프랑스 팀의 주느비에브가 만든 간식이 클로즈업되었다.

알록달록한 시리얼 껍질.

그리고 그 시리얼 껍질 속에 숨어 있는 크림 캐러멜, 사기그릇에 깔끔하게 담긴 후르츠 살사 소스.

방금 전의 전통적인 디저트인 쿠키 바와 비교하자면 간식이라기보다 식사 같은 느낌이 든다.

「특이한 걸 만들었어.」

「요즘 퓨전 디저트가 꽤 유행하니까.」

심사위원들이 한두 마디씩 평하는 동안 주느비에브는 자신이 만든 간식에 대해서 설명했다.

「여름마다 외할머니를 뵈러 오랑주에 갔습니다. 이 캐러멜 크림은 당시 할머니께서 직접 만드셨던 방법 그대로 만든 거예요. 하지만 멕시코식 타코 쉘과 살사 소스를 추가해서 다른 맛을 선보였습니다.」

단단한 시리얼 쉘에는 튀긴 쌀알처럼 보들보들한 것부터, 설탕 입힌 튀김 과자까지 다양한 과자들이 한가득 모여 있었다. 나초처럼 단단한 과자와 푹신한 간식거리가 한데 붙어있어 눈요기가 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식감을 제공할 것이 분명했다.

「이 크림을 쉘에 발라서 먹으면 될까요?」

「먼저 쉘을 쪼개서 후르츠 살사 소스에 찍어 드시면 됩니다.」

「호오.」

「정말로 타코 같다.」

「소스를 더 많이 묻히는 것도, 덜 묻히는 것도 취향에 맡겼다는 이야기지?」

주느비에브가 방긋 웃었다.

「접시 위에서 완성되는 간식입니다.」

아서 J. 클라크가 호쾌하게 말했다.

「각자 취향에 따라서 먹는다는 점이 좋은데. 난 소스를 찍어 먹는 것보다는 뿌려서 먹는 게 좋아.」

타코 쉘을 거꾸로 뒤집은 다음에, 아예 소스를 부어 버렸다. 열대 과일 조각들이 듬뿍 든 소스를 보고 그가 휘파람을 불었다.

「지나치게 새콤하지도 않고 너무 달지도 않아. 맛의 균형을 잘 잡았군.」

제프리 디버가 쏘아붙였다.

「조금 게으른 게 아닐까? 페이스트리 쉐프라면 완성된 맛을 내놓아야지.」

주느비에브가 눈을 크게 떴다.

「예?」

「이 소스를 어떻게 묻혀서 먹으면 제일 맛있다, 라는 방법이 있을 게 아닌가. 그걸 혼자만 알고 있을 셈인가? 저렇게 무식하게 먹는 걸 즐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보통은 쉐프가 추천하는 대로 먹는다고.」

「저라면 쉘을 한 조각 부숴서 한 스푼 정도의 후르츠 살사 소스를 얹어서 먹겠습니다.」

「그리고 이 레쥬올레는 후르츠 살사하고도, 타코하고도 어울리지 않는데?」

「두 개를 드시고 가장 마지막에 드시면 됩니다.」

제프리가 혀를 찼다. 그는 이미 레쥬올레를 전부 먹은 후였다. 가엾은 어린아이에게 건네는 동정의 말처럼 그가 물었다.

「이거 만들어보고 나서, 직접 먹어는 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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