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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의 베이커리-474화 (472/656)

제 474화

임진혁은 페이스트리 쉐프다. 연예인처럼 예능 방송에 나가는 것도 아니고, 그에 관련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한때 망해가는 빵집을 살려준다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는 했지만, 본업에 충실하겠다는 이유로 곧 하차했다.

그래서 진혁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았다. 팬클럽 회원들은 항상 임진혁의 최신 정보에 목말라 있었다. 최신이 아니라도 좋다. 이렇게 인사이더가 말하는 임진혁에 대한 이야기라면 더 좋다. 들어도 들어도 기쁘다.

“형이 내 태권도 발차기 자세도 잡아 줬어.”

도을이 한마디 하자, 팬클럽 회원 중에서도 특히 열성적인 재희가 신이 나서 물었다.

“임진혁 쉐프님께 운동을 배우실 때는 어떠셨어요?”

“아, 음. 어.”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자 운종은 입을 다물었다. 멸치나 너구리도 없이 혼자서 여기 나와 있노라니 뻘쭘하고 어색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에게 호의를 갖고 있는 상황도 이상했다.

반면에 재희는 운종이 굳어 버리자, 이 반응을 다른 방향으로 해석했다.

“아, 운종 씨는 주방 안에서 일하기 때문에 제 얼굴을 본 적이 없죠. 그래도 저 가게에 엄청 자주 가요. 초반부터 내내 갔었어요.”

재희는 김가영과 친했다. 덕분에 백진영에게도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래서 어쩐지 친근한 느낌이었다.

“그, 이번에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최종적으로 정식 취업이 되셨다고 들었어요. 축하드려요.”

재희가 밝게 미소지었다.

강운종은 누군가 축하를 해준다는 사실이 기꺼웠다. 멸치와 너구리 셋이 모여서 축하하긴 했지만, 누군가 이렇게 솔직하게 잘 됐다고 하는 것을 들으니 이상했다.

‘나만 여기에 있는 게 아니라, 멸치와 너구리도 같이 있었어야 했는데.’

솔직하게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어색해하며 운종이 중얼거렸다.

“에, 뭐.”

도을이가 씩 웃었다.

“자! 그래서 우리가 운종이 형을 왜 여기에 모셨는가, 부터 설명을 해 줄게. 우리는 제과제빵에 대해서 사실 잘 모르잖아요. 세계 대회 급에 출전하는 사람을 봐도 사실 뭐가 대단한지 잘 모르니까. 그걸 알 수 있는 사람을 모시고 온 거지요. 진혁이 형하고 같이 주방에 서 있었던 사람이니까 자격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강운종 쉐프님은 저기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이세요?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아시나요? 임진혁 쉐프님이 과일을 잔뜩 모으고 있는데 왜일까요?”

얌전히 보이던 재희가 잡아먹을 듯이 달려들자 강운종이 느릿느릿 말했다.

“쉐프라고 할 정돈 아님다. 그냥 보조…? 보조1?”

“네, 네. 보조라고 해도 저희보다는 훨씬 잘 알고 계시니까요.”

재희가 초롱초롱 눈을 빛냈다. 강운종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스크린을 보았다.

“아까까지는 과일을 다듬었고, 지금은 그걸로 레이어를 층층이 쌓고 있는 거로 보이는데. 뭘 만들지 전혀 짐작이 안 가는데, 복잡한 맛이 될 거라는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임진혁이 무엇을 하는지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그는 자신이 이해할 수 있었던 부분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래요? 어떻게 과일 손질하는 것만 보고 알 수가 있어요?”

“보통 블랙베리를 쓰면 그냥 블랙베리를 손질해서 쓰고, 그리고 겉에 올리고 하잖아요. 그런데 지금 블랙베리만이 아니라, 베리가 몇 종류야. 포도는 물론이고, 블랙커런트도 쓰고. 진혁 쉐프님은 맛에 굉장히 예민하니까. 그 맛이 나오지 않는다면 아예 쓰지를 않으심다. 그러니까 지금 저 맛이….”

강운종이 천천히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재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맛을 전부 다 살릴 자신이 있기 때문에, 과일을 저렇게 많은 종류를 쓰고 있는 거군요.”

“그렇죠, 그런 겁니다. 다 뭉개서 전체적인 과일의 맛을 복합적으로 쓰시는 분들도 있는데 임진혁 쉐프님은 그런 타입은 아닙니다.”

다들 조용히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진혁이 치즈 덩어리를 가져와서 자르기 시작하자 운종이 다시 덧붙였다.

“그리고 진혁 쉐프님은 치즈를 자주 쓰시고… 그러면서도 질리지 않게 잘 만드심다. 지금도 치즈 쓰려고 빼놓으신 것 같은데.”

“치즈요?”

재희가 묻는데 도을이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진혁이 형이 만든 치즈 케이크가 진짜 맛있긴 하지. 내가 처음 먹어본 형 케이크도 치즈 케이크였어.”

“그 얘기는 한 번 더 하면 귀에 아주 딱지가 앉겠다.”

“부인 되시는 분도 치즈 케이크를 좋아하신다고 들었어. 케이크를 선물해주면서 연애를 했다고 하던데.”

“흐흐.”

이야기가 다른 데로 새자, 장소와 다과를 제공해 준 정지숙이 부드럽게 끼어들었다.

“그럼 지금 블루베리 치즈케이크? 포도 치즈케이크? 이런 걸 만들고 있는 건가요?”

강운종은 눈치가 빨랐다. 여기 모여 있는 사람들 중에서 누가 실세인지 금방 파악했다. 그는 자신이 제일 권력자라고 믿고 있는 사람의 질문에 신중하게 답변했다.

“그런 줄 알았는데, 알 수가 없슴다. 아니, 무슨 모양으로 뭘 만드는지 짐작도 안 가요. 틀을 쓰는 것도 아니고.”

결국, 모르겠다는 말이다. 재희가 물었다.

“재료를 으깨는 것만 보여주니까, 뭘 만드는지 알 수 없는 건 당연한 거 아니에요?”

강운종이 양손으로 모양을 만들어 보이며 말했다.

“아니 그래도 기본적인 틀이라는 게 있잖슴까. 원형 케이크라면 둥근 틀에 반죽을 부을 거고, 미니 컵케이크라면 조그마한 틀에 맞춰서 만들겠지. 그런데 지금 그런 게 없어. 쿠키도 아니고 저렇게 레이어를 따로따로 구워내서 어떻게 할 셈인지 감이 전혀 안 잡힙니다.”

“그러게.”

“빵이 부풀어 오르면서 모양이 변하잖아요? 지금 저 겹으로 쌓일 레이어를 전부 따로 구워서 크림 발라서 붙일 건가?”

“아, 그럼 그렇게 하려는 거 아닐까요?”

“그런데 또 그렇게 하면 부풀어 오른 모양 자체가 균일하지가 않아요. 다듬을 때 바스러질 수도 있고, 저걸 잘라서 층층이 쌓기에는 문제가 생길 여지가 너무 많슴다. 최소한 저는 저렇게 못 합니다.”

도을이 키득키득 웃었다.

“아니 그래서 진혁이 형님이 뭘 만들지 우리 눈으로는 알 수가 없어서 운종이 형님을 불렀는데요. 결론은 형님도 알 수가 없다.”

“황새는 뱁새가 뭘 하는지 알지만, 뱁새는 황새가 뭘 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거군요.”

재희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강운종이 억울한 듯이 말했다.

“그래서 제가 지금 뱁새입니까?”

“황새는 아니잖아요.”

그들이 낄낄거리며 웃고 있는 동안에도 화면 속의 진혁은 손을 멈추지 않았다.

구워져 나온 과자를 얇게 잘라서, 반으로 썬다.

신기하게도 그 과자들은 모양이 망가지지 않았다. 아까 강운종이 말했던 것과 다르다. 도을이 그 사실을 지적했다.

“운종이 형, 저거 안 부서지는데요.”

“그러게.”

재희 역시 말똥말똥한 눈으로 강운종을 응시했다. 저쪽에서 다른 팬클럽 회원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원래 괜찮은가?”

“그러게. 별문제 없이 아주 쉽게 하고 있는데.”

그 소리는 강운종에게도 아주 잘 들렸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고서 스크린을 노려보았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혼잣말을 했다.

“제가 하면 부서질 텐데.”

“운종이 형은 초보니까 좀 서툴러도 괜찮지.”

운종은 그 말이 싫었다. 언뜻 들으면 위로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강운종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말이다. 그는 무어라 말하려 입을 벌렸다.

“제가 하지 않아도 저건 원래 망가질 수밖에 없….”

그때 한쪽 구석에서 서 있던 김가영이 큰 소리로 끼어들었다.

“저거는 부서지는 게 맞다니까? 저렇게 나올 수가 없어.”

막 음료를 내 오던 백진영이 조그맣게 속삭였다.

“가영 씨하고 운종이가 구울 때만 부서지는 게 아닐까?”

초보자가 만들 때와 진혁이가 만들 때는 다르지 않을까. 백진영의 말을 들은 김가영이 발끈했다.

“오빠,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아?”

아기를 안고 느긋하게 달래고 있던 유키코가 손을 들었다.

“아니에요, 제가 해도 부서질 수밖에 없어요. 애초에 저런 식으로 만들지 않아요. 왜 굳이 저렇게 만들었는지 궁금하기도 하네요.”

“그래요?”

강운종은 슬금슬금 카메라 뒤쪽으로 몸을 뺐다. 백진영이 킥킥 웃었다.

“운곰이 어디 가?”

“….”

어차피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내 실력이 안 좋다는 이야기밖에 안 나올 게 아닌가.

저쪽에 있는 능력 있는 쉐프님들이 나와서 해설해 주면 될 텐데.

강운종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유키코와 백진영을 바라보았다. 그는 뭐라고 말하고 싶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말주변이 좋지 못한 운종은 친구들을 그리워하며 그대로 침묵했다.

백진영이 웃었다.

“자, 자. 그럼 계속해 보자고. 지금 진혁이가 뭘 하고 있다고?”

◈          ◈          ◈

진혁은 구워낸 빵 조각을 일일이 다듬었다.

한국 어딘가에서, 강운종이 진혁의 그런 모습을 영상을 통해 보면서 좌절하고 있다는 것 따위는 알지 못했다.

아무리 무공의 고수라도 수천 킬로미터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 수는 없다.

「그걸 어떻게 깎을 생각을 했어? 오, 맙소사! 부서지지 않은 게 기적이야!」

단지 눈앞에서 브라이언이 연이어 감탄사를 하는 것만 들릴 뿐이었다.

「이 정도는 괜찮아.」

「보통은 절대로 괜찮지 않거든.」

한국 어딘가에서 김가영과 강운종이 이 모습을 보면서 안심했는지 어쩐지, 진혁과 브라이언을 알 수 없었다.

브라이언이 진혁에게 물었다.

「소망시에 이런 시내가 있었나? 예쁘다.」

「소망시는 아니고.」

그는 십만 대산 구석에 있던 강을 떠올리며 만들었다.

「흠, 할머니 댁 같은 건가? 테마를 잘 잡았어.」

지난번 예선에는 젤리로 투명한 호수를 표현했다. 하지만 진혁은 이번에는 물을 만들지 않았다.

쿠키처럼 얇게 구워낸 빵 사이사이에 포도와 블랙커런트로 만든 필링을 발랐다. 들어간 것은 포도만이 아니었다. 중간층은 크림치즈가 듬뿍 들어갔다.

진혁이 다듬기를 끝내고 나서 브라이언이 탄성을 질렀다.

「이게 물고기였어?!」

「그럼 뭔 줄 알았어?」

「아니, 물고기라고는 생각도 못 했지. 전등 같은 걸 만드는 줄 알았네.」

그것도 평범하게 앞으로 향하는 물고기가 아니었다.

상류를 향해 흐름을 거스르며 힘차게 올라가는 물고기다.

진혁이 뭘 하나 지켜보고 있던 브라이언이 눈을 깜빡거리며 말했다.

「아이싱 도울까?」

「괜찮아, 내가 할게.」

시럽을 바르고 그 다음에는 크림을 발랐다. 크림 위에는 따로 템퍼링 해 굳혀 말린 초콜릿을 올렸다.

「우와 이걸 이렇게 할 생각을 다 했네.」

얇게 펴 발라서 말리고 썰어 붙인 초콜릿이 그 위에 비늘처럼 얹혔다. 물결치는 것 같은 비늘은 물고기의 모양에 생생함을 더해 주었다.

물고기는 점점 더 예뻐져 갔다. 화이트 초콜릿 비늘을 올린 물고기, 그리고 로즈 초콜릿을 올린 물고기. 다크 초콜릿을 올린 물고기 모두 저마다 독특한 색감을 자랑했다.

초콜릿 치즈 쿠키 물고기는 겉보기에도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좋은 냄새가 났다.

브라이언은 그 과정 내내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전에 대회에서 만들었던 레이어드 케이크는 레이어가 몇 개였지? 일곱 개였나, 여덟 개였나. 이것도 만만치 않은데.」

「음.」

「그리고 모양이 너무 특이해.」

「뭐, 그렇지.」

동그랗지도 않고, 네모난 것도 아니다. 진혁이 만든 물고기들은 저마다 묘기를 하듯 위태위태하게 서 있었다. 엄지손가락 정도 되는 크기의 꼬리가 거대한 몸체를 지탱하는데 신기하게도 흔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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