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472화 (470/656)

제 472화

“끝나기 전에 도착하신다고 합니다.”

“어제 갈비 바게트가 딱 우리 며늘아기 취향이었는데. 하나 포장해서 갈 때 가져가라고 할까?”

장은효의 말에 임운정이 고개를 저었다.

“진혁이가 만들어 주고 싶어 하던데.”

“직접? 그 맛이 날까?”

“어쩌면 더 맛있지 않을까?”

“아니, 거기도 비법이 있을 텐데. 그리고 대회 끝나면 쉬어야지, 그걸 또 언제 만들고 있어.”

“며늘아기 취향에 맞게 치즈를 더 얹어서 맛을 더 진하게 할 생각인 것 같더라고.”

“자랑스러운 우리 아들. 누굴 닮아서 그렇게 미각이 예민한지 몰라. 날 닮았겠지?”

임운정이 흠흠 헛기침을 했다.

“당연히 나지.”

◈          ◈          ◈

본선 심사.

본선에서는 두 종류의 작품을 만들어 실력을 가린다.

당과류(Confection)와 케이크.

당과류에서 40% 그리고 케이크에서 60%의 점수를 책정한다.

최종적으로는 총점으로 심사한다.

사회자가 나서서 대회의 규칙을 간략하게 읊어 준 후, 본선의 주제를 발표했다.

「본선의 주제는 <고향의 여름>입니다.」

예상하고 있던 것과 완연히 다른 주제였다.

기자석에 있던 이들이 한마디씩 했다.

「여름이라. 단순한 여름이 아니라 고향?」

「당과류는 원래 자연과 관련된 주제가 계속 나오긴 했는데.」

페이스트리 쉐프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메뉴를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좋아, 여름 맛이 나는 새콤하고 상큼한 캔디를 만들어야지.」

「역시 여름에는 바다에 가야지.」

「노르웨이의 백야를….」

그들은 저마다 어떤 '여름'을 만들지 고민했다. 그중에서 유일하게 한 사람만이 다른 것을 생각했다.

“진혁아, 무슨 생각해?”

“….”

그는 잠시 백지를 내려다보았다.

소망시의 여름에 대한 기억은 너무나 흐릿해,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십만 대산의 여름은 지금도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다.

삐익삐익, 깊은 산 속에서 우짖는 새들과 무성하게 푸르른 잎새를 팔랑이는 나무. 울창하게 가지를 드리운 잎새 틈틈이 비쳐 들어오는 강렬한 햇빛.

그리고 졸졸 흐르는 시냇물.

물의 흐름을 거스르며 올라가는 은빛 물고기들.

초조하고 불안하던 시절, 물고기들이 애써서 물의 흐름을 헤치며 올라가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아졌다.

굴절되어 수면을 통과한 햇빛은 날렵한 물고기들의 등 비늘을 금빛으로 장식해 주었다.

반짝반짝 빛나며 치고 올라가던 물고기들은 보기에 아름다웠다.

추억 속 순간들을 생생하게 떠올리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는 결정했다.

'좋아, 그걸로 해야겠다.'

진혁은 스케치북에 도안을 그렸다.

당과류를 만들기 위해 주어진 시간은 2시간밖에 되지 않는다. 브라이언이 물었다.

"재료 뭐 갖다 줄까?

"음…, 아니야, 이건 내가 할게. 조금 있다가 설거지와 정리만 도와줘.”

진혁은 냉장고 문을 열고 생과일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빠르게 신선한 과일들을 골라냈다.

지금은 어디가 그의 진정한 고양인지 고민할 때가 아니었다.

“딸기 쓰게? 바로 손질할 수 있게 여기 스테인리스 보울과 접시 꺼내 두었어!”

브라이언이 소리쳤다.

“아, 고마워.”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토마스 닐슨은 눈을 깜빡거렸다. 그는 따뜻한 덴마크의 여름을 생각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늦은 시간까지 공장을 돌아보다가 퇴근하면 세 형제는 이미 잠들어 버린 시간이었다.

아버지는 개발실에서 돌아오면서 새로 만든 장난감을 가져오기도 했다. 종종 가져다주시는 그 장난감을 기대하면서 토마스는 잠들지 않으려고 애써 허벅지를 꼬집으며 버텼다.

‘장난감을 기다리는 여름밤 시작했지.’

그는 먼저 질 좋은 헤이즐넛과 피스타치오, 그리고 아몬드를 골라냈다. 호두는 껍질을 벗겼다.

「토미! 이것부터 하면 되지?」

보조가 견과류를 차근히 볶기 시작했다.

「응, 너트 소스를 캐러멜라이즈하는 건 내가 할 거야.」

「알겠어, 이 다음에는 뭘 해줄까?」

「다크 초콜릿을 녹여 줘.」

「오케이!」

초콜릿을 녹이면서 다른 일을 하다가는 태우기가 쉽다. 더군다나 적절하게 녹이지 못한 초콜릿은 그냥 맛이 없다.

보조에게 맡기고 그는 너트 소스를 졸였다. 토마스가 따로 꺼내 놓은 블랙 진을 보고서 보조가 물었다.

「뭘 만들려고?」

「다크 초콜릿으로 디핑한 쿠키 바.」

「흠. 너무 단순한 거 아니야?」

「한밤처럼 새까만 올블랙 쿠키 바를 만들 거야. 대신 포인트는 다른 거로 줄 거야.」

「가죽 구두도 아니고, 검은 음식은 별로일 거 같은데.」

「짙은 갈색에 한없이 가까운 검은색. 그리고 달 역할을 할 과자 진주와 별 역할을 할 금박을 올릴 거야.」

「아, 그건 귀엽겠다.」

캐라멜라이즈한 너트 소스와 아삭아삭 씹히는 견과류를 넣은 오트밀 쿠키.

그리고 겉면은 다크 초콜릿으로 코팅하고, 최종적으로 달과 별로 장식한다.

비밀 재료는 블랙 진이다.

향긋한 진의 향은 달콤하고 아삭한 쿠키에 새로운 차원의 맛을 더해 줄 것이다.

◈          ◈          ◈

「주느비에브!」

보조가 지시를 요청하자 주느비에브가 빠르게 말했다.

「파인애플을 잘라서 살사에 넣어 줘, 으깬 토마토는 부족하지 않지?」

「응, 크림치즈 필링도 다 만들었어.」

「후르츠 살사 소스는 다 되어가네. 그리고 달걀은?」

「레쥬올레 때문에 그렇지? 달걀에 설탕은 섞었어. 그리고 지금 우유를 이쪽에서 데우고 있어.」

「스팀 오븐 예열했어. 이따가 달걀과 우유를 합치는 건 내가 할게.」

「설탕 캐러멜라이즈는?」

「그것도 내가!」

보조가 눈을 깜빡거렸다.

「주느비에브, 적당히 맡기기도 해야지.」

「알았어, 알았어. 캐러멜라이즈는 도와줘.」

그녀는 단단한 시리얼 껍질을 씌운 레쥬올레(les œufs au lait), 즉 프랑스식 크림 캐러멜에, 후르츠 살사 소스를 곁들여서 내놓을 생각이었다.

한창 달걀을 휘젓던 보조가 물었다.

「왜 이게 여름의 디저트야?」

「응, 프랑스의 여름은 건조하니까. 비도 금방 그치고, 다시 바로 맑아지지. 그러니까 상큼하고 바삭바삭한 느낌을 내고 싶었어.」

여름마다 외할머니가 계신 시골로 피서를 갔다. 그녀는 어렸을 적의 기억을 떠올리며 희미한 미소를 띄웠다.

「이 레쥬올레는 우리 외할머니가 직접 닭이 낳은 달걀을 꺼내다가 만들어 주시던 간식이란 말이야, 내가 마무리는 직접 할게.」

「오케이.」

레쥬올레만 달랑 내놓을 수는 없다. 달콤하지만 자칫 느끼할 수 있다. 그녀는 과일을 섞어 넣은 시리얼 껍질 속에 숨어있는 부드러운 우유 캐러멜로 따뜻하고 안온한 여름 낮, 그리고 매콤한 후르츠 살사 소스로 서늘한 밤 기온을 표현하고자 했다.

「여름의 밤과 낮이라.」

「두 가지 차이가 나잖아.」

한편, 마술사 캘러한은 영국의 해안을 만들고 있었다.

그는 각진 하얀색 도자기 접시 위에 굵은 갈색 설탕과 흰설탕을 뿌렸다. 그리고 그 곁에 따로 만든 푸른색 시럽을 둥글게 부어냈다.

「캘러한! 이건 정말로 바다 같네.」

「이걸로 끝이 아니지.」

몽글몽글한 하얀 솜사탕이 지평선에 떠오른 구름처럼 모래 위를 장식했다.

그 가운데에는 패션후르츠 필링이 든 망고 케이크 섬을 올릴 예정이었다.

「안쪽에는 패션후르츠 필링이 들어가고, 겉은 망고라. 그럼 케이크 색깔을 밝고 따뜻한 색으로 하는 게 낫지 않나? 왜 회색으로 했어?」

흐린 회색과, 짙은 회색.

검은색과 흰색.

무채색 반죽이 익어서 부풀어 오른다고 해도 노랗게 되지는 않는다.

오븐에 들어가 구워지고 있는 케이크를 보면서 보조가 묻자, 캘러한이 대답했다.

「런던에는 일 년 내내 비가 많이 오거든.」

「음.」

「회색이고 칙칙해. 그래도 여름에는 해가 길고 비교적 따뜻하지. 무뚝뚝해 보이지만 속마음은 다정한 영국 신사 같은 이미지로 생각했지」

「그 마술 이미지는 버리고?」

「아니.」

캘러한이 씨익 웃었다.

「따로 숨겨놓은 게 있지. 이거는 너한테도 지금은 알려줄 수 없어. 다음에 보여 줄게.」

◈          ◈          ◈

페이스트리 쉐프들은 저마다 자신 있는 재료를 다듬고 자르고 끓였다.

초시계는 째깍째깍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임진혁은 패션후르츠 퓌레에 블랙커런트 퓌레를 섞었다.

노랗게 갈린 과일에 짙은 적포도주 빛 블랙커런트가 섞이자, 기묘한 색상이 되었다.

「진혁이 네가 블랙커런트를 쓰는 건 처음 보는데.」

「눈 건강에 좋다고 해서 몇 번 써 봤어.」

「그래?」

북유럽이 원산지인 블랙커런트는 프랑스어로는 카시스라고 불린다. 과일을 말려서 주스로 만들어 천연 해열제로 쓰기도 하며, 설탕과 함께 졸여 달콤하게 만든 시럽을 기침하는 이에게 주기도 하는 등 천연 약제로 쓰여 왔다.

비타민 C를 비롯한 다양한 아미노산이 풍부하며 특유의 안토니아신이 있어 눈에도 좋다고 한다.

브라이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블랙커런트가 한국산도 있어?」

「나도 몰랐는데 2012년경에서 재배하기 시작했다고 하더라.」

블루베리보다 추위에 강하고 한국 딸기보다 당도가 높은 이 과일은 강원도와 전북 등 다양한 곳에서 재배되고 있다고 한다.

진혁은 설탕을 넣어 블랙커런트를 졸였다. 브라이언이 그 광경을 지켜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하여튼 좋은 재료는 귀신같이 찾아오지. 여기에 한국산 블랙커런트가 있는 줄은 또 어떻게 알았어?」

「냉장고에 들어있는 재료들 모두 원산지가 어디인지 적혀 있었어. 한국산이라고 쓰여 있길래 들고 왔지.」

「한국에서 난 재료들을 쓴다는 데에도 의미가 있겠네. 일부러 그걸 노린 거 아니야?」

진혁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런 건 아니야. 지금 쓰려고 하는 다른 재료들만 봐도 미국산이 얼마나 많은데….」

그는 물끄러미 눈앞에 늘어놓은 재료들을 보았다. 그가 만들려고 했던 디저트는 ‘전부 한국산 재료만’ 쓴다면 아예 제작이 불가능했다.

「지금 이 블랙 사파이어, 검 드롭, 코튼 캔디나 문 드롭 같은 포도만 해도 전부 미국산 개량 품종인데.」

당도를 측정하는 수치는 브릭스.

한국산 딸기가 12~15브릭스 정도 된다.

블랙커런트가 18브릭스, 그리고 블랙 사파이어 포도가 20브릭스 정도의 당도를 갖고 있다.

따로 설탕을 넣지 않아도 과일을 갈아 넣은 그 자체만으로도 깊고 풍부한 단맛을 느낄 수 있다.

「음, 그거야 그렇지.」

「언뜻 보기에는 모양만 다르지 다 같은 포도처럼 보여도, 포도 열매마다 다 나는 맛이 다르단 말이야? 그래서 이거랑 블랙커런트, 치즈를 섞을 거야. 한 종류만이 아니라 다섯 종류의 과일을 바탕으로 말이지.」

「그래.」

진혁은 방금 브라이언이 내놓은 제안이 의외로 꽤 괜찮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밀가루도 캘리포니아산이고… 달걀도 뉴욕산인데. 과일은 전부 한국산으로 통일해 버릴까?」

브라이언이 킥킥 웃었다.

「아니야. 재료가 어디에서 왔는지가 뭐가 중요해, 맛있으면 됐지.」

「아예 한국에서 온 식재료만으로 만들려면 밀가루부터 다시 찾아봐야…, 밀가루를 빼면 돼.」

「아냐, 아냐. 지금 다 만들어 가잖아! 이제 와서 바꾸면 안 되지.」

브라이언은 황급히 진혁을 말렸다.

「시간도 모자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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