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70화
임진혁은 현대에서 놀라본 적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놀랐다. 그는 젓가락으로 볶음밥을 한 알 집어 올리며 물었다.
“어떻게요?”
“거, 네가 저번에 레시피 알려주고 난 다음에 아무리 해도 해도 안 되더라.”
“그렇죠.”
진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당연히 안 되죠.’
진기를 주입하면서 성질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일반인은 만들 수가 없다.
아버지가 흠흠, 헛기침을 했다. 내심 자랑스러운 눈치였다.
“그래서 이번에 미국에 올 때도 조금 가져왔지.”
어머니가 옆에서 보충 설명을 해 주었다.
“너 혼자만 만들게 할 수는 없다고 그러더라고. 네가 얼마나 책임감이 강한지 우리는 알고 있잖니?”
‘내가 혼자서 다 만들려고 할까 봐 걱정하셨구나.’
따로 생산해서 공급할 계획은 없었다. 필요하면 혼자 그때그때 만들어 쓸 생각이었을 뿐이다.
‘어차피 만들기 어렵다고 하면서, 레시피를 알려준 게 실수였나….’
하지만 아버지에게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한 가지 과정을 제외한 모든 것을 전부 알려드렸다.
“너 혼자 만들게 할 수는 없다며, 이이가 얼마나 난리 쳤는지 몰라.”
어머니가 아버지의 밥 위에 갈비를 조금 얹어 주며 말했다.
“이 갈비, 빵하고도 잘 어울리는데 밥이랑 같이 먹어도 맛있다.”
“그러게요. 갈비 자체가 그냥 맛있네. 뭐랑 먹어도 잘 어울려.”
“바게트는 쫀쫀하게 씹히는데 이 갈빗살은 아주 사르륵 녹아버리잖아. 여기 비결이 뭔지 궁금하네. 미국 사람들도 찾아와서 먹을만한 곳이야.”
어머니와 마리오는 자연스럽게 음식 칭찬을 시작했다.
진혁은 아버지를 보았다. 그는 아직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아버지, 제가 만든 것과 비슷해요?”
“그거는 아닌 것 같다. 아직 많이 부족해. 내가 나중에 호텔에 가서 보여줄게.”
“여보! 밥만 먹고 진혁이 바로 보내 줘야죠, 내일 바로 또 중요한 대회가 있는 앤데.”
‘아니, 그게 더 궁금한데….’
설마 아버지가 진기를 다루는 방법을 깨달았을까? 진혁은 차오르는 의문을 내리눌렀다.
“어차피 기사님이 운전하시는 건데요. 제가 두 분 숙소 들어가시는 거 보고 가면 되는데.”
“아니야, 아니야. 지금 너 맛있는 거 많이 먹고, 힘내라고 여기에 온 거지. 우리가 세 살짜리도 아니고, 일일이 챙길 필요 없다.”
“그래, 식사했으면 일어나서 쉬어. 혼자 생각 정리할 필요도 있을 거 아니냐.”
임 씨 가족들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마리오는 가방에 손을 집어넣었다.
“진혁아, 아까 빌렸던 보조배터리 돌려줄게.”
“아아.”
마리오가 버튼을 누르자, 꺼져 있던 스마트폰이 천천히 켜지기 시작했다. 낯익은 부팅 로고가 떠올랐다.
어머니가 흘깃 보더니 말했다.
“호환되는 배터리여서 다행이네.”
“엄마, 요새는 케이블만 바꾸면 전부 다 충전할 수 있어요.”
“어. 그러니? 내가 선물 받은 건 내 폰밖에 충전 안 되던데.”
“따로 케이블 끼우면 돼요.”
마리오는 스마트폰이 갑자기 웅웅웅 울리기 시작하자 당황했다.
“누가 이렇게 연락을 많이 한 거야?”
“누군데?”
“형.”
“루이스?”
“뭐야, 미쳤어? 갑자기 파리에서 이리로 온다고?!”
마리오는 느닷없이 소리를 빽 질렀다. 그 손에서 스마트폰이 툭 떨어져 김치찌개 위에 떨어질 뻔했다. 진혁은 빠르게 손을 뻗어 스마트폰을 잡았다.
“조심해라.”
“아니, 그런데 진짜. 이 형은 왜….”
“둘이 정말로 사이가 좋긴 좋구나. 형제간에 우애가 좋으면 좋지.”
어머니가 흐뭇해하며 말했다. 마리오는 양손으로 제 머리를 감싸 안았다.
“아니, 그런 게 아니에요. 분명히 미팅이 있다고 들었는데. 지금 하는 일을 다 내팽개치고 이리로 올 필요는 전혀 없고. 내 대회는 이미 끝났고….”
“그러니까 오는 거네.”
“예?”
“대회 끝나고, 네가 혼자 있는 게 걱정돼서 오는 거잖아.”
“….”
아버지가 물었다.
“몇 시 비행긴데? 공항에는 언제 도착한대?”
“보낸 시간 하고 비행기 시각 보면…, 세 시간 후에 JFK 공항에 도착하겠네요.”
진혁이 말했다.
“차를 보내줄까?”
“느닷없이 야근하는 운전기사는 무슨 죄야. 알아서 렌트하고 가면 돼.”
“오늘 종일 새벽부터 대회 참가하느라 긴장하고 지친 20대 남자와 장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와서 졸린 20대 남자 중 한 명이 운전한다라….”
“그럼 택시라도 타지 뭐.”
어머니가 제안했다.
“그러면 우리가 같이 데리러 갈까? 우리도 루이스는 알잖니.”
“음.”
“남도 아닌데 말이야. 혼자서 공항으로 가는 것보다 여럿이 있는 게 낫지 않겠니?”
“괜찮습니다, 진짜 괜찮아요.”
진혁은 피식피식 웃으며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마리오와 루이스 형제를 꽤 좋아하셨다. 형제가 사이좋은 것도 보기 좋고, 씩씩하고 열심히 해서 좋다고 했다.
진혁의 친구들 중, 리처드 베이커 등 다른 사람들과 달리 한국어가 유창해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점도 플러스 요인이었다.
“혼자서 가다가 사고라도 나면 안 되니까 그렇지.”
그리고 가끔 어머니는 마리오를 여섯 살짜리 어린애처럼 취급했다. 마리오도 그걸 싫어하지 않았다.
“제가 가서 왜 왔냐고 따져야 해서 좀….”
그리고 해야 할 말이 있으면 바로바로 솔직하게 말했다.
“아, 그런 이유면 우리가 같이 있으면 불편하겠네. 내가 눈치 없이 얘길 했네.”
“아니에요, 형도 두 분 보면 좋아할 거예요. 진혁이 대회 끝나고 같이 밥 먹어요, 이번엔 제가 쏠게요.”
“에이, 아들뻘 되는 애한테 우리가 얻어먹겠니? 호호호호.”
마리오는 갑자기 형이 바다를 건너 날아온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지만, 그럭저럭 적응한 것처럼 보였다.
어머니와 마리오가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는 동안 진혁은 아버지에게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아버지. 어떻게 하셨어요?”
“뭘 어떻게 하기는, 그냥 열심히 했지.”
“….”
그냥 열심히 해서 음식에 진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면, 세상에 삼류잡배 따위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무공을 배우자마자 바로 전신의 십사 경맥을 개통하고 환골탈태를 하며 십 갑자의 내공을 쌓아버렸겠지.
진혁은 눈알을 데룩데룩 굴렸다. 아버지는 당황해하며 물었다.
“너, 내가 못 만들 줄 알았냐?”
“아니, 그건….”
‘당연히 못 만들 줄 알았죠.’
짧게 스쳐 간 본심이지만 아버지는 눈치챈 것 같았다. 아버지는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네가 보기에는 아버지가 한물간 노인네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래 봬도 평생 빵을 만들어 왔어.”
“네.”
“조금 전에 네가 그 입으로 아버지가 자랑스럽다고 하지 않았냐.”
“…네.”
‘하지만 아버지, 그걸 만들 수 있을 리가 없는데요.’
“이거 이거, 아버지를 믿는다, 믿는다 하면서도 믿고 있지 않았구나.”
아버지는 손을 내밀어 진혁의 코에 가까이 대었다. 진혁은 아버지가 뭘 하나 싶어 피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아버지의 엄지손가락과 검지, 두 개의 손가락이 진혁의 콧방울을 잡아, 약하게 비틀었다.
“엑?!”
그는 순간적으로 호신강기를 해제했다.
개미가 코에 올라오는 것처럼 약한 힘에 콧방울의 모양이 바뀔 수 있도록, 진혁은 있는 힘껏 노력했다. 과장된 자세로 얼굴과 목, 그리고 어깨도 끌려가며 아버지의 장난에 호흡을 맞춰 주었다.
“이 아비 아직 안 죽었다.”
“다, 당연하죠.”
다행히 장난은 길지 않았다. 아버지는 바로 잡은 코를 놓아 주었다.
“자식, 아팠지?”
“전혀 안 아팠는데요.”
“아프지 않기는 무슨, 미간을 찌푸리고 아예 용을 쓰더구만.”
아파서가 아니라, 반탄력으로 아버지를 튕겨내어 버릴까 봐 걱정되어서였다.
진혁이 크흠, 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아버지가 어떻게 만드셨는지 궁금합니다. 이따가 보여주세요.”
“안 돼.”
“네?!”
“네 어머니도 말했지만 넌 대회잖아. 그러니까 오늘은 잊어버리고 일찍 자라.”
“…그럼 내일은 꼭 얘기해 주시고요. 아니다, 얘기 말고요. 아예 만드는 걸 눈앞에서 보여 주세요.”
“뭐 그게 어렵겠냐, 네가 가르쳐 준 건데. 오히려 난 네가 만드는 걸 보고 싶은데?”
“그럼 대회 끝나자마자 주방에서 같이 해요. 한 비서가 수배해놓은 페이스트리 키친 스튜디오가 있어서.”
마리오와 대화하고 있던 어머니가 그새 이야기를 마쳤는지 끼어들었다.
“대회 끝나면 쉬어야지! 어디 우리 귀한 아들을 무리시키려고 해요.”
“그러게, 여보 말이 맞아. 내가 괜히 아들을 귀찮게 했네.”
식사 자리가 끝날 때까지, 대화는 계속 반복되기만 했다. 진혁은 결국 아버지에게 대회가 끝나자마자 물엿 만들기를 같이 하자고 하는 데에 실패하고 말았다.
운전기사와 한 비서는 연락이라도 받았는지 식당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기사님, 우리 데려다주고 난 다음에 얘 좀 JFK 공항에 데려다주실 수 있어요? 너무 초과 근무일까?”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러면 제일 먼저 갈 곳은…?”
“우리 애 먼저 숙소로 데려다주세요. 내일이 아주 중요한 날이거든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니, 내 의견은…? 부모님 먼저 모셔다드렸으면 좋겠는데요.”
하지만 진혁은 부모님과의 2차전에서 또다시 패배하고 말았다.
“네가 몇 분이라도 더 푹 잤으면 좋겠다.”
“괜히 차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보다, 조용히 너만의 시간을 가져야지. 네가 여태까지 만들어왔던 빵과 내일 만들 빵에 대해서 생각을 해봐야 하지 않겠냐. 사실 이렇게 저녁을 먹는 것보다, 너 혼자 있게 두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르겠….”
아버지는 진혁에게 끊임없이 얼마나 혼자만의 시간이 중요한지 주지시키려 했다. 한참 듣고 있던 임진혁은 아버지의 말을 끊어 버렸다.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기사는 제일 먼저 진혁을 숙소에 데려다주었다.
“부모님이 들어가시는 걸 먼저 보고 싶은데.”
“안 돼, 안 돼. 중요한 날이니까.”
“알겠습니다, 조심히 돌아가세요.”
진혁은 묵묵히 따르며 숙소로 들어가는 척 발걸음을 옮겼다.
진혁은 부모님을 실은 차가 어디로 향하는지, 기감을 퍼트려 면밀히 살폈다.
다행히 도로 상황도 괜찮았고 별일 없는 듯싶었다.
그리고 그는 마리오와 한 비서를 태운 차가 공항 쪽을 향할 때쯤 차에 관한 관심을 끊어 버렸다.
‘두 사람이야 알아서 잘 하겠지.’
그는 숙소의 화려한 침대를 두고 카펫이 깔린 바닥에 가부좌를 틀어 앉았다.
그리고 자신만의 세계로 침잠(沈潛)했다.
‘내일 만들 케이크는….’
하지만 그동안에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던 의문은 호수 안에 가라앉은 바위처럼 깊숙하게 괴어, 흘러가지 않았다.
‘아버지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