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65화
「아, 지금은….」
앨리슨이 머뭇거렸다.
「얘 대회 보조하러 온다고 그만뒀어. 대신 유튜브 방송에 관심이 있다고 해서, 내가 그거 도와주기로 했어.」
마리오가 눈치 없이 해맑게 끼어들었다.
「마침 저희 프랜차이즈에서도 이미지를 재고하기 위해서 홍보 부문을 보강하려고 했는데 말입니다. 혹시 방송 샘플을 볼 수 있을까요?」
「예에?」
진혁은 지갑을 꺼내서, 그 안에 들어 있던 명함을 건넸다.
「이쪽으로 보내 주시면 됩니다.」
「어… 임 쉐프님, 명함을 잘못 주신 게 아닌가요? 성씨가 임 씨가 아니라 한 씨인데요.」
「맞습니다. 아주 유능한 분이에요, 저희 회사의 인력 관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브라이언이 뒤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보다 보면 개인 비서가 아닌 것 같단 말이지, 진짜 온갖 일을 다 하시는 것 같다.」
「그만큼 유능하니까.」
「뭐 인정받아서 좋을지도.」
「스마트폰은 언제부터 사용할 수 있대?」
「오후 팀들이 이제 경기를 시작하면 그때부터.」
네 사람이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다른 사람이 다가왔다.
콧수염을 기른 백인 남자였다.
「아까 그 케이크는 인상적이었네, 임진혁 쉐프라고 했던가?」
그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진혁은 그 손을 맞잡았다.
「예, 한국에서 온 임진혁입니다.」
「나는 잉글랜드에서 온 캘러한일세.」
캘러한은 40대 후반으로 보였다. 그는 활기차게 물었다.
「케이크를 엄청나게 높이 세웠던데, 커팅할 때 보니까 서포터도 없던데. 도대체 어떻게 한 건가?」
「그건 나도 궁금했습니다. 저는 블록 모양으로 쌓아서 케이크가 무너지지 않게 만들었는데 말입니다, 일반적인 케이크인데도 불구하고 넘어지지를 않던데요? 아 참, 저는 덴마크에서 온 토마스 닐슨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캘러한이 물었다.
「토마스 쉐프는 케이크를 레고 모양으로 만들었던데? 그거 저작권 걸리지 않아?」
「다행히 운 좋게 허가를 받았습니다.」
「흠, 그런 허가까지 받을 정도로 레고를 좋아한단 말이야? 대단하네.」
「뭐, 이 정도 국제대회에서 레고를 모티브로 만든 케이크로 수상한다면 그것도 회사에 보탬이 되니까요.」
「오히려 그런 식으로 홍보가 되면, 심사에서 마이너스가 될걸. 특정 브랜드를 마케팅하려고 대회에 나온 셈이 되니까 안 돼.」
「그거야 그렇지.」
「이번에는 익숙한 사물을 크게 확대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 국기를 표현하기도 했으니까 기존 레고 블록과는 달라서 나쁘진 않을지도 몰라. 하지만 두 번은 못 할걸. 그리고 이건 대회에 갖고 나오기에는 아깝다고, 그냥 콜라보해서 팔면 애들 엄마 아빠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사갈 텐데. 왜, 크리스마스 한정 레고 케이크. 당신도 조립할 수 있다! 이렇게. 팔지도 못하는 대회용으로 소비하기엔 아까운 아이디어라니까.」
진혁은 새로운 인재를 보면서 흐뭇해했다.
‘이 사람은 기획을 좀 해본 사람이구나.’
이 정도 연령이라면 분명히 자기 분야에서 어느 정도 성공했을 것이다. 당장 스카웃하기에는 어려울 수도 있다. 실비안 웨인스톡은 분명 유능한 인재지만 이미 자신만의 일을 갖고 있기 때문에 데려올 수는 없다.
그러니 조금 젊고 덜 다듬어진 애들을 데려다가 기르는 편이 좀 더 낫다.
임진혁은 캘러한을 머릿속의 ‘2번째 스카우트 목록’에 두기로 했다. 혹여 사업이 실패하거나, 하고 있는 일을 접는다면 상황 봐서 영입 제안을 할 수도 있다.
‘뭐, 꼭 데려와야 하는 것도 아니니.’
문득 옛 생각이 나서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과거 광안마라면 이런 식으로 진혁이 초빙하고 싶어 하는 고수가 있을 때 적극적으로 영입했다.
작은 문파의 가주인 장삼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광안마는 주변에 압력을 가해 문파가 망하도록 공작한다. 그리고 복수를 도와준다는 핑계로 일월신교로 끌어들였다.
일월신교와 맞싸우는 세력이 원수임을 알 수 있도록 가짜 단서를 만들어 적당히 던져주고, 복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는다.
마지막까지 진실을 숨긴다.
‘<해와 달>의 식구들은 다들 평범하게 일하니까 참 좋아.’
진혁이 잠시 회상을 하는 동안 다른 이들은 저마다 명함을 교환하며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었다.
「마리오 쉐프는 요즘 영어권 유튜브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던데. 특히 젊은 세대가 좋아하더라.」
「아무래도 제가 젊으니까요, 하하하하하.」
캘러한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나도 ‘마술 베이커리’의 홍보를 위해서 유튜브를 시작해 봤는데 잘 안 되더라고.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그건 진혁이한테 물어보셔야 하는데.」
「임진혁 쉐프도 유튜브를 하고 있나? 몰랐는데.」
「아니, 제가 지금 진혁이 회사 직원이거든요. 그래서 마음대로 투잡을 할 수 없어요. 사장님이 오케이해야 됩니다.」
마리오는 실실 웃으면서도 딱 잘라 거절했다.
「그래도 마리오 쉐프가 하고 싶다고 하면 당연히 진혁 쉐프도….」
「지금 마리오 쉐프가 대회 출전 때문에 무급 휴직 상태로 바로 일에 투입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좀 바쁠 것 같은데, 전략경영팀과 마리오 쉐프가 함께 상의해 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전략경영팀?」
「루이스 쉐프.」
「아, 형이랑 스케줄 다시 맞춰 봐야 하지. 그러게요.」
「좋아, 나는 언제든지 열려 있다네. 대회 결과랑 상관없이 꼭 연락 달라고!」
「물론입니다.」
토마스 닐슨이 다급하게 물었다.
「잠깐만, 그것보다 아까 그 케이크를 세운 그 비결이….」
브라이언이 제지했다.
「비결은 다른 사람들이 모르니까 비결인 거지요. 진혁 쉐프가 공개하고 싶으면 할 겁니다. 지난 쿠프 드 몽드 파티쉐리에서도 이미 모델링 초콜릿 레시피를 공개한 바 있습니다. 제과제빵계에 충분히 기여를 하고 있는데,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다고 바로 또 알려 달라고 하는 건 너무 염치가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니, 브라이언 쉐프. 지금 내가 브라이언 쉐프에게 물어본 것도 아니고 진혁 쉐프에게 물어본 건데 왜 중간에서 그렇게….」
토마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진혁이 나서서 제지했다.
「브라이언, 괜찮아. 토마스 쉐프, 안타깝게도 이 기술은 공개할 예정이 없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주문받아 제작하는 케이크에서만 한정적으로 사용할 예정이거든요.」
「그 기술이 알려지면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크게 기뻐할 텐데 말이야.」
「제가 원하는 단 한 사람만 기뻐해도 됩니다.」
캘러한이 팔짱을 끼었다.
「기술은 계속 발전하기 마련이야. 한 사람만이 독점하려고 해도, 결국은 밝혀지게 되어 있지. 진혁 쉐프가 아무리 비밀로 하려고 한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이 언젠가 알아낼 걸세.」
공격적인 말투는 아니었다. 그는 당연한 진리를 말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말했다.
「그렇습니까?」
「그래. 카드 마술이나 스테이지 마술도, 한 마술사가 관객들에게 그 비밀을 밝히면서 신비가 모두 풀렸지. 한 명의 마술사가 아무리 연습해서 기술을 익힌다 해도 이미 트릭이 밝혀진 마술은 시시하게 마련이야. 자네의 기술이 지금은 신비로운 마술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아주 쉬운 기술일지도 모르지. 다른 사람들이 원리를 알면 바로 간파할 수 있는, 그런 기술 말이야.」
‘아니, 절대로 간파하지 못할 텐데….’
임진혁이 무시당하는 모습을 절대 보지 못하는 두 사람이 입을 열었다. 먼저 마리오가 따졌다.
「그렇게 쉽다면 캘러한 쉐프도 보자마자 간파할 수 있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마술사 출신에 동체 시력도 좋다면서요.」
마리오가 캘러한 쉐프에 대해서 따지고 드는 동안 브라이언은 다른 방향에서 접근했다.
「유감스럽지만 실비안 웨인스톡 쉐프도 인정한 기술입니다. 도저히 모방할 수 없다고 하시면서, 종종 초빙하겠다고 선언하셨죠.」
「뭐, 그 정도라고?」
옆에서 대화를 건너 듣고 있던 프랑스의 제과제빵사 주느비에브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녀는 체면치레도 하지 않고 대화에 끼었다.
「보면서 신기하다는 생각은 했어! 하지만 내가 아직 부족하니까 눈치를 못 챈 건가 하는 생각을 했지. 건물 골조에 특별한 서포터를 넣지 않았으니까, 어떤 재료를 쓰지 않았나 싶었는데. 아시아에서만 나는 특별한 재료를 사용한 거야?」
「주느비에브 쉐프, 자기소개도 하지 않고 대화에 끼어드는군요.」
「아하하하, 미안해, 미안해.」
「뭐, 비슷합니다. 그런데 그 재료의 양이 한정되어 있어서 공개할 수가 없습니다. 저 혼자 쓸 양만 해도 모자라거든요.」
「그런 거라면야….」
토마스 닐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겉으로 봐서는 차이를 구분할 수가 없겠어.」
「동양의 약초에는 신비한 힘이 있다고들 하니까.」
「오리엔탈 허브들을 좀 더 찾아봐야겠군.」
토마스와 캘러한, 주느비에브는 저마다 자신들이 짐작한 바를 떠들기 시작했다.
브라이언이 심각한 표정으로 속삭였다.
「실수한 거야, 진혁.」
「응?」
「저들은 이제 네 케이크를 분석해서 그 재료를 찾아내려고 할지도 몰라.」
「분석할 수도 없을걸.」
마리오도 거들었다.
「영양학계에서 쓰는 분석기는 음식 내에 들어있는 모든 성분을 분석할 수 있어. 어떤 약초를 쓰는지도 금방 알아낼지도 모른다고.」
「아니, 절대로 알아낼 수 없을 텐데….」
시판하는 물엿에 진기를 불어넣어서 성질을 변화시켰을 뿐이니, 다른 이들로서는 절대로 만들 수가 없다.
‘현대 기기로 진기를 분석해도, 특별히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것 같은데.’
진기를 주입한다고 해서 물엿의 구성 성분이 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진혁은 별문제 없을 것이라 여겼다.
설령 그들이 그것이 ‘물엿’이라는 것을 추적하여 밝힌다고 해도 관계없다.
일반 물엿은 절대로 그런 효과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혁아, 그 놀라운 기술은 우리들한텐 언제 공개할 거야?」
마리오가 생일 파티를 기대하는 소년처럼 들떠서 물었다.
임진혁이 눈을 크게 떴다.
「응?」
「<해와 달>에 입사하면서 사내에 있는 동안에는 네 라이센스 하에서 레시피를 공유해 준다고 했잖아. 이번에 톨 케이크는 망했지만, 나도 흔들리지 않는 케이크 만들고 싶어. 도와줄 거지?」
진혁이 집에서 물엿에 진기를 조금 넣어 두면 마리오가 케이크를 만들 만큼 정도는 마련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명에게 준다면 다른 사람들도 요구할 것이다.
진혁은 이미 브라이언이 요청한 것을 거절한 바 있다.
브라이언이 눈을 가늘게 뜨고 임진혁을 응시했다.
마리오에게 주는지 안 주는지 평가하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미안하지만 그건 나 혼자만 쓰게 될 것 같아.」
「나 진짜로 케이크 딱 하나만 만들면 되는데.」
「….」
「방송용으로 만들어서, 만드는 과정 내내 촬영하고, 임진혁이 만든 기술이라고 밝히면 좋을 거 같아서 그래. 진짜 좋은 방송 소재라고.」
브라이언이 기가 막혀 하며 물었다.
「지금 진혁이가 기술을 숨기고 싶다고 하는데, 그걸 온 세상에 방송하겠다고?」
「앗, 그건 안 되나.」
「당연히 안 되지!」
진혁이 피식 웃었다.
「방송용으로는 안 돼.」
「앗싸!」
「개인용으로도 안 돼.」
「으악,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