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63화
칭찬이 아니라 욕설이다.
「제길, 이게 왜 맛있냐고?」
그는 고장 난 라디오처럼 갑자기 말을 줄줄 쏟아내기 시작했다.
「콘크리트에 적당히 타르 칠해서 붙인 건 줄 알았는데, 딱 느끼하지 않을 만큼 생각해서 맛을 쌓아 올렸군. 어떻게 이렇게 할 수가 있지. 케이크와 젤리가 어울리지 않는 건 상식이잖나! 그렇다고 그걸 해결하려고 젤리만으로 케이크를 만들어 놓으면 질려. 젤리는 식감이 비슷비슷하니까, 한입 먹으면 끝이야. 특히 어린아이들에게 계속해서 주다 보면 아이가 질린다고, 질려. 우리 허니만 해도….」
「허니? 자네 딸 말인가?」
「그러고 보니 제프리의 딸이 젤리에 환장한다고 들었는데.」
제과제빵계는 좁다.
그러니 어느 정도 수준 이상에 이른 이들은 서로의 동향을 파악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아서와 제프리는 꽤 자주 교류하는 편이다.
안토니오가 피식 웃었다.
그는 아서처럼 제프리의 가족관계까지 꿰고 있을 정도로 개인적으로 친하게 지내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쿠프 드 몽드 파티쉐리의 사회자를 역임하기도 했던 만큼, 제과제빵계에서 발이 넓었다. 그래서 제프리가 작년에 무엇을 했는지는 알고 있었다.
「제프 자네, 한동안 젤리 제이크 개발한다고 난리였지? 그건 딸 때문이었나 보구만.」
모든 심사위원들은 각자 자신만의 전문 분야가 있다.
제프리 디버의 전문 분야는 젤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5성급 호텔 베이커리의 우아하고 작은 디저트, 최고의 재료로 만든 제과류와 당과류 전문이다.
케이크도 종종 만들기는 하지만, 홀케이크보다는 미니 케이크들을 주로 만들었다.
뉴욕 힐튼 호텔의 베이커리 키친 헤드 출신으로, 제과제빵 대학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랬던 그가 갑자기 작년에 뉴욕 제과제빵 스쿨의 젤리 수업 과정에 참관하여 교사들을 당혹게 했다.
「과일 젤리 만드는 방법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며?」
「안토니오 자네는 왜 이렇게 많이 알고 있나?」
「갑자기 뉴욕에서 젤리와 젤리 케이크 붐이 부는가 해서 한동안 들썩였잖나. 그냥 딸 때문이었구만, 재미없게.」
「젤리는 훌륭한 간식이야. 비타민이 풍부한 과일로 만들면 더 그렇지. 아직 씹는 힘이 약한 어린아이들이 먹기에도 좋아.」
「자네 딸은 이혼하면서 부인이 데려가지 않았어?」
아서가 안토니오의 옆구리를 찔렀다.
「안토니오.」
하지만 안토니오는 당당하게 사실을 이야기했다.
「양육권 재판에서 졌잖아.」
제프리가 불퉁스럽게 말했다.
「한 달에 한 번은 볼 수 있다고.」
안토니오 바트가 말한 대로 제프리 디버는 작년에 이혼했다. 과도한 업무로 인해 가정을 돌보지 못했기 때문에 양육권도 부인에게 갔다. 대신 그는 한 달에 한 번 딸을 만날 때마다 딸이 좋아하는 간식을 만들어 갔다.
간식을 갖다 준다고 해서 딸이 자신을 다시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믿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그건 그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었다.
‘허니는 젤리를 사랑해.’
제프리가 만들어 온 간식 중에서도 허니는 특히 젤리를 즐겼다.
과일즙과 젤라틴을 굳혀 만든 단순한 간식이다.
만드는 방법이 지나치게 간단해 제과제빵에 속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디저트를 만드는 방법 측에 분류된다. 하지만 그의 어린 딸은 젤리를 제일 즐겼다. 그래서 제프리는 딸에게 최고의 젤리를 맛보여주고 싶었다.
시판하는 젤리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을지 모르니, 가능하면 직접 만든다. 하지만 이런저런 과일로 젤리를 만드는 데에도 한계가 왔다. 딸을 면회할 때마다 새로운 젤리를 만들어갔지만, 슬슬 레퍼토리가 다해가고 있었다.
캘리포니아산 오렌지를 비롯해서 필리핀산 바나나, 그리고 신선한 납작 복숭아, 포도. 블루베리와 사과.
허니는 그중에서도 새콤달콤한 오렌지와 달달한 복숭아 젤리를 제일 좋아했다.
‘아버지가 세계 최고의 쉐프인데 말이지.’
「제프에게 그렇게 다정한 면이 있는 줄 몰랐는데. 맨날 승부욕에 미쳐 살더니….」
「하하.」
제프리 디버는 그저 웃었다.
그는 딸이 먹을만한 맛있는 젤리를 만드는 게 최종 목표가 아니었다.
이혼한 아내가 직접 만들어 주는 젤리보다 더 맛있게 만드는 게 목표였다. 이혼한 아버지가 한 달에 한 번 갖다 주는 젤리보다, 집에서 어머니가 만들어 준 젤리를 더 좋아했다.
요리라고는 냉동 피자를 사다가 데우는 것밖에 하지 못하는 아내다.
그녀가 만든 음식이 더 좋은 평가를 받는다니 자존심 상한다.
하지만 워낙 젤리를 만드는 방법 자체가 단순하다 보니, 모양에서 승부를 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젤리 곰부터 시작해서 토끼니 하트니 하는 다양한 모양을 만들어 가고 있던 참이었다. 하지만 그 모양도 슬슬 한계가 오고, 제프리는 이제 분자요리라도 배워야 하나 고민하던 참이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젤리를 케이크 무스처럼 활용한다면-그리고 어린아이에게도 추천할 만큼 ‘덜 달콤하게’ 만든다면 정말이지 최고다. 아내보다 훨씬 더 보기도 좋고 맛있는 케이크를 만들어낼 수 있다.
제프리 디버가 혀로 아랫입술을 핥았다. 그는 번득이는 눈빛으로 임진혁을 바라보았다.
「…이 방법을, 꼭 알고 싶군.」
안토니오가 버럭 외쳤다.
「이봐, 제프! 자네는 여기에 케이크 레시피를 사러 온 손님이 아니야! 케이크를 맛보고 평가하러 온 심사위원이라고.」
「뭐, 장난해? 이 정도는 그냥 올라가야지. 내가 심사할 게 뭐 있어, 당장 까다로운 두 사람이 내 얼굴만 쳐다보고 있잖나. 이의 있는 사람 있어?」
아서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한국 팀 출신인데.」
「그런데 뭐?」
「두 팀 중에 하나만 올라갈 수 있잖아. 아까 한국 팀 청년 케이크, 아슬아슬하지만 맛이 좋았다고 호평했잖나.」
「뭐, 상대적인 거지. 그 녀석이 운이 나빴던 거야.」
「하지만 다른 나라 케이크에 비하면 그것도 꽤 괜찮았는데.」
아서 J. 클라크가 말했다.
「나는 일부러 위태위태한 모습을 보여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고. 보는 사람이 시선을 뗄 수 없잖나?」
「그냥 실패가 아니고?」
「우리 앞에서 무너져내렸으면 실패였겠지. 하지만 진정한 고향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이방인의 마음을, 흔들리는 케이크로 표현하려고 했다고 하면 나쁘지 않아. 무너뜨리거나 탄탄히 세우는 건 쉽지만,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으면서 쓰러지지 않는 건 어렵지.」
안토니오가 헛기침하며 다른 심사위원들을 둘러보았다.
「자, 다른 쉐프들을 심사할 때라고.」
그다음에는 프랑스에서 온 주느비에브의 차례였다.
프랑스 출신의 주느비에브는 이번에는 건축물을 만들지 않았다. 그녀는 고딕 교회와 노트르담 성당 등을 만들어 왔으며, 건축가 출신이기 때문에 건물만 만든다는 평을 받았다. 그래서 그녀는 이번에 프랑스의 국기가 담은 뜻을 인물로 재현하려 했다.
흰 아이싱으로 만든 기본 케이크는 우아하고 아름다워 결혼 케이크로 써도 될 법했다.
그 케이크 위에는 각각 적색기와 백색기가 있었다.
‘사람을 만들 시간이 없었어.’
예상보다 시간이 너무 모자랐다.
그녀는 인물을 완전히 포기하고, 단순한 모양의 케이크 위에 펄럭이는 깃발을 올렸다.
엿가락처럼 길게 뽑아낸 사탕을 얇게 펴 깃발 모양으로 만들었다.
조명을 받아 화려하게 번쩍이는 깃발은 보석처럼 예뻤다.
「겉만이 아니라 내부 역시 색깔을 맞추었군요.」
「프랑스의 국기 색깔은 잘 담았는데, 그 의미까지 담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 그건 말입니다.」
주느비에브는 집을 맡겼던 손님에게 설명하는 것처럼 능숙하게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우유는 인고의 세월을 거쳐 오랜 시간이 지나 치즈가 되지요. 그리고 그 치즈를 부드럽게 연화시키고 나서야 크림치즈가 됩니다. 그런 치즈는 사랑, 그리고-.」
주느비에브의 설명은 금방 끝났다.
「잘 알겠습니다.」
심사위원 모두는 그녀의 케이크를 맛보았다. 달콤한 우유 베이스의 버터크림 안에 라즈베리와 블루베리, 그리고 크림치즈가 섞여 있다.
담백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케이크는 분명 맛있었다.
하지만 임진혁이 온갖 대자연을 구현해 놓은 것에 비해, 단순히 케이크 안쪽에 이것저것 색깔을 섞어 놓은 흰 케이크-깃발이 꽂혀있을 뿐-는 지나치게 단순해 보였다.
「조금 더 실력을 발휘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게. 타 대회에서 냈던 포트폴리오에서는 분명히 멋진 고딕 교회를 만들었던 것 같은데.」
「맛도 심심한 것 같군.」
방금 전에 맛본 젤리와 크림치즈, 그리고 카카오의 조화가 너무나 강렬했다.
분명히 물로 입안을 씻어냈는데도 불구하고, 잔향이 아직도 입가에 감도는 것 같다.
겨울 아지랑이처럼 보일 듯 말 듯 한 단맛과 그 뒤에 다가오는 쌉쌀함, 그리고 탱글탱글하게 통통 튀는 상큼한 과일 맛.
오케스트라처럼 조화를 이룬 그 맛이 계속 생각나니, 다른 케이크의 맛을 평가하며 객관성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주느비에브 외에도 다른 쟁쟁한 후보들이 케이크를 제출했다.
우승 후보였던 마술사 캘러한은 포커 카드처럼 보이는 얇은 쿠키를 착착 쌓아 올려 마치 포커 카드의 탑 같은 케이크를 만들었다.
「쿠키가 아주 바삭해, 바른 초콜릿도 대단하군.」
「하지만 초콜릿 쿠키라니 너무 안일한 거 아닌가? 케이크 위에 초콜릿 쿠키를 얹었을 뿐이잖아.」
제프리 디버는 신랄한 평가를 아끼지 않았다. 캘러한이 미소를 지었다.
「카드 탑 안쪽에는 비둘기가 숨겨져 있습니다.」
「영국의 국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이는데.」
「안쪽을 보시죠.」
쿠키 탑이 무너지고 나서, 설탕 장식된 하얀 비둘기 모형이 드러났다.
비둘기 모형을 치우고 아래의 베이스 케이크를 자르자, 그 안에 선명한 그레이트 브리튼의 국기가 드러났다.
「흐음.」
「어디 맛 좀 보자고.」
안토니오 바트가 눈을 가늘게 떴다. 제프리 디버가 투덜거렸다.
「분명히 ‘테마는 국기’인데 말이지. ‘마술’을 테마로 한 것 같아서 말이야.」
「맛있지만 기분이 나빠.」
「그래, 영국 국기가 들어 있다는 점은 알겠다고. 맛도 나쁘지 않아. 하지만 주제에 맞는 답을 내놓아야 하는 게 아닐까?」
캘러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국의 마술 역사는 국기의 역사보다 깁니다. 5000년 전의 앵글로색슨 민족의 믿음부터 시작하지요. 당장 멀린과 해리 포터만 보더라도, 사랑하는 나의 조국 영국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마술(Magic)을 경외하고 있는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아니, 근대적인 마술과 옛사람들의 신화에 대한 믿음은 다르지.」
아서 J. 클라크가 끼어들었다. 캘러한은 신나서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했다.
「하하! 그뿐만이 아니죠. 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나라가 제국 시대를 열었다는 것 자체가 마술 같지 않습니까? 그래서 마술이라는 테마를 활용했죠.」
「갖다 붙이기는 잘하는군!」
「하하하.」
모카 캘러한 쉐프가 자리로 돌아간 다음에 아서 J. 클라크가 웃었다.
「캘러한 쉐프는 뭘 만들어도 마술하고 관련해서 만들잖아. 볼 때마다 생각하는 건데, 캐릭터가 확고해. 페이스트리 쉐프보다 방송인에 더 어울리지.」
「하여튼 영국인 같지 않아.」
「뭐, 자네 지금 영국인 무시하나?」
캘러한의 케이크는 진혁의 케이크나 주느비에브의 케이크와 완전히 달랐다. 바삭바삭한 쿠키를 베이스로, 씹히는 맛을 중점으로 두었다.
「이것도 아주 좋군.」
「그래도 아까 그 젤리만큼은 못하지?」
「그래, 경험해본 적이 없는 맛이었으니 말이야.」
그다음으로 케이크를 제출한 이는 덴마크의 토마스였다.
토마스 닐슨 크리스티얀센은 레고 블록 모양의 케이크 위에 초콜릿 에클레어를 붙였다.
선명한 붉은색 원색과 흰색만을 사용해 쌓아 올린 블록 케이크.
만듦새가 좋은 이 케이크는 모두가 익히 봐온 장난감 모양이라 익숙하고 친숙한 느낌을 주었다.
「초콜릿 에클레어는 붙이지 않았어도 될 것 같은데.」
「높이 때문에 올렸나?」
심사위원은 케이크 심사를 마치고, 페이스트리 쉐프들에게 해산 선언을 했다. 참가자들은 이제 휴게실로 돌아가 최종 발표를 기다릴 것이다.
집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내일의 대회에 참가할 수 있을 것인지 금일 저녁 중에 알 수 있다.
대회장에 남은 심사위원들은 회의에 들어갔다.
「그럼, 오전의 최종 후보를 추리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