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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의 베이커리-462화 (460/656)

제 462화

「정말로 긴장하는 법이 없네.」

브라이언은 새삼 감탄하며 진혁을 응시했다. 제과제빵사들은 조리대 앞에서 오래 일해서 거북목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진혁은 본격적으로 운동하는 사람처럼 어깨가 딱 벌어지고 허리를 곧게 펴 자세가 좋았다.

런웨이를 걷는 모델과도 다르다. 개선하는 장군처럼 당당하게 걸어 나가는 자세부터 달랐다.

자신만만해 보이는 모습을 본 심사위원이 중얼거렸다.

제프리 디버가 눈썹을 추켜올렸다.

「또 세상을 다 가지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쉐프가 있군. 우리가 여태까지 너무 부드러운 말만 했나 봐. 그러니까 지금 저런 반응이 나오지. 쯧.」

「제프 자네는 부드러운 말을 한 적이 없잖아?」

「서포터도 제대로 못 세우고 기우뚱기우뚱하는 케이크를 내놓는 초보자한테 여기서 나가라고 하지 않았잖아. 그 정도면 부드러운 거지.」

아서 J. 클라크가 웃었다.

「그 사람하고 이 사람은 상관없잖아?」

「바위를 굉장히 디테일하게 만들었네요. 산 안의 호수에 국기가 피어 있어요!」

「그러게. 바윗돌 질감 좀 봐.」

거칠거칠해 진짜 돌처럼 보이는 바위.

심지어 중간 중간에 이끼처럼 보이는 조그마한 풀까지 재현했다.

멀리서 언뜻 보면 케이크가 아니라 수석이라고 착각할 만큼 돌 같은 모양새다.

다른 예선 작품과 비교해 봐도 놀라울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다.

돌산과 그 위의 호수.

돌산은 단순한 바위산이 아니었다. 양옆에는 붉고 파란 꽃들이 드문드문 자연스레 피어있었다. 연녹색 키 작은 관목들도 언뜻 보였다.

케이크가 아니라 대자연과 비교해야 할 정도로 현실적인 모양새였다.

감탄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국기에는 조화를 말하는 태극과 건곤감리 즉 하늘과 땅, 불과 물을 상징하는 4개의 괘가 있습니다. 건괘는 봄과 동향, 오행에서는 금을 뜻하죠. 곤괘는 땅과 여름, 서향과 토(土), 그리고 감괘는 물과 겨울, 북향과 수(水)를 뜻합니다. 이괘는 가을과 남향, 화(火)를 말하지요.」

「뜻이 많군.」

「예, 그래서 북부의 산을 묘사했습니다. 하늘과 땅 그리고 불과 물이 모두 들어 있지요.」

「불은 없는데?」

「여기에 있는 이 붉은 꽃들을 보시지요.」

「아.」

상징과 은유.

진혁은 그 모든 데에 의미를 두었다.

「바위산을 기점으로 동쪽은 겨울입니다. 그래서 꽃들이 아직 피지 않았고-.」

「이쪽 꽃이 활짝 피어 있는 부분은 봄인가 보군.」

「여름입니다. 그리고 이쪽에 가을과 겨울도 있지요.」

「눈이 올라와 있는 부분이구나.」

브라이언은 흐뭇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응시했다.

진혁이 만든 케이크를 설명하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다.

「임진혁, 이렇게 제대로 할 수 있구나. 이번 디자인은 아주 명시적면서도 아름다워. 대자연의 품격을 보여주면서 한국의 국기가 담은 뜻을 전부 표현하고 있지.」

진혁이 받은 주제는 ‘태극기’다. 이 주제는 ‘자유, 평등, 박애’ 등의 추상적인 뜻을 담고 있는 국기보다 오히려 쉬웠다.

‘자유를 케이크로 만드는 것보다는 사계절을 케이크로 만드는 게 더 좋아.’

그는 산이 좋았다.

일월신교는 깊은 산속에 터전을 둔 종교 단체였다. 진혁은 계절이 뚜렷한 산속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많은 것을 보아왔다.

그래서 이 산과 바위, 그 위에서 드러날 수 있는 사계절을 묘사하는 것이 즐거웠다.

진혁이 밝은 미소를 띠며 서 있는데 심사위원 한 명이 불퉁스럽게 내뱉었다.

「잘 익은 것처럼 보이는 살구가 벌레 먹은 경우도 있지. 언뜻 보기엔 예뻐 보이지만 속은 어떨지 두고 봐야지!」

제프리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기본이 되어 있지 않은 이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버터크림 케이크 위에 젤리를 올린다니 제정신이 아닌 거 같은데. 보기에야 이쁘지, 그런데 무게는 어떻게 감당할 거야? 맛도 조화를 이루지 못할 거라고!」

진혁은 그 비판적인 말에 반응하지 않고 브레드 나이프를 들었다.

「음- 그건 그렇지.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지 궁금한데.」

안토니오 바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야 먹어 봐야 알죠.」

「레이어만 닥치는 대로 쌓아서 높이를 높인다고 좋은 게 아니야. 예쁘면 뭘 해. 맛이 어울리지 않는 걸 섞으면 안 되지.」

제프리가 단언했다.

「버터크림 케이크 위에 곰 젤리를 올려 봐. 얼마나 거지 같은지.」

「그렇긴 하지.」

「작고 쫄깃쫄깃한 젤리는 부드러운 크림하고도, 촉촉한 시트와도 어울리지 않아. 씹는 질감이 너무나 강하기 때문이지. 하물며 저 정도 크기의 젤리를 케이크 위에 얹었다고? 제정신이 아니야.」

안토니오 바트는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임진혁은 제일 먼저 다가와, 안토니오 바트에게 케이크 접시를 건네주었다.

언제 잘랐는지도 모르게 빠른 솜씨다.

아랫단은 물론이고 윗단, 그리고 맨 위의 젤리까지 모두 포함된 케이크는 조각인데도 불구하고 꼿꼿하게 서 있었다.

「젤리와 함께 먹으면 느끼할까, 어떨까. 일단 아래쪽 케이크부터 먹어볼까.」

그는 겉면에 씌워진 퐁당과 함께 아래쪽 크림과 빵을 함께 스푼으로 떠냈다. 아직 케이크를 입에 넣지도 않았는데 침이 가득 고였다.

탱글탱글한 케이크는 신기하게도 무너지지 않았다. 다른 페이스트리 쉐프들은 스탠딩 케이크를 바닥에 눕혀서 건네주었는데, 진혁의 케이크는 서 있는 상태 그대로 접시로 옮길 수 있었다.

‘신기하게 균형을 잘 잡았네.’

이전에 맛보았던 진혁의 케이크들이 떠올랐다. 그는 케이크 안의 재료 하나하나 본연의 맛이 가장 강해질 수 있게 끌어내는 요리의 지휘자였다.

초콜릿 라즈베리 케이크가 있다면 라즈베리의 맛은 초콜릿에 밀려서 거의 느껴지지 않게 마련이다.

하지만 진혁의 케이크는 달랐다.

라즈베리 맛이 느껴지고 그다음에 초콜릿 맛이 다가왔다.

‘마치 그 농장의 술 같아.’

오랜 시간 동안 숙성시킨 포도주는 깊고도 그윽한 향기를 풍긴다. 하지만 질 좋은 포도를 사용해 특별히 골라내어 숙성하는 농장이 있었다. 거기서 만들어 짧은 시간 숙성한 포도주도 놀라울 정도로 깊은 맛을 낼 때가 있다.

안토니오에게 있어 진혁이 바로 그런 페이스트리 쉐프였다.

「좋아, 좋아! 아주 좋아!」

안토니오는 저절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천상의 오케스트라와도 같은, 단순하고도 복잡한 맛….

「지난번보다 한층 더 발전했어.」

전에는 여러 가지 맛을 최대한 많이 소개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강렬한 맛을 누르지 않고, 담백한 맛을 번갈아 소개하는 데 주력했다.

진혁은 현재의 실력에 안주하지 않고 한 단계마다 새로운 맛을 내놓는 실력자인 것이다.

그는 맛을 평가하며 전부터 궁금했던 수수께끼를 풀려 했다.

‘아무리 리치 후르츠 케이크라고 해도 서포터를 넣지 않고 이 정도 높이는 힘들 텐데.’

안토니오 바트가 고민하는 동안 아서 J. 클라크는 케이크의 표면을 살짝 핥았다.

한 명의 심사위원이 구조에 대해 고민하는 동안, 아서는 재료와 맛에 더 신경 썼다.

그는 놀람을 감추지 못하고 자기소개를 했다.

「임 쉐프, 나는 아서 J. 클라크일세.」

「알고 있습니다.」

진혁이 심사위원의 앞에 놓인 명패를 곁눈질하며 말했다. 아서가 흠흠, 헛기침했다. 그는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설탕과 럼에 절인 후르츠 케이크는 달콤할 수밖에 없다. 퐁당과 함께라면 더 달다.

하지만 이 케이크는 놀랍게도 달지 않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자네, 설탕을 줄였나?」

아예 달지 않은 것이 아니다. 퐁당 특유의 강렬한 단맛이, 은은한 봄꽃 향기처럼 살살 달았다. 진혁이 싱긋 웃었다.

「건강을 생각해서 말이죠.」

「…맙소사! 그럼 퐁당 반죽부터 맛이 달라졌을 텐데.」

슈가 페이스트에서 ‘설탕’의 양을 줄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재료의 배합 비율이 달라지면 성질이 바뀐다. 케이크를 구워내고 장식하면서 새로운 재료를 쓴다는 것은 지나친 모험이다.

그리고 이 자는 여기서 모험을 했다.

「후르츠 케이크를 이렇게 부드럽고 연하게 만들다니.」

파운드처럼 조밀하게 느껴져야 할 케이크 시트 맛이 놀랍게도 보들보들했다. 피스타치오는 잘게 썰려 있고 아몬드는 절반 크기다. 헤이즐넛은 오도독 씹힌다. 건포도는 작고 쫄깃하다.

「단맛이 적은 만큼 케이크의 질감이 더 강하게 느껴져. 견과류가 오독오독 씹히네. 이건 헤이즐넛인가?」

「그렇겠죠.」

후르츠 케이크의 경우 안쪽에 들어있는 견과류의 크기와 비율에 따라서 맛이 크게 달라진다. 하지만 3층과 2층의 케이크는 분명히 비슷한 재료를 썼을 텐데도 놀라울 정도로 맛이 달랐다.

「리치 후르츠 케이크와 세미 리치 후르츠 케이크의 교과서라고 해도 되겠는데. 견과류의 비율을 아주 정확하게 조정했군.」

아서 J. 클라크는 미소를 띠고서 수저를 움직였다.

「대단해, 대단해! 슈가 페이스트에서 설탕을 뺄 생각을 했다라. 치열하게 고민하고 내린 결정이겠어.」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들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케이크였으면 했습니다.」

옆에서 케이크를 물어뜯을 듯이 씹고 있던 제프리가 중얼거렸다.

「그러면 견과류를 넣지 말아야지. 견과류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진혁은 제프리 디버의 말을 무시했다.

다른 모든 심사위원들은 벌써 케이크를 다 맛본 후였다. 하지만 아직 접시 위에 케이크를 남겨 이가 단 한 명 있었다.

◈          ◈          ◈

제프리는 코를 벌렁거렸다.

리치 후르츠 케이크도, 세미 후르츠 케이크도 맛있었다.

그리고 카카오 케이크와 그 위에 있는 젤리만이 남았다.

「이렇게 맛있는데 위쪽에 젤리를 얹어서 망치다니, 겉모양만 신경 쓰는 데에도 정도가 있지.」

아직 젤리에 손도 대지 않은 그가 불평하자, 이미 접시를 깨끗이 비운 자 중 한 명인 안토니오 바트가 빙글빙글 웃었다. 그는 행복에 겨운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제프리에게 조언을 건넸다.

「하하, 제프 자네. 일단 먹고 나서 이야기해봐.」

「먹을만하단 말이야?」

「자네 입으로 직접 맛보고 판단하라고.」

「…!!」

언뜻 보기에 투명한 호수처럼 보이던 거대한 크리스탈 젤리.

놀랍게도 이 호수에는 보이지 않을 정도의 실금이 그어져 있었다.

제프리 디버가 포크로 찌르는 순간, 투명하게 각진 작은 젤리가 포크에 꽂혔다.

젤리 하나가 빠져나가자 다른 젤리들은 접시 위로 떨어져 굴러다녔다.

젤리에서는 강한 복숭아 향이 풍겼다.

「…젤리를 따로 먹었을 때 맛있기는 해.」

젤라틴의 양이 많지 않다.

젤리라기보다 젤리 푸딩에 가까운 맛이었다.

‘그래도 버터크림과 어울리는 맛은 아니야.’

2층이나 1층의 버터크림과는 확실히 괴리가 있다. 하지만 3층에 있는 크림과는 어떨까.

그는 먹잇감을 사냥하는 늑대처럼 케이크에 달려들었다. 물어뜯듯이 3층에 있는 케이크와 크림 아이싱 그리고 젤리를 한입에 삼켰다.

「카카오 케이크 위에 초콜릿 무스가 있군, 그리고 크림치즈! 아래쪽의 진한 버터크림과의 사이에 두터운 경계선이 있어.」

산뜻한 크림치즈는 위화감 없이 젤리와 잘 어울렸다.

크림치즈 위에 올리는 딸기 무스가 어색함 없이 어울리듯이.

「이런 젠장할!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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