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457화 (455/656)

제 457화

“그럼 회사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피땀 흘려 일군 회사를 남에게 넘길 셈이냐?”

“작은 얀센이 하면 되잖아요?”

작은 얀센은 토마스의 사촌 동생이다. 얀센의 동생이자 키르크의 둘째 아들이 낳은 외동아들로, 훌륭한 레고 그룹의 일원답게 재료공학을 전공했다.

아버지는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토미! 얀센은 내 아들이 아니잖니.”

“아버지. 저는 빵을 굽고 싶어요. 할아버지도 내가 구운 빵이 좋다고 하셨습니다. 살아계셨더라면 허락하셨을 거라고요!”

토마스는 절연하다시피 집을 나왔다. 일하면서 숙식을 제공받을 수 있는 빵집에서 일했다.

다른 사람들은 토마스를 보며 수군거렸다.

“재벌가의 아들인데 소박하게 사네.”

“쟤는 우리들하고는 달라. 가난 체험을 하러 온 거잖아.”

덴마크의 어디에서도 ‘크리스티얀센의 손자’라는 꼬리표는 사라지지 않았다. 다행히 그는 할아버지를 닮아 손재주가 좋았을 뿐만 아니라 성실했다. 장학금을 받고 미국의 제과제빵학교에 진학하고, 졸업했다.

마침내 시카고에 번듯한 베이커리를 내고 나서야, 그는 아버지와 뒤늦게 화해할 수 있었다.

레고 그룹의 실권자가 된 아버지는 토마스가 레고 블록 모양의 빵을 만들고 싶다고 하자 허락해 주었다.

“제과제빵계에서 레고 블록이 얼마나 우수한지 보여주렴.”

“예?”

“토마스, 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

그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다.

‘단단한 브라우니를 기반으로 해서, 바닐라 케이크는 최소한으로 넣어서 쌓아 올리면 돼. 내 케이크가 제일 안정적이고 높을 거야.’

레고 블록 표면에 붙일 에클레어도 모두 준비되어 있다. 토마스는 집중했다. 그는 이번 예선 심사에서 압도적인 점수를 받을 자신이 있었다.

◈          ◈          ◈

국기에 붉은색이 들어가는 것은 덴마크만이 아니다.

토마스가 붉은색 케이크를 구워내는 동안, 프랑스에서 출전한 주느비에브 역시 높이높이 탑을 쌓고 있었다.

프랑스의 국기는 파란색과 흰색, 붉은색이 세로로 나란히 늘어선 삼색기다.

이탈리아나 아일랜드 등 다양한 국가의 국기에 영향을 끼쳐, 유럽에 비슷비슷한 국기가 늘어나게 한 원인이다.

‘자유, 평등, 박애.’

테마가 ‘국기’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

‘세 개의 깃발을 휘두르는 세 명의 사람을 만들 거야.’

급격하게 산업화가 진행되며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빈민들이 가난과 질병에 허덕이던 시절. 가장 비참한 시대였던 1830년, 시민들은 자유와 빵을 위해 봉기해 왕을 끌어내리고 새 왕을 세웠다.

문학의 대가 빅토르 위고는 이 암흑시대를 배경으로 한 남자의 일대기를 그렸다. 이 원작 소설 ‘장발장’은 연극과 뮤지컬, 영화 등 다양한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실제 7월 혁명을 모티브로 한 이 영화 속에서 조역으로 등장한 청년들은 자유를 부르짖으며 목숨을 걸고 깃발을 휘두른다.

당연히 겉모양에만 신경 쓸 생각은 아니다. 주느비에브는 시몬 리옹의 제자로서 유행하는 ‘키 높은 케이크’를 만드는 테크닉을 전부 전수받았다.

톨 케이크(Tall cake)와 더블 배럴 케이크(Double barrel cake), 그리고 익스텐디드 헤이츠 케이크(Extended height cake).

그녀는 세 종류의 케이크를 모두 만들어보았고, 어떻게 해야 최대한 안정적으로 높게 만들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일반적인 케이크는 보통 두 개의 층으로 만들어진다. 각자 2인치 높이인 레이어 두 개를 쌓으면 총 4인치 높이가 된다. 보통 한 층에 3인치까지는 따로 별다른 기둥을 세우지 않아도 케이크가 자기 무게를 알아서 지탱할 수 있다.

가장 흔한 웨딩 케이크는 이 2x2 레이어 케이크를 3층으로 쌓는다. 그러면 12인치에서 18인치 정도의 높이가 된다.

‘그럼 45cm가 돼. 지금 요구하는 60cm에 한참 못 미치는 숫자야.’

그래서 톨 케이크는 레이어를 한 층 더 늘린 것이다.

2x2 케이크였다면 2x2x2가 된다. 한 층에 3인치 레이어였다면 3x3x3이 되어, 총 9인치 높이의 케이크를 만들 수 있다. 6~9인치 케이크까지는 일반적인 바닐라 시트 등의 케이크를 사용해도 안정적이다.

하지만 어떤 페이스트리 쉐프들은 케이크를 단순히 2 레이어나 3 레이어로 만들고 싶어 하지 않는다. 케이크 시트를 두 겹 쌓아 만드는 2 레이어라면 필링 크림이 세 번 들어가고, 세 겹 쌓아 만드는 3 레이어라면 네 번 들어간다. 그렇지만 아드레아노 존부처럼 다양한 맛과 크림을 케이크 안에 넣고 싶어 하는 페이스트리 쉐프들은 케이크 시트를 5층, 6층 때로는 8층까지 쌓는다.

1인치짜리 얇은 케이크 시트가 여섯 겹 쌓여 만든 케이크와 3인치짜리 케이크 시트를 두 겹 쌓아 만든 케이크.

높이는 같더라도 안정성은 비교할 수가 없다. 얇은 케이크 시트는 계속 움직이려고 하여, 고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더블 배럴 케이크에서는 반드시 받침대와 중간 판이 필요하다.

같은 사이즈의 케이크 두 개를 구운 다음에 한 케이크 위에 쉐이크용 굵은 빨대를 넣는다. 위에는 케이크용 바닥용 보드지를 넣어야 한다. 보드지 없이 올리면, 일반적인 더블 레이어라면 모를까 트리플 레이어, 4층 레이어 케이크는 위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다.

어쨌거나 보드지와 기둥 등 서포터의 도움을 받아 같은 케이크를 하나 더 얹어주면 8인치에서 10인치 정도의 높이가 된다.

주느비에브는 시몬의 트레이닝을 받으며, 15인치 높이의 케이크도 만든 적이 있었다.

15인치는 대략 38cm.

그러니 15인치 케이크를 두 번 쌓으면 된다.

「할 수 있어, 서포터를 세 개가 아니라 여섯 개 꽂으면 돼. 케이크 시트를 최대한 맛있게 하고, 안쪽에 넣을 필링 크림은 세 종류로 할 거야」

주느비에브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녀는 모든 것을 다 생각해 두었다.

‘자유와 평등, 박애.’

붉은색은 라즈베리, 그리고 파란색은 블루베리, 흰색은 크림치즈. 케이크 위에서 세 가지 깃발을 휘날릴 뿐만 아니라, 안쪽에서도 삼색이 보이게 할 것이다.

‘자신 있다구.’

◈          ◈          ◈

적색과 청색이 동시에 들어가 있는 것은 프랑스의 국기만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태극기, 그 가운데에 있는 태극에도 원색의 파란색과 붉은색이 들어가 있다.

진혁은 케이크 위에 태극기를 꽂아 휘날릴 생각은 전혀 없었다.

‘태극이 의미하는 것은 음양(陰陽)의 조화지.’

건곤감리(乾坤坎離)의 4괘가 의미하는 것은 각각 하늘과 땅, 그리고 물과 불.

‘거기밖에 없지.’

한반도의 산중 가장 높은 곳.

흰 돌이 많을 뿐만 아니라 일 년 중 절반 이상이 눈에 덮여 있어 흰머리(白頭), 즉 백두산이라 불리게 되었다.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

그곳에는 천지(天地)라 불리는 호수가 있다.

하늘에 가장 가까운 땅에 물까지 넘친다.

‘불은 피우면 되지. 딱 적당해.’

진혁은 희미한 미소를 띠고서 손을 움직였다. 그는 슈를 만들지 않았다. 대신 케이크 시트를 네 종류 구워냈다.

「아래층에는 리치 후르츠 케이크를 놓는 거지?」

「응.」

리치 후르츠 케이크.

세미 리치 후르츠 케이크.

둘 다 그렇게 달콤한 케이크는 아니다.

그렇지만 세 번째 케이크는 정말로 달지 않았다. 이것은 설탕이 들어가 있지 않아 달지 않은 카카오 초콜릿 케이크였다.

퐁당이 지나치게 달콤하기 때문에 일부러 케이크는 달지 않게 만들었다

‘진희가 달콤하지 않은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 애썼지.’

그녀는 ‘달지 않은 케이크’를 테마로 수없이 많은 실패작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당뇨 환자들이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아예 설탕을 넣지 않고 탄수화물을 줄인 저당질 케이크에 초점을 두었다. 그러자 식감이 지나치게 나빠졌다.

아예 글루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케이크는 극히 소량만 만들었다.

“이건 너무 맛없어서 환자들 말고는 먹고 싶어 하지 않겠는데.”

그래서 진희는 진혁의 도움을 받아 ‘설탕을 조금 넣은’ 케이크 역시 만들었다.

지금 만든 카카오 케이크에는 설탕이 없지만, 탄수화물은 풍부하다. 건강을 위한 기능성 케이크가 아니고, 겉에 씌운 퐁당의 단맛과 중화시키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다.

또한, 그 위에 아이싱한 버터크림에도 특별한 장치를 했다.

네 층에 걸쳐서 케이크를 층층이 쌓고 나서 그는 칼로 겉을 깎아냈다.

회색 퐁당을 덮어씌우고 칼로 긁어내기 시작했다. 긁어낸 표면에는 물엿을 사용해 바위처럼 울퉁불퉁하게 생긴 에클레어를 군데군데 붙였다.

케이크처럼 보이던 이 작품은 점차 바위산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브라이언은 혀를 내둘렀다.

「이거 진짜 안정적이다.」

4겹으로 시트를 쌓아 올린 케이크를 네 층이나 쌓았는데도 흔들림 하나 없다. 서포터 하나 넣지 않았는데도, 진혁이 개발했다는 ‘전통 물엿’은 정말이지 무지막지하게 접착력이 좋았다.

중간에 케이크 보드도 필요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웨인스톡 쉐프님에게서 배운 ‘바위 만드는 법’은 이런 게 아닌데.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완성했네.」

「원래 제자들은 스승이 하라는 대로만 하지 않아. 나름대로 도전도 하고 실패도 하면서 새로운 맛을 만들어 내는 거지.」

「넌 실패를 하지 않고 있잖아.」

브라이언은 주변을 흘긋 둘러보았다.

당장 양쪽에 있는 쉐프들만 해도 저마다 바빴다.

초콜릿 탑을 쌓고 겉에 마카롱을 층층이 쌓아가는 이도 있고, 비스킷 카드 탑을 쌓는 쉐프도 있다. 하지만 진혁처럼 케이크로 4층을 쌓는 이는 보이지 않았다.

「케이크는 아래층이 위층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서 무너질 가능성이 높으니까…. 다들 위쪽에는 가벼운 걸 올려서 승부를 보려고 하고 있어.」

「그러면 재미없잖아.」

「….」

브라이언은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 특별한 ‘물엿’이 정말 튼튼하다는 건 알아. 그 초콜릿 갑옷을 전부 지탱할 정도로 대단했지.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괜찮다니까.」

◈          ◈          ◈

한국에서 온 임진혁 쉐프가 4층이나 되는 케이크를 층층이 쌓고 있는 모습은 심사위원들의 시선을 끌었다.

제프리 디버가 말했다.

「희한한 짓을 하네.」

「뭐가?」

「서포터를 넣지 않고 케이크를 쌓는 무식한 놈이 있어. 도대체 여기까지 어떻게 온 거야?」

이전 쿠프 드 몽드 파티쉐리에서 우승하기도 했으며, 가장 최근의 대회에서는 사회자를 맡았던 안토니오 바트가 말했다.

「이상하다, 저럴 쉐프가 아닌데. 손재주가 대단히 좋아.」

「그래?」

「케이크도 아주 맛있었고.」

「그때는 더블 배럴 케이크는 만들지 않았나?」

「당시에는 케이크 자체의 높이보다는 다른 장식들이 섬세했지. 맛도 좋았고.」

「흐음, 쿠프 드 몽드 파티쉐리 최연소 우승이라….」

「우승자면 뭐 해! 웨딩 케이크 쪽에는 손도 대보지 못했나 보구만.」

제프리 디버는 기막혀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렇게 기본이 안 되어 있는데 여기 예선까지 올라오다니, 대단해. 하여튼 우승자 둘이 서로 다른 팀으로 나온 걸 보면, 인간관계도 나쁜가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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