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455화 (453/656)

제 455화

“그래, 어서 들어가야지.”

아버지는 진혁에게 손을 뻗었다가 뒤로 물러났다.

“우리가 너를 응원한다고 왔는데, 네가 우릴 챙겨 주는구나.”

어머니는 앞으로 한 걸음 발을 내디뎌 양팔로 진혁을 껴안았다.

“맛있게 잘 먹을게, 고맙다.”

인사를 하고 돌아서 자신의 숙소로 향했다. 진혁은 운전사가 운전하는 자동차의 뒷좌석에 앉아 눈을 감았다. 부모님의 대화가 아련히 귀에 들려왔다.

“대회 전날에 이렇게 힘 들어가는 메뉴를 챙길 필요가 전혀 없는데 말이야. 우리한테는 너무 과분한 아들이에요.”

“아까 포장해 놓았던 거 지금 열어서 먹을까?”

“여봇! 지금 아들 얘기하는데 케이크 먹을 생각이 나요?”

“아니, 너무 맛있으니까 그렇지.”

부모님이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를 들으니 저절로 흐뭇해 웃음이 났다.

숙소에 도착한 진혁은 싱긋 웃으며 스마트폰을 켰다.

메시지가 와 있었다.

「대표이사님, 비즈니스 룸에서 대기 중입니다.」

한 비서가 보낸 문자였다. 진혁은 운전사에게 말했다.

“호텔에서 한 비서 좀 데리고 와 주겠나?”

한 비서가 케이크 먹는 자리를 마련해 주고, 눈치 빠르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거기까지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는데 빨리 가서 대회 준비를 하려는 생각에 완전히 망각해 버렸다.

‘광안마 같은 녀석이었으면 알아서 경공으로 따라 왔을 텐데.’

“알겠습니다.”

“오늘은 그 자리에서 바로 퇴근해도 좋다고 전해주고.”

“예!”

운전사는 다시 출발했다.

진혁은 머쓱하게 뒷머리를 살짝 긁적이고서 바로 베이킹 스튜디오로 향했다.

◈          ◈          ◈

다음날.

대회장에는 새벽부터 많은 이들이 웅성거렸다.

오전 5시라는 이른 시간에도 불구하고, 한 명도 빠지지 않고 모든 참가자가 모여있었다. 역기 선수처럼 체격이 크고 근육질인 흑인 남자부터, 금발을 길러 묶은 백인 여자는 물론이고 수염을 기른 라틴계 남자 등등, 다양한 인종과 연령, 성별의 남녀들이다.

그들은 서로 안면이 있는지 저마다 인사를 하고 있었다. 진혁도 한쪽 구석에서 낯익은 사람을 발견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드디어 제가 몇 개월간 열심히 준비한 끝에 페이스트리 챔피언십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예선이지만! 꼭 내일 본선까지 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강 마리오는 매우 바빠 보였다. 그는 스마트폰을 이상한 플라스틱 막대기에 꽂아서, 핸드폰을 보면서 계속 이야기하고 있었다. 진혁이나 브라이언이 왔다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쟤는 어쩌면 저렇게 한결같이 생각이 없냐.」

브라이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리오를 보면서 고개를 젓고 있는 것은 브라이언만이 아니었다. 한국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쉐프들도 마리오를 보면서 수군거렸다.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자기 이미지 만드는 브랜딩을 하고 있잖아? 꽤 좋을지도 몰라.」

진희에게 들은 이야기였다. 브라이언이 물었다.

「너희 회사 직원이잖아. 이미지 망치고 있는 거 아니야?」

진혁이 대답했다.

「너희 회사가 아니라 우리 회사지. 너도 입사했잖아.」

그렇다.

이미 <해와 달>에 입사하는 절차를 전부 마쳤다. 미국으로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기 전에 한 비서의 도움을 받아 진행했다. 입사지원서도 냈고 면접도 통과했다. 대학교 졸업장이나 경력증명서 등 필요한 서류는 아내가 팩스로 보내주었다. 브라이언은 한참 동안 입을 벙긋거리다가 말했다.

「저 천방지축하고 내가 같은 회사에 다닌다니.」

「들어오기 전부터 알고 있었잖아.」

「아니 그건 생각하지 못했지!」

「물엿 레시피 때문에 충동적으로 들어왔구나?」

「아으으으으으윽, 아니야, 설마 내가 그랬겠어.」

「사실을 인정해 봐.」

두 사람은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러던 차에 신나게 자기소개를 찍고 있던 마리오는 진혁과 브라이언을 발견했다.

“지금 저쪽에 제 친구이자 상사인 임진혁 쉐프님이 보이네요! 가서 인사를 하겠습니다!”

마리오는 핸드그립을 꽉 움켜쥐고 스마트폰에 계속 말을 걸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브라이언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앞으로 나서 진혁을 가렸다. 그가 한마디 하려던 차에, 진행 요원이 나타났다.

「죄송하지만 참가자 여러분들 지금부터는 실내 촬영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앗, 죄송합니다. 시청자 여러분 그럼 다음에 또 만나요!」

마리오는 마지막까지 시청자들을 향한 예절을 잃지 않은 채 녹화를 마쳤다. 그는 핸드폰을 끄고 주머니에 넣으며 친구들에게 다가왔다.

“진혁이가 대회에 나온다고 해서 나도 뒤처진 실력을 만회할 겸 연습해서 나오긴 했는데 진짜 긴장된다.”

세계 3대 제과제빵 대회 중의 하나인 월드 페이스트리 챔피언십.

참가 동기가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는 친구가 나가서 따라 나갔다’라고 말하는 것부터 지나치게 가벼워 보였다.

대회에 너무나 출전하고 싶었지만, 자격이 부족해서 출전하지 못했던 브라이언이 어이없어하며 물었다.

“긴장된다고? 그런 사람이 대회장에서 유튜브 방송을 해?”

마리오가 진지하게 말했다.

“집에서 혼자 연습하다가 이렇게 나와서 대회에 참가하려고 하니까 정말 어색한 거 있지. 불편하기도 하고. 집에서는 라이브 켜두고 계속 연습할 때마다 24시간 팬들이 응원해주니까 격려가 됐거든.”

브라이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요즘 애들은 이해하기가 힘들어.”

“너하고 나하고 동갑이야!”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데 진혁이 한마디 했다.

“빵은 혼자서 굽는 거야.”

“그거야 그렇지만.”

“맞아. 응원을 받는 거야 좋지만 거기에 의존하면 안 되지!”

브라이언도 거들었다. 강마리오가 히죽 웃었다.

“그래서 어때, 두 사람은 준비 잘 했어?”

진혁이 대답하기도 전에 브라이언이 당당하게 말했다.

“이번에 진혁이 어떤 성과를 보일지 우리 모두가 기대하고 있어. 엄청난 쉐프들을 초빙해서 이것저것 배웠다고.”

마리오는 솔직하게 부러워했다.

“우와-부럽다. 진짜 좋았겠다.”

출전‘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브라이언은 미묘한 표정으로 강마리오를 바라보았다. 마리오가 해맑게 말했다.

“진혁이가 진짜 무시무시한 속도로 빵과 케이크를 공장처럼 찍어내잖아. 옆에서 시식만 해도 몸과 마음이 즐겁다고. 그냥 단것만 줄창 뽑아내는 것도 아니고, 속도는 공장인데 퀄리티는 완전히 호텔급이니까 말이야.”

막 입을 열려는 브라이언의 어깨 위에 진혁이 손을 얹었다.

친구들끼리 투덕거리는 건 그와 상관없다. 하지만 진혁은 같은 회사에서 일하게 되었으니 두 사람이 서로 사이좋게 지내기를 바랐다.

“마리오, 너는 직접 만들어 먹어. 레시피도 다 알잖아.”

“내가 해 먹는 거랑 남이 구워 준 빵 먹는 건 다르지! 그리고 진혁이가 구운 빵은 진짜 맛있단 말이야.”

브라이언이 짜증을 냈다.

“진혁이는 지금 집중해야 해. 그래야 대회 준비를 하지.”

「참가자 여러분께 알리겠습니다. 옷을 갈아입으시고 왼쪽 문으로 들어와 주시기 바랍니다.」

진혁이 씨익 웃었다.

「이제 들어갈 시간이군.」

그는 예전부터 이 시간을 고대하고 있었다.

「파티 타임이라고.」

◈          ◈          ◈

칸칸이 주방이 설치된 무대 위로 오르자, 조명이 너무나도 눈부셔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브라이언은 바닥만 내려다보면서 주방을 찾았다.

“6번, 6번 주방이야.”

“이쪽이네.”

반면에 조명이 눈이 부셔도 주변을 파악할 수 있는 진혁은 심사위원들의 위치부터 확인했다. 그들은 관객석을 빙 둘러 원형으로 앉아있었다. 심사위원들은 저마다 수군거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긴장하지 마, 진혁. 넌 잘 할 거야.」

무대를 오르는 진혁 옆에서 브라이언이 옆에서 속삭였다.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걸 보면 브라이언이 훨씬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진혁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긴장 안 했는데.」

「….」

마리오의 주방은 두 칸 건너였다. 그는 진혁이 처음 보는 프랑스인을 보조로 데리고 있었다. 임진혁은 턱짓으로 브라이언에게 마리오의 위치를 알려 주었다.

「마리오도 그다지 긴장하지 않은 것 같네.」

두 사람이 프랑스어로 손짓 발짓하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마리오는 축제를 즐기는 것처럼 신나 보였다.

그리고 사실 진혁 역시도 즐거웠다.

「그러게.」

「최고의 재료로, 관객들 앞에서 내 디자인의 케이크를 선보이는 자리잖아. 즐거우면 즐거웠지, 긴장할 이유가 있나?」

브라이언은 입을 다물었다. 그는 눈을 크게 뜨고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 생각해보면 넌 처음부터 이런 성격이었지….」

「응?」

「아무것도 아니야.」

브라이언이 후련해 보이는 표정으로 진혁에게 말했다.

「나는 널 믿어.」

「고작 예선이잖아.」

「예선이라니, 월드 페이스트리 챔피언십의 예선이잖아! 이 본선 전의 예선에 참가하는 자격이 얼마나 까다로운데. 최소한 국제 대회 상급 수상자여야 한다고.」

브라이언은 입에 침을 튀기며 열심히 말했다. 진혁은 브라이언이 하는 말을 한쪽 귀로 흘려들으며 주변을 살폈다.

「이번에는 낯익은 얼굴이 없네.」

「네가 사다리를 너무 빨리 올라와서 그렇지….」

「음?」

「아무것도 아니야.」

「그보다 주제를 빨리 발표했으면 좋겠어.」

한 비서가 초청한 코치들은 저마다 다른 주제가 아닐까 하는 제안을 했다.

시몬 리옹과 아드레아노 존부가 예상했던 주제는 ‘출신 국가의 연회’였다.

「이전에는 출신 국가의 전통 요리였지?」

「그래, 그러니 이번에는 비틀어서 나올 수도 있지.」

그래서 진혁은 <중력을 거스르는 한정식>을 기획했다.

한편 실비안 웨인스톡은 ‘출신 국가의 계절’일 수도 있겠다고 귀띔했다.

「이전에 ‘고향의 아름다운 풍경’ 따위를 한 적이 있거든. 공간적 배경을 한 번 내놓았으니 시간적 배경일 수도 있어.」

반면에 리처드 베이커는 ‘출신 국가의 운동 경기’일지도 모르겠다고 이야기했다.

「각 나라의 애국가를 케이크로 묘사하라고 한 적이 있잖아? 그러니 그 나라의 전통적인 스포츠를 묘사하라고 할지도 몰라.」

결국, 어떤 주제가 나올지 모르니 대강의 컨셉을 잡아 가능한 모든 수에 맞추어 대비하자는 이야기였다.

임진혁은 다른 쉐프들이 말한 경우만이 아니라, 자신이 생각해낸 또 다른 예시들도 생각하여 여러 가지 디자인을 미리 기획해 연습해 보았다.

그중에서도 제일 애정을 갖고 있는 것은 <중력을 거스르는 한정식>이지만, <한국의 바다 수영>이나 <소망 베이커리가 있는 골목의 가을>도 꽤 마음에 들었다.

즉 그는 어떤 주제가 나와도 대응할 자신이 있었다.

「그럼 지금부터 올해의 대회 주제를 발표하겠습니다!」

웅장한 오케스트라 음악 소리를 배경으로 사회자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올해의 주제는 출신 국가의 <국기>입니다.」

「방금 뭐라고?」

「국기?!」

「아, 이건 미국이 너무 유리한 거 아닌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주제다.

비명과 신음 소리, 그리고 불평이 쏟아져 나왔다. 반면에 얼마 전에 미국 국기 케이크를 방송한 바 있던 마리오는 얼굴이 환해졌다.

「앗싸!」

진혁은 아주 조금 실망했다. 브라이언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진혁을 바라보았다. 여태까지 진혁이 다양한 주제로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는지 알고 있기에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임진혁, 괜찮아?」

「아니, 기분 별로야. 내 <중력을 거스르는 연회장>을 여기서 발표하고 싶었는데.」

「그거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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