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450화 (448/656)

제 450화

실비안 웨인스톡이 손뼉을 쳤다. 그녀는 이미 무언가 깨달은 듯한 눈빛이었다.

「저번에 거꾸로 세워 놓은 연회장을 보았을 때 눈치챘어야 했는데. 비장의 재료를 갖고 있었으니까 그걸 쓰고 싶었던 거지. 그래서 중력을 거스른다는 아이디어를 냈던 거야. 그런데 아무도 몰랐군」

「예? 거꾸로 세워 놓은 연회장이라니, 그건 또 뭡니까?」

「나는 임진혁을 믿어.」

실비안이 단언했다.

「하지만 너희들이 믿지 못하는 것도 이해해. 너희들은 그 신비로운 반중력 케이크를 못 봤으니까. 진혁 쉐프!」

이 싸움에 아무 관심이 없었던 진혁이 대수롭잖게 대답했다.

「예에?」

「자네가 개발한 그 물엿이란 재료가 너무나 혁신적이기 때문에 여기 있는 두 사람이 불신하고 있어. 그 재료를 아주 조금만 줘 봐. 내가 여기 있는 이 그리시니를 다른 그리시니 위에 붙여 보지, 세 개만 나란히 세울 수 있어도 둘 다 이해할걸.」

브라이언이 당황해 말했다.

「이 그리시니는 60cm가 넘는 길이잖습니까? 빵을 세로로 180cm나 세운다고요? 진혁이가 만든 식용 접착제가 아무리 효과가 좋다고 해도 그런 걸 시키는 건….」

「어떤가, 진혁?」

진혁이 피식 웃었다.

「그 정도도 못 한다면 당연히 초콜릿 갑옷의 무게는 견디지 못하지, 브라이언.」

「그래도 면적이 다른데.」

「오늘은 가져오지 않았지만, 호텔이 멀지 않으니 비서가 가져올 수 있을 겁니다.」

「좋아, 좋아. 그럼 이따가 테스트해 보자고.」

진혁은 스마트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한 비서, 부탁해. 물엿은 주방 조리대에 있으니까 찾기 어렵지는 않을 거야. 그것만 갖다 주면 돼.」

「알겠습니다, 임 쉐프님….」

한 비서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운전사와 비서가 호텔을 향해 출발했다.

두 사람의 보조 쉐프들은 계속해서 진혁을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하긴, 비서와 운전사가 따라왔을 때부터 보통이 아니라곤 생각했는데 말이지.」

「진짜 부자긴 한가 봐.」

「페이스트리 쉐프는 왜 하는 거지?」

의심과 질투심, 불쾌함이 섞여 있는 그 수군거림에 브라이언이 화를 냈다.

「유진 쉐프, 타릴 쉐프, 두 분 다 이럴만한 분은 아니시잖습니까. 왜 그러시죠?」

「브라이언 너도 사람을 좀 가려 사귀는 게 좋겠어.」

「지금 예의도 모르고, 실비안 쉐프가 조금 귀엽게 봐 줬다고 뭐라도 된 것처럼 거들먹거리는 걸 보니까 그렇지.」

브라이언이 코웃음 쳤다.

「두 분이야말로 제 친구를 모욕하고 계십니다.」

실비안이 손뼉을 쳤다.

「자! 자! 진과 타릴은 입 조심해. 항상 이야기하잖나, 케이크 앞에서?」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않는다!」

「더이상 잡담은 금지! 임진혁 쉐프의 실력은 내가 잘 알고 있어, 직접 뽑아서 데려왔으니까. 너희 눈이 아니라 내 눈을 믿으라고.」

「예, 쉐프.」

브라이언은 유진을 도와 실리콘 형틀에서 초콜릿 조각을 분리하기 시작했다. 조각은 한두 개가 아니었고 쉬이 떨어지지도 않았다. 일에 집중한 두 사람은 완전히 입을 다물었다.

타릴은 슈가 크래프트 반죽과 갑옷의 에칭에 쓰일 익스텐션 반죽을 전부 만들었다. 잠시 손이 쉬는 동안, 그는 팔짱을 끼고서 못마땅한 표정으로 진혁을 힐긋 보았다.

「실례합니다.」

한 비서는 곧 도착했다.

「진혁 쉐프님, 부탁하신 물엿입니다.」

「좋아 좋아, 제대로 가져왔군.」

이 물엿이 아니었어도 상관없다. 적당히 꿀 같은 것이어도 되고, 슈가 파우더나 우유였어도 상관없다. 하지만 진혁은 이들에게는 낯설고, 해외에서 구하기 어려운 재료를 원했다.

진기를 섞는다고 해도 질감이나 성질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진혁만이 아는 특별한 재료를 섞었다고 주장하기에는 약하다.

「이게 물엿인가?」

「그냥 액체형 올리고당과 유사한데.」

「올리고당이라니요. 물엿을 만드는 방법은 수백 년 동안 조선에서 전해져 내려왔습니다. 아무에게나 알려주지 않았고, 오직 집안에서 선택받은 사람들에게만 전해 주었죠. 저도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되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물엿 만들기 장인이 자기 집안에 내려오던 방법이라고 하면서 소개했던 방법대로 했으니 거짓말은 아니지.’

진혁은 적당히 대강 둘러댔다. 쉐프들은 다 같이 모여들어 물엿을 구경했다. 브라이언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다 같이 물어보았다.

「이게 그 물엿이란 말이지. 나 들어보긴 했는데 써본 적은 없어.」

「그래?」

「LA의 한인 마트에서 팔아. 한국 요리에서도 꽤 쓰고.」

‘생각보다 미국에서도 구하기 쉬운가 보네?’

진혁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런 공산품과 이 직접 만든 물엿은 다르지, 다르고말고.」

「그래, 햇빛에 비치는 이 투명한 색깔도 그렇고. 확실히 품질이 더 좋아 보여.」

‘브라이언. 너는 정말로 의심이 없구나….’

어머니는 최근에 그린 워터 팜에 샐러드드레싱 등을 공급하는 사업을 시작하셨다.

샌드위치에 넣을 소스와 샐러드드레싱을 매일매일 직접 만들던 중 소스와 드레싱만 따로 팔아달라는 요청이 계속 들어왔기 때문이다.

어차피 샌드위치를 만들기 위해 매일 하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조금 더 많이 만드는 것도 상관없다며 일을 시작했다.

어머니는 조금 더 건강한 샐러드드레싱과 소스를 만들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셨다.

이것은 그러던 와중에 어머니가 진혁의 도움을 받아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를 보고 만든 물엿이었다.

어머니의 정성이 들어가 있긴 하지만 평범한 물엿이다.

진혁이 물었다.

「붓을 잠깐 빌려도 됩니까?」

「당연하지, 어떤 거로?」

「꿀 바르는 용도라면 아무거나 사이즈는 상관없습니다, 바르면서 조절하면 되니까요.」

진혁은 작은 붓을 하나 받았다. 그는 도자기 그릇에 물엿을 옮겨 담았다. 묵직하며 진득한 액체가 물엿 통에서부터 치즈처럼 늘어졌다. 도자기 그릇에 찰랑하게 담는 것을 보고 진 쉐프가 중얼거렸다.

「거참, 저렇게 많이 발라야 한다면 맛을 망칠 텐데 말이야.」

「그렇게 많이 바를 필요 없습니다.」

진혁이 고개를 들자, 타릴 쉐프가 그리시니를 가져왔다. 다른 그리니시 빵보다 조금 더 길어 보이는 것을 고르는 모습을 보고 실비안이 소리를 빽 질렀다.

「타아리일!」

‘그러고 보니 실비안 쉐프, 자기 제자들에게는 베이비라고 하지 않네.’

진혁이 그다지 즐기지 않았던 그 호칭은 능력 있는 이들에게만 붙여 부르는, 나름대로 실력을 인정했다는 뜻이었다.

「예, 쉐프!」

그는 미리 골랐던 빵들을 내려놓고 다른 빵들을 가져왔다. 그래도 여전히 꽤 긴 빵들이었다.

「자, 내 오후 간식들을 전부 붙여버리라고. 진 베이비.」

「….」

진혁이 피식 웃었다. 그는 붓에 물엿을 조금 발라, 길게 쭉 뻗은 빵의 윗부분에 아주 조금 칠했다.

「어?」

실비안이 눈을 깜빡거렸다. 한순간 무언가 반짝이는 것을 본 것 같기도 했다.

「방금 뭔가 빛나지 않았나?」

「아니요.」

「우와! 이게 그냥 올라가네!」

그리시니가 줄줄이 올라섰다. 세 개를 연달아 물엿으로 붙이자, 거의 사람 키만큼 높아졌다.

「내가 진짜 잘못 봤나?」

「아니요, 쉐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해 주었다. 진혁은 뜨끔해서 쉐프를 힐긋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이 할머니는 재능이 있군.’

진혁은 자신의 판단을 정정했다.

이런 식으로 진기를 흘려보내는 것은 아무도 보지 못해야 정상이다.

하지만 극히 기감이 예민한 일부의 사람들은 기를 수련하여 몸에 쌓지 않아도 외부에 있는 기의 존재를 ‘느낀다.’

중원에 태어났더라면 내공을 수련하는데 천부적인 자질을 보였을 것이다. 진혁은 전에는 이런 이들을 보면 그 재능이 아까웠다. 조금만 더 일찍, 다른 땅에서 태어났으면 한계까지 자신의 재능을 계발해 다른 미래를 찾아갔을 것이리라 믿었다. 진희가 가진 천부적인 재능을 보았을 때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빵 만들기를 즐기는 이 시점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 전체적인 시야, 그리고 모든 것을 파악하는 능력. 헤드 페이스트리 쉐프로도 딱이야.’

그 누가 실비안 웨인스톡이 다른 직업을 가졌더라면 좋았을 것이라 폄하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90여 년간의 인생을 즐겁고 훌륭하게, 알차게 살아왔다.

무림 고수가 되었다면 부엌에는 발도 디디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만들어내서 전설이 된 케이크는 한둘이 아니다.

유명 브랜드의 명품 가죽 가방을 완벽하게 재현한 케이크는 브랜드 행사에서 동일한 가방과 나란히 경매에 부쳐졌다. 악어 가방을 그대로 재현한 이 멋진 한정판 케이크는 심지어 그 가죽 가방, 가방 가격만 1억 원에 달하는 그 한정판 가방보다도 비싸게 팔렸다! 가방이 100개 한정 생산된 데에 비해서 케이크는 단 하나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 케이크는 세계에서 제일 비싼 케이크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결코, 버킹엄 궁전 모양의 케이크는 또 어떤가?

그녀가 만들어낸 수많은 예술 작품들을 떠올리며 진혁은 고개를 저었다.

‘아주 좋아, 좋아.’

그가 실비안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다른 이들은 하늘을 향해 뻗어진 피뢰침처럼 높이 선 그리시니를 말없이 응시했다. 눈 앞에 펼쳐진 현실이니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유진이 손을 뻗어 그리시니를 툭 하고 꺾었다.

「뭐야, 유진. 뭐 하려고」

「이 물엿이라는 거, 분명히 먹어도 된다고 했지?」

「드셔도 상관없습니다.」

유진은 빵조각을 떼어 물엿이 붙어있는 부분을 씹어 삼켰다. 눈동자가 천천히 커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브라이언도 그리시니를 하나 꺾었다.

「나도 그 물엿을 좀 먹어볼래.」

「그래? 그럼 이쪽에 좀 더 발라줄게.」

「나는 여기 있는 이 부분을 먹어도 되겠나?」

「물론이죠, 타릴 쉐프.」

「이 노인만 빼고 먹는 거야?」

「실비안 쉐프 것은 여기 따로 드리죠.」

진혁은 미미한 진기를 섞어 넣은 물엿을 그리시니 위에 살짝 발라 주었다.

브라이언은 침을 흘릴 것 같은 표정으로 빵을 받아 바로 입안에 넣었다.

「이거 나중에 내가 살 수 있나? 특별히 접착력이 필요하지 않은 빵이라도 시럽처럼 발라서 반들반들 윤나게 하면 될 것 같은데. 맛도 달콤해지고, 아주 좋아.」

진혁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거절했다.

「<해와 달> 프랜차이즈라면 모를까 대량으로 주기는 곤란할 것 같은데.」

「그럼 내가 너희 가게 프랜차이즈를 하면 되지?」

「… 진심이야? 너는 전부터 너만의 가게를 만든다고 했잖아.」

진혁이 놀라서 물었다. 아드레아노 존부의 밑에서 인턴십을 하고, 존부 휘하의 프랜차이즈 지점에서 최소한 지점장 이상의 자리를 약속받았던 친구다.

하지만 브라이언은 자기 가게를 연답시고 그 가게도 그만두었다.

「브라이언, 진지하게 생각해 봐.」

「갑자기 이야기해서 미안,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자. 내가 믿는 친구의 꿈을 함께 키워 나가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거든.」

‘아니, 남의 밑에서 일하는 거 싫다며. 너만의 가게를 갖겠다며.’

「조금 배우다가 뛰쳐나갈 사람은 아무도 원하지 않아.」

「그건 아니지, 시작하면 계속 일할 거야.」

브라이언이 단언했다. 실비안 웨인스톡이 말했다.

「그러게, 나까지 취업하고 싶어질지도 모를 정도로 맛있는 물엿이네.」

「잠깐, 브라이언. 너 지금 이 물엿 쓰고 싶어서 내 가게에 들어온다고 한 거지?」

진혁이 눈썹을 추켜올렸다. 브라이언이 서둘러 말했다.

「그것도 이유의 일부지만 전부는 아니야, 전부터 생각해 왔다고.」

유진 쉐프가 홀린 듯이 중얼거렸다.

「이렇게 놀라울 정도로 맛있는 데다가 가볍고, 거기에 접착성도 좋은 재료가 있다니.」

「전부터 생각했던 ‘그것’도 만들 수 있겠어.」

실비안이 끄덕였다.

「이 재료는 혁신이야. 진 베이비, 네가 레시피를 공개하지 않더라도, 다만 사용할 수만 있게 해준다고 해도 전 세계의 모든 페이스트리 쉐프들이 뛰어들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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