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449화 (447/656)

제 449화

“아름다운 풍경은 보여주지 않아도 되니까 그냥 빨리 가자고.”

운전사는 다른 날보다 더 빠르게 운전했다. 거의 5분 만에 도착한 것을 보고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는 계속 이렇게 하지.”

「어서 오십시오, 여러분!」

조이 랜디가 나와서 네 사람을 반겼다. 운전사는 이 앞에서 대기하겠다며 주차를 하러 갔다. 한 비서는 피곤한 기색으로 말했다.

「저는 잠시 사무실에 있겠습니다….」

「한 비서님! 저하고 처리하실 일이 마저 있지 않습니까.」

「커피, 커피 한 잔만 마시고요.」

「물론이죠! 이쪽으로 오시면 커피를 드리겠습니다.」

한 비서와 조이 랜디가 사무실로 들어갔다. 브라이언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왼쪽에 놓인 회색 컨테이너를 발견하였다. 그가 신나서 말했다.

「저 컨테이너가 그 유명한 <움직이는 스튜디오 키친>이란 말이지.」

그는 핸드폰을 들어 올리더니 회색 컨테이너를 배경으로 셀프 카메라까지 찍었다.

진혁이 말했다.

「그건 잔디 공사하는 사람들 컨테이너고, 스튜디오 키친은 이쪽.」

「좀 미리 얘기해주지!」

「네가 너무 빨랐어.」

진혁이 키득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브라이언은 황급히 그 뒤를 따랐다. 임진혁은 스튜디오 컨테이너 앞에 서서 노크를 했다.

실비안 웨인스톡이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어서 들어와!」

「실례하겠습니다.」

「그쪽에서 옷 갈아입고 손 씻고 들어와. 쉐프 복은 가져왔나?」

「물론이죠.」

「이런 이런, 내가 말을 안 했군. 여기서는 쉐프 복 위에 일회용 앞치마와 바지를 걸쳐! 그래서 꼭 가지고 오지 않아도 돼. 하지만 잘했어. 미리 준비된 건 좋은 일이니까. 옷 갈아입고 앞치마를 입어!」

진혁과 브라이언, 두 사람은 손을 씻고 나서 눈앞에 준비되어 있는 물품들을 발견했다. 비닐 포장되어 있는 일회용 앞치마와 투명한 마스크, 그리고 모자. 바지 위에 덧입는 종이 바지. 앞치마도 앞치마라기보다는 거의 판초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바지를 덧입고 종이 앞치마를 걸친 후에 마스크를 하고 모자도 착용하고, 신발 바닥을 소독하고 나서야 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진혁이 말했다.

「실비안 쉐프님을 보니 우리 제과주방은 너무 허술했다는 생각이 드네.」

「호텔 주방은 보통 이 정도로 하긴 해.」

「아하.」

실비안이 거들었다.

「물론이지, 마스크는 필수야. 사람이 말하면서 침이 얼마나 많이, 멀리, 오래 튀는지 알아? 그걸 비말이라고 하는데 말이지… 감기는 물론이고 다양한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 있다고.」

「그건 곤란하죠.」

「전에 내 장비들을 가져가지 않아서 곤란했지 뭐야.」

실비안 웨인스톡 앞에는 이미 형체가 갖추어진 삼단 케이크가 둘, 놓여 있었다.

생크림 케이크는 케이크 시트 중간중간 크림이 발려져 있었으나 후르츠 파운드 케이크는 그렇지 않았다.

즉, 케이크 시트는 완성되어 있으며 이제 장식하기만 하면 된다.

「와, 일찍 오셔서 작업하셨나 보군요.」

이전의 작업 진척도를 몰랐던 브라이언은 크게 감탄했다. 반면에 진혁은 케이크를 보자마자 바로 실비안에게 물었다.

「실비안 쉐프, 밤을 새운 겁니까?」

최소한 6시간 넘게 작업했을 것이다. 이제 양쪽에 갑옷을 착용한 신랑과 신부-또는 기사와 여기사, 두 사람을 세울 초콜릿을 찍어내 조립하기만 하면 된다.

‘아니구나, 아이싱을 세 단의 케이크에 먼저 올려야겠구나.’

초콜릿 갑옷이 세워지면 아이싱을 올리기 위해 사람이 움직일만한 공간은 없어진다.

한순간 균형을 잃기라도 하면 무너져 버릴 테니 말이다.

「밤을 새우긴! 아주 푹 잤어. 내 나이가 되면 잠이 없어진다니까」

「아하하.」

역시 잠이 없는 진혁이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바로 작업을 시작하고 싶었다. 진혁이 실비안 쉐프의 작업물을 꼼꼼히 보며 말했다.

「실리콘 형틀은 왔습니까? 초콜릿 작업 들어갈까요.」

「아, 그건 저기 있는 유진이 할 거야.」

브라이언이 손을 흔들었다.

「미스터 유진! 오랜만입니다. 라스베가스에서 뵈었던 이후로 처음 뵙는군요.」

「오, 브라이언. 온다고 하더니 정말로 왔네? 이쪽에 와서 나 좀 도와 봐.」

브라이언은 진혁을 흘끔 바라보았다. 진혁은 고개를 끄덕여 암묵적으로 승낙했다.

「알겠습니다, 유진 쉐프.」

브라이언은 유진이라는 흑인 쉐프에게 다가갔다. 녹은 초콜릿을 형틀에 붓기 전에 밑 작업을 하는 것을 보며 돕기 시작했다.

좁은 컨테이너 안에는 다섯 명이나 되는 사람이 있어 북적거렸다. 초콜릿을 담당하는 유진 말고도 슈가 크래프트 반죽을 만들고 있는 쉐프도 있었다. 임진혁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럼 저는?」

실비안이 윙크했다.

「헤드 쉐프는 원래 일일이 참견하는 게 아니지. 전체를 보는 거야.」

그녀는 한쪽 구석에 물러나서 전체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다.

「타릴 쉐프, 반죽 상태를 살펴야지.」

「죄송합니다, 쉐프!」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으나 모든 것을 보고 있다. 여기에 있는 페이스트리 쉐프들이 악기를 연주하는 음악가들이라면 실비안 웨인스톡은 지휘자다. 뛰어난 지휘자는 연습 때, 연주를 시작한 오케스트라에서 단 한 명의 연주자가 하나의 음을 틀려도 바로 눈치챈다.

그리고 정말로 뛰어난 지휘자는 연주가 틀리기 전에 그것을 미리 예방한다. 문제가 생기기 전에 바로 끼어들어 알려 주는 것이다.

실비안 웨인스톡은 개인으로서도 매우 능력 있는 페이스트리 쉐프였으나, 지휘에 진정 탁월한 능력을 갖췄다.

‘장군으로 태어났다면 십만 군사를 호령했을지도 모르겠군.’

그는 예전에 알았던 아미파의 진철 사태를 떠올렸다. 그리고 연락한 지 오래된 금 씨 할매를 생각했다. 외모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다. 하지만 세 사람 모두 험난한 세상을 여자 혼자 몸으로 헤쳐나가 일가를 이루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비록 진혁 자신보다 어리더라도, 존경할만한 어른들이다.

실비안이 활기차게 말했다.

「여기 최종 설계, 한 번 볼래?」

「예.」

진혁은 건축 설계처럼 명확한 수치가 적힌 케이크 도면을 보았다. 변경된 수치를 보지 않아도 그림만 보아도 바로 무엇이 바뀌었는지 알 수 있었다.

「여기사가 좀 더 앞으로 몸을 굽히고 있군요.」

「그래, 그게 더 균형을 잡기 쉽지 않겠어?」

「아니요, 오히려 더 나빠질 텐데.」

「응?」

「앞쪽에 체중이 실리잖습니까. 저 검은 체중을 지탱할 수 있을 만큼 크거나 두껍지 않습니다. 바스타드 소드도 아니고.」

실비안 웨인스톡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아주 잘 아는군.」

「보면 알 수 있잖습니까?」

「그걸 못 하는 애들이 많다니까. 자, 그럼 너라면 어떻게 해결할래. 부피를 키울까. 그럼 이 검이 여기사의 양팔을 지탱할 수 있겠지.」

진혁은 실비안의 함정에 걸려들지 않았다.

「지금 이 비주얼에서 검이 더 커지면 케이크가 검을 장식하는 게 아니고 검이 케이크를 가르고 뛰쳐나올 텐데요.」

「잘 아네.」

「아, 바보가 아니라면 모를 수가 없죠.」

「그래, 그래서 내가 고민하고 있었단 말이지.」

진혁이 간단하게 말했다.

「접착력을 높이죠, 물엿을 씁시다.」

「물엿?」

「한국의 물엿이라는 액체 당에 제가 특별히 개발한 재료를 넣었거든요. 그걸 쓰면 뭐든지 붙일 수 있습니다. 접착력이 최고인 데다가 달콤하고 맛도 좋죠. 건강에도 좋고요.」

「보존은 얼마나 되는데?」

「뭐, 제가 살아있는 동안은 평생?」

진혁은 적당히 진기를 섞어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내공을 투입할 것이라고 설명해줄 수는 없으니 대강 둘러댔다.

‘물엿인 건 맞으니까.’

「한국에 그렇게 훌륭한 재료가 있었단 말이야? 제과제빵 쪽에서는 뒤처져 있는 나라인 줄 알았는데….」

「저 같은 쉐프도 나왔잖습니까.」

「겸손하지 않은 건 좋네. 가끔 동양에서 온 페이스트리 쉐프들은 실력이 있어도 지나치게 숙이는 경우가 있어.」

「하하하.」

여기사의 팔은 다시 원래대로 모양이 바뀌었다. 진혁과 실비안이 총 설계도를 들여다보고 있는 동안 실리콘 형틀에 부어진 초콜릿은 냉각기에서 굳어갔다. 슈가 크래프트 반죽 역시 충분히 만들어졌다. 후르츠 파운드 케이크 반죽을 비롯해 아이싱용 크림도 준비되어 있다.

이제 케이크 아이싱을 할 차례다. 유진 쉐프가 물었다.

「아이싱 먼저 하신다고 하셨죠.」

「당연하지.」

실비안 웨인스톡은 이 ‘케이크를 아이싱하는 순간’만은 다른 누구에게도 맡기지 않았다.

그녀는 앞으로 다가가 스패츌러를 쥐었다. 하얀 크림을 듬뿍 묻혀 케이크에 바르는 순간순간 망설임이 없었다.

조금 더 묻힌 곳은 바로 다시 문질러 균등하게 해 주었다.

거기 서 있던 페이스트리 쉐프들 모두 명인의 솜씨를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언제 봐도 대단하시다니까.」

「손이 굳지를 않아.」

「너희들도 나처럼 담배 안 피우고, 술 안 마시면서 이 나이까지 재미없게 살면 이렇게 될 거야.」

「에이, 실비안 쉐프. 담배는 그렇다 쳐도 어떻게 술을 끊어요.」

「자기 전에 와인 한잔이야 괜찮지! 호호호.」

다른 쉐프들이 농담 삼아 하는 말을 들으면서도 실비안은 손 한 번 떨지 않았다.

모두가 감탄하는 가운데 임진혁은 별생각 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다른 애들보다는 잘하네.’

브라이언은 속으로 생각했다.

‘임진혁 쉐프의 아이싱 솜씨는 벌써 실비안 쉐프를 초월한 건가? 도대체 얼마나 연습을 한 거야.’

그는 새삼스럽게 감탄하며 임진혁을 힐긋힐긋 보았다. 실비안 웨인스톡은 순식간에 3층 케이크의 아이싱을 끝냈다. 그녀가 손을 저었다.

「여기, 여기, 여기. 초콜릿 붙여나갈 데에 기둥 세워 주고.」

「예.」

유진 쉐프가 나무젓가락을 길게 뽑은 것처럼 생긴 막대를 세 개 꺼냈다. 무게중심을 맡아줄 솟대가 세워지고 나서, 그 주변에 초콜릿 갑옷의 가장 아래쪽에 위치할 신발 모양부터 만들어야 했다.

진혁이 말했다.

「비우지 말고 채웁시다.」

「응?」

「일부러 비워서 만들었는데, 이 상태로 가면 위쪽에 너무 높은 하중이 가해지잖아요? 이 통 안에 이것저것 넣어서 무게 지탱하죠.」

「뜨거운 초콜릿 같은 걸 부으면 바깥에 있는 초콜릿도 녹아버릴 텐데?」

「제가 개발한 특별한 물엿 2를 초콜릿 안쪽에 바르면 서로 붙지 않습니다. 그래서 안에 견과류를 넣은 소프트 쿠키 반죽을 밀어 넣건, 뜨거운 액체 초콜릿을 집어넣건 절대 녹지 않아요.」

「그렇게 편리한 재료가 세상에 어디에 있어?!」

「제가 만들었으니까 있죠.」

「아니, 그런 걸 어떻게 만들었는데.」

「기업 비밀입니다.」

「….」

유진 쉐프가 굵은 눈썹을 찌푸리며 따지고 들었다.

「아니, 그런 재료가 있었다면 벌써 예전에 제과제빵계를 석권했겠지. 화학적으로 그런 재료가 있을 수가 없어.」

「그래! 지금 이 동양에서 온 쉐프 놈이 말하는 수상쩍은 재료를 썼다가 다 무너져내리면 망한다구요, 시간도 지금 5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실비안 쉐프, 도대체 뭘 믿고 이런 애를 불러온 거예요. 이 바닥에 들어온 지 삼 년도 안 된 애송이라면서요.」

「말이 안 돼. 그렇게 뛰어난 내열성 있는 재료에, 접착성 있는 재료까지 개발했는데 특허를 내서 팔지 않고 혼자 쓰고 있다는 점은 이상하다고! 당장이라도 돈방석에 앉을 수 있을 텐데.」

「맞아, 맞아!」

두 사람의 보조 쉐프가 화를 내자 브라이언이 끼어들었다.

「얘 돈 많은데.」

「엥?」

「부인이 중국에서 손꼽히는 부자라서 돈을 벌 필요가 없습니다. 얘는 말이 삼 년 경력이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곁에서 빵 만드는 걸 보고 자란 애라고요. 요즘 말로 치면 조기 영재 교육을 받은 거죠. 빵을 아주 좋아하는 애예요. 얘가 여러분 빵을 무너뜨릴 리가 없습니다.」

「하아? 브라이언, 너는 좀 상식이 있는 줄 알았는데.」

「자, 자. 두 사람 그만해! 내가 데려온 손님한테!」

‘어떻게 하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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