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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의 베이커리-447화 (445/656)

제 447화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페이스트리 쉐프를 만난 것만으로도 이탈리아까지 온 보람이 있다.

‘확실히 세상이 넓어.’

평생동안 빵을 구워온 장인은 나름대로 자기만의 장기가 있기 마련이다. 이 사람은 불 조절에 대단히 능했다. 진혁은 돌아가기 전에 그 점을 배우고 싶었다.

‘<해와 달>은 화덕 피자 같은 건 하고 있지 않지만….’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비슷한 화덕을 만들어 빵을 구워 보고 싶었다.

‘김가영 씨가 얼마 전에 이천에 도자기 가마를 새로 설치했다고 들었는데. 가마 짓는 사람들이 화덕도 만들 줄 알려나?’

호텔 제빵사와 흥미로운 대화를 마치자 곧 한 비서가 진혁을 데리러 왔다.

「진혁 쉐프님 차례입니다.」

경찰은 비어 있는 객실로 진혁을 안내했다. 푸른 제복을 입은 남자가 고압적인 자세로 딱딱하게 말하고, 한 비서가 그에 대답했다. 나지막하고 단조로운 대화가 오가고, 경찰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서 있었을 뿐이었다.

‘이것도 나름 신기한 경험인데.’

최근 들어서 그는 어디에 가서도 무시당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찬밥 취급을 받아보니 신기할 정도였다.

심문이라고 하기도 뭐한, 짧은 면담이 끝나고 두 사람은 방을 나섰다.

스위트룸으로 돌아간 후 방 안에서 진혁이 말했다.

「나는 필요도 없을 것 같던데, 왜 부른 거야?」

「쓸데없는 의심을 받았으니까요. 동양인이라면 이탈리아의 귀한 골동품 따위에 관심이 많을 거라는 편견을 갖고 있더군요.」

「하?」

「진혁 쉐프님처럼 골동품에 관심 있는 데다가 부유한 동양인 부자라면 얼마든지 다른 사람을 시켜서 훔칠 수 있을 거라는 논리였습니다.」

터무니없는 트집 잡기에 진혁이 눈썹을 추켜올렸다.

「다른 사람이라? 그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 문제 아닌가.」

「지금 이 호텔에 머물러 있는 새로운 손님이 임진혁 쉐프님과 브라이언 쉐프님, 저밖에 없습니다. 이 호텔은 대개 예약이 꽉 차서 매년 오던 사람들이 계속 오는 모양입니다. 십여 년째 해 방문하는 밀라노의 대학교수 부부. 그 부부의 아들과 며느리, 로마에서 매해 이 시기마다 방문하는 조류학자. 거울을 감정하러 온 이탈리아인 고미술학자, 호텔 내부의 고용인 말고는 다른 사람이 없죠.」

진혁이 피식 웃었다.

「이 호텔 고객들은 우리 외에 전부 이탈리아인이군. 공교로운 일이야.」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한다. 이탈리아 경찰은 자국민이 아니라 이역만리 타국에서 온 이들을 먼저 의심한 것이다. 진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허어.」

브라이언이 어이없어하며 물었다.

「아니, 나는 여기에 있는 사람들하고 아무 상관이 없는데요. 거울이 사라졌을 때 그 일로 인해서 이득을 보는 사람을 찾아야 하는 거 아닌가.」

「현재로서는 이득을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게 경찰의 결론입니다」

「그게 말이 됩니까? 최소한 거울을 훔쳐간 사람은 그 거울을 어딘가에 팔아서 이득을 볼 수 있을 거 아니에요?」

한 비서가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

「대학교수 부부나 조류학자, 고미술학자 모두 그런 뒷 세계 커넥션 같은 건 없이 학자 노릇 하는 사람들입니다.」

「….」

‘그 사람들도 다 조사했구나.’

진혁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브라이언은 한 비서가 어째서 이런 사실들을 알고 있는지 전혀 의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미묘한 눈빛으로 브라이언을 응시했다.

‘똑똑한 줄 알았는데 의외로 눈치가 없단 말이지.’

브라이언이 손뼉을 쳤다.

「아! 호텔을 사려고 했던 사람! 거울이 도난당했으니까 그만큼 호텔 값을 깎을 수가 있을 텐데요」

「구매자는 미국의 부유한 의사입니다. 아내와 함께 신혼여행을 이 호텔로 왔다는군요. 그때 그 거울을 보면서 함께 찍었던 사진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어, 이 호텔을 사서 리모델링하려는 모양입니다. 거울이 없다면 아예 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판매자 입장에서도 곤란하죠」

한 비서가 덧붙였다.

「임진혁 쉐프님도 아시는 분이십니다.」

「내가 아는 미국 의사라고?」

「예, 얼마 전에 진혁 쉐프님이 만드신 빵을 먹으려고 한국을 방문하시기도 하셨죠.」

「그 쑥 베이글 노인네?」

진혁은 이미 그 사람의 이름도 잊어버렸다. 관심 없는 것들은 기억해 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 닥터 에드워드 해링턴은 은퇴하고 세계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부인과 함께 노후를 만끽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이 호텔을 구입해서 부인에게 깜짝 선물로 주려고 한 것 같더군요.」

말이 ‘같더군요’지 이미 다 알아봤다는 이야기다. 진혁이 혀를 찼다.

‘그 의사가 여기 머물고 있었다니, 세상이 좁긴 좁아.’

「아래층의 러브 스위트 룸에 머물고 계십니다.」

「아니 왜 여기는 패션 스위트고 거기는 러브 스위트야?」

「패션 스위트룸 쪽이 더 보안이 좋습니다. 부인분은 신혼여행 때에도 러브 스위트룸에 머물렀기 때문에 그쪽 방을 먼저 고르신 것 같습니다.」

‘그 노인네 신혼여행 투숙 장소까지 알아봤냐.’

진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 비서의 성격으로 미루어 보건대 100% 확실하지 않으면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을 것이다. 브라이언이 동석해 있는데도 숨기지 않고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신경이 쓰였다.

‘아까 심문할 때 같이 들어가달라고 했기 때문인가?’

달라진 점은 진혁 자신의 지시밖에 없다. 이전까지는 브라이언에 대해서 진혁에 딸려온 보조1 정도의 취급을 했지만, 지금은 진혁의 친구1 정도 대접을 해주고 있는 셈이다.

진혁은 눈을 가늘게 떠서 살피듯 브라이언을 바라보았다.

‘과연 이 녀석이 유일봉이나 진영이 형처럼 믿을만한 친구일까?’

브라이언이 머뭇거리다가 질문을 했다.

「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조금 상관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진혁은 브라이언을 재평가했다.

‘의외로 눈치가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미국에서 어떻게 네 빵 맛을 알고 한국까지 먹으러 갔어?」

‘궁금한 점이 그거냐?!’

진혁은 피식 웃어버렸다. 브라이언 신의 관심사 역시 ‘빵’밖에 없다.

「<해와 달>이 미국 지점 내고 있잖아. 진희가 개발한 건강에 좋은 빵들 우선으로, 병원 기반으로 시스템을 팔고 있어.」

「그 얘기는 언뜻 들은 것 같긴 한데.」

「그 병원 원장이 내가 만든 쑥 베이글을 먹어보더니 맛있다고 한국까지 찾아왔지.」

「쑥 베이글이라니! 정말로 참신한 생각이야. 나도 한번 먹어보고 싶다. 한국에서 먹어보고 올 것을!」

브라이언은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진혁이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경찰은 내가 범인이라고 의심하고 있다고?」

「알리바이가 너무 완벽해서 의심스럽다고 합니다.」

브라이언이 분개했다.

「멍청한 놈들! 범인이 아니니까 알리바이가 완벽할 수밖에 없잖아. 어쩐지 쳐다보는 얼굴이 심상치 않더라니.」

한 비서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돌아가신 회장님께서 고미술품을 좋아하셔서 꽤 수집하셨거든요. 미미 회장님 역시 물려받은 소장품에 이어 고미술품을 수집하는 것으로 꽤 유명합니다.」

「… 그러니까 내가 부인을 위해서 훔쳤다고 의심한다라.」

진혁이 떨떠름하게 물었다.

「한 비서, 혹시?」

「물론 저도 훔치지 않았습니다.」

「그래.」

브라이언이 말했다.

「어쨌든 우리가 한 일은 아니잖아? 우리는 그냥 빵을 만들고 돌아가면 되니까, 우리하고는 상관없지.」

「그게… 범인이 잡힐 때까지는 호텔에서 못 나간다고 하는군요.」

「뭐?」

당장 실비안 웨인스톡의 유명한 컨테이너 키친 스튜디오를 보려고 기대심에 가득 차 있던 브라이언이 분개했다.

「그럼 어떡해?!」

진혁이 짧게 말했다.

「법률적 근거가 있나?」

「푸른 옷을 입은 경찰은 이 근처 지역 경찰이 아닙니다. 군대의 하부 조직이라 군법을 따릅니다. 저희들도 지시를 따르는 편이 좋습니다.」

「….」

진혁이 천천히 미간을 좁혔다. 그가 미미하게 불쾌한 내색을 하자 한 비서가 말했다.

「원하신다면 뇌물을 줘서 봉쇄 조치를 파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브라이언이 벌컥 화를 냈다.

「뇌물?! 저 사람들이 지금 뇌물까지 요구했단 말이야?」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는 없어. ‘돈 많은 동양인’ 이미지로 남아 봤자, 돈을 더 뜯기기밖에 더하겠나.」

「그럴 가능성도 있기는 합니다.」

「범인을 오늘 내로 잡아서 증거와 함께 넘겨주면 돼.」

그는 귀찮은 듯이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브라이언이 분개해서 말했다.

「그래, 진짜 범인을 찾기는커녕 자유 시민을 감금하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놈들한테 본때를 보여주자고. 너하고 내가 함께 범인을 찾으면 분명히 알아낼 수 있을 거야.」

진혁은 범인을 알아낼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조사할 때 브라이언이 옆에서 찰싹 붙어 다니는 것을 원치는 않았다.

‘한 비서가 이것저것 이야기하는 걸 보고 정보의 출처를 의심하지도 않는 모습을 보면 추리력이 높은 편도 아니고….’

그는 대충 떠넘겼다.

「나는 거울을 살펴볼 거야. 너는 다른 사람들에게 탐문을 해.」

「나보다는 한 비서님이 탐문하는 게 좋지 않을까?」

「응?」

「한 비서님이 진짜 친화력이 좋잖아. 벌써 호텔 직원들하고 친해져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듣고.」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구나.’

눈치가 없지만, 생각을 아예 안 하고 사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

한 비서가 떨떠름하게 임진혁을 바라보았다. 진혁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게, 탐문은 한 비서가 해주면 좋겠네.」

한 비서가 호텔 직원들과 친하지 않을 것이라고 해명할 필요는 없다. 그는 알아서 직원들과 금방 친해질 것이다.

「그냥 뇌물 주고 해결하면 안 될까요.」

비서가 조그만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진혁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내가 알아서 처리할 수 있어.」

「알겠습니다.」

한 비서가 계단을 통해서 내려가자 브라이언이 심호흡을 했다. 그는 시뻘게진 얼굴로 말했다.

「아주 몹쓸 놈들이야. 왜 우리를 의심하는 거냐고.」

평소 온화하고 조용하던 이가 격렬하게 화를 내는 것을 보면서 진혁은 생각했다.

‘꼭 햄스터가 화내는 것 같네….’

진혁 역시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잔뜩 분노해서 펄펄 뛰는 사람이 옆에 있으니 더 침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브라이언이 화내는 모습이 전혀 무섭지 않았다.

‘어쩌면 이렇게 박력이 없을 수가 있지.’

이렇게 인상이 순하고 화내는 게 무섭지 않은 사람은 여러모로 쓸데가 많다. 외교관 일을 해도 좋고, 정보수집 쪽 일을 해도 좋다.

하지만 감옥의 옥지기로는 절대 못 쓸 것이다. 죄수들이 업신여기며 철장 밖으로 쓰레기를 집어 던질 테니까.

임진혁은 브라이언이 중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이것저것 생각해보았다.

‘중화요리 숙수를 해도 잘 하겠지.’

빵에 저렇게 집착하는 성격에 맛있는 것에는 환장하니, 무거운 철제 중화 냄비를 다루며 불 조절을 해야 하는 중국 요리도 잘 해낼지도 모른다.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노라니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큭.」

「아니, 뭐가 웃긴 건데? 지금 우리는 대회 준비를 하는 중이라고. 한 시간, 십 분, 일 초도 아까운 상황에서 실비안 쉐프의 지도를 받기 위해서 여기까지 날아왔단 말이야. 그런데 지금 저들이 부당한 이유로 함부로 의심을 해서 네 시간을 빼앗고 있다고!!」

「범인을 잡으면 해결될 문제야.」

진혁이 브라이언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는 자연스럽게 앞으로 걸어가 브라이언이 머무는 방으로 향했다. 어젯밤에도 브라이언이 사용한 침대는 그새 종업원들이 정리했는지 시트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브라이언이 미간을 찌푸렸다.

「분명히 방해하지 말아 달라고 했는데 청소를 하고 갔네.」

「흐음.」

「혹시 뭔가 없어지기라도 한 건 아니겠지.」

「설마.」

「기다려 봐.」

브라이언이 주먹을 꽉 쥐며 의지를 다졌다.

「뭔가 없어지기라도 했으면 가만 안 둬. 미국 대사관에 신고할 거라고. 나는 당당한 미국 시민인데, 이런 차별을 받고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그는 자신의 캐리어를 뒤지기 시작했다. 진혁은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그럼 나는 아래층에 잠시 다녀올게.」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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