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446화 (444/656)

제 446화

「저놈이 좀 건방지죠. 저래 봬도 커피 하나는 기가 막히게 내립니다. 입이 험해서 그렇지 나쁜 놈은 아닙니다. 두 분, 스위트룸 손님이죠?」

「예.」

「집안의 반대로 홍콩에서부터 도피해 온 재벌가의 연인이라던데 진짭니까?」

「X발 아닙니다!」

브라이언이 욕설을 섞어 대답했다. 진혁은 브라이언이 욕을 하는 걸 처음 보았다. 이탈리아인 페이스트리 쉐프 카를은 멋지게 기른 카이저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아니군요. 그럴 줄 알았습니다.」

「예에….」

「그렇다면 비서를 데리고 올 리가 없지요.」

「오데스칼키 성에서 올릴 결혼식 때문에 초청받은 페이스트리 쉐프입니다. 이 사람도, 나도. 비즈니스적인 관계죠.」

진혁이 짧게 설명했다. 브라이언이 놀란 눈으로 진혁을 바라보았다. 카를이 말했다.

「우리 호텔에는 보통 은퇴한 사업가 부부들이 찾아옵니다. 동양인 손님들이 오시는 경우는 드물죠, 그렇다 보니 저놈이 오해를 해서 손님들을 불쾌하게 만든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진혁이 피식 웃었다. 그는 이 정도의 일로 불쾌하지는 않았다.

「덕분에 잘 웃었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다른 점이었다.

「그러면 잠시만 여기 앉아서 기다려 주시죠, 포카치아면 됩니까?」

「아뇨, 여기에 있는 빵은 종류별로 다 먹어보고 싶은데요.」

카를이 눈썹을 추켜올렸다.

「두 분이 드시기엔 좀 많은데?」

「다 먹을 수 있습니다.」

「그래요?」

카를이 주방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주방 문 사이로 언뜻 거대한 화덕이 엿보였다. 오븐이 아니라 화덕이다. 구식 아궁이를 닮은 그 생김새를 보고서 브라이언이 감탄했다.

「여긴 진짜로 제대로네.」

「저 화덕은 꽤 오래된 거로 보이는데.」

「그렇죠, 모르는 사람들은 도난당한 거울이 이 호텔에서 제일 귀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 호텔에서 가장 큰 보물은 이 화덕입니다. 이래 봬도 사백 년이 넘었죠. 아직까지 현역입니다! 하하하하. 내가 어렸을 때도 여기에 있었고, 내가 죽어서 썩어 없어져도 여기에 있을 놈인데.」

안쪽에 언뜻 엿보이는 치아바타는 진혁이 잘라 구워낸 것과는 크기부터 달랐다. 2인용 책상 크기는 될 정도로 거대한 철판 위를 전부 얇은 빵이 차지하고 있었다. 카를은 그 빵 위에 칼집을 넣어, 식빵 크기만큼 조그마한 조각을 잘라냈다.

「하나씩요, 아니면 한 사람당 하나씩?」

브라이언이 말했다.

「나는 포카치아 하나면 됩니다.」

「알았슴다!」

진혁은 메뉴판을 보았다. 이 빵집에는 빵 종류가 그리 많지 않았다. 지금 시간에 가능한 빵은 다섯 개 정도 됐다.

「치아바타, 포카치아. 그리고 마르게리타 피자, 루꼴라를 얹은 고르곤졸라 피자, 그리시니.」

그리시니 말고는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는 빵들이다. 포카치아 역시 동그란 빵을 집게로 철판 위에서 골라내 유산지로 감싸 바로 건네주었다.

어린애 팔뚝을 길게 늘이고 가운데에 밭이랑을 파놓은 것처럼 생긴 치아바타는 진혁이 다큐멘터리에서 본 것과 생김새부터 달랐다.

‘그건 작고 납작하게 잘라놓은 식빵처럼 생겼었는데.’

이것저것 바르기 쉽게 일부러 변형했는지도 모른다. 진혁은 빵 모양이 바뀐 이유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방금 받은 빵을 살폈다. 한 손에는 치아바타, 그리고 다른 손에는 포카치아를 들었다.

포카치아만 하나 받은 브라이언도 빵 냄새를 맡으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전까지 바리스타와 함께 나누었던 불쾌한 대화 따위는 이미 깨끗이 잊어버렸다.

「나가서 먹을까?」

「응」

이 빵집 안에는 실내 탁자가 없었다.

그래서 진혁은 먼저 받은 빵을 종이 포장째 손에 들고서 투명한 유리문을 열었다. 유리문 바깥의 소규모 정원에는 철제 야외 테이블이 있었다. 2인용 탁자에 앉은 진혁은 먼저 치아바타를 한 입 베어 물었다.

‘호오.’

과연 자랑할 만했다.

화덕의 치솟는 불길로 충분히 익힌 치아바타는 손에 닿았을 때부터 따끈따끈했다. 이미 구운 빵을 계속해서 철판으로 데워 두었다가 마지막에 한 번 더 불맛을 입혀 내보낸 것으로 보였다.

식사 빵답게 식감이 거칠었다. 하지만 계속 씹다 보면 빵이 부드러워지며 그윽하게 숨어있는 짠맛이 아스라이 느껴진다. 진혁은 이 빵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내가 구운 치아바타는 치아바타가 아니네.’

진혁이 이전에 먹어본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낸 빵은 치아바타라기보다 얇은 비스킷에 가까웠다. 그는 포카치아를 훑어보았다.

진혁이 고급 치즈를 두서너 종류를 올린 데다가 선드라이 토마토니 뭐니 잔뜩 토핑을 얹은 것과는 확연히 대조되는 모양새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포카치아 위에는 녹색과 검은색 올리브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임진혁이 치아바타를 먹는 동안 브라이언은 포카치아를 먹었다. 진혁이 물었다.

「포카치아는 어때?」

「딱 정통 포카치아. 그 밖에 뭐라고 표현할 말이 없네.」

「흐으음.」

진혁이 만든 직사각형 모양의 포카치아와 달리 이 빵은 동그랬다. 한국에서 겨울철에 파는 호떡처럼 동그랗고 납작하게 생겼는데 그 위에 치즈 없이 올리브만 여섯 개를 올렸다. 검은 올리브 세 개와 녹색 올리브 세 개가 여섯 개의 눈알을 가진 거미처럼 진혁을 마주 보았다. 진혁은 이 빵을 반으로 갈라 보였다. 공기가 그리 많이 들어가지 않은 빼곡한 빵 속내가 선명히 드러났다. 진혁은 빵 덩어리를 주욱 찢어 입으로 가져갔다.

「아.」

소금과 밀가루 외에는 아무것도 넣지 않은 무 발효 빵이다. 심지어 버터도 넣지 않았다.

우리가 매일같이 밥을 먹는 것처럼 이 사람들은 아침마다 빵을 먹는다. 식사할 때 밥 위에 이것저것 올리기도 하지만, 대개는 그저 맨밥을 먹고 다른 반찬을 먹는다.

진혁은 왜 이탈리아인들이 자신의 빵에 대해서 ‘포카치아가 아니라고’ 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소금과 밀가루, 물만 넣어서 반죽했군요.」

「그렇죠! 그게 바로 이탈리안 빵의 쏘울입니다. 손님이 만드신 것처럼 화려하고 이것저것 많이 올라간 빵은 아주 맛있죠, 맛있지만 매일 먹을 수는 없어요」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맛있습니다.」

「하하하! 이게 내 실력이 아닙니다. 다 오븐 덕분이지.」

50대는 되어 보이는 페이스트리 쉐프가 자랑스럽게 주방을 가리켰다.

「내가 솔직히 여기 오기 전에 다른 데서도 빵을 구워 봤거든. 밀라노에서 난다 긴다 하는 빵집에서도 일해 봤고, 콜로세움 앞의 유명한 빵집에서도 있었지. 그래도 이 화덕만큼 마음에 드는 놈은 없어요.」

「좋군요. 저희 아버지도 오랫동안 한 오븐을 쓰셨는데, 그래서 새 오븐을 들일 때 굉장히 마음 아파하셨어요.」

「오, 우리 집도 대대로 빵을 굽고 있죠. 내가 10대째 즘 되나? 그쪽은 몇 대 동안이나 빵을 구웠어?」

「저하고 아버지요.」

「하하하하! 피자 받아가요.」

마르게리타 피자 위에도 토핑이 없다시피 했다. 방금 반죽해 얇고 따끈따끈한 피자 도우 위는 토마토소스가 발라져 있었고, 모차렐라 치즈가 드문드문 보였다. 다른 것은 올라가 있지 않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동그란 피자는 성인의 주먹보다 조금 더 큰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둥글고 납작하며 작다.

브라이언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

「저도 마르게리타 피자 하나 주세요.」

「좋아! 금방 만들어 주죠.」

진혁은 피자를 바로 물어뜯어 삼켰다. 용맹한 그 모습에 카를이 놀랐다.

「거, 그러다가 혀 데어! 아주 뜨겁다구.」

「괜찮습니다.」

진혁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띄웠다. 들어간 재료가 적은 만큼 도우의 맛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피자 도우는 연한 상아색을 띠었으며 가장자리는 노르스름하게 구워져 있었다. 가장자리는 바삭바삭하면서도 가운데는 폭신폭신하다.

담백한 빵과 짙은 토마토소스, 그리고 아주 적은 양의 모차렐라 치즈는 혀 위에서 현란한 라틴계 춤곡을 추는 것처럼 환상적인 궁합을 이루었다.

「으으으음.」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도 맛있네요.」

「그렇지! 여기는 사실 숙박보다는 빵 맛이 좋기로 유명합니다. 어제와 오늘은 저 망할 놈의 도난 사건 때문에 손님을 못 받게 해서 화덕이 놀고 있지만 말이지요….」

카를이 한숨을 쉬었다. 그는 이마에서 송골송골 솟는 땀방울을 닦아내며 말했다.

「요 앞의 마을 사람들은 물론이고, 관광객들도 이곳에 들러서 빵을 사 가는 곳인데. 지금 외부인들은 들어오지도 못하고 있으니, 이틀 동안 빵을 전혀 팔지를 못했어. 심지어 안에 있는 손님들은 도둑으로 의심받고 있으니 어디 빵 먹을 맛이 나겠느냐고요.」

「저희는 그런 이야기는 듣지를 못했는데요」

「경찰에서 사정 청취를 하러 오지 않았습니까?」

「딱히 들은 건 없는데요.」

진혁과 브라이언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때 파란 옷을 입은 경찰과 함께 한 비서가 빵집으로 들어왔다.

「임진혁 쉐프님, 브라이언 쉐프님.」

「무슨 일인데?」

「경찰에서 거울 도난 사건 때문에 사정 청취를 한다고 합니다.」

한 비서가 빠르게 말했다.

「임진혁 쉐프님은 거울이 도난당한 시점에 밖에 있었지만, 브라이언 쉐프님은 실내에 계셨으니까요.」

브라이언이 말했다.

「난 자고 있었는데요.」

비서가 경찰에게 말했다. 두 사람은 이탈리아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경찰이 무어라 계속 이야기했다.

한 비서는 경찰의 말을 진혁과 브라이언에게 설명해 주었다.

「면담을 원하십니다. 일단 패션 스위트룸의 일행들은 도난 사건 당시에 전부 외출하고 없었고, 실내에 있었던 한 사람도 방에서 나간 적이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도 면담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브라이언이 물었다.

「제가 나간 적이 없는지 어떻게 압니까?」

한 비서가 말했다.

「깊이 주무시고 계실 때 브라이언 쉐프의 상태가 나빠질까 걱정이 됐습니다. 그래서 노인용 팔찌형 의료기기를 채워드렸죠.」

「예??」

「사용자의 심박이 갑작스럽게 올라가거나 내려가면 저에게 알람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잠에서 깨거나 샤워를 하거나 움직였다면 알람이 울렸을 겁니다. 하지만 깨지 않고 잘 주무시더군요.」

브라이언이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아, 죄송합니다. 자기 관리를 못 해서 걱정을 끼쳤네요.」

「한국에서도 내내 열성적으로 일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러실 수 있지요.」

진혁이 말했다.

「그럼 그냥 빨리해 버리지, 내일 제과제빵 스튜디오에 갈 시간을 뺏기고 싶지는 않아.」

「그럼 브라이언 쉐프님 먼저 이야기를 나누시겠습니까?」

「예.」

브라이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경찰을 따라갔다. 진혁이 턱짓했다.

「따라가.」

「경찰 쪽의 영어-이탈리아어 통역이 있을 겁니다.」

한 비서는 어디까지나 임진혁을 보필하기 위해 여기에 있었다. 브라이언을 위해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이쪽에서 이탈리아어 통역이 있는 편이 낫지. 좀 봐줘.」

「예.」

두 사람을 보내고서 기다리는 동안, 진혁은 빵집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는 카를과 몇 마디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훌륭한 화덕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어서 유감이네요.」

「보여 드리는 거야 어렵지 않죠, 영업시간 후에 이쪽으로 오면 보여 드릴 수는 있습니다.」

「그래도 될까요?」

「물론이죠!」

곧 루꼴라 잎을 올린 고르곤졸라 피자도 나왔다. 진혁은 손바닥만 한 피자를 그대로 한입에 먹어버렸다.

「갓 구운 피자가 정말로 맛좋군요.」

「하하하! 진짜 맛있는 피자에는 말이죠, 탄산음료 따위는 필요 없어요. 피자 자체만 먹어도 달콤하니까.」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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