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445화 (443/656)

제 445화

「아침에만 마실 수 있습니다.」

브라이언이 의아해하며 눈썹을 추켜올렸다.

「우유가 다 떨어졌나요? 그럼 라떼도 안 됩니까?」

「카푸치노는 아침에 마시는 겁니다, 손님.」

「아니, 우유도 있고 아무 문제가 없는데 뭐가 문젭니까. 손님이 만들어 달라는데.」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고 있자 기다리고 있던 진혁이 일어나서 카운터로 갔다.

진혁이 물었다.

「카푸치노 한 잔 더 부탁할 수 있습니까?」

「카푸치노요! 원래 아침에만 제공하는 메뉴입니다만… 손님께서 원하신다면요! 예에,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방금 전에 브라이언이 카푸치노 한 잔을 얻기 위해서 따지고 들었을 때와는 백팔십도 다른 태도다.

탁자에 앉아 있던 브라이언이 허망하게 말했다.

「아니, 왜 사람을 차별하는 거야…?」

주문하고 돌아온 진혁이 말했다.

「빵을 준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겠지.」

「으으.」

진혁은 눈을 감고서 커피를 기다렸다. 한국에 들어선 외국인들은 공항서부터 김치 향을 느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진혁이 보기에는 이 카페테리아에 갑자기 강렬한 치즈가 나타난 것처럼 느껴졌다.

‘발효 식품은 원래 냄새가 강하긴 하지. 그런데 부엌이나 식당도 아닌데 이렇게 카페테리아까지 꼬릿꼬릿한 치즈 향이 같이 있단 말이지.’

진혁은 바리스타를 흘긋 보았다.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섞고 나서 거품기로 크림 휘핑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두 사람이 커피를 받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고마워요.」

「맛있게 드십시오.」

꽃무늬가 그려진 예쁜 도자기 잔에 담긴 커피 위에는 라떼 아트가 그려져 있었다.

두 사람의 것 모두 커피잔 모양이었다.

브라이언이 커피를 입으로 가져가며 기대감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이탈리아식 정통 카푸치노 맛이 궁금했단 말이야.」

「그냥 카푸치노를 마시고 싶었던 거야?」

「원래 카푸치노를 좋아해. 우유를 섞은 데다가 그 위에 시나몬까지 뿌리잖아. 우유도 좋고 커피도 좋고 시나몬도 좋아한단 말이야. 내가 좋아하는 삼총사가 한 컵 안에 모였는데 어떻게 안 마실 수가 있겠어? 더군다나 이탈리아는 카푸치노가 맛있다고 하는 나라니까 말이야.」

평소 프랜차이즈 커피숍의 벤티 사이즈 커피잔에 익숙해진 브라이언은 조그마한 커피잔을 소중한 듯 한 손으로 감싸 안았다. 코끝에서 감도는 향기를 잔뜩 들이마신 다음에 혀끝을 검은 물 위에 갖다 댔다.

「흠. 그래도 아침이 아니면 아예 주문할 수 없다고 하니, 일찍 일어나서 마실 수밖에 없겠군.」

브라이언은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고서 탄성을 질렀다.

「카푸치노를 마시기에 제일 좋은 시간은 바로 지금 이때라고! 커피 진짜 좋다.」

「다르긴 다르네.」

진혁 역시 눈을 감고 커피의 향을 즐겼다.

신선한 커피 완두를 직접 볶아 갈아 내린 이 커피에서는 진한 향기와 함께 정성이 느껴졌다. 다양한 종류의 커피 원두를 블렌딩해 독특한 이곳만의 커피 향이 난다.

‘이 동네 커피는 다 이런가? 수준이 높긴 높아. 여기도 많이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마셔 봐야겠다.’

아까 흘깃 보았을 때는 이곳에도 작은 빵집이 딸려 있어 그곳에서 식사 빵을 파는 거로 보였다.

‘밀가루나 재료를 사서 만들어 보는 것도 좋지만, 이 동네 손맛이 어떤지도 조금 봐야겠어.’

진혁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아.’

아까 도어맨 안토니오가 진혁의 빵을 갖다 준 이후부터 이곳에서 치즈 냄새가 난다.

그만큼 진혁의 빵에서 강렬한 치즈 향이 풍기는 것이었다.

‘내 빵 때문이구나.’

그는 치즈의 냄새 따위는 잊어버리고 다시 커피에 몰두했다.

진혁과 브라이언이 커피 삼매경에 빠져 있는 동안 이탈리아인 바리스타도 아까 받은 빵을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

아주 맛좋은 향기가 풍기며 위장을 자극한다.

하지만 지금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는 주방에서 먹을 수는 없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고서 작은 ‘잠시 휴식’ 팻말을 내걸었다.

거울 도난 사건 때문에 새로운 손님을 받지 못하고 있는 지금, 카페테리아는 진혁과 브라이언 외에는 없이 한산했다.

바리스타는 입구를 힐긋 바라보았다. 아침나절에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은 미국에서 온 부부 한 쌍밖에 없었다. 어제 새로 체크인한 이 한국인 남자 커플 한 쌍은(커플이 아니라면 왜 스위트룸을 함께 쓰고 있겠는가?) 사이좋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는 사람이 들어오면 바로 알 수 있는, 입구에 가까운 자리의 탁자에 앉았다.

그리고 방금 받은 빵을 한 입 베어 물었다.

「허어어어.」

모차렐라 치즈는 어머니가 준비해 놓은 겨울 이불처럼 따스하고 포근하게 선드라이 토마토와 올리브를 감쌌다. 찰기 있고 단단하게 밑을 받쳐주는 빵과 어울리는 치즈, 그리고 이탈리아산 채소들. 잘게 썬 페퍼로니에서 새어 나온 짭조름한 소금 맛이 모차렐라 치즈에 짙게 배어들어 아주 먹기 좋았다.

맛있는 빵을 먹는다는 것이 바로 삶을 즐기는 일이다.

맛있는 음식과 향긋한 커피, 아름다운 여자를 사랑하는 이탈리아 남자에게 있어 낯선 음식을 발견해 황홀한 맛의 언덕을 오르는 것처럼 기쁘고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빵을 다 먹어버린 바리스타는 잠시 동안 여운에 잠겨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혀로 위아래 잇몸과 입천장을 문질러도 더 이상 그 쫀득쫀득하니 씹는 맛은 느낄 수 없다.

이미 먹어버린 빵은 다시 또 먹을 수는 없다.

심지어 파는 물건도 아니고, 손님이 만들어준 빵이다.

휴지에 손을 문질러 닦고서 그는 진혁에게 달려갔다.

이 빵이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방금 전의 그 빵을 직접 구우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스위트룸 주방에서!」

그 역시 이곳의 식구이니만큼 패션 스위트룸의 주방에 갖춰진 오븐이 얼마나 빈약한지 알고 있었다. 이렇게 쫄깃한 빵을 구워내기 위해 얼마나 반죽해야 하는지도 알았다. 초보자들은 모차렐라 치즈를 빵 위에 얹는 타이밍을 놓쳐 이 신선하고 탱탱한 보물을 태워 버리는 죄악을 저지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 동양에서 온 자는 지옥으로 향하는 일곱 가지 길을 전부 피해갔다.

첫째, 충분한 힘으로 시간을 들여 반죽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둘째, 소금의 양을 잘못 조절해 간이 맞지 않아 싱겁거나 짜다.

셋째, 불필요한 재료를 많이 넣어 순수한 빵의 맛을 가린다.

넷째… 여하튼 셋째 항목에 아슬아슬하게 걸리기는 하지만 이 빵은 아주 맛있었다.

「뭐, 그렇죠.」

진혁이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그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빵을 먹고 나서 표정이 변해 달려오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빵이 너무 맛있는데 저희 가게에서 일을 해주신다면….’ ‘내 개인 페이스트리 쉐프로 초청하고 싶은데….’ 따위의 스카웃 제안을 받는 데에도 익숙했다. 이미 하도 많이 받아왔기 때문이다. 그는 이 바리스타 역시 비슷한 제안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그는 진혁이 전혀 생각지 못한 반응을 했다.

「이게 바로 전통 한국식 빵인가요? 아주 맛있는데요?」

「이탈리아식 포카치아인데요.」

「하하! 손님. 농담이죠?」

「….」

「….」

잠시 서늘한 침묵이 내리 앉았다. 바리스타가 웃으며 말했다.

「이탈리아식 포카치아는 미국식 피자처럼 이렇게, 뭐 손님 빵이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뭘 잔뜩 올리는 빵이 아닙니다. 다르죠, 달라!! 멍청한 미국놈들이야 피자 위에 파인애플이니 뭐니, 있는 대로 아무거나 쳐올리는데. 포카치아에는 포카치아만의 미학이 있는 겁니다. 이렇게 빵 위에 식재료를 잔뜩 올리지 않아요.」

진혁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한국계지만 미국인인 브라이언 신이 발끈해서 끼어들었다.

「음식이 다른 나라에 전해지면서 달라지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현지화되면서 현지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재료를 올리는 것도 그렇고요.」

그는 자신을 입양해 키워준 고국을 옹호했다.

「그야 진정한 음식의 맛을 모르니까 그렇죠. 생각해 보세요. 맛을 모르는 사람들이야 좋다고 하니 이것도 넣고 저것도 넣고, 무식하게 요리를 망치기도 하죠. 그게 다 외국인들이 하는 소립니다. 심지어 요즘은 파스타 면을 알덴테가 아니라 부드럽고 말랑말랑하게 삶아달라는 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있단 말입니다. 세상에! 그런 끔찍한 짓이라니!」

「알덴테가 제일 맛이 좋다고 정한 사람이 있습니까?! 이탈리아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다고 해서 그게 반드시 옳은 건 아닙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이 더 좋은 음식이 아닐까요? 그리고 카푸치노는 아침이 아니라 오후에 먹어도 맛있습니다!」

고장 난 수도꼭지 두 개가 서로 누가 더 물을 많이 쏟아내는지 다투는 것처럼, 두 사람은 서로 독설을 콸콸 쏟아내며 싸웠다.

「카푸치노는 당연히 아침, 제일 이른 시간에 마시는 겁니다! 오후와 저녁에는 에스프레소죠!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시는 분이군요!」

약간 충격을 받아 멍하니 있던 진혁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제가 만든 빵이 포카치아가 아니라고요.」

「예, 아닙니다.」

임진혁은 자존심이 상했다. 브라이언이 ‘이탈리아식 뉴욕 스타일이네.’라고 언급했던 것은 그냥 듣고 웃어넘겼지만, 본토 이탈리아인이 아예 ‘포카치아가 아니다’라고까지 선언할 줄은 몰랐다.

「이탈리아인들이 뉴욕에 연 빵집에서 판매하는 빵을 보고 만들었습니다만.」

「아, 그 타락한 민족의 배신자들 말입니까? 그런 걸 따라 하시면 안 되죠. 갑시다.」

「예?」

갑자기 어디를 가자는 말인가? 진혁이 눈을 껌뻑거리자 바리스타가 나무 팻말에 꽂혀 있던 메뉴판 종이를 바로 뽑아냈다. 그리고 두루마리 통에서 <임시 휴업> 종이를 꺼내 펴더니 압정으로 꽂아 버렸다.

「….」

「내가 진정한 포카치아가 뭔지 보여주지요.」

그는 두 사람이 따라오는 것도 확인하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서 앞으로 나섰다. 아껴 마시던 카푸치노를 그대로 원샷해버린 브라이언이 따라갔다. 진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바리스타를 따라갔다.

나란히 걷는 두 사람을 보고서 바리스타가 양팔을 극적으로 벌리며 말했다.

「손님, 제가 손님의 뜨거운 사랑에 대해서 뭐라고 할 말은 아닙니다만, 빵 굽는 솜씨는 아주 좋지만, 애인을 고르는 솜씨는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예?」

황당한 소리에 진혁이 미간을 좁히자 상대가 물었다.

「두 분이 연인 아니십니까?」

「아닙니다.」

「절대 아니에요.」

「저는 결혼했습니다.」

「저도요.」

바리스타가 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제가 실례했군요! 두 분이 관계를 숨기고 계시는데 제가 눈치 없이.」

「아니, 아니라고요. 이 친구 부인이 남편이 피곤할지도 모른다고 멋대로 비즈니스 룸을 스위트로 업그레이드한 겁니다.」

브라이언이 해명하려고 했다.

「그래요, 사랑은 아름다운 겁니다.」

하지만 바리스타는 킬킬 웃으며 계속 걸어갈 뿐이었다. 전혀 납득한 것 같지 않았다.

「아… 네… 뭐….」

진혁이 중얼거렸다.

「어쩐지 내 침대 위에 장미꽃이 뿌려져 있더라.」

「그랬어?!」

「이 호텔만의 서비스인 줄 알았지.」

「….」

그들은 카페테리아를 나와 로비 곁에 있는 문으로 들어갔다. 고풍스럽게 세공된 목제 벽에는 그림들이 걸려있었다. 붉은 융단이 깔려 있는 복도를 지나자 식당이 보였다.

바리스타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이곳이 바로 우리 호텔의 자랑, 카넬리아 빵집입니다.」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안쪽에서 배어 나오는 열기, 그리고 향긋한 빵 굽는 냄새. 그는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편안함을 느꼈다.

「좋은 향기가 나는군요.」

「그렇죠? 페이스트리 쉐프인 카를이 포카치아를 기가 막히게 굽는답니다. 어이, 카를!」

「뭐야, 이 놈팽아! 카페테리아 오픈 시간에 왜 여기를 와 있는 거야.」

바리스타가 손을 흔들었다.

「아까 안토니오가 나눠준 빵, 여기도 돌아갔나?」

「그 미국식 피자 빵 말이야? 미국 빵치고 꽤 맛있던데.」

진혁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미국식 피자 빵이 아니고 미국식 포카치아입니다.」

「하하하하! 손님, 농담도.」

「….」

바리스타가 배를 탕탕 두드리며 말했다.

「그래서 카를, 여기 있는 두 분께 진짜 이탈리아식 포카치아를 맛보여드려야 한단 말이야.」

「알았어! 알았으니까 네놈은 가서 일해라!」

「지금 손님도 없는데.」

「손님이 없으면 경찰 여러분에게라도 뜨거운 에스프레소를 대접해 드려! 안토니오한테 못 들었나?」

「아, 알았어. 가면 되지, 가면 되잖아!」

바리스타는 투덜거리며 빵집을 떠났다. 그러면서도 한 마디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럼 진짜 이탈리아 빵을 맛보시라고요,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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