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444화 (442/656)

제 444화

「후후후, 뭐부터 먹을까.」

화장실에 다녀온 브라이언 신은 입맛을 다시며 조리대 앞으로 다가갔다. 애니메이션 속에 등장하는 삼류 악당처럼 양손을 활짝 펼치고 발끝을 세운 채로 걸어가는 모습에 진혁이 피식 웃었다.

「그건 뭐야?」

「내가 다가가는 걸 보고 무서워하면서 맛있는 빵들이 도망가버릴 수도 있으니까~.」

「실없긴.」

‘어렸을 때 이민 간 애들은 다 이런가?’

강마리오나 브라이언이나 하는 짓이 비슷하다. 브라이언이 알면 펄쩍 뛸 생각을 하며 진혁 역시 자신이 만든 빵에 손을 가져갔다.

이곳에서 바로 어제 만들었다는 모차렐라 치즈는 눈으로만 보기에도 신선도가 달랐다.

‘가격만 맞으면 이걸 직접 수입해서 쓰고 싶긴 한데. 오는 도중에 상할 테니까….’

<해와 달> 본점이 있는 신촌.

그곳에도 프랑스산 재료를 고집하는 빵집이 있다. 진혁은 한국에서 나는 신선한 식료품들이 있는데 어째서 굳이 운송료까지 내면서 멀리서 돈을 많이 내고 수입을 해오는가 의아해했었다.

하지만 이곳의 토종 밀가루나 치즈를 보면 확실히 맛이 내는 맛이 달랐다.

‘좋긴 좋아. 한두 번 먹기에는 나쁘지 않지. 여기서만 나는 재료로만 만들 수 있는 빵이 분명히 있어.’

하지만 한국의 기후, 토지에서만 나는 식품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출신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재료를 만져 보고 싶은 제과제빵사로서의 욕망.

가까운 지역에서 나기 때문에 유통기한을 늘리기 위해 첨가제 등을 사용할 필요가 없는, 신선한 한국산 재료를 좀 더 사용하고픈 마음.

두 가지 욕망이 소용돌이치며 엉켜서 진혁의 마음을 쿵쿵 두드렸다.

‘어떻게 하면 될까.’

답은 간단하다. 지금 선택할 필요가 없다.

‘둘 다 하면 되지.’

지금 진혁은 이탈리아에 있고, 이곳의 식재료는 생생하게 살아있다.

손에 닿는 재료를 아무거나 써서 만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굳이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한국에서는 한국 재료로 빵을 만들고, 이곳에서는 또 여기 재료로 여기서만 만들 수 있는 빵을 만들면 돼.’

진혁이 재료들을 꿰뚫어 보듯 사색에 잠겨 먼 곳을 보는 동안 브라이언은 빵을 맛보았다. 그는 포카치아를 한입 물고 눈을 감았다.

푸르디푸른 이탈리아의 바다가 눈 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짭조름하게 간이 된 모차렐라 치즈.

신선한 토마토와는 다르게 바삭하게 씹히는 선드라이 토마토.

짙고 농후한 향을 더하는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

겉은 파삭하고 안은 쫄깃한 포카치아 빵.

이 발효되지 않은 포카치아 빵을 반죽해서 굽기 위해 진혁은 새벽에 일어났을 것이다.

브라이언은 감격해서 눈물을 흘릴 것만 같았다.

「나는 네가 여기까지 데려 와줬는데 은혜도 모르고 잠만 잤는데, 그런 나를 위해서 이렇게 맛있는 빵을 구워 주다니… 진혁, 너는 정말로 진정한 친구야.」

「엥?」

어차피 많이 만들었기 때문에 적당히 시식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진혁은 굳이 이 사실을 브라이언에게 알려주지는 않았다.

「먹어보니까 어때?」

「음, 맛있어. 그런데 포카치아는 아니네.」

「어?」

분명히 제대로 된 포카치아를 만들었다고 생각했던 진혁이 눈썹을 추켜올렸다.

「정말 환상적으로 맛있지만 말이야.」

「그래? 어떤 면에서?」

「토핑이 많아. 마치 한국 스타일 피자 같달까.」

「호오?」

「이 동네 포카치아는 치즈도, 토핑도 그렇게 많이 얹지를 않거든. 어디까지나 식사용 빵이니까 이렇게 듬뿍듬뿍 올리는 경우는 드물지. 반면에 한국식 피자는 피자 위에 진짜 올릴 수 있는 모든 것을 올리잖아. 그런 느낌이야.」

「음….」

진혁은 방금 전에 포카치아를 만들 때 참고했던, 이탈리아식 제과제빵 다큐멘터리의 한 컷을 보여 주었다.

브라이언이 눈을 깜빡거렸다.

「이거 이탈리아식 제과제빵이 아니고 이탈리아식 뉴욕 스타일이네. 지금 이거 한 편 보고 만든 거야?」

「응.」

「그게 어떻게 가능해? 빵 레시피를 알려준 것도 아니고 다 만들어진 빵 사진이 휙 지나간 것뿐인데.」

「포카치아 반죽하는 것도 보여주고, 토핑 올려주는 것도 보여주고.」

「어느 정도의 온도에 몇 분 굽는지도 안 나와 있잖아.」

「그건 구워져 나온 빵 보면 대충 알지.」

「맙소사… 넌 정말 양파 같은 페이스트리 쉐프야. 까도 까도 새로운 능력이 끊임없이 나와.」

「넌 못해?」

「묻지 마!」

브라이언이 장난스레 성을 냈다.

「알았어, 알았다고. 빵 리뷰나 좀 해 봐.」

진혁이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브라이언은 포카치아를 다시 집었다.

‘여기에 토마토소스까지 미리 빵에 발라 놨으면 정말로 피자 같겠는데.’

뜬금없이 피자가 먹고 싶어지는 맛이다. 두 번째 포카치아를 우물거리며 브라이언이 말했다.

「여기 이건 좀 다른 치즈 뿌린 거 같은데.」

진혁은 새로운 재료를 알아보는 브라이언을 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맞아, 그건 페코리노 치즈를 올렸어. 처음 써보는 치즈야.」

「페코리노 치즈가 산양 치즈지?」

「응. 여기서 처음 봤어.」

「왜, 그 까르보나라를 만들 때 말이야. 그때 원래 페코리노 치즈를 써서 만들어야 한다는군. 생크림이나 다른 치즈를 사용해서 까르보나라 스파게티를 만드는 건 사도래.」

「그럼 우리나라에서 파는 까르보나라는 죄다 사도겠다.」

「그런 셈이지. 빵 진짜 맛있다, 이것도 먹어도 돼?」

「거기 치아바타도 먹어 봐.」

「이건 진짜 식사 빵이네. 아무것도 올라가지 있지 않고 빵 자체로만 먹어도 좋다. 씹히는 맛도 괜찮고. 그런데 방금 전에 포카치아를 먹어서 그런지 자꾸 피자가 땡겨.」

「내려가서 커피나 마셔.」

「그럴까? 진혁, 너도 같이 마시자. 내가 살게.」

「오케이.」

진혁은 유산지로 빵을 몇 개 쌌다. 한 비서와 운전수에게도 나누어 주고 평가를 들어볼 생각이었다. 아니면 진짜 이탈리아 사람에게 평을 부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이 문을 열고 나오자, 한 비서가 쪼르르 나와 옆에 섰다.

“빵을 다 구우셨군요?”

“예.”

한 비서는 그윽한 눈빛으로 임진혁을 바라보았다.

“아까 시장에서 직접 고르신 식재료들이 참 질이 좋던데요.”

식품을 구매할 때 누가 통역을 해 주었나.

그 식재료들을 들고 온 게 누구인지 기억하는가.

간접적으로 빵을 종용하는 그 시선이 얄팍해서 진혁이 피식 웃었다.

‘저렇게 요구하지 않아도 알아서 줄 텐데 말이야.’

“여기 한 비서 몫.”

“감사합니다!”

포카치아와 치아바타를 두 개씩 얻은 한 비서가 행복한 표정으로 웃었다.

“제가 진혁 쉐프님 곁에서 근무하는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 이럴 때란 말이죠.”

“아, 나도 그래요. 진짜 맛있지.”

“회사 식당에서 제공하는 밥도 맛있었지만, 진혁 쉐프님이 만드시는 빵은 무엇 하나 빠지는 법이 없이 좋거든요.”

빵을 받은 한 비서는 그대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진혁과 브라이언은 아래층으로 향했다. 진혁이 빵을 안은 채 계단을 내려가 1층의 호텔 로비에 들어섰다.

「여기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어?」

「엘리베이터 안에서 사건이 생겼대. 지금 사건 현장이라고 못 쓰고 있어.」

브라이언의 안색이 파래졌다.

「여기가 그렇게 위험한 곳이야? 유럽에 테러가 심하다던데.」

「거울 도난이라던데.」

「아, 그 정도면 뭐.」

브라이언은 안심한 기색으로 계단을 따라 내려왔다. 1층에 도착하자 엘리베이터 주변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파란색 제복을 입은 경찰관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질문을 하고 있었다.

진혁은 로비를 지나서 카페테리아로 향했다. 근무 위치가 바뀌었는지 카페테리아 앞에 서 있었던 도어맨의 얼굴이 낯익었다.

진혁이 처음에 왔을 때 문 앞에 서 있던 남자다.

그가 이탈리아식 억양이 강한 영어로 말했다.

「죄송하지만 외부에서 구입하신 음식은 카페테리아 내에 반입하실 수가 없습니다.」

「이거 내가 방금 내 방에서 구운 건데요?」

진혁은 그 빵을 그대로 도어맨에게 넘겼다.

「예?」

근무 중에 얼떨결에 빵을 받아버린 도어맨이 당황했다. 프론트 데스크에 서 있던 호텔 직원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입니까, 미스터 안토니오?」

‘얘도 이름이 안토니오네.’

철수나 영수처럼 정말로 흔한 이름인 모양이다. 진혁은 자신이 알고 있는 미국인 안토니오를 상기했다. 개를 위한 레시피 좀 줬다고 고맙다고 온 세상에 알렸던, 떠벌이 녀석. 그놈 생각을 하니 허탈해 저절로 웃음이 났다.

「하하.」

반면에 도어맨은 진혁의 그 웃음을 전혀 다르게 해석했다.

「여기 이 친절하신 스위트룸 숙박객 미스터 임께서 말이지, 무려 우리 호텔 직원들을 위해서 빵을 구워주셨다네! 이렇게 친절하고 상냥하신 분이 있을 수가 있나!」

「그럼 아까 산더미같이 식료품을 사 들고 올라가시더니 그게 혹시….」

「도난 사건 때문에 고난을 겪고 있는 우리들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정성과 성의를 보여 주시다니! 우리는 이런 분께 직원용 통로를 절대 이용하실 수 없다고 거절이나 했단 말일세.」

「허 참, 미스터 안토니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그래, 규칙이란 이런 분들을 위해서 있는 게 아니야. 이런 분들을 위해서 어기기 위해서 존재하는 거지.」

이탈리아인 두 사람이 흥분해서 손짓 발짓을 하며 제스처를 주고받으며 빠르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진혁이 끼어들었다.

「아니, 특별히 직원용 통로를 이용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식료품을 계단으로 나르는 것 정도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진혁의 그 발언은 진혁이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했다.

「우리들의 규칙까지 존중해 주시는 이런 분이야말로 진정한 손님이지!」

도어맨이 손짓했다.

「미스터 임, 어서 카페 안쪽으로 들어오세요. 제가 호텔 차원에서 커피를 대접해드리죠.」

「이 빵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빵은 저희 호텔 직원들이 다 함께 맛보겠습니다.」

「드시고 난 다음에 평을 좀 들었으면 좋겠는데.」

「그야 물론! 빵 하면 이탈리아, 이탈리아 하면 빵 아닙니까. 저희가 확실히 평을 들려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종이에 감싸인 빵을 그대로 건네주고서 진혁은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패션 스위트룸에서 계단으로 내려오는데 7분.

그리고 카페 안으로 들어가는데 지금 두 사람의 이탈리아인에게 휘말려 소비한 시간이 대략 25분.

브라이언은 짜증스러운 마음에 이마를 벅벅 문질렀다.

‘으, 빨리 커피를 마시고 싶다.’

방금 먹은 빵은 아주 맛있었다. 하지만 목이 메어 무언가 벌컥벌컥 들이키고 싶었다.

그렇다고 은인인 진혁이 다른 사람들에게 빵을 나눠주는 동안 그걸 무시하고 카페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마침내 작은 실랑이가 끝나고 두 사람이 카페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진혁이 창가에 자리한 커피 테이블로 향하는 동안, 브라이언이 카페테리아로 가서 바리스타에게 말을 걸었다.

「주문하겠습니다.」

「예,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진혁, 뭐로 할 거야?」

「메뉴판 좀 보고.」

임진혁은 메뉴판을 들여다보았다. 오래된 목제 기둥에 간판처럼 내걸려 있는 메뉴판은 그 자체로도 꽤 예뻤다. 그날그날 출력해서 끼워 놓는지 이탈리아어와 영어로 인쇄된 메뉴판에는 오늘의 날짜가 찍혀 있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없어.’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방문했던 프랑스에서도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아니고서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팔지 않았다. 그는 아인슈페너가 있을까 하고 다시 메뉴판을 살폈다.

「그럼 내가 먼저 주문할게. 카푸치노 한 잔 주세요.」

바리스타가 눈썹을 찡그렸다.

「손님, 카푸치노는 이 시간에 드실 수 없습니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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