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440화 (438/656)

제 440화

「하하하! 아내분이 남편분을 정말로 사랑하시나 봅니다.」

진혁은 작은 방 침대에 브라이언을 던져 놓았다. 도어맨은 사람 둘은 들어갈 만큼 높은 창문에 비단 커튼도 쳐 주었다. 이중 커튼이 쳐지자 방 안은 자기 좋게 어두워졌다. 어둠 속에서 가늘게 숨을 쉬며 허덕거리는 모습을 보니 미묘하게 죽기 직전의 모습 같아 보이기도 했다. 도어맨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일행분이 완전히 인사불성인데요. 술 냄새는 안 나는데, 비행기 안에서 술이라도 드신 걸까요.」

의식을 잃다시피 한 브라이언을 내려다보며 임진혁이 말했다.

「그러게요.」

「의사를 부를까요?」

호흡이 고르고 평온한 표정이지만 너무나 죽은 듯이 잠들어 있다. 진혁은 연민이라곤 없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며칠 밤을 새워서 피곤한가 봐요.」

뒷목을 살짝 쳐서 기절시킨 본인이 하기에는 뻔뻔한 말이다. 하나 진혁은 진심으로 괜찮다고 생각했다.

‘피곤할 땐 자야지. 괜히 무리하다가 엉뚱한 데서 쓰러지면 곤란해.’

운전수가 물었다.

「바로 제과 주방으로 가시겠습니까?」

「아, 네. 이 캐리어 안의 가방만 들고 가면 됩니다.」

「그럼 이쪽으로 오시지요.」

잠들어 있는 브라이언을 두고서 다들 방을 나섰다. 한 비서가 말했다.

「저도 제과주방에 동행하겠습니다.」

「음?」

「이번 출장은 호의로 동행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계약서는 확실히 쓰셔야지요.」

「필요할까?」

「예.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 사고라도 발생할 경우에 대비해 상해 보험과 화재 보험, 도난 보험 등을 가입하라는 미미 CEO님의 지시가-.」

한 비서가 길게 설명하자 진혁이 미간을 좁혔다.

「그건 실비안 쉐프님의 비서와 이야기해서 해결해.」

「예, CEO님이 말씀하신 대로 처리하겠습니다.」

숙소에서 오데스칼키 성까지는 대략 10분 정도 걸렸다. 드넓은 창공에 우뚝이 서 있는 고색창연한 유럽식 성에는 첨탑과 고딕 양식의 원형 탑이 여럿 보였다. 외적의 방비를 막기 위해 드높이 세워진 성벽 바깥에는 몇백여 년 전부터 지어져 있던 붉은 박공지붕 집들이 오밀조밀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바위에 달라붙은 해초처럼 벽에 바싹 붙어 있는 집들은 한두 채가 아니었다.

언뜻 봐도 육십여 채가 넘는 건물이 모두 성을 중심으로 빙 둘러싸고 있다. 이 성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군사와 문화, 경제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진혁에게는 이 성의 군사적인 면만이 보였다.

바로 바다에 위치한 성벽을 보며 진혁은 생각했다.

‘공성하기에 아주 좋겠는걸.’

그는 즐거운 마음으로 이 성을 어떻게 공략하면 좋을지 머릿속으로 이것저것 작전을 짜 보았다.

‘지하에 동굴을 판 다음에 암살자를 보내서 우물에 독을 타는 거지.’

진혁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일행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성 앞 교회에 주차하고 나서 운전수가 지도를 보았다.

「이쪽 위로 올라가시면 된다고 합니다.」

「오! 왔어!」

「실비안 쉐프.」

「어서 빨리 이쪽으로 오라고, 기다렸어.」

하루 먼저 도착해 있었던 실비안 쉐프는 기운차게 진혁을 맞이했다. 그녀는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신나서 양팔을 휘저었다.

「제과 주방에 오기 전에 성을 좀 구경할래? 여기에 중세 갑옷과 무기도 전시되어 있다구!」

「오, 이번에는 중세 갑옷과 무기를 바탕으로 한 웨딩 케이크입니까?」

실비안의 보조 쉐프, 미리암이 기함했다.

「어떻게 알았어? 실비안 쉐프, 미리 말씀하셨어요?」

진혁이 대답했다.

「케이크에 관련된 일이 아니라면 보자고 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하하하.」

실비안 웨인스톡이 깔깔 웃었다.

「불필요하게 겸손하지 않은 점이 맘에 쏙 들어. 초안은 우리가 이미 잡아 놓았어. 신랑은 유명한 데일스 그룹의 후계자 쇼 데일스, 그리고 신부는 여배우 샬럿 왓슨이야. 누군지 알지?」

진혁의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을 본 실비안이 간단하게 설명해주었다.

「멘사 회원에 고고학을 전공한 명문가 출신이지. 중세 갑옷과 성을 테마로 해서 케이크를 만들어달라는 부탁은 샬럿 왓슨이 했어.」

두 사람은 성의 앞마당을 걷고 있었다.

「결혼식장을 정한 것도 신부인가요?」

「이 성은 대대로 페치 가인가 뭔가 하는 귀족 가문 소유였대. 그런데 몰락한 귀족 가문이 수리비를 감당하지 못해 얼마 전에 데일스 그룹에 팔렸다는군. 역사적 유물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보수하고 리모델링하는데 100억 유로가 넘게 들었다고 해. 성의 관광 가치를 높일 겸 해서 결혼식을 올리려고 한다고 하니까, 결혼식 장소를 고른 건 신랑일걸? 그게 왜 궁금한데?」

「신부와 신랑 중 누가 더 발언권이 큰가 궁금했습니다. 전에 브라이언 신의 웨딩 케이크를 만들 때는 부인이 요구사항이 많았거든요.」

「두 사람 의견을 전부 반영해야지.」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며 성의 앞마당을 걸었다. 인부들은 비닐 속 흙에 뿌리째 담겨 있는 잔디를 포장만 벗겨 앞마당에 심고 있었다.

「야외 결혼식입니까?」

「이 날씨에 그건 무리지. 잔디는 그냥 조경용이고, 성 내부에 딸린 성당에서 결혼을 진행할 모양이야.」

「웨딩 케이크는 식당에 장식합니까?」

「300여 명의 손님이 머무를 수 있는 홀이 있어. 결혼식과 피로연 모두 제대로 한다고 하더라.」

「먹는다고 하던가요?」

「물론이지. 300명이 맛볼 수 있는 생크림 케이크 하나, 그리고 기념용으로 성에 보관할 후르츠 케이크 하나. 왜 생크림을 원하는지 모르겠어.」

진혁이 눈썹을 추켜올렸다.

「생크림 케이크로 갑옷과 칼을 만들라고요? 겉에 그렇게 무거운 설탕 장식 반죽을 올리려면 생크림으로는 무리일 텐데.」

「안쪽에 크림을 넣어주면 되지 않냐면서 막무가내야.」

「케이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실비안이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웨인스톡의 슈가 크래프트 케이크는 생크림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어! 대신 너무 달콤해지지 않게 조심해야지.」

「하하.」

성 내에 장식되어 있는 갑옷은 전부 금속으로 제작되어 무거워 보였다. 개인이 호신강기를 사용하며 가벼운 옷을 주로 입고 활동하는 무림인들과는 엄청나게 달라 보였다.

‘철두공처럼 외공을 주로 쓰는 이들이라면 소용이 있을까?’

이미 몸이 갑옷처럼 단단하다고 해도 겨드랑이나 사타구니 등 제대로 보호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 하지만 실용성은 없어 보였다.

‘관절 때문에 구부러지는 부위에는 보호대를 대기가 어렵지.’

벽에는 떼 지어 달리는 기병들이 그려져 있었다. 진혁은 무거운 철갑을 입고서 말 위에 올라 있는 옛 기사들을 보고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기동성이 너무 떨어져.’

하지만 전시되어 있는 바스타드 소드와 아밍 소드의 크로스 가드는 꽤 괜찮아 보였다.

「검 손잡이 부분이 동양의 검과는 확실히 다르군요.」

「그렇지. 상대방의 검을 받아낼 때 손목을 꺾어 저 크로스 가드로 붙잡아둘 수 있다고 하네.」

「오.」

실제 검술 대결을 하는 벽화를 지나며 드디어 실비안이 언급했던 갑옷이 나왔다.

15세기의 고딕 양식으로 만들어진 갑옷은 당시의 성주와 성주의 부인을 위해 주문 제작된 것으로, 갑주의 가슴께에 백합 모양의 문양이 돋을새김 되어 있었다.

팔과 사타구니는 작은 사슬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는 사슬 갑옷이었으며 팔과 다리, 흉갑과 장갑, 투구와 장화는 장식 없이 파도의 흐름처럼 주름이 잡혀 있었다.

바로 전에 장식되어 있던 밀라노식 갑옷이 둥글고 매끄러운 원형으로 만들어진 것과 대조적이었다.

「갑옷에 주름이 생겼네요.」

「저 거지 같은 주름이 철판을 주조할 때 더 강도가 세지게 한다고 하더군.」

「하하하.」

둥글고 매끄러운 것보다 저런 식으로 흐르는 듯한 주름이 더 만들기 어려울 것이다. 실비안이 거지 같은 주름이라고 말하는 데에도 이유가 있었다.

「이 은색 색깔은 직접 만드실 건가요?」

「그렇지, 내가 개발한 식용 염료가 있어. 레시피는 비밀이야. 아무리 진혁 베이비라도 알아낼 수는 없을걸?」

진혁이 야심만만하게 웃었다.

「제가 맛보고 재료에 뭐가 들어가 있는지 알아내면, 저도 그 레시피 써도 됩니까?」

실비안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물론이지, 베이비. 세계 전역에서 온 페이스트리 쉐프들이 내 레시피를 알아내려고 맛을 보고 성분 분석기에도 돌려 보고 별짓을 다 했다고. 그래도 아무도 알아내지 못했어.」

실비안 웨인스톡은 바로 케이크를 만들기 시작했다.

「좋아요, 제가 거기에 도전해 보죠.」

「도전자는 언제나 환영이지.」

실비안은 갑옷을 가리키며 말했다.

「샬럿 왓슨은 이 갑옷을 그대로 케이크 위에 재미없게 세워둘 생각을 하고 있더라고. 하지만 그건 너무 재미없지 않겠어?」

「어떤 걸 생각하고 계십니까?」

「신랑과 신부가 갑옷을 착용하고 있고, 투구만 벗고 있는 거지. 그리고 케이크 위에서 둘이서 나란히 키스를 하는 거야.」

즉 신랑 신부의 얼굴을 똑같이 모사하겠다는 이야기다. 부탁하지도 않은 디테일을 굳이 만들겠다는 얘기에 실비안의 보조가 뒤에서 소리 없이 비명을 질렀다.

「하느님 맙소사아아아.」

자그마한 비명은 못 들은 척하며, 진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옷의 부피가 있어서 두 사람이 포옹할 수 없을 텐데요. 한 사람은 누워 있고 다른 한 사람이 그 위에 엎드리는 구도도 아니고. 두 사람을 나란히 세울 겁니까?」

「그게 문제야. 두 사람이 앞으로 미래를 함께 걸어갈 동지라는 사실을 표현하고 싶단 말이지. 그런데 아무리 해도 로맨틱한 키스신을 하기엔 각도가 안 나와.」

그들은 컨테이너 안에 준비된 제과 주방을 지나, 그 옆의 사무실로 이동했다.

사무실 책상에 앉은 실비안은 진혁에게 스케치북을 보여 주었다.

아이디어 스케치는 다양한 장면을 담고 있었다.

갑옷을 입은 커플이 케이크를 베기도 하고, 케이크에 기대기도 하고, 케이크를 받쳐 들고 있기도 하고, 케이크를 배 위에 올려놓기도 했다.

개중에는 평범하게 둘이 함께 서 있는 디자인도 있었다. 하지만 착용한 복장이 갑옷이다 보니 둘이 나란히 서 있어도 결혼할 부부라기보다 평범한 전우로 보였다.

보조가 제안했다.

「갑옷을 입더라도 신랑에게는 보타이, 신부에게는 베일을 씌워 주면 갓 결혼한 커플처럼 보이지 않겠어요?」

실비안은 갑옷을 입고 서 있는 두 사람 위에 보타이와 베일을 씌워 주었다. 보조는 자신의 눈을 가리며 죄송하다고 중얼거렸다. 가볍고 하늘하늘한 레이스 베일도, 앙증맞은 리본 모양 보타이도 갑옷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진혁이 손뼉을 탁 쳤다.

「제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뭔데?」

「먼저 생크림 케이크에 어떻게 퐁당을 씌울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안쪽에 빨대를 꽂아서 기둥을 세울 건가요, 아니면 겉에 티로스 파우더를 발라서 부착할 겁니까?」

「당연히 둘 다 할 거야. 안쪽에 기둥이 될만한 틀을 짜려고 했지.」

「틀까지 짤 필요는 없어요.」

「두 사람이 반드시 같은 방향을 보고 있을 필요는 없어요.」

진혁이 손을 내밀자 실비안 웨인스톡이 펜을 건네주었다. 그는 익숙지 않은 펜을 붙잡고 종이에 스케치를 그렸다.

「오…! 이렇게 하면 되겠군!」

레이아웃을 본 실비안 웨인스톡이 손뼉을 쳤다.

「아주 좋아, 아주 좋아!」

「케이크 자체는 원래 새하얗게 하려고 하셨어요? 색다르게 붉은 벨벳 융단이 깔려있는 3층으로 만들고 맨 위에는 금술이 달린 쿠션을 올려놓죠. 가운데에는 뭔가 보물이 될만한 걸 올려놓아도 좋겠는데. 그러면 그걸 수호하는 두 사람 같잖아요?」

「이번에 샬럿 왓슨이 받은 약혼반지가 6캐럿이 넘는 다이아몬드 반지라고 들었어요. 아예 그 디자인으로 반지를 확대해서 만들어서 가운데에 올려놓죠.」

「그것도 괜찮겠네요. 아니면 이런 방법도 있습니다.」

울퉁불퉁한 바위 모양의 케이크 위에 양손 검이 꽂혀 있고, 갑옷을 입은 기사 두 사람이 그 양손 검을 함께 붙잡고 있다. 아서 왕의 전설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장면이었다.

「이 장면은 아주 멋진데? 영화 속의 한 장면 같네.」

「하지만 두 사람이 결혼하려는 것 같지는 않아요. 오히려 검을 뽑으려고 하는 여기사를 남자 기사가 말리는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균형을 맞추어 세우기에는 이게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보조가 물었다.

「실비안 쉐프, 둘 중 어느 디자인이 더 마음에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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