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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의 베이커리-439화 (437/656)

제 439화

「중력이 우리를 붙잡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따라야 할 필요는 없지요.」

「정말 미친 소리 같군.」

시몬 리옹은 머리를 감싸 쥐고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나지막하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자신만의 터치는 색감이나, 아니면 생동감, 그런 걸 말한 거지. 이렇게 물리적인 각도를 바꿔 버릴 줄은 상상도 못 했어. 폭탄도 아니고, 어느 방향에서 터질지 예상할 수가 없군!」

반면에 다른 이들은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아주 훌륭해! 예술가에게 있어서 독특한 자기만의 시선은 매우 강력한 장점이야. 진혁 베이비, 저번에 말했을 때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연구 끝에 마침내 실현해 냈군. 참으로 자랑스러워.」

실비안 웨인스톡은 감탄을 아끼지 않고 마음껏 찬사를 보냈다.

「볼 때마다 새로운 스타일이야, 신기하다니까.」

「희한한 아이디어를 구현해서 만들어냈다는 게 대단해. 한때 중력을 거스르는 케이크 스타일이 유행하기는 했지만, 이런 식으로 완전히 테이블을 띄워 버리는 건 처음 보는군. 완전히 게임 체인저(Game changer)야.」

주영모와 아드레아노 존부도 칭찬했다.

「감사합니다.」

실비안 웨인스톡은 갑자기 스마트폰을 켜더니 캘린더 애플리케이션을 켰다. 그녀가 말했다.

「가르쳐줄 게 너무 많아. 일주일로는 부족할 것 같은데.」

「예?」

「내가 여기에 있을 수 있는 건 일주일밖에 없어. 일주일 후에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하는 결혼식의 웨딩 케이크를 만들러 가야 하거든. 거기에 같이 따라올래? 그럼 그거 만드는 걸 보여 줄게.」

제안을 받은 건 진혁인데 옆에서 브라이언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시무룩해졌다.

「그건 재밌을 것 같네요. 브라이언도 같이 가도 되겠죠?」

진혁의 대답을 들은 브라이언은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그는 금방이라도 앞으로 튀어나갈 것처럼 신나게 말했다.

「어, 저도 시간이 됩니다!」

「좋아, 좋아! 내가 두 사람 다 초청할게.」

주영모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다음 주라면 저도 시간이 되는데요.」

「왜 파리가 아니라 로마인 겁니까?!」

「시드니도 괜찮은데 말이죠.」

시몬 리옹과 아드레아노 존부가 투덜거렸다. 진혁이 씩 웃었다.

「이틀이면 됩니까?」

「웨딩 케이크 만드는 데 일주일은 걸려.」

「재밌겠네요!」

◈          ◈          ◈

세 명의 슈퍼스타 쉐프와 함께하는 일주일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실비안 웨인스톡은 임진혁을 붙잡고 놔주지를 않았다. 세 사람은 동물의 털가죽과 피부부터 시작해 온갖 돌과 과일의 표면을 망라하는 다양한 질감에 대해서 배웠다. 낮에 시간이 없자 시몬 리옹은 밤마다 진혁의 스튜디오를 찾아왔다. 새벽 세 시까지 버티기를 사흘, 시몬 리옹은 기절해서 곯아떨어져 더 이상 밤에 찾아오지 않았다. 나흘째 밤부터는 밤에 아드레아노 존부가 찾아와 치즈와 초콜릿 케이크에 대해서 알려 주었다. 브라이언은 카페인 음료를 마시며 버텼다.

이레째 날에는 아드레아노 존부가 뻗어서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고, 대신 주영모가 왔다. 주영모는 온갖 과자 굽기와 빵 공예 실기를 전수했다. 브라이언은 서서 졸면서 강의 내용을 녹화하고, 낮에 돌려 보았다.

7일이 지나 다른 페이스트리 쉐프들이 돌아갔다. 두 사람은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이탈리아의 로마를 향해 출발해야 했다. 이미 브라이언은 녹초가 되어 있었다.

인천 공항에서 비행기에 탑승한 진혁이 짧게 평했다.

“그냥 비즈니스석은 처음 타보네.”

“그으냐앙 비즈니스석? 나는 비즈니스석을 처음 타봐!”

“요즘은 계속 미미 씨가 비행기를 보내 줬거든. 실비안 웨인스톡 쉐프님이 초청해 준 건 고맙지만 그냥 알아서 갈 걸 그랬다.”

“넌 전생에 나라를 구했을 거야….”

“음, 비슷하지.”

브라이언은 비행기에 타자마자 기절하듯이 잠들었다. 그는 열 몇 시간을 한 번도 깨지 않고서 깊이 잠들어 있었다. 심지어 기내식도 먹지 못했다. 피우미치노 공항에 도착해 내리고 나서도 브라이언은 반쯤 잠든 상태로 영혼이 나간 채 임진혁을 쫓아다녔다.

「벌써 로마라고?」

「응, 이제 나가자.」

피우미치오 공항은 위대한 천재의 이름을 따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 공항이라고도 불린다. 두 사람은 인천공항에도 있었던 셔틀 트레인을 통과했다.

「크윽, 윽. 캐리어 가지러 가야지….」

브라이언은 눈을 비비며 비틀거렸다.

진혁은 그런 브라이언을 부축해 주었다.

「한 비서가 가지고 온댔어. 야, 이 정도로 피곤하면 작작 알아서 잠을 자지 그랬냐. 카페인을 마시면서 앉아 있길래 멀쩡한 줄 알았는데 체력이 너무 약하네. 너도 갈 길이 멀다.」

「내가 약한 게 아니고, 네가 체력이 좋은 거지… 부럽다… 으어, 우리 동갑 아니었냐고….」

「하하하, 농담도.」

「농담 아니야.」

「너는 내가 이 경지까지 오기 위해 어떤 일을 겪었는지 몰라.」

「으, 어떤 일이라니, 아버지랑 같이 빵 만들었잖아. 나는 제빵학교에서 만들었지만… 흐어어.」

「어어어.」

진혁이 웃어넘기며 말했다.

「졸리면 숙소 가서 좀더 눈 붙여.」

「너는?」

「실비안 쉐프는 숙소 뒷마당에 갖다 둔 컨테이너형 제과주방에서 이미 일을 시작했다고 하더라고. 난 거기 가볼 거야.」

브라이언이 신음소리를 흘렸다.

「… 나도… 갈래….」

「혼자 일어날 수 있으면 가고.」

「꼭 같이 갈 거야….」

진혁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린애도 아니고, 자기 몸 상태는 자기가 알아서 파악해야지. 괜히 현장 가서 쓰러지면 네 손해다.」

입국 심사를 마치고 바깥에 나와, 마중 나온 차 뒷좌석에 탔다.

「나도 꼭 같이 갈 거라고….」

술 취한 사람처럼 중얼거리던 브라이언을 내려다보던 진혁이 친절하게 말했다.

「이럴 때는 푹 쉬어야지.」

-퍽

뒷목을 살짝 치면 인간은 기절한다. 진혁은 어디를 어떻게 치면 될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다치지 않고 충분히 잘 수 있을 만큼, 언제 깨어나면 좋을지도 함께 조절했다.

‘한 6시간 정도만 잠들어 있으라고.’

피우미치오 공항부터 오데스깔끼 성까지는 약 45km가량 소요된다. 이번에 웨딩 케이크를 의뢰한 부부는 톰 크루즈라는 유명한 배우가 결혼식을 올리기도 해서 유명해진 이 성에서 결혼식을 올린다고 했다.

두 사람의 숙소 역시 그 바로 앞에 있는 저택이라 했다.

황미미가 보낸 운전사는 경쾌하게 말했다.

“이탈리아는 처음이시라고 들었습니다! 이쪽은 해안가 드라이브 길이 아주 예쁩니다. 회장님도 좋아하시는 길이니, 이쪽으로 안내하지요.”

싱이타의 기적이라고도 불리는 아름다운 모래사장에는 막 해가 지는 참이었다. 보랏빛과 연분홍빛이 잔잔하게 섞여 있는 아름다운 하늘에는 새털구름이 드문드문 떠 있었다. 광활하게 펼쳐진 수평선 너머에 잠겨가는 해를 보며 진혁이 말했다.

“이건 정말… 아름답군요.”

“예, 이 지방의 자랑이죠! 저도 매일 해를 보지만 질리지 않아요. 일출도 엄청나게 예쁩니다. 일행분이 보지 못해서 유감이네요.”

40여 분간 드라이브를 마치고 마침내 숙소에 도착했다. 지은 지 백여 년쯤 되었다던 숙소는 자그마한 3층 집이었다.

“유럽이라고 해서 다 비슷비슷한 줄 알았는데 아주 다르네.”

“하하! 일본과 중국, 한국이 전부 양식이 다른 것과 똑같죠.”

이전에 머무르던 파리의 숙소와는 느낌부터 달랐다.

“건물이 완전히 달라.”

천장이 높고 널찍한 1층 로비로 들어가자 도어맨이 싱긋 웃으며 유창한 이탈리아어로 환영 인사를 건넸다. 어깨에는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훈장을 잔뜩 단, 머리와 눈썹이 희게 센 라틴계 노인이었다. 그는 한 비서와 운전수가 나누어 들고 있던 짐을 들어 주려고 했으나 한 비서가 거절했다.

「죄송하지만 저희 짐은 직접 들겠습니다. 방으로 안내를 부탁드립니다.」

진혁이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미가 잘 교육했군.’

항상 들고 다니는 주방용 도구 일체는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맡기지 않았다. 하지만 한 비서가 꼼꼼하게 챙겨 주니 편했다.

붉은 카펫이 깔려 있는 로비를 지나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운전수가 체크인 절차를 대행했고, 잠든 브라이언을 안다시피 한 채 따라왔다.

호텔의 엘리베이터는 진혁이 처음 보는 양식이었다.

「여기 엘리베이터가… 없는데?」

대리석 벽에는 화려한 무늬목으로 가장자리가 둘러진 문 모양의 공간이 있다. 엘리베이터 있어야 할 자리에는 엘리베이터가 없고서 허공만이 존재했다. 가운데에 금속으로 된 밧줄이 그대로 노출되어 아래쪽에 연결되어 있을 뿐이다.

이 비어있는 공간 앞에는, 어린아이나 노인 등이 실수로 접근해서 다치지 않도록 겉에 금속제 빗장이 걸려 있었다. 도어맨이 따라와 빗장 걸쇠를 풀어 주고 도르래처럼 생긴 레버를 잡아당기자 끼익 끼익하는 소리를 내며 엘리베이터가 올라왔다.

텅 비어 있던 공간에 목제 엘리베이터가 딱 맞게 들이찼다.

운전수와 함께 양쪽에서 브라이언을 부축하며 뒤늦게 합류한 도어맨이 경쾌하게 말했다.

「120년 된 엘리베이터입니다. 이 정도야 로마에는 흔하죠! 하하하!」

「대단하네.」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서자 엘리베이터가 살짝 덜컹거렸다. 진혁은 머뭇거리지 않았으나 한 비서는 잠깐 멈칫거렸다. 도어맨이 씩 웃었다.

「처음 타시는 분들은 놀라시기도 하지만 100% 안전합니다. 저도 50년째 매일 타는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요.」

내부에는 화려한 넝쿨무늬로 양각된 거울이 장식되어 있었다. 잘 닦은 거울 표면이 반짝반짝 빛나며 임진혁과 브라이언, 운전수와 호텔 직원 그리고 한 비서를 비추었다. 장기간 비행으로 인해 지쳐 있는 한 비서와 브라이언과는 달리 진혁은 혼자 말짱하게 서 있었다.

「손님은 정말 건강하시네요, 여기 로마에 사십니까? 다른 분들은 장거리 비행을 하신 것 같고요. 서울에서 오셨다고요?」

「저도 비행기 타고 같이 왔습니다.」

「우와! 젊은 게 좋긴 좋아요. 저도 젊었을 때는 말이죠-.」

말을 멈추지 않고 쉴 새 없이 수다를 떠는 도어맨에게 진혁이 짤막하게 대답했다.

「얘랑 저랑 동갑입니다.」

진혁은 눈으로 거울을 흘깃 보았다. 거울 옆에는 500여 년 전에 당시 왕에게 하사받은 물품이라는 명판이 붙어 있었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거울은 언뜻 보기에도 꽤 귀해 보였다.

진혁이 중얼거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예?」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진혁이 보기에 저 거울은 그렇게 오래된 것 같지 않았다. 올록볼록하니 솟은 문양에는 사람이 닦을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그곳에 쌓인 때를 살펴보면 대강 삼십여 년 정도 된 게 아닐까?

「아무것도 아니라니요, 손님. 지금 이 거울이 얼마 안 됐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이 거울은 정말로 오래된 겁니다. 이 호텔의 자랑이에요. 이 거울을 포함해서 호텔 전체를 몇억 유로에 구매하겠다는 손님도 있을 정도라구요.」

진혁이 간단하게 설명했다.

「몇백 년 된 거울이 이렇게 깨끗할 리가 없습니다.」

「손님이 나이는 젊지만 앤티크 물품에 대해서 조예가 깊으신가 봅니다. 고미술상이신가요?」

「전혀 아닙니다.」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거울에 대한 이야기도 그쯤에서 마무리되었다. 도어맨은 복도를 걸어 길을 안내했다. 네 사람이 안내된 방은 스위트룸이었다.

「원래 비즈니스 트윈룸으로 예약되어 있었는데, 아내분께서 패션 스위트룸으로 업그레이드를 했습니다! 두 분 방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쪽 방문을 열어두실 수도 있고, 잠가 두실 수도 있습니다.」

메인 스위트룸에는 한 비서가 머물 수 있는 작은 딸림방도 있었다. 도어맨의 설명을 들으며 진혁이 미간을 살짝 좁혔다.

「이놈이랑 같이 스위트룸을 쓰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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