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436화 (434/656)

제 436화

「그렇죠!」

진혁이 이겼다는 듯 주먹을 움켜쥐었다.

「내가 이 짜장면을 얼마나 먹고 싶어 했는데요.」

「평생 먹어 왔을 거 아니야?」

「음, 뭐, 그렇죠. 여기 이 탕수육도 같이 먹어 봐요. 짜장면 면발이랑 같이.」

「돼지고기 튀김이라. 개인 접시가 아니라 가운데에 놓고 다 같이 먹는 건가? 흐음… 일식에 비해서 튀김옷이 조금 두꺼운 편이군. 그런데 소스가 좀 달라. 아주 달짝지근한데 신기하게 질리지 않아! 중독적인 맛이네.」

「흠.」

「나는 원래 이런 식으로 야간 지도는 하지 않아. 특별한 상황이 아닌 이상 말이지.」

「실비안 웨인스톡 쉐프가 갑자기 테스트한다는 건 특별 생황에 듭니까?」

「…그렇지. 야근 수당은 따로 청구하겠네.」

진혁이 농담을 던졌다.

「짜장면은 별도고요?」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케이크 색감과 모양에 대한 밤샘 훈련이 끝나고 짜장면을 먹는 것도 마쳤다.

진혁은 혼자 머물러야 할 신혼집으로 돌아갔고, 시몬 리옹과 브라이언은 손님용 숙소로 걷기 시작했다. 제과 스튜디오가 있는 건물을 나와서 시골길을 걷는데 저 하늘이 아스라이 뿌옇게 흐려지며 밝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동이 터오고 있다.

‘시몬 리옹 쉐프가 밤샘 과외를 해주다니.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도 믿지 못할 거야.’

브라이언에게도 아주 귀중한 시간이었다.

진혁 쉐프가 자신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새로운 길을 배우는 동안 그 역시 자신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찾았다.

‘케이크를 구상할 때 일반인과 대회 심사위원들이 원하는 건 다를 수밖에 없어. 나는 손님들을 위한 작품을 한다고 하면서 사실은 내가 만들고 싶은 거창하고 우아한 작품을 하고 있었지. 내가 이렇게 멋지고 훌륭한 케이크를 만드니까 너희들이 사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내가 만들고 싶었던 스타일의 케이크를 구워서 팔려면 실비안 웨인스톡 쉐프가 했던 것처럼 자신을 브랜드화한 다음에 셀러브리티들에게 고가의 케이크를 주문받는 방법밖에 없어. 케이크 하나에 한두 달씩 쏟아붓고서 흑자를 내려면 하나에 수만 달러를 받지 않고서는 답이 없으니까. 그녀는 애초에 케이크에 그 정도의 가격을 지불할 만한 사람들을 고객으로 잡고서, 고급화와 개인화 전략을 사용한 거지.’

그는 이제 자신이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대략 감을 잡았다.

‘아드레아노 존부 쉐프는 연인들과 가족들이 비싼 날 아낌없이 돈을 쓰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는 우아한 케이크 공간을 창조해 냈지. 그 스타일은 좋지만 나와는 맞지 않았어. 난 내가 어렸을 때 우리 동네에 있던 허름한 동네 빵집, 임진혁의 아버지가 경영하는 그런 빵집에 대한 막연한 이미지만을 갖고 있었던 거야. 다시 내 가게를 열려면 나만의 확실한 컨셉과 그 컨셉이 실제로 돈이 될 수 있는 수익 모델을 개발한 후여야 해.’

브라이언이 잠시 상념에 잠겨있는 동안, 시몬이 말을 걸었다.

「그런데 진혁 쉐프가 정말로 부유하긴 부유한가 본데.」

「예?」

「이렇게 전화 한 통에 바로 요리를 갖다 주기까지 한다니.」

시몬이 무슨 오해를 했는지 알게 된 브라이언이 웃으며 설명해 주었다.

「아니, 그 가게는 그냥 밤 내내 영업하는 음식점입니다.」

「새벽 다섯 시에?!」

「밤샘하는 배달 업체들도 있어요.」

「한국인들은 대체 밤에 안 자고 뭘 하길래 밤에 여는 음식점이라는 게 존재해?」

「그, 글쎄요. 야간 근무?」

「아주 대단하군!」

◈          ◈          ◈

기껏해야 두 시간 지났을 뿐이다.

하지만 일어나서 가야 했다.

브라이언은 새빨개진 눈으로 거울을 마주 보았다. 삐죽삐죽 돋아난 수염을 깎고서 찬물로 몇 번이나 세수를 하고, 쉐프 복을 걸치고서 서둘러 제과 주방으로 향했다.

시몬 리옹 역시 피곤해 보였다. 그들은 간밤에 먹은 야식을 떠올리며 서로를 힐긋 바라보았다.

중국요리는 아주 맛있었지만, 염분이 높은 것이 분명했다. 두 사람 다 얼굴이 노랗게 떠서 상태가 좋지 않았다.

진혁이 말했다.

「브라이언, 피곤하면 쉬어도 좋은데.」

「아니, 여기에 있을 수 있는 게 영광이지!」

실비안 웨인스톡은 주방에 당당하게 서 있었다. 그녀는 브라이언과 진혁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잘 부탁한다고.」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임진혁에게는 브라이언이라는 보조가 있다. 진혁이 물었다.

「실비안 쉐프의 보조는-.」

「내가 하기로 했어.」

아드레아노 존부가 싱글싱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 그렇군요.」

진혁은 그대로 납득했다. 그는 아침에 주방 스태프가 목록대로 준비해 꺼내 놓은 재료들을 보았다.

「프루츠 케이크와 슈가 프로스팅을 하려고 하시는군요.」

임진혁의 담담한 반응에 비해 브라이언은 가만히 있질 못했다. 그는 턱이 빠질 것처럼 놀라서 입을 벌린 채 서 있었다.

「아드레아노 존부 쉐프가 보조라니.」

임진혁에게 너무 불리한 것이 아닌가? 그는 이 상황에 대해서 뭐라도 항의하고 싶었다. 애초부터 아드레아노 쉐프는 보조를 할 만한 급이 아니다. 스타급 쉐프 두 명과 동시에 대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주영모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

「내 보조가 오려면 비행기로만 17시간 넘게 와야 하거든.」

「아니, 그래도….」

‘진혁이 너무 불리한 것 아닙니까?’

브라이언의 마음을 읽었는지 시몬 리옹이 한마디 보탰다.

「그럼 차라리 내가 진혁 쉐프 보조를 하지? 급이 너무 안 맞잖아.」

‘자기 제자는 엄청 아낀다더니.’

시몬은 어젯밤 밤새워서 같이 케이크를 만드는 연습을 한 후에 임진혁도 자기 제자로 간주할 모양이다.

그런 그가 보조 쉐프를 한다면 어떨까.

「차라리 말이 통하는 내가 같이 하는 게 낫지 않나.」

주영모도 보조를 하겠다며 앞을 다투어 나섰다. 시몬 리옹에게 지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진혁을 위해서 그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브라이언은 주먹을 꽉 쥐었다.

‘여기 와 있는 사람들 중 누가 한다고 해도 나보다는 낫겠지.’

진혁에게 큰 힘이 되어주겠다고 결심했는데 오히려 보조 자리에서 쫓겨나게 생겼다. 당장 브라이언 자신에게 고르라고 해도 자기 자신보다 시몬 리옹이나 주영모 같은 쉐프의 보조를 고를 것이다. 브라이언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진혁이 자신을 거절하는 순간을 보고 싶지 않았다.

「자, 나랑 같이 하자고.」

「진혁 쉐프는 당연히 날 고를 걸세.」

진혁은 주영모도, 시몬 리옹도 고르지 않았다. 그는 길게 설명하지 않고 그저 간단히 대답했다.

「브라이언이랑 할 건데요.」

「!!」

브라이언은 감격해 눈을 껌뻑거렸다. 그는 고개를 번쩍 들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순식간에 잠이 확 깨는 느낌이었다.

「네 신뢰를 배신하지 않으마.」

시몬 리옹과 주영모는 뒤로 한 걸음씩 물러났다.

「의리가 있군.」

「임진혁 자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야.」

실비안 웨인스톡이 입꼬리를 추켜올렸다.

「좋은 생각이야, 베이비. 나도 내 보조가 여기에 있다면 그냥 걔랑 할 텐데 말이지. 호흡을 계속 맞춰온 사람이랑 하는 게 좋죠.」

브라이언은 지극히 감동해 다시 한 번 세수를 하러 갔다.

「정신 차리고 금방 돌아올게.」

진혁의 생각은 아무도 몰랐다. 그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내린 결정이었다.

‘너무 눈치 빠르고 실력 좋은 사람이 보조해도 곤란해.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눈치채면 귀찮아.’

똑같은 반죽을 한다고 해도 진기를 흘려보내며 반죽하면 유난히 상태가 좋아진다. 브라이언과 함께 몇 번 작업을 할 때마다 얘는 진혁이 반죽 솜씨가 좋아서 그러는구나 하고 대충 넘겼다.

색깔이나 형태를 잡을 때 한마디씩 하는 조언 역시 충분히 쓸모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보다 경험이 풍부하고 경력이 긴 이들을 보조로 쓰려고 하면 ‘길들이기’를 해야 해서 귀찮았다.

‘리처드 베이커 쉐프도 똑같이 TV 프로그램에 나간 출전자 신분으로 왔으면서도, 처음에는 이것저것 훈수를 놓았으니 말이야. 저들은 나를 완전히 자기 아래로 보기 때문에 보조로 쓰기엔 적합하지 않아.’

◈          ◈          ◈

농약 없이 재배하고 사람이 직접 손으로 따서 말린 포도.

알이 크고 튼실하여 달콤한 칠레산 체리.

껍질까지 깔끔하게 손질해 둔 아몬드와 헤이즐넛, 호두.

전부 럼주에 담아 밀봉하여서 한 달 이상 보관해둔 것들이다.

「자, 오늘 케이크 만들기는 준비됐어? 시간제한은 필요 없고?」

「이 케이크를 만들면 됩니까?」

「그렇지. 올해 세미나에서 만들려고 했던 ‘봄에 피는 꽃’ 케이크야.」

단순한 3단 케이크였다.

흰 배경 위, 맨 아랫단에는 화사하게 핀 봄꽃.

윗단에는 갖가지 나비, 마지막 단에는 꽃잎을 문 벌새가 그려져 있다.

케이크의 최상단에는 맨 아랫단에 그려져 있는 꽃들이 실제 설탕 공예로 만들어져 입체적으로 피어나 있었다. 방울꽃과 베로니카, 그레이스 장미와 라일락, 진달래와 개나리. 진혁은 이름조차 모르는 크고 작은 꽃송이들이 올망졸망하니 모여있다.

하지만 이 케이크에서 제일 눈에 띄는 포인트는 케이크 위에 그려진 꽃과 곤충, 새의 그림이나 맨 위에 활짝 피어난 봄꽃들이 아니었다.

봄꽃과 그림을 전체적으로 감싸는 듯한 레이스 베일.

케이크 위에 둥실 하니 떠 있는 촘촘한 설탕 면사포가 제일 어려운 부분이다.

슈가 크래프트 레이스 익스텐션 워크(Lace Extension Work).

설탕 공예의 파이핑(짜는 기술) 중에서도 제일 난이도가 높은 기술이다.

브라이언도 딱 한 번밖에 해본 적이 없었다.

시판하는 진주 핀을 사용하여, 핀 위에 쇼트닝을 바른 후 케이크 위에 꽂는다. 그리고 그 위에 로열 아이싱을 조심스럽게 짜낸다.

이 기법의 가장 골치 아픈 점은 ‘실수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이미 장식을 전부 마친 케이크 위에 진주 핀을 꽂아 그 위의 허공에 크림을 짜내어 장식을 하는데, 설령 크림이 뚝 떨어져 케이크 위의 그림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기존 케이크 장식이 망가져 버린다.

보통 케이크 아이싱을 할 때 실수하거나 하면 찌그러진 크림은 밀어 버리고 그 위에 다시 짜면 되지만, 이 익스텐션 워크 파이핑은 절대 실수를 허용하지 않는다.

‘퍽 까다로운 걸 들고나오셨는데.’

브라이언은 염려스러운 눈빛으로 임진혁을 살폈다. 하지만 진혁은 긴장한 것 같지 않았다. 브라이언은 내심 안심했다.

‘여유 있는 걸 보니 해본 적이 있나 보군.’

알람 시계를 맞추어 놓고 각자 팀은 재료부터 고르기 시작했다.

비서가 미리 준비한 숙성한 견과류들을 보고서 실비안 웨인스톡은 혀를 내둘렀다.

「재료를 아주 좋은 거로 썼네. 내가 직접 한 것보다 더 좋은데?」

「대단하죠.」

「좋은 재료를 써야 좋은 케이크가 만들어지지. 나쁘지 않아.」

그녀는 미리 실온에 내놓은 버터를 유리 보울에 담아 주걱으로 저으며 능숙하게 섞었다. 버터 역시 질이 좋았다.

「이건 이 근방 농가에서 직접 만드는 버터인가 봐? 좋아, 좋아.」

그녀는 직접 만든 무염 버터에 고운 갈색 가루를 뿌렸다. 비정제 흑설탕이다. 건포도와 말린 버찌, 아몬드와 헤이즐넛. 호두까지 전부 넣고서 럼을 3/4컵 부었다. 그녀가 후르츠 믹스를 점차 럼에 절여 볶는 동안 아드레아노 존부는 장식용 재료를 준비했다. 그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트라캉트 고무 가루와 가루 설탕, 달걀흰자 가루를 체에 쳤다. 그리고 차가운 물에 자른 젤라틴을 넣었다.

브라이언은 자꾸 흘깃흘깃 저쪽을 바라보았다. 그가 진혁에게 속삭였다.

“파스티아주 케이크, 만들어 본 적 많아?”

“응. 생일 케이크 주문을 자주 받았거든.”

설탕 공예에서 주로 쓰는 장식용 반죽인 파스티아주(Pastillage)를 만드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단순한 방법은 레몬즙과 물, 판 젤라틴과 가루 설탕을 섞는 것이다. 진혁 역시 그 방법을 썼다.

하지만 지금 실비안 웨인스톡은 고무 분말과 흰자 가루를 추가해서 좀더 견고한 슈가 플라워 반죽을 만들어냈다.

‘이 반죽 비율만 배워 가도 충분히 남는 장사야.’

즐거워 보이는 진혁을 보며, 커버링 반죽을 만들고 있던 브라이언이 소곤거리며 물었다.

“익스텐션 워크, 해본 적이 있어?”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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