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35화
「우리 동네에 아주 맛있는 짜장면집이 있거든요.」
「아니, 케이크 장식에 대한 피드백을 받겠다며. 지금 또 뭘 먹는다는 거야? 수업이 끝나고 나면 모를까.」
「끝나면 먹고 싶다고요? 그럼 다 마치고 나서 먹으면 되죠.」
두 사람은 계속 손을 움직였다. 브라이언은 크림을 만들었고 진혁은 그 크림을 케이크에 쌓아 올렸다. 평범하게 아이싱을 해서 무지개를 올리기도 하고 구름을 쌓기도 했다. 납작한 달이 초등학생의 그림 한구석처럼 콕 박혔다.
「그건 입체적으로 해도 좋겠는데.」
볼록하니 통통하게 올라온 해님과 달님을 보고서 시몬이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진혁은 그가 한 조언 하나하나 흘려듣지 않고 전부 반영했다.
그러고 나서 유화 물감을 칠한 것처럼 케이크를 장식해 보는 것은 어떤지 제안했다.
「꽤 괜찮군. 진혁 자네가 아예 멍청하지는 않아. 처음으로 만든 케이크가 황혼을, 그리고 그다음에 만든 케이크가 새벽의 일출을 묘사하는 거라고 했나? 아예 자연 쪽으로 가서 풍경화 시리즈 케이크를 내도 좋겠어. 단, 그건 입상이 목적은 아니야. 그냥 포트폴리오로 쓰는 거지. 간혹 일반 가게에 카탈로그를 비치해두었다가 손님이 골라 주문하면 파는 용도로는 쓸 수 있을 걸세.」
라스베이거스에서 오랜 시간 지냈던 브라이언도 아이디어를 냈다.
「자연 시리즈라면, 그랜드 캐니언도 네 실력으로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면 입상 퀄이 될걸. 아예 사람들이 어디선가 한 번씩 보았을 법한 멋진 풍경들을 올리는 건 어때?」
「그냥 자연을 만드는 거면 지금까지와 별다를 바 없지 않아? 한라산이나 백두산 같은 건 누구나 다 만들 수 있다고. 보고 만들면 되잖아.」
「아냐, 봐도 못 만들어….」
그 옆에서 돌아다니며 지켜보던 시몬 리옹은 팔짱을 끼고 보다가 한마디씩 툭 툭 던졌다.
「색감이 아예 구제 불능은 아냐.」
「이 산은 어떻습니까.」
녹색 크림 위에 하얀 크림이 소복이 쌓여 있다. 가까이서 보면 단순한 크림이지만 멀리서 보면 언뜻 산봉우리처럼 보일 법도 하다. 브라이언이 물었다.
「굉장히 높네? 유명한 한국 산인가?」
「음, 옛 중국 산.」
시몬이 꼬장꼬장하게 말했다.
「산을 그대로 만들기만 하면 안 되지, 뭔가 다른 점을 집어넣어. 자신만의 철학이 보여야 해. 왜 이 케이크가 임진혁이고, 임진혁이 왜 이 케이크인지를! 설산에 핀 꽃 한 송이를 꽂아서 나는 이 얼음산에 이르게 온 봄을 보여주겠다고 하던지. 아니면 고요한 호수에 보는 사람들의 얼굴이 비칠 만큼 깨끗한 설탕 수면을 만드는 것도 좋겠지. 케이크를 보러 와서 자기 자신을 보게 된 사람들은 깜짝 놀랄 거고」
적절한 때마다 툭 툭 던져주는 그 말들은 진혁이 어떤 식으로 생각해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저명한 교육자라더니 그럴만하긴 하군.’
확실히 말해서 잘 가르쳤다.
그는 진혁이 사용하는 색깔의 톤을 지적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시몬 리옹은 진혁이 만들어내는 케이크 장식을 보고서 진혁의 눈높이에 맞추어 어느 방향을 보아야 할지 세심하게 알려주었다.
어느 정도 괜찮아 보인다 싶은 수준이면 뜻을 담아 차별화를 하도록 조언했다.
「대회 기준에 아직은 못 미쳐, 조금만 더 해 보자고.」
「예.」
새벽까지 진혁은 서른 개의 케이크 장식을 마쳤다.
다섯 시간 동안 서른 개.
진혁이 혼자 했다면 훨씬 많이 했을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하나 만들고 다른 케이크를 만들 때마다 시몬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되었다.
첫 번째 케이크 장식을 할 때와 서른 번째 케이크 장식을 할 때 그는 자신이 분명히 성장했다고 느꼈다.
‘이게 대회 기준.’
해가 터올 무렵 시몬이 마지막으로 총평을 했다.
「평생 장미꽃 케이크만 만들어온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장미꽃에 나비나 벌이 한두 마리 추가되는 건 괜찮겠지. 그건 아주 리얼하게 만들어도 돼. 사람들이 오오오오 하면서 감탄하겠지. 임진혁, 넌 지나치게 표현력이 좋아서 탈이야.」
「흐음.」
「실비안 웨인스톡 쉐프가 어떤 식으로 케이크를 만들어 왔는지 이 카탈로그를 처음부터 펼쳐 봐.」
그녀의 최근 작업물이라면 진혁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은 성, 마구간, 영화 촬영 현장 등 거대하고 화려하며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물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초기 작품을 보니 웨인스톡이 무엇부터 시작했는지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꽃병, 병에 담긴 꽃. 꽃바구니를 만들었다. 플라워 케이크를 응용한 것이다. 그리고 식탁 위의 센터 피스가 아닌, 식탁 위에 올라가는 음식들을 케이크로 만들어 댔다.
딱 봐도 케이크처럼 보이는 프라이드치킨, 긴가민가한 BBQ 소스를 얹은 스테이크, 감쪽같은 치킨 수프.
처음에는 어설퍼 보이던 크림 장식들이 정말 진짜처럼 보일 정도로 발전해 나가는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
그리고 명품 가방과 명품 구두, 실물 크기의 웨딩드레스 등을 거쳐서 마침내 포트폴리오 파일에 건축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컨테이너나 자동차부터 시작했지만, 곧 교회와 성당 그리고 빵집이나 옷가게처럼 디테일이 필요한 본격적인 건물이 나타났다.
진혁이 말했다.
「처음에는 일상적으로 접근하는 사물을 케이크로 만든다면 어떨까? 하는 질문에서 출발했군요.」
이 포트폴리오를 보자 어째서 시몬 리옹이 중간에 이런저런 지시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가죽과 대리석, 부드러운 천과 나무의 질감.
그리고 수풀과 흙, 그리고 하늘.
그 모든 것을 묘사할 수 있다면, 겉모습이나마 실비안의 케이크를 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 케이크에 그냥 색깔을 칠하는 게 아니야. 이 케이크를 먹을 사람, 그 상황을 생각하는 거지. 웨딩이면 당연히 화이트 기반으로 갈 거고.」
「붉은색이나 검은색을 보았을 때 사람들의 반응… 이 긍정적이지 않다는 건 알겠는데. 파스텔 톤이라고 해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톤이 또 따로 있고.」
「그렇군요.」
「실비안 쉐프의 케이크를 모방하는 게 오히려 임진혁 네게는 가장 좋은 수업이 될 수도 있어. 네 구상력은 그렇다 치고 재현력은 네 나이 또래의 페이스트리 쉐프 중에서 최고에 가까우니까.」
「수업은 여기까지입니까?」
「그래, 잠시라도 눈을 붙여둬야 체력이 버텨 주지 않겠나.」
「아까 말씀드렸던 검은색 요리를 드시고 주무시죠.」
진혁이 씩 웃었다. 그는 대략 20분 전에 스마트폰 어플을 이용해 이미 중국요리를 주문해 둔 상태였다.
‘검은 음식은 맛없다’라는 편견을 깨부숴 주고 싶었다.
‘새까만 음식도 맛있을 수 있다고. 그리고 이 동네 짜장면집은 야간 주방장 손맛이 더 좋아.’
「이 시간에?」
「예. 이제 곧 도착할 겁니다.」
쿵쿵쿵, 강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배달 왔습니다!”
“이쪽입니다.”
마침내 도착한 짜장면을 한 그릇씩 앞에 놓고서 브라이언이 눈알을 굴렸다.
「이거 정말로 까맣네.」
「아니, 한국에 자주 왔다 갔다 하면서 먹어보지 못했어?」
「매일 가는 식당은 정해져 있어. 맨날 갈비탕집이랑 비빔밥집에만 데려가던데? 사실 난 먹을 수 있는 한국 음식이 별로 없어. 매워서 김치도 못 먹거든….」
브라이언은 부끄러워하며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마침내 친부모를 만났을 때, 그들은 브라이언에게 김치를 잔뜩 주었다. 하지만 그는 한 점도 먹을 수가 없었다. 억지로 먹어보았지만, 탈이 나서 병원까지 다녀와야 했다. 부모님이 챙겨 주신 음식이라 버리지도 못했다.
냉장고 속에서 강렬한 냄새가 나자 부인이 괴로워했고, 결국 근처의 한인 교회에 갖다 주었다.
브라이언이 김치를 먹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서 친모는 눈물을 보였다.
그 기억은 지금도 마음 한구석에 씁쓸하게 남아있었다.
진혁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김치 못 먹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아. 우리 이모들도 김치 잘 못 드셔.」
「오. 한국 사람들은 다 김치 잘 먹는 게 아니야?」
「응. 매운 거 못 먹는 사람들도 있어. 하지만 만드는 건 잘 하셔. 직접 배추를 길러서 김장하기도 하시니까.」
「뭐야, 그게.」
「만들어서 조카들 나눠 주고 하시는 걸 좋아하시거든.」
두 사람이 잡담하는 동안 시몬 리옹은 짜장면의 비닐을 벗겼다. 그리고서 의심스러운 눈으로 이 시커먼 음식을 내려다보며 불평했다.
「정말로 검군! 그리고 기름기가 많아. 소스만 가득 있고 면은 밑에 깔려 있잖아. 이걸 어떻게 먹으라는 거야? 이대로 면을 가위로 잘라 수저로 떠먹으면 되나?」
「아, 제가 비벼 드릴게요.」
진혁은 새로 개봉한 젓가락을 들어 면을 집었다. 검은색 소스 사이로 녹색 면이 튀어나오자 시몬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는 해외의 음식이 아무리 기이한 외양을 띄고 있어도 한 번씩은 먹어 보았다. 페이스트리 쉐프들을 교육하는 입장에서 다양한 음식을 먹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짜장면을 보고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젓가락 한 짝으로 소스 가운데를 찔러 보았다.
「오징어 먹물 스파게티도 아니고, 검은색 소스에 면은 초록색이라.」
「여기가 건강에 좋은 클로렐라 면을 써서 녹색이에요. 보통 짜장면집은 이 색깔 아닙니다.」
시몬 리옹은 젓가락질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는 젓가락 두 개 사이에서 허망하게 미끄러져 흘러내리는 면발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브라이언이 속삭였다.
「저 안쪽에 포크 있지? 내가 가져올게.」
「아, 고마워.」
그가 포크를 챙겨 오는 동안 진혁은 젓가락으로 짜장면을 집었다. 능숙하게 소스가 골고루 묻을 수 있도록 그릇 안을 빙글 헤집었다.
이 정도 일을 하는 데에는 무공을 사용할 필요도 없다. 단지 두세 번 엄지손가락과 검지를 움직였을 뿐이지만 짜장 소스는 스키니 진처럼 면발에 찰싹 달라붙었다.
‘짜장면은 면에 짜장이 완벽하게 배어들어야 하는 법.’
세 그릇의 짜장면을 전부 비비고 나서 진혁이 말했다.
「이제 면이 소스를 흡수할 수 있게 잠시만 시간을 주죠.」
그다지 친하지도 않고 할 말도 없다. 수업이 끝나자 별다른 할 이야기가 없었던 세 사람은 그대로 침묵했다.
1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진혁이 말했다.
「이제 드셔도 좋습니다.」
「흐음.」
시몬 리옹은 통통한 면을 포크에 돌돌 감아 조심스럽게 입으로 가져갔다. 브라이언은 익숙하게 젓가락을 사용해 짜장면을 집었다. 그는 아예 면발을 후루룩 들이마셨다.
「면이 달콤한데?」
「미국에서는 설탕이 들어간 면이라는 건 있을 수가 없는데.」
「프랑스도 마찬가지야.」
「그런데 맛있네. 희한하다.」
「여기 들어간 건 고긴가? 그리고 채소? 전부 시꺼멓게 소스 범벅을 해 놓으니 뭔지 알 수가 없군.」
「면이랑 고기, 그리고 양파가 씹히는 맛이 달달하니 어우러지니까 좋은데.」
「이 위에 채를 썰어 놓은 오이 말인데, 양이 너무 적어. 산뜻한 느낌을 주려면 오이를 좀 더 주어야 하지 않을까. 삶은 메추리 알도 그렇고.」
「그래도 맛있군요.」
「달콤한 면이라. 그렇다고 완전히 달기만 한 것도 아니고 오묘해.」
「여기 씹히는 맛은… 돼지고기에요. 거기에 이것저것 채소를 썰어 넣었는데. 파스타보다 면도 훨씬 굵은데 우동보다는 가늘고. 한국식 면 요리는 냉면밖에 몰랐는데 이런 것도 있었네요.」
브라이언과 시몬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검고 맛있죠?」
진혁이 씩 웃었다. 시몬 리옹이 졌다는 듯 두 손을 들어 올렸다.
「맞아, 새카만 음식도 맛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