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433화 (431/656)

제 433화

「도대체 날 왜 부른 거야?」

「예?」

「베이비, 혼자 알아서 하면 되지.」

이건 칭찬인가, 아니면 욕인가? 임진혁은 눈앞에 있는 조그마한 백인 할머니를 내려다보았다.

진혁보다 한참이나 작은 이 노인은 근육이 단단하고 척추가 곧았다.

‘90살이 넘었다고 했나? 신체 나이는 50세 정도로 보이는데.’

단순히 외모만이 아니라 신체 전반적으로 젊다. 계속해서 고된 노동을 해온 것을 고려하면 나이에 비해 놀라울 정도의 체력이다.

체력만 좋은 것이 아니라, 눈빛 또한 형형한 것이 기백이 넘쳤다.

한 분야에서 오랜 시간 경력을 쌓아온, 장인의 풍모다.

「어-.」

주영모가 무어라 끼어들려고 하는데 실비안 웨인스톡이 그 말을 가로챘다.

「모양은 보고 배우면 돼. 맛을 내는 게 문제지.」

케이크 모양내기와 장식하기로 세계 최고의 웨딩케이크 달인이라고 불리는 그녀가 말하니 그다지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았다.

「아니, 그 모양 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요. 웨인스톡 쉐프.」

시몬 리옹이 고개를 저었다.

「두 개를 다 잘 해야죠.」

「물론 그래야지! 하지만 케이크를 예쁘게 만들고 싶다면 그냥 남의 케이크 백 개만 따라서 만들면 된다고. 모양은 보인단 말이야. 그러나 다른 사람 케이크를 맛본다고 해서 그 맛을 따라 할 수는 없어! 그러니 자기만의 맛을 이미 갖고 있는 녀석이 더 낫지. 맛은 다른 사람 케이크를 먹어도 알아낼 수가 없어.」

‘나는 다른 사람 케이크를 먹어도 맛을 알아낼 수 있는데요.’

진혁은 자신의 생각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시몬 리옹이 반박했다.

「두 가지를 동시에 가르쳐야 합니다. 둘 다 손재주의 영역이니까요. 맛을 못 내는 놈이 모양을 잘 만드는 경우는 보지를 못 했습니다. 하나 잘 하는 놈이 열도 잘 하기 마련이지, 뭘 하나 못 하는 놈은 다른 것도 다 못한다고요.」

주영모 역시 말했다.

「진혁 쉐프는 원래 맛 내는 건 잘 했습니다. 맛을 어떻게 내야 할지 그 방향을 못 잡았을 뿐이죠. 충분히 많은 케이크를 보고 따라 만든다면 분명히 도움이 될 겁니다. 수 쉐프까지는 타인의 케이크를 따라하는 정도라도 상관없지요. 그렇지만!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케이크를 모방하다가 오히려 자기 스타일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호텔 페이스트리 키친의 헤드 쉐프 급이라면, 세계 대회에 출전할 급이라면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실비안 웨인스톡이 코웃음 쳤다.

「케이크를 디자인하고 만드는 건 글씨 쓰는 것과도 같아. 글씨를 제대로 못 쓰는 어린아이들은 글씨 교본 위에 삐뚜름한 선을 그어가며 알파벳을 따라 쓰잖아? 하지만 결국 각자 자연스럽게 자기만의 글씨 쓰는 방법을 익히게 된다고. 글씨 쓰기 연습을 하면서 교본의 글씨랑 똑같아질 거라고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자! 그러니 다른 사람 스타일에 영향받는 걸 걱정하지 말고 마음껏 따라 만들면 돼. 아무리 남의 케이크를 따라 만든다고 해도 결국은 자기 색깔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고. 파운드 케이크가 어느 정도의 크림을 버틸 수 있는지, 장식을 이쪽에 얼마만큼 올려놓으면 보기에 좋은지 모르는 채로 따라 만들다가 보면 어느샌가 제대로 알게 될 거야.」

진혁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공을 익힐 때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이 칼을 휘두르는 궤적을 따라서 휘두른다고 해도 완전히 똑같은 자세로 모방할 수는 없다.

키가 같다고 해도 팔 길이가 다르며, 팔 길이가 비슷하다고 해도 다리 길이가 다르다.

설령 키와 체중이 비슷한 일란성 쌍둥이라고 해도 속에 있는 근육까지 같을 수는 없다.

기본적인 초식을 배운다는 것은 동작을 암기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자신의 육체가 가동 가능한 범위를 알아내 몸에 초식을 맞추어 바꿔나간다는 것이다.

‘만류귀종이라.’

처음으로 스스로 만들었던 치즈 케이크.

그는 소망 베이커리를 되살리기 위해서였다. 자존심 따위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유튜브를 보고서 안드레아노 존부의 케이크를 무작정 모방했다. 그래서 만들어낸 크림슨 트리플 치즈 케이크는 평이 좋았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어떻게 했는가?

‘나는 이제 내 마음대로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지.’

디저트 서바이벌 쇼에 나가서 받은 주제대로 케이크를 만들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수준이 생각보다 높지 않다고 느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만들면 되었다.

미묘한 시선을 받았으나 탈락하지 않았다.

결국은 부쩍부쩍 늘어난 실력과 압도적인 맛으로 우승이라는 결과에 도착했고, 자신이 옳다고만 믿었다. 이전에 리처드 베이커의 조언을 받은 이후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좋은 케이크를 만들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으나 잠시뿐이었다.

이후에 참가한 국제 대회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었고 그래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짧은 경력에도 불구하고 우승해 버렸다.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만드는지 보기는 하였다. 그러나 단순히 ‘보았을’ 뿐이다. 그 케이크를 보고 나서 자신이 만드는 케이크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다. 즉 변치 않았다. 자신이 지금 다른 이들의 케이크를 모방할만한 수준은 아니라고도 생각했다.

‘내가 너무 내 고집만 부리고 있었어.’

케이크의 세계에 정답이란 없다. 그렇기에 자신의 길을 추구할 생각이었다. 브라이언이 대중적이고 일반적인 케이크 장식, 사람들이 좋아하는 개념에 대해서 설명해준다고 한 것도 그저 들어줄 생각이었다.

‘아예 제대로 모방해볼까.’

임진혁이 요구했다.

「케이크를 만드는 걸 보여주시면 그대로 따라 해 보겠습니다.」

실비안 웨인스톡이 피식 웃었다.

「나는 여기에 지금 베이비를 가르치러 왔는데? 내 케이크를 만들러 온 게 아니야.」

「그렇다면 케이크를 구입하죠.」

「호오?」

「매주 아내에게 케이크를 보내고 있습니다.」

「사랑스러운 커플이네.」

「결혼한 지 이제 일주일쯤 됐죠.」

실비안 웨인스톡이 눈썹을 추켜올렸다.

「잠깐, 3개월 후에 대회 준비한다고 하지 않았어?」

브라이언 신이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새신부한테 너무하지 않아? 실비안 쉐프가 여성이니까 여자의 마음을 잘 아는군. 결혼하자마자 당장 트레이닝 키친에 처박혀서 케이크 만들기 연습을 계속하는 건 새신랑이 할 일이 아니지. 서로 아무리 신뢰한다고 해도 어지간히 케이크에 미친 바보가 아니면 저렇게 할 순 없다고. 실례야, 실례.’

하지만 실비안이 한 말은 브라이언의 예상과 달랐다.

「그런 상황에서 결혼을 하면 어떡해! 결혼을 미루고 대회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결혼이고 뭐고, 연애니 직장이니 다 때려치우고 이 대회만 2년간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실비안 웨인스톡은 아까보다 조금 더 차갑게 말했다.

「대회 3개월 남은 시점에 불렀길래 그동안 열심히 준비하다가 마무리 점검하는 데 도움을 받으려고 하는 줄 알았지. 그런데 지금 팽팽 놀면서 결혼이니 뭐니 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부른 거야? 세상에! 대회를 우습게 봐도 분수가 있지.」

그녀는 씨근거리면서 화를 참지 못했다. 주영모가 진혁을 돕는답시고 거들었다.

「결혼하고 상관없잖습니까. 젊은 애들이 사랑한다는데 결혼은 해야죠.」

아드레아노 존부 역시 진혁의 편에 서 있었다.

「그래요, 실비안 쉐프. 그리고 얘가 실력이 나쁘지는 않아요. 내가 거의 처음부터 지켜봐 왔는데 정말로 빠르게 실력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노력을 안 하는 애는 아닙니다.」

「그게 더 나빠! 노력을 계속하면서도 이번 대회는 우습게 봤다는 게!」

시몬 리옹이 말했다.

「실비안 쉐프, 결혼이고 뭐고 다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알잖아요. 얘가 만든 케이크 맛있습니다.」

「음.」

「솔직히 내가 교육자로 살아온 30년 인생에 이렇게 맛있는 케이크를 못생기게 만드는 놈은 처음 봤습니다. 보통 이 정도로 맛있는 케이크를 만드는 애들은 케이크에 인생을 바쳤죠. 그래서 이 정도 맛을 만들어내기 이전에 이미 어떤 모양으로 만들어야 할지 자신만의 철학을 정립한 지 오랩니다. 하지만 얘는 아직 그게 없죠. 그래서 만들어 놓은 케이크 모양이 이랬다저랬다 합니다.」

시몬 리옹은 가지고 왔던 서류 가방에서 파일을 꺼내 펼쳤다.

그 파일 안에는 여태까지 임진혁이 만들어온 빵의 사진들이 있었다.

크림슨 트리플 치즈 케이크는 물론이며, 소망 베이커리에서 지금도 톡톡히 팔려나가고 있는 스포츠용 카스텔라. 국내 대회에서 만들었던 케이크와 빵. 그리고 국제 대회에서 만든 빵들.

가게에서 만들어 팔고 있는 케이크. 그리고 샌드위치까지.

잡다하고도 다양한 그 빵 사진들을 보고 주영모가 신음소리를 흘렸다.

「시몬… 그냥 심심해서 왔다며? 임진혁의 빵과 케이크에는 관심이 없다며?」

시몬은 떳떳하게 등을 세우고서 주영모를 노려보았다.

「훌륭한 스승이라면 제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정도는 파악해야 하지 않겠나? 이 게으른 자야!」

그 빵의 기록들을 넘겨 보던 실비안 웨인스톡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이번 대회는 무리겠는데?」

「예에?」

「지난 대회에서 우승한 게 기적적일 정도야. 우연히 허들을 넘었을 뿐이지. 지금 기본이 전혀 안 되어 있잖아. 여기를 봐.」

그녀가 손가락으로 케이크를 가리켰다.

「대회용 장식 케이크를 만들어 본 것은 고작 텔레비전에 나가서 몇 번 구웠을 뿐이지. 현실을 직시하라고. 거기 나오는 다른 쉐프들이 이런 일을 얼마나 많이 해왔는지 알아? 수천 번, 수만 번 케이크를 구웠을 거야, 하지만 이 포트폴리오를 보면 진혁 베이비, 지금 백 개는 구웠어? 경력이 짧다는 건 차치하고서라도 구워온 케이크가 백 개가 채 안 돼. 말도 안 되는 숫자지. 겨우 백 개! 부족해, 아직 부족하다고.」

브라이언이 다급히 끼어들었다. 베이커리 계의 여왕이라고도 하는 실비안 웨인스톡이지만 자신의 친구를 폄하하는 것을 가만히 듣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방금 진혁이 만든 케이크를 맛보시지 않았습니까? 맛있다고요! 어떻게 보면 그만큼 재능이 뛰어나다고도-.」

「그래, 그러니까 아직 부족하다고.」

임진혁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아직 제 이야기에 답해주시지 않았는데요.」

「무슨 답?」

「케이크를 주문하지요. 그 케이크를 만들어 주시면 제가 모방해서 만들어 보겠습니다.」

「내 케이크는 비싸. 지불할 마음은 있나?」

「물론이죠. 어차피 여기에 계실 1주일간, 별다른 주문은 받지 않으신 거로 알고 있습니다. 케이크를 맛보는 것보다 만드는 걸 훨씬 좋아하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녀가 싱긋 웃었다.

「도전하는 건가?」

실비안 웨인스톡에게 이런 식으로 말해온 제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제과제빵계에서 너무나 오랫동안 원로로 군림해 왔기 때문에 이런 류의 반응을 처음 보았다.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만들어 보시죠, 제가 따라서 만들겠습니다.」

실비안은 아무것도 모르는 젊은 페이스트리 쉐프가 망신을 당하지 않도록 진혁에게 물러날 기회를 한 번 더 주고자 했다.

「쉽지 않을 텐데. 지금이라도 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해도 괜찮-.」

진혁은 실비안의 말을 그대로 잘라 버렸다.

「모방하는 건 잘 할 수 있습니다.」

「좋아, 그럼 내일 이 자리에서 보자고. 어떤 재료를 준비해야 하는지는 비서를 통해서 알려 줄 테니까.」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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