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431화 (429/656)

제 431화

「자, 생각해 봐. 거리에서 판매하는 케이크들은 보통 어떤 모양이 많아?」

진혁은 그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있었다.

「특별히 어떤 모양이라기보다는… 단순한 아이싱 위에 과일을 얹은 게 많지.」

임진혁은 브라이언에게 동네 케이크 모양을 보여 주었다. 아버지가 20여 년 이상 만들어 온 케이크는 그다지 새로운 모양은 아니었다. 그나마 5년 전에 설탕에 절인 과일들을 올린다는 새로운 방침을 채택했다.

하지만 그 케이크는 브라이언이 보기에는 못 견디게 촌스러운 모양이었다.

브라이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임진혁이 봐온 케이크는 너무 극단적이야.’

세계 정상급의 케이크 장인들이 구워내는 최고 수준의 케이크와 초콜릿 쇼 피스.

그리고 동네 빵집에서 만들어 파는 조그마한 케이크.

보통 대회 준비를 하는 이들이 호텔 출신으로 다양한 케이크를 접해보고 봐온 것을 생각하면, 진혁은 정말로 터무니없는 배경을 가지고 이 자리에 서 있다.

브라이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장식용 쇼 피스, 그리고 대회용 케이크를 충분히 많이 접해오지 못했기 때문이야.’

브라이언은 진혁이 어째서 디저트 서바이벌 쇼에서 유난히 특이한 모양을 만들었는지 새삼스럽게 이해하게 되었다.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겠지만 무서울 정도의 재능이다.

브라이언은 진혁에게 부드럽게 물었다.

「시판하는 실리콘 몰드는 보통 어떤 모양이 많지?」

눈앞에 있는 카탈로그에 정답이 바로 보이게 펼쳐져 있었다. 개수를 대강 세어본 진혁이 간단하게 대답했다.

「꽃이나 동물 같은 것.」

「봐. 이런 모양들은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많이 사 가는 거야. 수요가 있으니까 팔리지.」

반면에 너무나 실제 발처럼 적나라한 아기의 발바닥 족문 모양 사탕은 아무도 팔지 않는다. 브라이언은 그 사실을 지적하지는 않았다. 진혁은 대중적인 미적 취향을 아주 조금 벗어나 있을 뿐 머리가 나쁜 것은 아니니 이 정도만 말해 줘도 알 것이다.

「꽃이나 동물이라.」

진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는 세 개의 케이크가 서로 다르면서도 이어지기를 원했다. 발자국을 하고 싶었던 이유는

임진혁이 방금 브라이언이 꺼낸 두 가지의 개념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말했다.

「덩굴식물이 타고 올라가거나 뱀이 케이크 세 개를 칭칭 감고 있으면 좋겠는데. 어느 쪽이 좋아?」

식물은 이파리와 꽃을 정밀하게 묘사하면 되고, 뱀은 비늘 색깔을 예쁘게 넣을 수 있으니 둘 다 나름 실력을 뽐낼 수 있다.

브라이언이 정색했다. 그는 오늘 저녁에 어떤 교재를 만들어야 할지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림을 그렸다.

‘사랑스러운 동물, 그리고 아름다운 식물들. 시판되는 제품 카탈로그를 비롯해서 최근 대회에서 수상한 작품은 물론이고 지금 맨해튼에서 유행하고 있는 케이크 스타일도 전부 보여줘야겠어.’

진혁은 자신을 보조하기 위해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브라이언은 기쁜 마음으로 진혁을 도울 것이었다. 그가 보여준 우정에 보답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

「뱀은 패스. 덩굴식물로 하자. 타고 올라가면서 꽃 피는 모양이면 좋겠는데.」

「진부하지 않아?」

「진부하다는 건! 사람들이 많이 쓰는 테마라서 진부해 보이는 거야! 그리고 사람들이 그 테마를 많이 쓰는 이유는 보는 사람들이 꽃이나 동물을 좋아하기 때문이고!」

「으음, 꽃이라- 덩굴에 피는 꽃.」

진혁은 눈을 깜빡거렸다. 그는 세 개의 케이크 위에 슥슥 선을 그었다. 가늘고 굵은 덩굴이 번갈아 케이크를 감아올리며 솟아오르는 모양새는 브라이언이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담쟁이덩굴을 닮은 것 같기도 하나 이파리의 모양이 괴상하게 뾰족했고, 살짝 가시도 돋아 있었다. 꽃이라곤 피어 있지 않았다.

브라이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꽃은 없어?」

「여기 이 이파리처럼 생긴 부분이 꽃이야. 파리라든가 모기를 끌어들여서-.」

「장미꽃! 장미꽃을 하자고. 누가 식충 식물이 올라간 케이크를 먹고 싶어 하겠냐고!?」

「끈끈이가 달콤해서 맛이 좋아.」

남만의 강족들이 사는 곳은 생태계가 완전히 다르다. 정글처럼 무성한 나무와 온갖 식물, 그리고 색색의 화려한 독물(毒物)들이 살고 있다. 식물도 동물도 모두 저마다 독을 갖고 있는 독화곡, 그 안에서 보았던 식물이다.

「아니, 네가 맛에 대해 탐구심이 높다는 사실은 알겠지만… 여기서는 평범한 장미꽃으로 가는 것이 어떨까?」

브라이언이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미 스스로 깨닫게 한다는 계획은 갖다 버렸다. 지금 여기서 한 걸음이라도 물러난다면 진혁은 괴상한 가시 달린 식충 식물을 만들어 올려놓을 것이다. 브라이언은 그 꼴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진혁은 조금 시무룩해졌다.

「이거 집안에 놓으면 알아서 벌레도 잡아주고 편한 식물인데.」

「노, 노. 이건 아니야.」

진혁은 이전에 대회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던 두 생물을 생각해 냈다.

「그럼 뱀 말고 나비나 고양이는 어때?」

「그건 아주 좋아.」

「브라이언, 동물을 차별하면 못 써.」

「차별이 아니고! 대중의 감각이라는 거야.」

「얘기하는 사이에 10분 넘게 지났잖아. 이제 만들 시간이 모자라는데.」

진혁이 투덜거렸다. 브라이언이 제안했다.

「달걀은 어때?」

「음?」

「네 실력이라면 초콜릿 달걀은 금방 만들 수 있잖아.」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초콜릿을 ‘적절한 온도로 템퍼링 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그대로 녹이면 맛이 없다. 카카오 버터의 분자를 결정화시켜 안정성이 좋은 상태로 만들어 맛이 좋게 하기 위해서 반드시 이 템퍼링 과정을 거쳐야 한다.

보통 장식용 초콜릿을 만들 때는 세 가지 온도 조절 방법을 사용한다.

수냉법은 초콜릿을 40도 정도로 용해한 후 냉수에서 27도까지 낮춘 후 다시 30도로 올리는 방법이다. 대리석법은 15도 정도로 차갑게 만든 대리석 위에 40도로 녹인 초콜릿을 부어 식히는 방법이다. 먼저 60~70%가량의 초콜릿을 대리석 위에 붓고서 온도가 27도 정도로 떨어지면 남은 40~30%의 초콜릿을 섞는다.

반면에 접종법은 완전히 녹은 초콜릿을 새로운 초콜릿에 섞어 가면서 같이 녹인다.

브라이언은 접종법을 선호했고 진혁은 주로 대리석법을 썼다.

임진혁은 중탕한 냄비에 초콜릿을 넣으며 온도계도 넣지 않고 바로 대리석에 초콜릿을 붓기 시작했다.

「틀은 내가 꺼내올게, 실리콘 달걀 모양 있지?」

「응.」

「다행히 여유 있게 여러 개 있네.」

진혁이 초콜릿을 템퍼링 하는 동안 브라이언은 옆에서 실리콘 틀을 세척했다. 물기를 빠르게 닦아내고서 붓도 준비해 주었다.

「오, 고마워.」

대리석에 조르륵 붓고 난 초콜릿의 온도를 살핀 진혁은 바로 달걀 모양 틀을 넘겨받았다.

절반으로 쪼개져 있는 이 실리콘 틀에 붓으로 조심스레 초콜릿을 살살 바르는데, 여섯 개의 반구를 순식간에 칠했다. 머뭇거리지도 않았다.

「호오.」

브라이언은 그 솜씨에 감탄했다. 그리고 세 번째, 네 번째와 다섯 번째, 그리고 여섯 번째 반구는 조금 덜 칠한 것을 눈여겨보았다.

「그렇게 굳히려고? 나중에 양쪽 붙이는데 힘들지 않겠어?」

「괜찮아. 붙일 면은 서로 약간 갈라지게 해 놓으면 붙이기 쉽잖아.」

진혁이 싱글싱글 웃었다. 유화 물감처럼 진득하게 묻어날 초콜릿을 수채화 붓이 지나가듯 가볍게 칠한다. 붓질이 한 번 지나가면 그 자리는 완벽하고 균일하게 초콜릿이 발린다. 기계가 해도 이렇게는 못할 것이다.

두꺼운 초콜릿 달걀은 케이크를 지나치게 달게 만들어 버린다. 브라이언을 따서 만들어 준 망고 케이크만 해도 지금 이미 충분히 완성된 맛을 갖고 있다. 미미한 단맛이라면 모를까 지나치게 두꺼운 초콜릿이 올라간다면 맛의 조화를 해쳐 버릴 것이다.

진혁이 깔죽깔죽하니 톱니바퀴처럼 반쪽짜리 달걀의 가장자리를 섬세하게 다듬어나가자 브라이언이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네가 만드는 건 약간 갈라진 정도가 아닌데.」

「이 정도야 기본이지. 그래야 잘 붙어.」

브라이언은 팔짱을 끼고서 임진혁을 지켜보았다. 케이크 위에 올라갈 초콜릿 달걀들은 꽤 괜찮게 만들어졌다.

「무슨 초콜릿을 종잇장처럼 얇게 하는 거야?! 이거 참, 피드백이 기대되는걸.」

◈          ◈          ◈

코치들이 등장한 것은 정확히 25분 후였다. 제일 먼저 온 사람은 주영모와 시몬 리옹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밀치듯이 먼저 들어오려는 것처럼 행동했다.

「케이크 세 개를 그냥 나란히 올려놨네?」

「맨 아래쪽은 온전한 달걀, 그 위에는 금이 간 달걀, 그리고 마지막에는 반쪽짜리 달걀이라. 안에 들어있던 새가 어딘가로 날아갔을 것 같은 희망을 상상하게 하는군. 좋은 느낌이야.」

주영모가 감탄하며 말했다. 브라이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올려놓은 순서와 단순한 달걀 껍데기에 변화를 주는 아이디어도 좋았어. 보는 사람이 철학적으로 해석해 주는군.’

주영모의 칭찬을 들은 브라이언 신은 마치 자신이 찬사를 받은 것처럼 뿌듯해했다.

「아직 부족해.」

시몬 리옹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안색이 좋지 않았고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진혁 쉐프. 어제 한숨도 자지 않고 한 게 고작 이 정도인가? 시간 대비 효율이 너무 떨어지는데?」

브라이언이 놀랐다.

「뭐? 어제 밤 샜어?」

「조리실에서 불이 꺼지질 않았잖아」

주영모는 눈을 크게 떴다.

「시몬 리옹 자네는 밤을 새워서 그걸 보고 있었나?」

「학생이 시간을 쪼개서 작업하는데 선생이란 작자가 그것도 모르고 잠도 처잔 주제에 그게 할 말인가? 당연히 같이 밤을 새워야지.」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들어왔다. 이번에 들어온 것은 밝은 미소를 짓고 있는 아드레아노 존부였다.

「여-어! 다들 미리 와 있네. 오, 케이크 괜찮은데? 맛볼 수 있나?」

「실비안 쉐프님도 오신다면요.」

「그거야 당연히 기다려야지.」

실비안 웨인스톡은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안경을 끼고서 당당하게 등장했다. 그녀는 시계를 흘긋 보았다.

「내가 제일 늦었나? 다들 빨리 왔네. 호호호호. 원래 주인공은 늦게 오는 법이지.」

「하하.」

「그런데 저 케이크는 뭐야. 설마, 대회 준비용이라고 만든 건 아니지? 빨리 아니라고 말해줘. 맛은 그렇다 치고 눈으로 딱 봤을 때 임팩트가 전혀 없는걸. 너무 무난하잖아. 차라리 예전에 대회에서 내놓았던 이상한 시체 같은 걸 내놓지. 지금 이건 뭣도 아닌데.」

임팩트 없는 케이크를 만들도록 조언한 브라이언이 창백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아드레아노 존부가 가까이 다가가서 케이크를 들여다보았다.

「일부러 덜 만든 거 아닌가? 이거 봐요. 달걀의 두께가 미친 듯이 얇아. 2밀리미터? 형틀을 써서 만든 게 아니라 초콜릿을 바닥에 얇게 깔고 스크래퍼로 벗겨서 만 것처럼 얇은데. 왜 이렇게 했지?」

진혁이 간단하게 대답했다.

「초콜릿이 너무 두꺼우면 맛이 없어지니까요.」

「아니, 그거야 그렇지.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얇게 만들었냐 이거야.」

실비안 웨인스톡 역시 케이크 가까이 다가가 안경을 치켜들었다. 그녀가 휘파람을 불었다.

「이건 대단한데. 그런데 문외한들이 확 끌어당길 만한 매력이 있는 건 아니야.」

「음.」

「승부를 결정하는 건 맛이지만 첫인상은 아니지. 당장 딱 보기에 화려하고 시선을 확 끌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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