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426화 (424/656)

제 426화

브라이언은 숙소에 들어서 문을 닫았다.

예상했던 대로 아무도 쫓아오지 않았다.

딱히 임진혁이 따라와서 해명하기를 바란 것은 아니다. 실은 아무도 따라오지 않아 안심했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시간이 필요했다.

「괜히 진혁 쉐프에게 화풀이를 했어.」

그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지.」

지금 당장 짐을 싸서 미국으로 돌아가는 편이 나아 보였다. 비행기 표는 3개월 후로 예약되어 있지만 전화해서 당기면 된다. 갑자기 돌아간다면 제시카가 놀라긴 하겠지만 설명하면 이해해 줄 것이다.

임진혁 쉐프에게 실망한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이 얼마나 속 좁고 한심한 사람인지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어서 기분이 나빴다.

어쩌면 자신은 그 조그마한 마을에서 덩치 큰 다른 인종 소년들에게 얻어맞던 시절에서 한 걸음도 발전하지 못한 걸지도 모른다.

맞을 것 같으면 미리 도망친다.

고난이 있으면 맞서지 않고 달아난다.

지금도 불쾌한 일이 발생할 것 같아 뛰쳐나와 버렸다.

「하아.」

한숨을 쉬며 온몸을 웅크렸다.

하지만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달아난다고 해도 자기 자신으로부터는 도망칠 수 없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지?’

계속 질투했다.

디저트 서바이벌 쇼에서 처음 봤을 때는 경력도 짧은데 대단한데! 하고 생각했다.

재능있는 후배라고 생각했기에 너그러운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하나 처음에는 조금 센스가 없나 싶은 모습도 보여 주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기술을 하나둘씩 빨아들이는 것처럼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며, 매번 만드는 케이크마다 한 번씩 더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마침내 최종적으로 결판이 나고 그가 아드레아노 존부 쉐프의 제자 자리를 걷어찼을 때는 솔직히 미우면서도 고마웠다.

하지만 그 존부 쉐프의 제자라는 자리가 생각만큼 달콤한 것만은 아니었다. 헛되이 일 년이라는 시간을 낭비하고, 모아두었던 돈을 전부 털어 넣어 가게를 열었다.

하지만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 비싼 월세를 지불하고 오픈한 가게에는 손님이 많지 않았다. 아이스크림이 여름 날씨에 녹아내리는 것처럼 돈이 빠져나갔다. 최고의 재료를 써서 멋진 케이크를 만들었지만 좀처럼 손님이 늘지 않았다.

전부터 알던 페이스트리 매거진의 기자들에게 부탁해서 기사도 올려 봤지만, 반응은 나빴다.

호텔에서 헤드 쉐프로 일할 때 재경부에서 가하던 압박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스트레스 때문에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고 근무하는 것이 나날이 더 힘들어졌다.

결국, 제시카의 조언을 통해 더 손해를 보기 전에 가게를 닫았다.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감정 기복이 심해지고 손도 굳었다.

그러던 차에 다시 진혁의 아내가 결혼 케이크를 부탁하러 불렀다.

사소한 오해가 있었고, 문제는 곧 해결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출전하고 싶었던 꿈의 대회에 보조로나마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임진혁 쉐프가 이 대회에서 우승을 하면 나 역시 슬럼프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될 테지.’

하지만 진혁은 대회를 진지하게 준비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현실에는 불가능한 ‘허공에 떠 있는 케이크’를 만들겠다며 장담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물어보면 그 트릭에 대해서는 얼버무렸다.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물어봐도 말해주지 않았다. 다른 슈퍼스타 페이스트리 쉐프들에게는 비밀로 할 수 있다. 하지만 보조인 자신에게는 알려주어야 도와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는 날 믿지 않아.’

보조로 선택했다는 점에서 자신을 믿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까다로운 아드레아노 존부 쉐프도 비장의 레시피를 준비할 때 기본적인 재료 준비는 제자의 손을 빌렸다.

다만 핵심이 되는 한 가지 재료만 자신이 따로 준비했으며, 배합을 비밀로 했을 뿐이다.

하지만 진혁은 그보다 더했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어느 시점에서 무엇을 할지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 친우라고 믿었던 자가 그렇게 행동하니 더 배신감을 느꼈다.

‘내가 진혁 쉐프를 크게 실망시킨 거야. 첫 번째 결혼식 때 케이크를 주지 않아서인가? 마리오가 만든 케이크를 마음에 들어 했다고 들었어.’

절망과 불안, 초조함은 망상이 되어 뻗어 나갔다. 솔직히 부럽다. 나도 임진혁 쉐프처럼 되고 싶다. 그 마음은 엉키고 뒤얽혀 진혁 쉐프와 친해지고 싶다는 데까지 다다랐다.

마침내 진혁 쉐프와 친해져서 잘 되고 있는 것 같은 다른 쉐프들까지도 부러워졌다.

‘루이스와 마리오 쉐프하고 친하니까. 그래서 강마리오를 먼저 보조로 부탁한 거지. 두 사람이 나보다 훨씬 친할 거야. 내가 미국으로 입양되지 않고 한국에서 태어나 계속 자라서, 한국에서 제과제빵을 배우고 같은 팀으로 나갔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까?’

저절로 손톱을 물어뜯게 된다.

진혁이 아드레아노 존부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물었던 순간 브라이언은 어찌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그에게는 태산 같기만 한 스승이다. 어렵고 어려워 말 한마디 건네기가 힘든 사람.

자신의 기술을 절대로 알려주지 않으려는 이다.

하지만 진혁은 그에게서 비장의 레시피를 배우겠다며 자신만만해 했다.

절대 배우지 못할 리가 없다는 자신감.

그 자신감을 보면서 감탄하기보다 어두운 감정이 부글부글 끓었다.

자신도 예전에는 그런 적이 있었다. 벨라지오 호텔의 꼬마 중 제일 먼저 수쉐프가 되었고 곧 헤드 쉐프가 될 것이었다. 촉망받는 인재로 어디서든 그를 원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실패자다.

똑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한쿡말 모테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목소리다. 반가운 말소리에

「리처드?!」

붉은 곱슬머리에 럭비 선수처럼 넓은 어깨. 결혼식에서도 못 본 리처드 베이커였다.

「오랜만이야!」

「만나서 반갑네, 친구! 오랜만이야!」

「아하하하!」

노크한 사람이 진혁이었다면 조금 고민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랜만에 리처드를 보니 반가웠다.

오지랖 넓고 여기저기 참견하기 좋아하는 이다. 당시 디저트 서바이벌 쇼에 출연했던 다른 이들보다 연배가 좀 있는데 성격이 유난히 서글서글해 많은 사람들과 친하게 지냈다. 진혁과도 꽤 가깝게 지내며 옛 가게에서 일을 도왔다.

하지만 브라이언과는 좀 더 깊은 인연이 있었다. <쿠프 드 몽드 파티쉐리>에서 같은 팀으로 출전해 동고동락했다. ‘베이커스 샵’이라는 가게의 오너 쉐프로, 브라이언이 가게를 오픈할 때에도 롤 모델로 삼았다.

주변 사람이 윈도우 베이커리를 운영하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든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점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해 보니 쉽지만은 않았다.

「결혼식에서도 못 봤는데?」

「하하하! 그때 멜리사가 마침 아이를 낳았지 뭔가. 대신 좋은 술을 보냈지.」

「잠깐. 리처드 당신은 빵이랑 결혼했다면서 평생 싱글로 산다고 하지 않았어? 누가 아이를 낳았다고?! 결혼은 했어?!」

뜻밖의 소식에 브라이언이 깜짝 놀라 물었다.

리처드 베이커는 신이 나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는 바탕화면에 있는 가족사진을 보여주었다. 닮아 있는 붉은 머리 여인과 아기, 그리고 리처드와 양아들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결혼은 안 했고, 같이 살고 있어. 그런데 이번에 아기가 태어나니까 멜리사가 결혼을 하고 싶어하더라고.」

초록색 눈에 연한 백금발 곱슬머리를 한 아기는 어머니에게 안긴 채 눈을 찡그리며 하품을 하고 있었다. 양아들은 아들이라기보다 남동생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멜리사와 눈매가 닮아 있어, 네 사람은 누가 봐도 피가 섞인 가족 같았다.

브라이언의 양부모 사진에서 브라이언이 인종조차 달라 눈에 확 띄는 것과는 다르다.

조금 부럽기도 했다.

「아니… 대회 때문에 가게를 비운 동안 빵집을 운영해 준다던 케이시. 그 케이시가 여기에 있는데?」

「멜리사는 케이시의 양어머니야. 멜리사의 언니가 죽기 전에 케이시를 맡겼지. 매일 밤 같이 일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멜리사하고 알게 되었어. 이제는 멜리사하고 결혼하면 케이시가 내 양아들이 되지. 나이가 자네하고 비슷할걸?」

「또 사람이 인연이 되려니 그런 일도 있네.」

「특별히 숨기고 있던 건 아니니까. 말할 일도 아니고.」

리처드 베이커가 피가 섞이지 않은 아들을 친아들처럼 친근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고서 브라이언은 리처드 베이커에게 더 호감을 느꼈다.

‘우리 양부모님 같네.’

「그보다 우리 막내를 보라고.」

「코하고 턱이 똑같네. 피는 못 속인다더니. 그런데 머리색은 아직 연하네?」

「이제 조금 있으면 이 곱슬머리도 나처럼 보기 좋은 빨간 머리가 될걸. 결혼식은 어땠어?」

「첫 번째는 안 갔지만 두 번째도 사람이 많았지. 하아.」

저도 모르게 한숨이 절로 나왔다. 눈치 빠른 리처드가 씨익 웃으며 물었다.

“뭐 진혁에게 기분 상한 점이라도 있나?”

“…진혁이 보냈나?”

“그 눈치 없는 녀석이 웬일로 브라이언 자네가 어떻게 생각하나 전전긍긍하고 있던데? 걔가 보낸 건 아니야. 내가 온 거지, 인사도 할 겸.”

솔직하게 말하는 데도 밉지 않다. 자신처럼 내성적이고 말 없는 사람들은 지나치게 쾌활하게 말하며 배려 없이 다가오는 사람들이 싫다. 하지만 리처드는 달랐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은데.’

브라이언이 말했다.

“고맙지만 이제 가 봐도 돼. 나는….”

“뭘 고맙지만 가 봐도 돼! 직장에서 해고당한 새끼오리 얼굴을 하고 있는 주제에. 이 앞에 괜찮은 프라이드치킨 펍이 있다고. 자, 가자!”

어깨동무를 하고 억지로 끌어내는데 당할 재간이 없었다. 브라이언은 어어어 하면서 얼떨결에 숙소 앞의 호프집까지 끌려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는 임진혁이 앉아 있었다.

맥주 피처와 튀긴 닭을 앞에 놓고서 뻘쭘하니 앉아 있는 모습이 평소와 달랐다.

「왔어?」

「우리 왔어!」

「아기를 두고 벌써 떠나도 괜찮아?」

「진혁 네가 베이비시터까지 보내줬잖아? 멜리사가 좋아서 팔짝 뛰던데. 나보다 더 유능해서 좋대. 아예 한국에서 돌아오지 말라던데?」

「하하하하하! 그게 진심일 리가 없잖아.」

리처드와 진혁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브라이언이 조심스레 사과했다.

「진혁, 치킨 먹을래? 무슨 조각을 좋아해?」

완곡한 사과의 표현을 듣고서 진혁이 머쓱하게 웃었다.

「하하하, 난 아무거나 다 잘 먹어.」

사과를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리처드 베이커가 거들었다.

「진혁이 이놈은 닭의 살점과 오돌뼈만 먹는 게 아니고 뼈도 씹어 먹어. 아주 가리는 게 없지.」

「정말로?」

「닭 머리까지 씹어먹는 놈은 내가 처음 봤다.」

「머리를 먹을 수 있다니.」

브라이언이 놀라서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진혁이 대충 둘러댔다.

「아무거나 다 잘 먹어야 좋은 제과제빵사가 되는 거지.」

「역시 넌 존경할 만한 녀석이야!」

「아니, 특별히 날 존경할 필요는….」

「자, 자. 먼저 건배부터 하자고.」

세 사람은 맥주잔을 부딪쳤다. 리처드 베이커가 힘차게 외쳤다.

「결혼이라는 무덤에 들어온 걸 축하하네!」

「득남을 축하합니다!」

「득남이라니, 막내딸이야! 딸이라고.」

아까 사진에 나온 아기를 보고 듬직해 보이는 덩치에 아들이라고 추정했던 브라이언이 황급히 정정했다.

「아주 건강한 딸이 되겠군요.」

「농담이야, 아들이라고. 이름은 안 물어보나?」

「이름이요?」

「브라이언 진 베이커야.」

뜻밖의 이름에 브라이언이 깜짝 놀랐다.

「예?」

「대부가 되어달라고 정식으로 부탁하고 싶은데.」

「아니, 왜 나를…, 더 훌륭한 사람들이 있잖습니까? 진혁도 있고」

「진혁이 이름도 넣었는데? 가운데 이름이 진이잖아.」

「아버지 성함이라거나.」

「우리 아버지 이름은 리처드야.」

「아.」

「리처드 주니어 주니어하고 나가는 건 싫거든.」

「그건 좀 복잡해지죠.」

「브라이언 자네는 내가 봐온 제과제빵사들 가운데 가장 성실한 사람이야. 그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것들을 알아보고, 구현하는 능력이 뛰어나지. 임진혁 쉐프에게는 가장 부족한 능력이야.」

진혁이 맥주를 따라 주며 물었다.

「내가 뭘?」

「진혁 쉐프야 손이 빠르고 정확하고 모방도 잘 하는데, 자기 취향이 마이너해.」

「하하하하.」

「시체와 고어, 절단과 해골이 대중적인 취향은 아니야. 반면에 브라이언 자네는 정말로 대중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꿰뚫고 있어. 그건 앞으로 나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거야. 진혁 쉐프는 남들과 다른 점을 무기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고, 브라이언 자네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내 그들이 원하는 것을 가져다줄 수 있는 사람이지. 두 사람 모두 앞날이 창창한 페이스트리 쉐프들이야. 내 아들이 자네들 같은 삶의 태도로 살았으면 좋겠어. 그러면 뭘 하든 잘 살 테지.」

「리처드….」

브라이언은 감격에 겨워 말을 잊지 못했다. 반면에 진혁은 무심하게 치킨을 씹으며 따졌다.

「왜 가운데 이름이 진혁이 아니라 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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