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425화 (423/656)

제 425화

“그래, 진혁아. 잘 지내고 있냐? 새아기는 좀 어떻고.”

“천마 2 촬영하고 있죠.”

“네가 한 번 가보지 않아도 되겠니? 대회 준비가 바쁘다는 건 들었지만 신혼에 오래 떨어져 있으니 걱정이 되는구나.”

진작부터 알던 얘기를 새삼스레 언급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진혁이 의아해했다.

“아버지, 남해 별장에서 어머니랑 같이 잠시 쉬신다고 했잖아요? 혹시 무슨 일이 있었어요?”

“…별 건 아니야. 네 어머니 좀 바꿔주마.”

“예.”

진혁이 잠시 기다리는 동안 한 비서가 다가왔다. 그는 비서에게 손짓을 해 보였다. 비서가 자리를 피해 주자 어머니가 전화기를 넘겨받아 인사했다.

“진혁아.”

“예, 어머니.”

“이 별장이 너무나 좋구나.”

“…예?”

“사진을 보고 좋겠구나 싶기는 했는데 너무 좋아.”

진혁이 얼떨떨해하는 사이에 어머니는 쉴 새 없이 말을 이어갔다.

“부엌이 두 개 있는 건 알고 있었지. 일반 주방 하나랑 제과주방 하나. 그거야 너 올 때 쓰라고 하는 거 아니겠니? 거기에 침실 여섯 개마다 욕실이 하나씩 딸려 있는데, 하나하나가 전부 궁궐 같아. 사진을 봤을 때는 우리 방 하나만 그렇게 꾸며놓았나 싶었는데, 방 전부 72인치 텔레비전과 가구 일체가 개별로 다 설치되어 있지 뭐냐. 언제든지 손님을 불러와도 좋다고 편지까지 써 놨어. 아예 여기서 펜션 사업을 해도 될 만큼 해놓았다니까? 거기에 섬에 별장이랑 별장 관리인, 그리고 식료품 공급하는 사람이 왔다 갔다 하는 건 아니? 심지어 낚싯배 몰아줄 사장하고, 물고기 낚으면 요리해줄 요리사까지 상주하고 있어. 우리는 여기에 일 년에 한두 번 오려고 했는데, 일 년 내내 월급하고 식재 값을 새아기가 다 지불하고 있다는구나.”

무슨 일이 있나 하고 걱정했던 진혁은 저도 모르게 큭큭 웃어버렸다.

“별다른 일이 있는 건 아니네요.”

“별일이 없긴! 이게 별일이지. 새아기가 결혼식 비용이나 손님 초청 비용을 전부 부담했잖아. 그리고 거기에 이만큼 커다란 선물까지 줬는데 난 예물로 겨우 삼백만 원짜리 목걸이와 귀걸이 세트를 줬으니 그게 큰일이지.”

“루비 목걸이 좋다고 잘 하고 다니던데요?”

“그건 아주 고마운 일이네.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서로 준비한 예물이 너무 크게 차이 나면 그것도 문제야, 문제. 우리가 별장과 배를 너와 며느리 이름으로 증여하고, 그냥 가끔 놀러 오면 어떻겠니?”

나름 고심한 해결책이리라. 진혁이 손뼉을 딱 쳤다.

“아, 두 분에게 말씀을 드리지 않았구나. 그거 신경 안 써도 돼요. 제가 따로 그림 줬어요.”

“그림? 무슨 그림?”

“밥 앤더슨 그림요.”

“그 결혼식에 왔던 화가 말이냐?”

“경매에 올라가면 20억을 호가할지도 모른다던 연작 시리즈의 그림이래요.”

전화기 너머에서 어머니가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그 상하이 집 로비에 걸려있는 그 그림 말이야?”

“예, 이제 작은 미술관 만들어서 그리로 옮긴대요. 원래 그림 좋아한다고 하더라고요.”

“그, 그래. 아주 잘됐네. 넌 어쩌다가 그 그림을 갖게 됐는데?”

“케이크 만들어 줬더니 억지로 떠맡겼어요. 그런 그림을 보관하려면 보안시설이니 습도니 조명이니 뭐니 귀찮은 게 많아서 미미 씨 줬는데 엄청나게 좋아하더라고요.”

진혁이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는데 어머니가 낮은 어조로 당부했다.

“그 얘기 새아기에게는 절대 하지 말아라.”

“네.”

“저어어어얼대 하지 말아라. 알겠니?”

근심 걱정이 담겨 있는 ‘저어어어어얼대’에 진혁이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네에에.”

어머니는 한 가지 더 확인하셨다.

“…마지막으로 전화 통화는 언제 했니?”

“어제요.”

“사랑한다고 애정 표현도 했니?”

거기까지는 너무 나갔다. 진혁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그래, 그래. 네가 알아서 잘 해. 네 아빠는 평생 사랑한다는 말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요즘 젊은 애들은 알아서 잘 한다는데 말이지.”

옆에서 아버지가 억울해하며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여보! 내가 뭘! 언제!”

진혁이 킥킥 웃었다.

“어머니, 좋은 하루 되세요. 아버지에게도 인사 전해주시고요. 낚시 조심해서 잘 다녀오세요.”

짧은 통화를 끊고 진혁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지금 미미에게 뭘 해주면 제일 좋아할까?’

황미미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표면상 그녀는 드라마를 촬영하고 있으며 곧 대학 수업을 듣는다.

하지만 실제로 들여다보면 무시무시하게 바빴다.

중국 내에 진출한 제과제빵 사업의 최종 결정을 내리고 있으며 고위 관직에 있는 수많은 인맥을 관리한다. 그들은 당에도 군부에도 있었으며, 모두 황태명이 만들어낸 관계였다. 관계란 새싹과도 같아 적절한 물과 비료, 햇빛을 주어야 한다. 자녀가 성장하며 최고의 교육을 원할 때 적절한 방법을 알려 준다거나, 은퇴한 관료에게 일자리를 알선해 주는 것 등 미미가 하는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것이 그녀가 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미래를 준비하는 일 역시 중요하다. 장성하여 훌륭한 인력이 된 젊은 인재들이 어디서 일해야 할지 지시하고 관리하며 정보를 수집하여 체계화하고, 새로운 고아들을 들여와 훈련시킨다.

‘마치 하오문주 같은 일을 하고 있었지.’

대외적으로는 단순한 여배우로, 간간이 마음에 드는 작품에만 출연하는 듯 얼굴을 비춘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남겨놓고 간 관계를 유지하느라 애쓰고 있다.

‘미미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지? 그걸 그대로 해주면 되나?’

그녀는 제과제빵 대회 준비에 필요한 사람들을 구해다 주었다.

그렇다고 해서 진혁이 미미에게 중국 정부의 유력자들을 적당히 손봐준 다음에 갖다 줄 수도 없다. 오히려 관계를 망치거나 어그러뜨릴 위험이 크다.

‘그리고 제과주방을 설치해주고 온갖 기구들을 준비해줬는데.’

뜻밖에 최고급 기계들을 다량 주문받은 백정흠은 진혁이 결혼을 잘 했다며 내내 싱글싱글 웃었다.

‘드라마 촬영장에 카메라나 영상 부속 일체를 준비해줘야 할까?’

하지만 무언가 더 이미 사서 쓰고 있을 것이다. 미미는 이미 필요한 것은 전부 다 갖고 있었다. 영양가 풍부한 식사를 만들기 위해 요리사와 영양사를 고용했으며, 가정부도 따로 두고 있다.

심지어 진혁이 머무는 서울 집에도 가정부와 요리사, 영양사와 비서가 상주했다.

집에 별채가 딸려 있는 이유가 바로 고용인들이 머물기 위해서였다.

진혁은 결국 처음 생각했던 결론으로 돌아갔다.

‘좀 더 맛있는 치즈 케이크를 만들어줘야겠다.’

그는 일단 아드레아노 존부를 찾아가기로 했다. 통화를 마치고 다시 회의실로 들어간 진혁이 물었다.

“브라이언.”

“응?”

“아드레아노 존부를 잘 알지?”

“…다른 사람들보다는 조금 더?”

“뭘 좋아해?”

“그건 잘 모르겠는데? 하지만 뭘 싫어하는지는 알아.”

“뭔데?”

“한 번 설명했을 때 알아 처먹지 못하는 거. 아, 그리고 계량 대충 하는 것도 혐오해. 지각하면 바로 쫓아내고.”

진혁이 눈동자를 굴렸다.

“당연한 거 아니야?”

“….”

“제과제빵 하는 사람들이 다 그렇지.”

“그런데 아드레아노 쉐프가 좋아하는 건 왜? 어차피 여기 왔으니까 뭐든지 가르쳐주려고 하지 않겠어?”

진혁이 씨익 웃었다.

“그 치즈 초콜릿 케이크 레시피를 배워 보고 싶어져서.”

“그건 이번 대회랑은 아무 상관 없잖아?”

“미미 씨가 치즈 케이크를 좋아하거든.”

“만들어 달라고 하면 기뻐할 텐데?”

“매주 한 번씩은 해 주고 싶으니까.”

브라이언이 눈을 가늘게 떴다.

“여유 있다?”

“응?”

“월드 페이스트리 챔피언십에 진출하는 거. 우승을 목표로 하는 거 아니야? 그런데 왜 이렇게 여유 있어.”

“음.”

진혁이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렇게 보이나.”

“보통 사람들이 이삼 년을 매달려 준비하는 대회야. 지금 너한테 최고의 코치들이 달라붙어 있는 건 사실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네가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건 아니지.”

“이제 막 하려던 참이었-,”

브라이언은 흥분해서 언성을 높였다.

“전에 루이스에게 듣기로는 하루에 열 몇 시간씩 제과주방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끊임없이 케이크를 만들어 댔다며? 이번 대회는 그보다 더 권위 있는 대회야! 그런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케이크를 만들겠다고 주장하더니, 이제는 대회 준비 따위는 내팽개치고 아내에게 선물할 케이크 레시피를 알아내겠다, 이건가? 왜 이렇게 여유가 철철 넘쳐? 엄청난 사람들을 초대해서 배우려는 각오인 줄 알았는데. 고작 레시피 하나씩 알아내려고 불렀던 건가? 내가 알던 임진혁과는 다르군!”

브라이언은 방을 박차고 나가 버렸다. 임진혁은 그 모습을 멀뚱멀뚱하니 바라보았다. 한 비서 또한 입을 벌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브라이언은 쿵쿵거리며 자기 숙소로 돌아갔다. 눈꼬리에는 눈물까지 맺혀있는 모습이었다.

진혁이 물었다.

“쟤는 갑자기 뭐가 불만이지?”

소심하고 내성적인 편인 브라이언이 이런 식으로 격렬하게 감정을 폭발시키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한 비서가 말했다.

“열등감 때문이 아닐까요?”

“…열등감이라.”

‘무공수련 하는 놈들은 그냥 한 대 때려 주고 열심히 하라고 하면 되는데.’

진혁은 턱을 괴었다.

“내일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그냥 해고하고 다른 보조를 구해야 하나.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는데.”

빠르게 포기하는 모습을 보고서 한 비서가 놀랐다.

“아주 친밀한 친구분인 줄 알았는데요. 괜찮습니까?”

“그냥 대회 한 번 같이 나갔던 사인데.”

비서가 의아해했다.

“브라이언 신 쉐프가 가족을 찾는 데에도 도움을 주셨고, 결혼하실 때에도 웨딩 케이크를 만들어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이번 결혼식에도 초대하셨고요. 이전부터 신뢰하고 있던 친구분이잖습니까.”

“그때는 마침 한가해서 아는 사람을 소개시켜준거고, 그 녀석이 알아서 도와줬지. 딱 웨딩 케이크 만드는 게 재미있었던 때라서 마침 결혼한다고 해서 만들어 주기로 한 거고. 별 것 아니었는데 엄청 좋아하더라고.”

“브라이언 씨는 친구라고 생각하시던데요.”

“….”

임진혁이 천천히 두 눈을 깜빡였다.

‘친구라.’

백진영이나 유일봉과 함께 있으면 확실히 편했다. 서로 오랜 시간을 보낸 만큼 어느 타이밍에 무엇을 주면 될지 잘 알고 있다.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도 않고 각자의 위치도 잘 알고 있다.

마리오 녀석은 맛있는 것이 있다고 하면 조르르 따라와 다루기가 쉬웠다.

반면에 브라이언은 조금 복잡한 데가 있었다.

맛있는 것을 보면 좋아하지만, 마리오처럼 순수하게 기뻐하면서 폴짝폴짝 뛰지 않았다.

무언가를 받으면 반드시 그만큼 돌려주려고 하고, 대등하게 서려고 했다.

이번의 보조 제안도 바로 수락하는 게 아니라 고심 끝에 받아들였다.

‘친구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진혁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직접 가봐야 할까?”

“그게 나을 것 같습니다.”

임진혁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직접 가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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