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423화 (421/656)

제 423화

그는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공간에서 무공을 사용해서 케이크를 만들 생각이었다.

‘신혼여행에서 많은 걸 얻었지.’

칠 일밖에 되지 않는 시간이었으나 그 시간을 70일처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결혼하기 전에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수면 시간을 포함해 최소한 하루에 대여섯 시간 정도는 혼자 있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 시간 동안에 무공을 수련했다.

하지만 혼인하고 나서 신혼여행을 가자 혼자 있을 수 없었다. 가이드와 함께 신강 위구르 자치구의 산을 돌아다니는 코스였다. 황태명의 손길이 뻗은 것이 분명한 신혼여행 루트.

그곳에서 산 다섯 개를 뒤지며 야숙을 했다. 미미 역시 암벽등반을 비롯하여 산행을 함께했다. 밤에는 미미와 가이드가 지쳐 잠든 동안에 진혁은 의심 가는 산속을 전부 돌아다녔다. 황태명이 미리 조사해둔, 구 일월신교의 근거지로 의심되는 장소들이다.

하지만 그가 기억하는 절벽이나 호수, 산봉우리는 찾을 수가 없었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천년이 넘었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가 찾을 수 있었다면 아마 황태명이 벌써 예전에 찾았을 것이다.

칠주야의 산행이 끝나고서야 진혁은 태명이 자신을 이곳에 보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조사했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걸 이런 방식으로 알려준 거야. 능구렁이 같으니!’

내가 조사해봤더니 아무것도 없었습니다는 말을 듣고 사라질 미련이 아니다.

그렇기에 가장 가능성 높은 지역에 직접 가도록 안배했다.

신혼여행이라는 핑계로 다른 이들의 간섭없이 홀로 돌아다닐 수 있도록 일정을 짰다.

가혹한 일정에 혹사당할 손녀에 대한 배려 없이 과거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진혁만을 신경 썼다.

미미는 새끼고양이처럼 체력이 약했다. 고작해야 세시간 정도 암벽을 타면 손힘이 빠지는지 더 이상 올라가질 못하고 널브러졌다.

‘진희가 생쥐만큼 체력이 없다면, 미미는 그래도 새끼고양이만큼은 체력이 있지.’

그렇지만 악바리처럼 근성이 있어서 먼저 포기하지는 않고 죽어라 따라왔다.

그 점은 진희와도 비슷했다.

가이드는 밤마다 두 사람만의 공간을 만들어 준다며 텐트를 멀리 쳤다.

2인용 침낭에 함께 파고 들어있는 사람 옆에서 운기조식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맞은편에 있는 체온이 방해가 되었다.

몇 시간 동안 호신강기를 내리고 운기조식을 하는 것은 이전에 진혁이 시도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본디 홀로 운기조식을 할 때는 호신강기를 최대로 불러일으키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지금 침낭 속이라는 좁디좁은 환경에서 자칫해서 1초라도 호신강기를 흘렸다가는 침낭이 터져나가는 것은 물론 미미 역시 피를 볼 것이다.

곰이나 멧돼지, 호랑이가 나타날지도 모른다며 가이드는 내내 긴장해있었다.

하지만 진혁이 중간중간 살기를 뿌리는 것만으로도 세 사람은 야생 동물은커녕 벌레의 습격도 받지 않았다.

진혁에게는 외부로부터 올 리가 없는 공격보다 밤마다 겪어야 하는 고난 수행이 더 큰 일이었다.

어찌어찌 일주일을 겪으며 그는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약한 것을 보호하기 위한 기술을 쌓아야 해.’

칠일야(七日夜)간 필사적으로 수련을 쌓은 끝에 그는 연약한 것을 강한 것처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냈다.

이름하여 2인용 강기의 장막!

진혁은 간단하게 이 기술을 <혼인초야공>이라 이름 지었다. 혼인 초야에 만들어냈다는 이유다.

이 무공을 운용하면 진혁과 닿아 있는 사람 1명 역시 일시적으로 강철같은 내구력을 갖게 된다. 피부조직 속 연약한 근육을 외부적인 힘을 통해서 강하게 할 수는 없으나 진혁과 접촉해있는 그 부분 바깥에 연한 강기 막을 둘러주는 것이다.

아이디어는 좋았으나 실현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마침내 완성했다 싶어서 기어 다니는 개미 한 마리에게 시험해 보았는데 더듬이가 터져버렸다.

진혁은 그 원인을 탐색한 끝에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첫째로 미미를 보호해야 했다. 안쪽에 있는 이는 해를 입지 않고 뚫고 나올 수 있으나 바깥쪽에서 침범하는 이는 뼈와 살이 아작나도록 하려니 골치 아팠다. 결국, 미미의 피부와 근육에 소량의 진기를 주입해, 호신강기가 미미를 진혁의 일부로 인식하도록 하여 그 문제를 해결했다.

둘째로 미미가 움직이는 동안 자연스럽게 기막이 미미를 따라 움직여야 했다.

마음껏 주물럭거려도 되는 반죽이나 초콜릿 따위와는 달리 미미나 개미는 살아있다.

인간은 잠들어 있는 동안 당연히 가만히 있지 않는다. 가슴이 오르락 내리며 호흡을 하고 자다가 뒤척이며 팔다리를 움직인다. 잠꼬대하며 입술을 열었다가 닫기도 한다. 그러한 움직임에 전부 대응할 수 있도록 개량하니, 초야로는 부족했다.

꼬박 삼주야가 걸렸다.

사흘째 되던 밤, 마침내 완성해서 사용해본 결과 침낭이 갈가리 찢겼다.

자신의 호신강기는 섬세하게 조절할 수 있는데, 미미의 피부와 접촉한 침낭을 외부의 위험요소로 인식했다.

아침에 침낭에 구멍이 숭숭 나버린 침낭을 본 가이드 모든 것을 다 이해한다는 듯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말없이 예비용 침낭을 건네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리는데 진혁은 아주 조금 억울했다.

어쨌거나 그가 새로 개발한 이 무공은 오직 미미와 피부접촉을 하고있는 진혁에게만 최적화되어 있다. 다른 사람에게는 사용할 일이 없다.

이제 미미의 연약한 살결이 진혁과 닿았을 때 적당한 반탄력과 강도를 가질 수 있도록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내기만 하면 된다.

‘다음에… 그건 다음에 하자.’

좋은 점은 있었다.

그 와중에 제과제빵에 응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살아 숨 쉬는 사람에게 강기막을 적용하는 건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이제 케이크와 크림, 반죽 따위에게 강기의 막을 사용하는 건 정말로 쉬워졌다. 다른 사람들이 멀쩡하게 눈을 뜨고 보고 있어도 진혁이 무공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내공을 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즉, 사람들 앞에서 정말로 무게와 균형을 고려하지 않고 중력을 거스르는 디자인의 케이크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임진혁이 그려낸 스케치를 보고서 브라이언 신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그림을 거꾸로 그리지?」

「거꾸로가 아니야. 이대로 만들 거니까.」

진혁은 이 새로운 기술을 활용해서 ‘공중에 떠 있는 연회장 세트’를 만들고자 했다.

‘펜로즈 삼각형 케이크’를 만들면서 미스터 밥과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그림으로 그릴 수 있는 기하학적 개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그는 이번에는 ‘중력을 거스르는 연회장’을 케이크로 재현하고 싶었다.

‘밥 씨가 그린 그림들을 하나씩 하나씩 케이크나 쿠키로 만드는 것도 꽤 재미있었지. 하지만 이제는 내 디자인으로 만들 때도 됐어.’

정말로 한국식 연회장 전체였다. 원형 탁자에는 양 끝마다 의자가 놓여, 총 16명이 앉을 수 있게 되어 있다. 고풍스러운 탁자와 의자는 서양풍이지만 식탁 위는 한국식이었다. 레이스 색동 식탁보가 우아하게 깔린 식탁 위에는 잔치 음식들이 푸짐하게 놓여 있었다. 과일이 담긴 바구니, 구절판과 매운 갈비찜, 미역국과 나물 반찬, 잡채와 흰밥, 그리고 미역국. 정갈한 은수저와 냅킨 역시 눈에 띄었다.

「이 원형 탁자가 케이크네.」

「이 의자도 허공에 띄우겠다고?」

「맙소사! 천장에 투명한 실이라도 매달 셈이야? 중력 때문에 불가능할 텐데.」

「자칫하면 바로 무너질 거야.」

시몬 리옹이 잘난 척을 하며 말했다.

「케이크가 아니면 돼. 최종 심사에서 투명한 젤라틴으로 채우면 이렇게 만들 수는 있지. 젤리 안에 각각 맛을 낸 컬러 잉크를 짜 넣어서 거꾸로 만들면 된다네. 내가 젤리 전공을 하는 학생들을 가르쳐준 적이 있어.」

주영모가 타박했다.

「그건 젤리지 케이크가 아니야. 케이크 대회에 젤리를 내놓아서 어쩔 셈인가? 멍청한 소리 하지 마.」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이걸 만들 수가 없는데?」

「기술이 뛰어나다고 하더니 고작 생각해내는 게 젤리밖에 없나? 이쪽의 이 레이스 커튼과 샹들리에를 봐. 이것들이 케이크를 허공에 지탱하는 기둥이 될 것 같은데.」

「지지대가 되기에는 너무 부족해.」

주영모가 야심만만하게 웃었다.

「내가 반중력 아이스크림 개발에 한 몫 보탰던 사실이야말로 알고 있나? 그 특허를 내가 갖고 있는데 특별히 이번에 사용을 허가해 주고 레시피도 알려 주지. 중력을 거스르는 아이스크림 반죽을 이용하면 돼. 그러면 허공에 아이스크림을 띄우고, 그 아이스크림을 고정하는 틀을 천장에 매달면 돼.」

아드레아노 존부가 코웃음 쳤다.

「참나. 이 색색의 조그마한 음식들과 수저와 젓가락을 보라고. 주 쉐프의 반중력 아이스크림은 끈적하고 덩어리져서 바닥에 떨어지지 않는 구조잖아? 그걸로 어떻게 하얀 밥알 하나하나까지 재현할 수 있냐고. 그거론 무리야.」

실비안 웨인스톡이 검지를 뺨에 가져다 댄 채로 말했다.

「투명한 플라스틱 기둥 같은 거로 받치면 되긴 하겠어. 조명을 적절하게 비추면 특정 각도에서 기둥이 보이지 않게 할 수는 있지. 각도의 마술이랄까. 하지만 심사위원들 모두에게 기둥이 보이지 않게 할 수는 없어. 그 기술을 전수해주길 바라나?」

다들 한마디씩 했다. 브라이언은 숨도 쉬지 못하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들이 말하는 기술 중에 하나라도 전수받을 수 있다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임진혁 쉐프의 보조를 하기로 한 건 정말로 잘한 일이야.’

하지만 임진혁은 고개를 저었다.

「이건 평범한 유자 생크림 케이크입니다만.」

「왜 하필 유자인가?」

시몬 리옹이 물었다. 주영모가 눈을 크게 떴다.

「생크림에 유자를 넣는 것부터가 평범하지 않은데?! 아주 좋은 생각이야. 레몬이 생크림과 잘 어울리는 것처럼 유자 역시 생크림하고 잘 어울리겠군.」

진혁은 주영모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시몬 리옹에게 설명해주었다.

「유자는 최근에 서양에 소개된 지 얼마 안 된 재료잖아요? 아무래도 각 나라의 토종 재료를 쓰라고 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영모 쉐프님께서 말씀하셨으니까요.」

「그건 아주 좋은 생각이야. 하지만 유자는 중력을 거스르지 못한다고. 절반은 젤리로 만들고 나머지 절반은 케이크로 만들면 되는데.」

「젤리하고 케이크는 맛이 어울리지 않아! 씹는 식감이 너무 다르다고. 그리고 젤리는 무게를 지탱할 수 없어.」

「내가 개발한 슈퍼 젤리 기둥을 올리면 돼.」

아드레아노 존부가 비웃었다.

「맛도 거지 같을 거고 온도도 안 맞아. 젤리가 제일 맛있는 온도에서 크림은 살짝 얼어버린다고. 지방이 뭉친 생크림이 올라간 케이크처럼 끔찍하고 맛없는 건 또 없어.」

실비안이 말했다.

「아까 내가 말한 기둥을 세우자고.」

스타 쉐프들이 시끌벅적하게 떠들었다. 브라이언이 물었다.

「진혁, 저 방법 중에서 뭘 선택할 건가?」

진혁이 피식 웃었다.

「이미 말했잖아. 유자 생크림 케이크로 ‘중력을 거스르는 한정식 정찬’을 만들 거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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