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422화 (420/656)

제 422화

제과계의 거성.

유명 제과 학교의 파리 지점에서 수많은 페이스트리 쉐프들을 길러낸 시몬 리옹. 그의 행보는 최근 제과제빵계의 명사들에게 놀라움을 주었다. 30여 년간 파리를 떠나지 않고서 늘상 프랑스 제과제빵의 우수한 전통이 제일 중요하다며 떠들어대던 시몬이다. 그러한 프라이드에 걸맞게 그가 길러낸 제자들은 쿠프 드 몽드의 심사에서 상위 평가를 독차지해왔다.

하지만 동아시아에서 온 팀이 우승하면서 그는 학교를 그만두었다. 두문불출하나 싶더니 뜬금없이 덴마크의 왕실에서 로얄 페이스트리 쉐프로 일을 시작했다.

오랫동안 교육자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실무현장에서는 손을 뗀 지 오래였던 그가 일 년여간 솜씨를 갈고닦아 현장으로 돌아온 것이다.

「시몬 리옹 쉐프. 이번에 덴마크의 왕실에서 로얄 페이스트리 쉐프로 참여하시기로 한 게 아닌가? 시작하기도 전에 잘렸어?」

주영모가 시니컬하게 물었다. 그는 편견으로 가득 찬 시몬 리옹을 결코 좋아하지 않았다.

「한 달간 휴가를 받았지. 훌륭한 원석을 갈고닦는 건 선배 페이스트리 쉐프의 의무라고.」

「프랑스의 유명한 제과학교 아니면 아무 데도 안 간다고 뻗대던 놈이 어디 한국까지 왔어?」

「국적의 차이 따위 진정한 맛 앞에서는 중요하지 않아.」

「그거야 그렇지만!」

‘이 두 사람 사이가 안 좋긴 안 좋구나.’

브라이언은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제과제빵계의 위인 두 사람이 어린애처럼 싸우는 모습은 정말로 보기 드문 것이었다.

두 사람에 대한 환상이 모래처럼 부스러진 브라이언은 입을 딱 벌리고서 이 진기한 광경을 구경했다.

‘저 사람들은 뛰어난 도덕성이나 친밀감으로 세계 정상급의 페이스트리 쉐프가 된 게 아니야. 내가 벨라지오에서 일할 때 헤드 쉐프도 실력이 좋은 만큼 성격은 더러웠지. 어쩌면 직위가 높아지는 만큼 사람이 더 독해지고 치밀해지는 건가? 인간적이고 본받을만할 수 있는, 존경할만한 성격의 상사라는 건 정말이지 제과제빵계에는 존재할 수가 없는 건가?’

브라이언은 유치한 싸움을 지켜보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아니야, 어쩌면 이게 희망적인 신호일 수도 있어. 인성이 조금 부족해도 실력만 좋으면 된다. 나도 이 드림팀에 말석이나마 끼었으니 앞으로 발전할 수 있을 거야.’

시끌벅적하게 떠들던 두 사람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자 입을 다물고 동시에 그쪽을 바라보았다.

「진혁 쉐프가 도착했나 보군.」

「후후.」

두 사람은 서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새로 들어올 사람을 기다렸다. 시몬 리옹도, 주영모도 생각하는 것이 빤하게 들여다보여 브라이언은 웃을 뻔했다.

과연 임진혁이 들어와서 둘 중 누구 편을 들어줄 것인가?

「여어-!」

「맙소사.」

「존부! 자네가 왜 여기에 있나?」

「왜 여기에 있긴. 불러서 왔는데.」

아드레아노 존부가 트레이드마크인 중절모를 벗어 보이며 박박 깎은 민 머리를 드러냈다. 그가 진행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쇼에서 해오던 인사다.

「잘 부탁한다고.」

시몬 리옹과 주영모가 동시에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나를 부르고 또 아드레아노를 부르다니.」

두 사람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이 너무나 똑같아 희극의 한 장면 같았다. 브라이언은 그만 소리 내서 웃어 버렸다.

「아하하.」

디저트 서바이벌 쇼의 우승 상품인 <아드레아노 존부의 제자 되기>

임진혁이 탈락하면서 자연스럽게 브라이언이 그 제자로 들어갔다.

하지만 아드레아노 존부가 추구하는, 치즈와 초콜릿을 주로 사용하는 케이크는 브라이언과 맞지 않았다.

배울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방향이 달랐다.

‘그만두고 내 가게를 차리면 다 잘 될 줄 알았는데 말이야.’

제시카 린든이 유복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박차고 나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브라이언 자신은 덜 절박한 것이 아니었을까.

무대에서는 친절한 것 같던 아드레아노 존부는 누구보다도 엄격하고 차가운 스승이었다.

말단 꼬마 시절을 다시 하는 것과도 똑같았다.

서로의 의견 차이를 인정하고 좋게 헤어지기는 했으나, 브라이언은 존부를 만나는 것이 어색했다.

‘아드레아노 존부가 올 줄 알았으면 안 오는 편이 좋았으려나.’

아니다. 그는 스스로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이 좁은 제과제빵계에서 아드레아노 존부 같은 페이스트리 쉐프를 피해 다닐 수는 없다.

나쁘게 나온 것도 아니니 굳이 주눅이 들 필요가 없다.

오히려 이번 3개월을 계기로 삼아, 상하관계가 아닌 프로페셔널 페이스트리 쉐프와 쉐프의 사이로 돌아가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브라이언은 머릿속에서 계산기를 두드렸다.

‘특별히 다른 사람을 의식할 필요는 없어. 나는 여기에 진혁이를 도우러 온 거지 다른 사람 눈치 보러 온 게 아니니까.’

그는 아드레아노 존부 이후에는 다시 자신이 놀라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임진혁과 함께 실비안 웨인스톡이 들어왔을 때는 정말로 입을 다물 수 없을 만큼 놀랐다.

「맙소사!」

「미시즈 웨인스톡!」

「실비안이라고 불러. 미시즈라고 하면 너무 나이 든 것 같잖아?」

귀밑까지 오는 백발에 두꺼운 검은 뿔테 안경.

화려한 꽃무늬 정장에 걸친 하얀색 앞치마.

158cm 정도밖에 되지 않는 신장이지만 거인처럼 보였다.

「어디, 우리 아기들은 아주 오랜만에 보는구나. 시몬 베이비는 이십 년 만인가?」

“풉!”

“크큽.”

그 시몬 리옹이 베이비라고 불리는 것을 보며 브라이언은 저절로 입을 가렸다. 지금 여기서 소리 내서 웃기 시작하면 안 된다. 브라이언은 이 명사들 사이에서 튀고 싶지 않았다. 그는 뒤쪽에서 조심스럽게 허리를 꺾어가며 웃음을 삼켰다.

시몬도 어린 나이는 아니다. 머리가 희끗희끗 세어가는 나이로, 수염 또한 희다. 하지만 그도 역시 노년기에 접어든 그라고 해도 20년 이상 나이가 많으며 웨딩 케이크 제작 경력은 그보다 더 차이 나는 실비안 앞에서는 무력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마담.」

시몬은 심지어 허리를 숙이며 실비안의 손등에 키스하기까지 했다.

“하여튼 프랑스인이란.”

주영모가 중얼거렸다. 실비안 웨인스톡은 주영모에게도 인사를 했다.

「주 베이비는 십 년 전에 뉴욕에서 보고 처음 보네. 내 웨딩 케이크 세미나에 왔었지?」

실비안은 연 1회 그녀의 베이커리가 있는 뉴욕에서 웨딩 케이크 세미나를 열었다. 매년 열 명의 프로페셔널을 선발하는 이 세미나에 참석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주영모는 예전에 단 한 번 만났던 실비안이 자신을 기억해줄지 몰랐다. 그는 감격에 겨워 실비안에게 허리를 숙였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그럼, 그럼. 주 베이비도 좋아 보여. 우리 존부 베이비! 여기서 또 만날 줄은 몰랐네!」

아드레아노 존부가 씨익 웃으며 실비안에게 인사했다. 브라이언은 묵묵히 이 제과제빵계의 슈퍼스타를 지켜보았다. 모두를 기억하고 한 마디씩 건네는 모습이 다정하고 따뜻해 보였다.

‘웨인스톡 쉐프가 한 번 만난 사람은 잊지 않는다더니 정말이네.’

브라이언은 그 기억력보다 진짜 가족처럼 다정하고 친밀감 있게 다가오는 그 친화력에 감동했다.

‘제과분야에도 친절하고 상냥한 전문가가 존재하긴 해.’

이 ‘베이비’ 호칭은 진혁도 벗어나지 못했다.

「이렇게 보니까 우리 진 베이비가 아주 능력이 좋아? 어떻게 이 멤버를 한 자리에 모았담. 호호호호!」

◈          ◈          ◈

제과제빵 분야의 거성(巨星)들이 서로 대화하는 동안 브라이언은 한 마디라도 놓칠세라 귀를 기울였다.

그는 이들이 업계가 흘러가는 방향, 당과류의 미래, 혁신적인 디저트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이들은 일상적이고 소소한 수다를 떨었다.

「글쎄 자기 대변을 완벽하게 모사해서 5m 높이의 케이크를 만들어 달라고 하는 놈이 있지 뭐야. 실비안 웨인스톡이라면 무슨 케이크라도 만들어 주신다고 들었어요 하면서 나불대지 뭐야? 아주 그놈 상판대기에 똥을 처발라 주고 싶더라고! 케이크를 우습게 봐도 정도가 있지. 심지어 샘플이랍시고 자기 껄 아크릴 상자에 담아 왔어.」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실수인 척하고 상자를 걷어차 줬지. 소중하게 담아온 똥 모양이 무너졌다고 아주 울더라니까. 내가 나이를 먹어서 그렇지, 삼십 년만 젊었어 봐라. 스틸레토 힐 굽으로 아주 상자를 깨부숴 줬을 거야!」

「내가 마지막으로 가르쳤던 학생 중에도 못지않게 이상한 놈이 있었는데….」

아니, 일상적인 이야기라기보다 일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토로하는 것에 가까웠다. 최근에 웨딩 케이크를 주문한 손님의 특이한 부탁부터 시작해서 수업 시간에 초콜릿 봉봉에 넣을 리큐르를 훔쳐 먹다가 걸린 학생, 타르트를 제대로 구울 줄 모른 채로 타르트 가게를 오픈해서 설익은 청포도 타르트를 팔았던 부부.

저마다 할 이야기가 많았다.

그들이 누가 더 진상 손님을 만났나 대결을 하는 동안 브라이언이 진혁에게 물었다.

「어떤 케이크를 만들지 생각은 해 봤어?」

커다란 스케치북과 연필이 탁자 위에 여러 개 준비되어 있었다. 진혁은 자신 앞에 있는 스케치북에 아웃라인을 잡기 시작했다.

「이건 내가 결혼식에서 하고 싶었던 건데.」

「저번에 말했던 그거?」

브라이언은 진혁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았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대연회. 이전에 쿠프 드 몽드 파티쉐리에서 심사위원들이 언급한 적이 있던 개념이다.

모두 먹을 수 있는 것으로 만드는 연회장이다.

「과연 대회에서 그걸 다 할 수 있겠어?」

브라이언이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시몬 리옹이 성급하게 끼어들었다.

「진혁 쉐프는 손길이 아주 섬세해. 가끔 주제를 잘못 잡아서 삐끗하기도 하지만, 이전에 대회에서 전통적인 한국의 탑을 아주 훌륭하게 만들어냈지. 그러니 이번 대회에서도 한국의 전통 건축을 주제로 하는 게 좋을 거야. 한 번 했던 주제니까 더 심화시켜서 발전해나가는 게 좋겠지」

균형 있는 고층 건물, 그리고 다양한 식재료를 조합해 건축 자재를 재현하는 기술은 이 중에서 시몬 리옹이 제일 뛰어나다.

「미안하지만 쉐프 리옹, 자네는 틀렸어. 출신 국가의 전통 건축물은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문화유산을 만들라는 과제는 8년 전에 한 번 냈어. 한 번 냈던 주제는 피해가려고 하니까, 이번 주제가 각 나라의 전통 건축일 것 같지는 않네. 내 예상에는 형식이 아닌 내용물에 변화를 꾀할 것 같네. 이번 심사위원장이 그 미친 재료광 스티븐이잖아. 그러니 자신의 출신 국가의 식재료를 사용해서 뭘 만들라고 할 것 같은데. 가장 미국적인 케이크라든가, 뭐 그런 거지. 아니면 가장 국제적인 케이크 같은 것?」

「아니, 그렇게 특정 국가적인 메뉴를 만든다는 건 말도 안 돼. 그럼 아시아 쪽 국가가 너무 불리해져. 당장 쓸 수 있는 재료가 얼마나 제한되는지 알아? 자네 한국인 맞나?」

「뭐?」

시몬 리옹과 주영모가 싸우는 가운데 아드레아노 존부가 끼어들었다.

「제과제빵 대회에서 시간이 제일 많이 소요되는 건 자네가 자신 있는 장식류지. 그건 맞아. 하지만 채점할 때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맛이라고. 그리고 진혁 쉐프는 치즈를 아주 잘 다루지. 바로 내 전문 분야야. 보통 쇼 피스에 치즈 케이크를 메인으로 내지는 않지만, 치즈를 보듬맛으로 사용해서 새로운 맛을 창조한다면 어떨까? 요즘 유행하는 레어 크림치즈 케이크처럼 쉐프의 손길이 필요 없는 무능한 케이크 따위에 엿을 먹여주는 거지!」

주영모가 턱을 괴며 입을 다물었다. 실비안 웨인스톡은 이들이 갑론을박하는 것을 웃으며 지켜보았다.

「우리 베이비들이 아주 열성적이네, 호호호호.」

그녀는 팔짱을 끼고서 싱글거렸다. 임진혁은 묵묵하게 자신이 방금 그려낸 스케치를 펼쳐 보였다.

「월드 페이스트리 챔피언십에서는 케이크를 세 개 제출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시용 쇼 피스로 하나, 그리고 심사위원들이 맛보는 용도로 두 개죠.」

「그렇지.」

「하지만 케이크가 특정한 크기 이상이라면 심사위원들이 맛볼 케이크를 하나만 만들어도 되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세 사람의 대가가 얼굴을 서로 마주 보았다.

「응? 왜?」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할 필요는 없을 텐데.」

「탁자만 한 크기의 케이크를 구울 셈인가? 골고루 익지 않을 텐데. 이미 알고 있겠지만 제과주방에 개인용 오븐을 반입할 수는 없어. 그러니 그 조그마한 오븐에 조각조각 따로 구워서 합쳐야 하잖아? 그럼 깎아내는데 손이 너무 많이 간다고. 깎고 나서도 언제 어디서 부서질지 모르고.」

세 사람이 한목소리를 내는 것을 보고 진혁이 피식 웃었다.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이 방법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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