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21화
부채살.
소의 앞다리에서도 위쪽의 극히 일부분을 부르는 말이다.
연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아주 가는 힘줄이 존재해, 부드러움 사이에 씹는 맛을 준다.
다른 부위에 비해 육즙이 많아 한 입만 베어 물어도 감칠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브라이언 신은 도톰한 고깃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육회에 올리는 것처럼 썰어 올린 배는 투명하리만큼 가늘고 얇았다.
배와 쇠고기, 그리고 바삭한 타르트지. 타르트지는 극히 얇았다.
그는 종종 술안주로 짭짤한 크래커 위에 브리 치즈를 얹어 먹곤 했다.
짭조름하고 바삭한 과자와 부드럽고 몰캉하며 담백한 치즈는 칠레산 적포도주와 찰떡궁합처럼 어울렸다.
하지만 크래커 위에 스테이크를 얹어 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냐, 크래커처럼 굵직한 과자였다면 오히려 고기의 맛을 떨어뜨렸을 지도 몰라. 이렇게 얇게 구워냈으니까 오히려 바삭바삭하게 고기가 씹히면서 간식 같은 맛이 나는 거지.’
삼겹살을 쌈에 싸서 먹는 경우는 있지만 과자와 함께 먹어본 적은 없다.
하나 한국인들이 즐기는 강렬한 마늘향이 가미된 얇디얇은 타르트지는 스테이크와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이건 타르트지를 따로 구운 다음에 익힌 고기를 올리고 배를 얹었구나.’
그렇다고 해서 바삭한 타르트지와 쇠고기의 맛이 따로 도는 것도 아니었다.
이 정도로 통일성 있는 맛이 나려면 보통 고기와 빵을 함께 구워서 육즙이 배어들게끔 해야 한다.
‘반죽에 육즙을 넣은 건가? 그렇게 했다가는 오히려 빵에서 비린 맛이 날 수도 있는데. 절묘하게 소금 간을 해서 맛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브라이언도 한식 디저트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해 보았다.
흔히들 수정과나 한식, 약과 등 기본적인 디저트를 낸다.
하지만 보통 서양식 코스요리에서 메인으로 내는 스테이크를 이런 식으로 요리해 디저트, 즉 선물로 줄지는 몰랐다.
‘녹색은 뭔지 궁금하네.’
녹색 상자의 개수가 꽤 적었는데 아마 채식주의자를 위한 것이 아닐까 궁금해졌다.
그는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당장 물어보고 싶다.’
하지만 두 번째 하는 결혼식이라고 해도 신랑은 바쁠 것이 분명하다.
그는 스마트폰의 전화번호부를 슥슥 내렸다.
한참 스크롤하던 손가락은 ‘K’에서 멈추었다.
‘이 녀석한테는 연락하기 싫은데.’
하지만 이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 중에서 브라이언이 신랑 외에 아는 사람은 그놈밖에 없었다.
‘마리오는 애초에 웨딩 케이크를 만들어 본 경험도 별로 없으면서 자기가 제일 훌륭한 웨딩 케이크를 만들겠다며 잘난 척했지. 눈치가 없어, 눈치가. 그 형인 루이스는 괜찮은데 말이야.’
루이스가 이번에 결혼식에 참석하기만 했어도 자연스럽게 물어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녹색 상자에 대한 호기심을 접을까 하고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벤치에서 일어나 두 걸음 걸으면서 그는 방금 먹은 음식의 맛을 떠올렸다.
콜드 레어 스테이크 타르트는 놀랍게도 맛있었다.
결혼식에서 먹었던 한정식과 갈비탕 역시 훌륭한 맛이었다.
그러나 이 콜드 레어 스테이크 타르트는 정말로 예상치 못한 보석 같은 음식이었다.
그는 어떻게 하면 그 요리에 맛을 더할 수 있을지 이것저것 떠올려 보았다.
‘이건 따끈따끈해도 맛있을 것 같은데. 고기를 차갑게 해서 내놓았는데 그게 맛있다니 놀라운 일이야. 콜드 햄도 아니고. 이건 분명히 임진혁 쉐프 솜씬데.’
브라이언은 디저트 서바이벌 쇼 촬영 도중, 소망 베이커리에 들러서 그곳의 메뉴를 몇 가지 먹어 본 적이 있었다.
진혁을 경계해서라기보다, 그가 몸담고 있던 빵집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빵집에서 내놓았던 미트파이는 육즙이 풍부하며 고기와 빵이 조화를 이룬 것이 지금의 이 스테이크 타르트처럼 훌륭했다.
고기는 지나치게 오래 조리하면 퍽퍽해지고 말라 맛없어진다. 적게 조리하면 덜 익어서 곤란하다.
그러니 빵이 익는 것과 고기가 육즙을 품고 있는 정도의 온도와 시간을 조절하는 데에는 그냥 빵을 굽는 것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역시 맛있어.”
손바닥 위에 올라앉을 크기의 한입거리 간식은 금방 사라져 버렸다. 브라이언은 뒤늦게 입천장을 핥으며 아쉬운 마음에 혀를 찼다.
「정말 맛있다.」
조금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 여섯 개는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레어 스테이크 타르트가 맛있는 만큼 녹색 상자에 대한 호기심도 강해졌다.
‘연락을 해, 말아.’
결국 호기심이 이겼다.
브라이언은 스마트폰을 들어 앨범을 조회했다.
이전에 업무상 연락할 일이 있을까 싶어 마리오의 명함을 받아 사진을 찍어 두었다.
「여보세요.」
「브라이언! 아까 결혼식장에서 봤지!」
마리오는 인사 따위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혀 꺼리지 않고 해맑게 웃으며 반겼다.
‘단순한 놈.’
가끔 눈치 없는 짓을 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싫어할 수는 없는 녀석이다.
브라이언도 함께 웃어 주며 말했다.
「큽. 혹시 결혼식 선물 말이야. 녹색 상자 안에는 뭐가 들어있는지 알아?」
「채식주의자용 유자 타르트.」
「그것도 맛있었겠네.」
「아냐, 레어 스테이크 타르트가 압승이야. 채식주의자들에게는 안타깝지만 말이지. 시트러스 향을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유자가 더 좋았을지도? 내가 콩고기 타르트 하자고 했는데 진혁이 안 된다고 했어. 콩고기는 도저히 그 맛이 안 난다고. 아, 그런데 콜드 레어 스테이크 진짜 미친 것 같지 않아? 육회용으로 써도 되는 최고급 소고기래. 같은 무게의 금값보다 비싼, 아기 송아지 고기라더라. 요리사들도 다 어디서 초빙해 온 게 아주….」
고장 난 라디오처럼 나불나불 떠드는 소리를 들으니 어쩐지 마음이 편해졌다.
놀라운 음식을 봐도, 누군가의 뛰어난 아이디어를 들어도 마리오는 기죽지 않았다.
경계하거나 불안해하는 모습도 없이 그저 감탄할 뿐이다.
‘저 녀석은 분명히 고민도 없을 거야.’
「그래.」
마음이 편안해진 브라이언은 전화를 끊으려 했다. 하지만 마리오가 말을 이었다.
「월드 페이스트리 챔피언쉽, 나도 출전해. 보조로 나온다며? 잘 부탁한다구!」
「….」
브라이언은 이를 악물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보다 앞서갈 수도 있다.
임진혁의 실력은 인정한다.
그러나 마리오의 실력이 과연 자신보다 앞서는지는 알 수 없다. 그는 분명히 뛰어난 페이스트리 쉐프다.
하지만 제과제빵 그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그걸로 방송을 하면서 자신을 홍보하려고 하는 면이 있다.
브라이언은 자기가 최소한 마리오보다는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마리오가 임 쉐프와 함께 국제대회에 출전해서 우승했지. 그래서 출전 자격을 얻었군.’
즉, 루이스 강 역시 월드 페이스트리 챔피언쉽에 출전할 수 있다.
아직 브라이언에게는 없는 자격이다.
그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잘됐군. 좋은 결과 있길 바란다고.」
「진혁이가 나한테 보조해 달라고 했는데 나 출전해야 돼서 못한다고 거절했어. 사실 임진혁이 출전할 줄 알았으면 그냥 보조하는 편이 좋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더라고.」
「아아.」
‘….’
브라이언 신은 이틀 동안 명상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분노를 가라앉혔다.
‘나는 왜 화가 난 거지. 진혁 쉐프가 내게 보조를 부탁했을 때 내가 첫 번째가 아니라서? 아니면 나는 대회에 출전할 수가 없어서?’
결국 그 모든 것은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자괴감에서 왔다.
하지만 브라이언은 굴하지 않았다.
겨우 이 정도로 포기해버린다면 애초에 제과제빵의 길로 들어서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번에 제대로 배워서, 마리오는 물론이고 임진혁 쉐프까지 능가하고 말겠어.’
자신만이 갖고 있는 장점이 분명히 있다.
성실함과 꾸준함, 그리고 디자인 감각.
‘지금은 진혁 쉐프나 강마리오가 앞서 나가고 있는 것 같아도 평생 동안 그러리라는 법은 없으니까.’
제대로 양복을 차려입고, 스케치 노트를 준비했다.
졸업식 때 양부모에게 선물로 받은 만년필도 챙겼다.
진혁이 어떤 아이디어를 내더라도 제대로 받쳐줄 수 있을 만큼 준비했다.
브라이언 신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미팅 장소에 나갔다.
숙소에서 걸어가다가 뜻밖의 인물을 만났다.
「주 쉐프님!」
풍채 좋은 중년의 한국인 남자가 손을 흔들며 반갑게 웃었다.
디저트 서바이벌 쇼와 쿠프 드 몽드 파티쉐리에서 심사위원으로 만났던 주영모였다.
「브라이언 신 쉐프? 만나서 반갑네. 디저트 서바이벌 쇼 후에는 처음 보지?」
‘맙소사, 임진혁이 대단한 코치를 모셨는데.’
브라이언은 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이 대회 준비를 한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로 엄청난 실력이 있는 코치를 부를 자신은 없었다.
‘이번에 정말 배울 게 많겠군.’
「결혼식에도 오셨어요?」
「난 중국에서 한 결혼식에 갔었어. 참 좋았지.」
주영모 쉐프가 씩 웃었다.
「그럼 콜드 레어 스테이크 타르트는 못 드셨겠군요?」
「뭐? 한국 결혼식에서 그런 메뉴를 했단 말이야? 이런, 꼭 갈 걸 그랬군. 여하튼 이번에 자네가 보조를 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어.」
「그렇습니다.」
주영모는 따뜻한 시선으로 후배 페이스트리 쉐프를 바라보았다.
‘브라이언 신은 라스베이거스의 5성급 호텔에서 꼬미(주방보조)부터 시작해 올라온 케이스지. 섬세하고 아름다운 감각으로 유명해. 진혁 쉐프가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사람을 잘 뽑았군.’
호텔의 제과주방은 군대와도 같다.
철저한 계급사회로 상급자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호텔 출신인 브라이언이 일반 가게에서 독학하다시피 한, 그것도 경력이 일천한 진혁을 인정하고 그 아래 역할로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다.
주영모는 브라이언과 이야기를 나누며 현대적인 빌딩의 정문으로 들어섰다.
‘임진혁 쉐프는 정말로 입지전적인 인물이야. 전문대에서 제과제빵을 전공했다고 하지만 그 학교에서 진혁이 말고 배출한 걸출한 인물이 또 누가 있나 보라고. 호텔 등에 여러 명 취업을 보내는 둥 취업률만 좋다 뿐이지, 뭔가 쓸 만한 놈이 오지는 않는다고 들었어. 그러니 진혁 쉐프는 독학을 한 거지.’
그것은 비단 주영모 쉐프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경운대학교 교수들을 제외한 모두가 진혁은 대학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을 것이라 추측했다.
「브라이언 쉐프의 식견도 도움이 될 거야.」
「저야말로 주영모 쉐프님에게 많이 배우겠습니다.」
「난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라 제너럴리스트니까 뭐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만.」
「오히려 넓은 식견이 필요할 때가 아닐까요?」
그리고 두 사람은 예상치 못한 인물을 마주쳤다.
「뭐야, 늙은 너구리가 왜 여기에 있어?」
「주 쉐프. 당신도 이 코치진에 참여하나? 자신의 나라 출신이라서 부른 건가.」
주영모가 발끈했다.
「아니야, 우리는 TV 출연도 같이 한 사이라고.」
「나야말로 그간 진혁 쉐프와 이메일을 교환하고 있었지.」
「나는 두 번의 결혼식에 전부 초청받았지만 배려하는 마음으로 한 군데만 참석했어!」
「진정한 선배라면 결혼식에 참여하는 게 아니라 생산적인 조언을 해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나는 결혼식에는 못 갔으나 신메뉴 콜드 레어 스테이크 타르트에 대한 조언을 해서 피로연을 좀 더 풍성하게 해 주었지.」
초등학생들 싸움처럼 서로 누가 더 진혁과 친한지 과시하는 두 사람이었다.
브라이언이 신음소리처럼 중얼거렸다.
「시몬 리옹 쉐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