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419화 (417/656)

제 419화

“너야말로 왜 나가는데? 대회 준비할 시간도 없을 것 아니야? 네 부인은?”

마리오가 손가락질하며 따지고 들었다. 진혁이 씩 웃었다.

“그럼 대회장에서 보자.”

“앗! 야! 잠깐!”

그는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진혁 자신은 쿠프 드 몽드 파티쉐리에서 우승했기 때문에 월드 페이스트리 챔피언십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된다. 그렇다면 마리오나 루이스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몇 되지 않는 페이스트리 쉐프들을 생각했다.

‘그 녀석에게 부탁해야겠다.’

◈          ◈          ◈

「마리오 쉐프가 거절하셨다니 의외네요. 원하신다면 중국의 페이스트리 쉐프 협회에서 소개받으시겠어요? 최근 중국의 페이스트리 쉐프 중에서는 메이링이나 구난시 같은 이들이 혜성 같은 신인으로 언급되고 있어요. 전에 대회에서 보셨을 텐데, 컨택해 볼까요?」

미미가 몇 명의 후보자를 열거하자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그때 무대에서 충분히 역량을 보지 못해서 말이죠….」

실력이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당시 중국 팀은 화재와 치정 싸움 때문에 실력을 전부 발휘하지 못하고 무대에서 내려갔다. 아쉽게도 후반부의 대회에는 아예 참가하지 못한 것이다.

미미가 제안했다.

「<해와 달> 중국지점에서 근무하는 쉐프들 중 한 명을 데려가도 되고요. 업무상 보너스를 준다고 하면 좋아할 거예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 두 명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만일 찾지 못하시면 왕 비서님께 교섭해 달라고 요청할게요. 아 참, 그리고 코치진을 모셔왔어요.」

「코치요?」

이전에 젤로스 사의 후원을 받아서 준비할 때에는 따로 코치 진을 구하지 않았다. 진혁과 강 씨 형제 두 사람이 직접 만들어서 서로 먹어보며 연습했다.

그는 그게 보통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보통 이런 부류의 챔피언십을 준비할 때에는 최소한 1년 이상 준비하는데, 3개월은 정말로 짧은 기간이라고 들었어요. 그래서 준비하는 동안 코치진이 특별한 전문기술을 가르치고, 대회에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도와준다고 하던데요? 어떤 코치를 모셔오는지가 중요하대요」

미미도 나름대로 조사를 해서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한 모양이었다.

「…감사합니다.」

진혁은 자신이 대학 생활과 드라마 촬영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지 돌이켜 보았다.

「기술적인 면이 뛰어난 케이크 디자이너를 모셔오는 경우도 있고, 영국 왕실에서 일하는 로얄 페이스트리 쉐프를 모셔오기도 한대요. 이전 심사위원으로 계셨던 분들을 초빙해 지도를 받으면 심사 기준에 맞추어 예술적인 면과 기술적인 면을 전부 만족시킬 수 있도록 수련할 수 있다고 하니까요. 그래서」

진혁은 미미가 대체 어떤 페이스트리 쉐프를 모셨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코치진으로 누가 오기로 했습니까?」

「웨딩 케이크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실비안 웨인스톡 씨는 아시죠?」

「예.」

디저트 킹이라고 불리는 아드레아노 존부.

그리고 그와 쌍벽을 이루는,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케이크 디자이너가 있다.

웨딩 케이크의 여왕이라 일컬어지는 실비안 웨인스톡이다. 95세라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현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셀러브리티들을 위해 섬세한 꽃잎부터 정교한 오토바이까지 온갖 모양의 웨딩 케이크를 만든다.

케이크 하나에 3천 달러부터 시작하니 만만한 가격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약이 밀려 있어, 보통 사람은 그녀에게 케이크를 주문하지 못한다.

컵케이크 퀸인 스텔라 위스커스와는 분야가 다르다. 스텔라가 조그맣고 다양한 맛의 귀여운 케이크들을 만들 때 실비안은 거대하고 아름다운 웨딩 케이크를 몇 달씩 걸려 만들어낸다. 스스로를 케이크 디자이너가 아니라 케이크 아티스트라고 자칭하며, 웨딩 케이크 제작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사람이다.

진혁은 저절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엄청난 분을 모셨군요.」

예전에 아드레아노 존부의 갤럭시 치즈 케이크를 만들 때, 그 역시 실비안의 유튜브 영상을 보았다.

한 잎 한 잎 마지 팬을 다듬어 꽃잎을 만들어내더니 마술 같은 손길로 순식간에 덩굴을 완성하던 솜씨는 지금도 인상 깊다.

그녀를 코치 진으로 초빙하기 위해 대체 얼마를 들였을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하지만 미미가 준비한 서프라이즈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다른 코치로 아드레아노 존부를 모셔왔어요.」

「예?!」

뜻밖의 이름이 진혁이 입을 딱 벌렸다.

「페이스트리 월드 챔피언십이 2년에 한 번 하잖아요. 작년 심사위원을 하셨으니까, 올해 심사위원은 하실 수가 없대요.」

「그 두 사람이 코치라니 정말로 영광인데요.」

진혁은 자신의 수준을 객관적으로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신예 쉐프들 중에서는 분명히 수준이 높고 손이 빨랐다. 제너럴리스트로서 이것저것 전부 다 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었다.

하지만 제과제빵의 특정 분야 - 즉 설탕 세공이나 초콜릿 공예, 아니면 웨딩 케이크 등 한 분야를 30여 년 이상 판 이들과 비교하면 당연히 부족하다.

그러나 진혁은 그들이 발휘하는 기술을 직접 볼 수 있다면 모방할 자신이 있었다. 다만 그런 대가들은 함부로 자신의 기술을 공개하지 않는다. 마치 정파의 가전 무공처럼 자신이 고르고 고른 제자들에게만 일부 전수한다. 때로는 아무에게도 전하지 않고 홀로 선다.

그러니 대회 준비를 핑계로 우수한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그들의 기술을 배운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을 것이다.

진혁은 절로 흥분해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정말로 잘 됐다.’

아드레아노 존부 역시 온갖 기술을 익혔다. 그는 치즈 케이크와 초콜릿 케이크의 달인으로, 누구보다도 맛있는 케이크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주영모 쉐프님께서 최신 출제 경향 분석에 참여해주시겠다고 하셨고요」

주영모는 베스트셀러 제과제빵 책의 저자로 전 세계 페이스트리 쉐프들과 드넓게 교류한다. 흔히 하는 표현을 쓰자면 이 바닥의 마당발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거의 유일하다시피 세계급 대회에 심사위원으로 나가는 일이 많다. 월드 페이스트리 챔피언십에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적은 없으나, 곧 심사위원이 될지도 모른다며 거론되는 유일한 한국인이다.

진혁은 코치 진이 구성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미미가 초청한 이들이 정말로 뛰어난 이들이라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정말로 많은 사람들을 불렀군요.」

하지만 미미가 다른 사실을 또 이야기했을 때에는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올해 덴마크 왕실의 로얄 페이스트리 쉐프로 임명되신 분을 모셨어요.」

「제가 아는 사람입니까?」

「후후, 미리 알면 재미없죠. 심사 위원으로 진혁 쉐프를 만난 적이 있다고 하니까 보시면 아실 거예요.」

「스텔라 위스커스 쉐프? 엘리자베스 포크너 쉐프라거나…?」

「아니랍니다. 한국 결혼식이 끝나는 다음 날 바로 팀미팅을 잡아뒀어요.」

「…고마워요.」

영상 통화를 끊고서 진혁은 전자우편함을 확인했다. 그가 보낸 메일에 대한 답변이 한 편 와 있었다. 그는 다시 답장을 보냈다.

아주 짧은 메일이었다.

『알았어.』

전자우편함을 확인한 브라이언 신이 피식 웃었다. 진혁이 보낸 메일에는 정말로 용건밖에 없었다.

한국은 밤이지만 미국은 낮이다. 그는 햇빛이 비치는 발코니에서 노트북으로 메일을 확인하던 중이었다. 자신의 아내를 올려다보며 그가 말했다.

「응원해줘서 고마워.」

「기껏해야 3개월이잖아? 우리가 함께할 삶이 이렇게 길게 남아있는데.」

「그래. 임진혁 쉐프의 실력은 보통이 아니야.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능인지, 아니면 영재 교육을 받은 끝에 도달한 경지인지 그건 알 수 없어. 최소한 곁에서 같이 대회준비를 하다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말이야.」

디저트 서바이벌 대회에서 탈락한 이후 브라이언은 기존에 일하던 곳으로 복귀했다. 결혼한 후에 일을 그만두고 예전부터 계획했던 대로 자신의 가게를 오픈했다. 하지만 가게는 잘되지 않았다.

유능한 아내의 수입으로 생활비는 넉넉했다. 가족들은 조급하게 굴지 않았고 그는 아무 페이스트리 키친에서나 일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만한 곳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에 이력서를 넣었다.

그리고 그 결과를 기다리던 중 초청장을 받았다.

진혁의 예비 신부가 케이크를 만들어줄 수 있는지, 만든다면 어떤 맛에 어떤 모양 케이크를 할 것인지 샘플을 요청했을 때 그는 기쁜 마음으로 예비 미팅에 참석했다.

하지만 그 미팅에 나온 것은 그 혼자가 아니었다.

루이스와 마리오 형제.

그들 역시 각자 만든 케이크를 들고 나왔다.

정작 예비 신부인 황미미는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고, 왕 비서라는 자가 대신 케이크를 맛보았다.

그는 세 사람의 케이크가 모두 맛있다고 하면서, 진혁의 아버지와 남매 역시 케이크를 만들고 싶어 한다고 첨언했다.

브라이언은 자존심이 상했다.

자신의 결혼식에 웨딩 케이크를 받았던 경험이 있어 당연히 이번에는 자신에게만 맡기는 줄 알았다.

함께 디저트 서바이벌 쇼에서 일하던 동료였으나, 지금은 무시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혁이 일부러 자신을 무시한 것 같고, 축하하기 위해 웨딩 케이크를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상속녀와 결혼한다는 진혁이, 이제는 제과제빵에는 더이상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자신이 보기에는 너무나 부러운 재능을 가진 녀석이다.

하지만 부자가 되어 사업가로 변신하더니 더이상 친구에게 관심이 없다.

친구를 불러서 케이크를 부탁하면서 여러 명에게 샘플 케이크를 부탁할 수는 없다.

브라이언이 아는 진혁이라면 최소한 이 자리에 직접 나와서 케이크를 함께 맛보아야 했다.

본디 자주 연락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최소한 이런 상황에서는 나와주어야 했다. 그 빵에 미친 녀석이 이런 식으로 행동할 정도라면 이제는 제과제빵사가 아닌 사업가로 바뀌어 버린 것이 아닌가.

브라이언은 진혁이 더이상은 빵을 만들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착각했었다.

「임 쉐프는 제과제빵을 포기하지 않았어. 오히려 그 자원을 활용해서 새로운 단계로 발돋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 그런데 나는 그걸 모르고 혼자서 내 고민에만 빠져 있었군!」

방금 전에 오간 짧은 이메일.

월드 페이스트리 챔피언십에 참석할 테니 보조로 도와줄 수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용건밖에 간단히 적혀 있지 않은 그 이메일에 브라이언 역시 길게 답장하지 않았다.

솔직히 농담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이미 한 차례 무시하고서 어째서 이런 요청을 하는가?

하지만 브라이언이 그 상황에 대해 물었을 때 진혁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결혼식 제반 상황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맡겼다며, 적절한 조치를 하겠다며 사과했다.

비로소 상황을 이해한 브라이언은 진혁의 제안을 승낙했다.

옆에서 팔짱을 끼고 서 있었던 아내가 물었다.

「브라이언, 당신 보조로 참석해도 되겠어? 동등한 라이벌로 같이 서고 싶다며.」

「실력이 부족하니까. 내가 되고 싶은 롤 모델 바로 곁에서 절차탁마해야지.」

「그래. 3개월 동안 최선을 다해서 배워 와.」

그는 그녀의 손을 맞잡으며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항상 고마워.」

「내년엔 내 차례라는 것만 잊지 말고.」

그녀가 가볍게 윙크했다.

◈          ◈          ◈

한국 결혼식은 중국에서 한 것에 비해서 훨씬 규모가 작았다. 가까운 친척들과 미처 중국까지 오지 못했던 손님들을 모셨다. 그래도 하객들이 백여 명에 가까웠다.

결혼식을 위해 새로 건물을 짓겠다 했으나 일정상 그건 무리였다. 깔끔하게 리모델링한 작은 건물 앞에는 넓은 마당이 있었다.

마당 곁에는 꽃을 옮겨다 심어 화사하게 핀 화원을 꾸몄다. 정원 곁 마당에서 한국식 전통 혼례를 올리며, 초청받은 사물놀이패가 와서 흥겹게 징과 꽹과리를 울렸다.

“얼~씨구~절~씨~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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