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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의 베이커리-412화 (410/656)

제 412화

웨딩 케이크 옆에는 파티쉐 복을 입은 루이스 강이 자랑스럽게 서 있었다.

“특별히 심혈을 기울여 신부인 미미 씨가 제일 좋아한다는 치즈 케이크로 만들었습니다.”

“우와, 예뻐요! 꼭 웨딩드레스 같아요.”

재희가 탄성을 질렀다.

세 개의 케이크는 언뜻 봐서는 케이크처럼 보이지 않았다. 케이크라기보다 세 개의 의상 샘플처럼 보였다.

가운데에는 화려하고 거대한 3층 케이크가, 그리고 양쪽에는 한 단짜리 작은 케이크들이 보였다. 세 케이크 모두 복잡한 레이스 장식이 올라간 웨딩드레스의 치맛자락 같다. 신부의 머메이드 드레스를 장식한 레이스와 같은 무늬였다.

도을은 제일 먼저 가운데의 케이크에 렌즈를 고정했다. 화려하게 엉킨 러플 레이스 위에 드문드문 진주가 박혀있고 맨 위층에는 티아라가 얹혀 있다. 투명한 설탕 보석이 티아라 위에서 휘황찬란하게 무지개색으로 빛났다.

언뜻 보면 거대한 하나의 케이크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자세히 다가가서 보면 그렇지 않다. 겉에 있는 투명한 설탕 레이스 베일 아래에 조그마한 케이크들의 그림자가 비추었다. 인간의 눈으로는 알 수 없지만, 카메라로 들여다보니 아주 잘 보였다.

“우와! 이거 그냥 케이크가 아니네요. 작은 컵케이크들이 안쪽에 숨어 있는 거예요.”

도을은 곁에 가까이 다가가 안쪽을 들여다보려 했다.

투명한 아크릴판 위에 올망졸망 쌓인 컵케이크들은 저마다 설탕 보석을 하나씩 컵 위에 얹고 있었다. 양쪽에 있는 작은 케이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가 케이크에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가자 루이스 강이 다가와 제지했다.

“헤이. 신랑 신부가 케이크 커팅을 하기 전까지는 조금 주의해 달라고.”

루이스 강이 인사하자 재희가 싹싹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도을이 양옆의 케이크를 가리켰다.

“앗, 죄송합니다. 그런데 이거 삼단 케이크 옆에 꼬마 케이크가 하나씩 더 있네요? 일부러 그렇게 하신 거예요?”

“이거는 진혁 쉐프의 아버지, 이건 진희 쉐프님이 만든 거.”

“오.”

“운정 쉐프는 신부가 좋아하는 케이크를 종류별로 만드셨고. 진희 쉐프는 신랑이 좋아하는 케이크를 만든 거로 알고 있습니다.”

“오! 그게 무슨 맛인데요?”

“그건 이따 먹어보면.”

“아하하하.”

“무슨 케이크인지 되게 궁금하네요. 컵케이크니까 겉으로 봐서는 알 수가 없어. 이렇게 좋은 향기가 나는데. 뭔가 설탕 냄새인가? 익숙한데 잘 모르겠고.”

도을이 이야기하는 동안 진바라기의 채팅창에서는 미친 듯이 채팅이 쏟아졌다.

[저 케이크 한 번만 먹어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솔직히 진혁 쉐프님이 자기 일을 남한테 맡기는 스타일은 아니잖아. 맛있으니까 오케이해서 부탁했을 거 아냐]

[비주얼은 백만 점]

[사실 제가 대학교 졸업할 때쯤에 막 해달에서 채용공고 했거든요. 제빵경력 없는 사람도 지원해서 교육과정만 통과하면 제과제빵사로 일할 수 있다고. 그거 보고 솔직히 잠깐 솔깃했는데 그거 아무나 하는 일 아니라고 해서 그냥 일반회사에 취업했어요. 그런데 그때 지원한 친구는 지금 거기 사원으로 CEO 결혼식 초청받아서 지금 크루즈에서 샴페인 따고 있음. 하…. 내 인생은 시작부터 틀렸어. 회귀가 필요합니다.]

[친구가 아주 현명하네요]

[아니에요, 그냥 회사원 하시는 게 잘하는 거예요. 내 아는 동생도 거기 지원해서 다니다가 금방 그만두고 나왔어요. 덕질은 덕질로 끝내요, 직업으로 삼으면 괴로워요]

채팅창을 보면서 무어라 말하려던 김도을은 재희가 옆구리를 찔러 오른쪽을 보았다, 이쪽으로 사람들이 이동하고 있었다.

“인사 다 끝나고 이제 웨딩 케이크 자르려나 봐.”

“오오오!”

중요한 테이블에서 인사를 마친 진혁과 미미는 이쪽으로 다시 왔다. 이미 수십 잔의 술을 마셨지만 멀쩡해 보였다.

“도을이하고 재희도 왔네.”

“형! 안녕하세요!”

도을은 부쩍 키가 커져 있었다. 전에는 재희와 키가 비슷했는데 지금은 벌써 머리 하나쯤 크다. 새 양복에 뻣뻣한 넥타이를 한 도을이 해죽해죽 웃었다.

“루이스 형, 케이크 고마워.”

“고마워요, 루이스 씨.”

루이스 강이 히죽 웃었다.

“이 케이크 대금으로 주실 돈은 임진혁 쉐프의 뜻을 따라서 이번 일본 태풍 사태에 기부했습니다.”

“오.”

미미가 손뼉을 쳤다.

“그렇다면 저희도 지금까지 받은 축의금을 일부 기부할게요.”

이미 새벽에 어느 정도의 금액을 기부했던 진혁이 물었다.

“일부요?”

“축의금으로 현물을 주신 분들도 있어요.”

미미의 시선이 행사장 우측을 향했다. 캔버스에 목탄으로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는 백인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지금 당장 밥 앤더슨 씨가 그리고 계신 결혼식 장면 그림들도 선물로 준다고 했다. 개인이 뜻을 담아 선물한 물건들을 기부하는 것은 곤란하다. 진혁이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미미가 신뢰감 어린 표정으로 진혁을 올려다보았다.

“우리에게는 삶을 함께 새로 시작하는 뜻깊은 첫날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절망으로 가득 찬 최악의 날일 수도 있으니까요. 약간의 돈이 그분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아직 어리고 미숙해 시야가 좁은데, 진혁 씨의 너그럽고 따뜻한 배려를 보면서 많이 배운답니다.”

진혁은 미미의 인이어 너머로 들려오는 통역사의 목소리를 들으며 피식 웃었다.

‘완벽주의자야.’

광안마의 피가 어디로 간 건 아닌지, 자신의 미숙한 점은 외부에 보이지 않으려고 한다.

서툰 한국어를 사용하기보다 첨단기술과 통역사의 도움을 받아, 진혁이 한국인들과 이야기할 때에는 한국어로 대화를 한다.

그 노력이 고맙기도 하면서 신경 쓰이기도 했다.

‘한국말을 완벽하게 하지 못해도, 실수를 해도 괜찮은데 말이지.’

나중에 이 이야기를 해주어야겠다고 진혁은 생각했다.

루이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럴 리가 없어요. 이놈은 머릿속에 빵밖에 안 들어 있는 녀석인데요. 같이 대회 준비할 때 이 정도 실력에 잠이 오냐고 어찌나 쪼던지!”

“그렇게 치열하게 준비해야 세계적인 수준이 되는군요. 그런데 케이크는 분명히 루이스 강과 마리오 강 쉐프님 두 분에게 부탁드린 거로 아는데요?”

미미가 웃으며 물었다.

“당연히 마리오도 같이 만들었습니다만…, 걔는 피곤해서 먼저 자고 있습니다.”

손님들이 앉아 있는 탁자마다 좋은 술과 붉은 담배, 사탕과 초콜릿들이 놓여 있었다. 달콤하게 살겠다는 소원을 담은 중국 풍습이다.

이틀 밤을 새워서 케이크를 만든 마리오는 결혼식 때에 제정신으로 깨어있겠다며 독한 술을 마시고 그만 기절해 버렸다.

‘미미 씨는 그 정도 보고는 이미 받아서 파악하고 있을 텐데.’

루이스가 자신을 ‘머릿속에 빵만 든 녀석’이라고 부른 것에 반응해서 화제를 돌린 건가?

진혁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루이스는 황급히 변명조로 말했다.

“레몬 치즈 케이크하고 크럼블 치즈 케이크, 그리고 블루베리 치즈 케이크야. 브라이언 쉐프가 무척이나 케이크를 만들고 싶어 했다고? 결혼식에 대한 보답이라고 자기가 꼭 하고 싶다는 걸 내가 이겨서 우리 형제가 만들었지.”

전부 미미가 좋아하는 케이크들이다. 그가 레시피를 공개한 곳은 해와 달의 중국 지점 케이크들뿐이다. 진혁이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 지점에서 레시피 받았어?”

“명색이 내가 이 분야 선배인데 어떻게 그렇게 해. 먹어보고 어레인지해서 만들었지.”

미미가 어떤 케이크를 즐기는지는 의뢰를 한 비서가 조언해 주었다.

“오. 그럼 맛 좀 볼까.”

두 사람은 친근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도을에게는 무뚝뚝했으나 진혁의 질문에는 놀랍게도 싹싹한 루이스를 보며 도을이 중얼거렸다.

“와, 이게 바로 차별 아닌가. 진혁 쉐프 바라보는 시선 좀 봐요.”

[합숙까지 하면서 세계대회 준비했던 팀 동료랑 처음 보는 사람이랑 같을 수가 없죠]

[하하하]

[우리 옥빵상제님 많이 속상하신가 보다]

[원래 세상의 주인공은 당신이 아니에요. 중2 넘은 지 한참 지났으니까 그 정도는 알아야지]

“아니, 저 고등학생이거든요? 갑자기 웬 중학교 2학년 이야기야.”

재희가 도을이가 신고 있는 새 구두의 발등을 지그시 밟았다.

“이쪽으로 가서 멀리서 촬영하자. 두 분 이야기하신다.”

“앗, 응. 응.”

◈          ◈          ◈

루이스가 빙긋 웃으며 진혁에게 집게를 내밀었다.

“이걸로 설탕 장식을 걷어내면 돼.”

“오.”

설탕을 망사처럼 짜낸 슈가 레이스 베일은 한 겹이 아니었다. 여러 겹의 레이스가 겹쳐져 있는 이 설탕 베일은 집게로 집히기는커녕 그대로 찢어져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마리오가 한 제안이지만 루이스 역시 마음에 들었다.

‘당연히 걷어내질 못하겠지.’

크로캉부슈 위에 얹은 캐러멜 소스를 걷어낼 수 있을 리가 없다. 이 슈가 레이스 베일은 레이스 형태로 일일이 만든 얇은 설탕 종이에 열을 가해 구부리고 겹치며 컵케이크 위에 얹은 것이다. 집게로 집으려고 한다면 당연히 깨어지고 부서질 수밖에 없다.

신혼의 신랑에게 도전하는 과제를 내자고 제안한 것은 마리오가 먼저였다. 진혁의 쌍둥이 남매와 부친 역시 흔쾌히 동의했기에 루이스는 입가에 미소를 띠고서 말했다.

집게를 집어 든 진혁은 그다지 어려운 것도 아닌 것처럼 자연스럽게 설탕 베일을 걷어냈다. 그는 비단 옷감을 두루마리로 말듯이 자연스럽게 슈가 베일을 펼쳐서 도르르 말았다.

이전에 금천복과 감호철의 결혼식을 할 때 크로캉부쉬 위에 캐러멜 시럽을 뿌렸을 때와 같은 요령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강기의 실을 펼쳐 지극히 미세한 힘을 가해 아래쪽에서 받쳐주어 설탕 베일이 부서지지 않게 했다.

단지 이번에는 면적이 좀 더 넓고 입체적일 뿐이다.

“!!”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본 루이스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진혁이 설탕 베일을 부수는 순간 폭죽을 터트리려고 무대 양쪽에서 준비하고 있던 임진희와 임운정 역시 깜짝 놀랐다.

“아니, 지금 저걸 그대로 걷어낸 거야?”

“맙소사. 아빠, 그럼 우리 폭죽은 터트리지 말아요?”

“이거 어쩐다. 저건 저 설탕이 부서져서 컵케이크 위에 얹혀야 맛이 있는데.”

진혁은 부친과 진희가 왜 테이블에 앉아 있지 않고 저쪽에 숨어 있었는지 깨달았다.

‘아, 이걸 내가 무사히 걷어내야 하는 게 아니구나.’

하지만 이미 그는 미들 케이크의 베일을 전부 걷어냈고, 나머지 케이크의 베일을 걷어낼 참이었다.

베일을 어디에 두는 편이 좋을까 하고 두리번거리자 미미는 당연하다는 듯이 손짓을 했다. 곧 직원이 투명한 티아라 모양의 은빛 쟁반을 가져왔다.

샹들리에의 조명을 받은 티아라 모양의 쟁반은 베일을 전부 올려놓을 수 있을 만큼 아주 컸다. 세심하게 세공된 왕관 모양의 테두리는 접시로 쓰기에 아까울 정도였다. 잘 닦여 얼굴을 그대로 비출 정도로 선명한 은빛 쟁반 위에 설탕 베일이 올라가자 쟁반의 표면에 그 모양이 비추어 아주 예뻤다.

곧이어 다른 직원이 같은 모양의 접시를 가져왔다. 진혁은 그 위에도 작은 케이크의 베일을 옮겼다.

입을 벌리고 다물지 못하는 루이스에게 진혁이 농담처럼 말했다.

“얼마나 실력이 늘었을까. 조금은 늘었나?”

진혁이 엄지손가락과 검지로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공간을 벌려 보이며 말했다.

루이스는 아직도 대답하지 못했다.

진혁은 컵케이크를 하나 집어 들어 향을 맡았다.

“이게 치즈 크럼블 케이크네.”

컵케이크들은 전부 똑같이 생겼지만 올라가 있는 장식이 달랐다.

크럼블 치즈 케이크 위에는 은빛 진주 모양의 과자 장식이, 블루베리 치즈 케이크 위에는 볶은 아몬드 조각이 하나씩 올라가 있다. 레몬 치즈 케이크 위에는 아무것도 올라가 있지 않았다.

오직 루이스와 마리오, 임운정과 임진희 외에는 아무도 몰라야 할 사실이었다.

“이 케이크 귀신. 먹어보지도 않고 바로 맞추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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