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410화 (409/656)

제 410화

「자, 자. 이제 임진혁 CEO님이 신부를 모시러 가야지요.」

「예.」

미리 설명을 들었던 대로 진혁과 신랑 들러리들이 그 뒤를 따랐다.

들러리 역할을 하는 백진영은 중국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멀뚱멀뚱하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혁이 설명해 주었다.

“신부의 본가로 신부를 데리러 가는 거야. 신부 친구들이 방어하고 있으니 선물을 줘야 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홍빠오라고 하는 붉은색 봉투에 위안화를 넣어 따로 준비했다. 그 가방을 손에 들고 있던 백진영이 자신의 머리를 탁 쳤다.

“맞다. 그랬지.”

긴장해서 어제 이야기 들었던 것도 잊어버린 것이다. 한국 결혼식에는 여러 차례 참석했지만, 중국식 결혼식은 처음이다.

“뭐, 장기 자랑 같은 것도 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아도 한 비서에게 듣고 몇 가지 준비하긴 했어.

진혁이 성큼성큼 걸어가며 백진영을 바라보고 말했다. 처음으로 제대로 화장한 진혁의 얼굴을 본 진영은 혀를 내둘렀다. 크림과 분을 얹고 눈썹을 그린 상태인 얼굴은 조각처럼 이목구비가 뚜렷했다. 거기에 결혼식 예복으로 따로 주문 제작한 턱시도는 그렇지않아도 키 크고 스타일 좋은 진혁에게 아주 잘 어울렸다. 그 모습을 보고 백진영이 혀를 내둘렀다.

“그냥 네가 얼굴만 비춰도 감사합니다 하고 뛰쳐나오지 않을까?”

“에이, 설마. 장기자랑을 해야 한다고 하니까 내가 형 스타일에 맞춰서 준비했어.”

백진영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잠깐. 나까지 장기자랑 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안 했잖냐. 난 춤도 노래도 못 해.”

“형이 아주 잘 하는 거야.”

신부대기실 역할을 하는 선실의 문 앞에 특이한 물건이 눈에 띄었다.

“나보고 지금 여기서 커피를 만들라고?”

화려한 꽃과 붉은 리본으로 장식된 문 앞에는 작은 이동용 바 카트가 설치되어 있었다. 평소 백진영이 사용하던 것과는 다르지만 제대로 갖춰진 커피 관련 도구들이 놓여있었다. 핸드 드립용 기구와 원두 그라인더, 뜨거운 물을 끓일 수 있는 전기주전자를 비롯해 예쁜 사기잔까지 고루 갖추어져 있는 것을 보고 백진영이 혀를 내둘렀다.

“너 이 자식. 이러려고 나한테 들러리 시킨 거냐.”

“하하, 들켰어?”

들러리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았다. 당장 강마리오만 해도 자기가 들러리가 되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A4 용지로 세 장을 써서 제출했다. 내심 일봉이나 병철이도 탐내는 눈치였다.

하지만 진혁은 백진영 한 사람만을 선택했다.

“이런 장기자랑이라면 거절할 수가 없잖아.”

내심 뿌듯해하고 있던 백진영이 원두 그라인더로 손을 뻗었다.

“바닐라 시럽 있고. 헤이즐넛 시럽도 있고, 얼음은 충분하고. 생크림도 챙겨 놨네?”

“응.”

“취향 한 번 확고한 녀석 같으니. 그럼 새신랑을 위한 커피부터 만들어 보지.”

백진영은 제일 먼저 원두부터 갈았다. 그라인더가 원두를 갈면서 진하고 향긋한 커피 향이 풍겼다.

“이거 아주 제대로 된 원두를 썼는데?”

커피 필터 위에 곱게 갈린 원두 가루를 얹은 백진영은 경건한 태도로 팔팔 끓는 뜨거운 물을 그 위에 붓기 시작했다. 더 진해진 커피 향이 사방으로 뿜어져 나왔다.

“하하.”

안쪽에서 문이 달각이는 소리가 들렸다. 농후한 커피 향이 흘러 들어갔는지, 신부 친구 한 명이 열린 문틈 사이로 이쪽을 관찰하는 모습도 보였다. 진혁은 그 모습을 못 본 척하고 백진영을 관찰했다.

그는 뚜껑 없는 은빛 스테인리스 주전자에 생크림부터 부었다. 작은 휘핑기로 휘휘 젓는 손길은 프로의 그것이다. 길쭉하니 투명한 유리 컵 위에 또르륵 얼음 조각이 굴러 들어갔다. 뜨끈뜨끈한 에스프레소와 바닐라 시럽, 헤이즐넛 시럽과 생크림이 부어지자 훌륭한 아인슈페너가 탄생했다.

“자, 이건 진혁이 네 것. 언제나 마시는 거잖아?”

“고마워.”

문이 벌컥 열렸다.

「신랑 들러리님. 뭔가 잘못 알고 계세요.」

「아니, 우리에게 커피를 바치면서 신부를 어서 모시게 해달라고 졸라야지.」

「어째서 남자들끼리 커피를 마시며 하하호호하고 있담?」

임진혁은 낯익은 얼굴들을 알아보았다.

항상 미미의 곁에서 미미를 꾸며주고, 옷을 입혀주고 하던 스타일 팀원들이었다.

헤어스타일리스트와 메이크업 아티스트, 스타일리스트들이다.

이름은 모르지만 여러 차례 만나봐서 낯이 익었다.

‘그냥 직원들이 아니었군.’

백진영이 단순한 동업자가 아니라 친구가 된 것 같은 관계인가보다 하고 그는 자연스럽게 납득했다.

빨갛고 파랗고 노랑 치파오를 입은 신부 들러리들이 종달새들처럼 저마다 떠들었다.

「나는 두유 딸기 라떼에 바닐라 시럽을 추가해 주세요.」

「향이 참 좋은데, 저한테도 아인슈페너 좀 주시겠어요?」

「지금 우리가 중요한 게 아니야. 미미 씨 마실 카라멜 프라푸치노를 좀 부탁해요. 헤이즐넛 시럽을 추가하고 초코 드리즐도 해 주셔야 해요.」

세 사람이 조잘거리는 동안 진혁은 그들을 지켜보고 있지 않았다.

세 사람의 건너편에는 무거운 비단 커튼이 쳐져 있는 침대가 자리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커튼 너머에 누군가 사람이 있다는 것밖에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진혁은 여덟 겹의 비단 커튼을 투시해 그 안에 누가 있는지 확인했다.

붉은색 비단 침구 위에서 하얀 머메이드 스타일 웨딩드레스를 입은 미미가 미소를 띤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놀랍게도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미미와 똑같은 머메이드 드레스를 입은 미모의 여인이 한 명 더 있었다.

<천마> 드라마에서 보았던 시비 역할의 여인이었다.

‘데려가지 못하게 장난을 칠 셈인가 보군.’

두 사람 다 얼굴에 붉은 비단을 베일처럼 쓰고 있는 걸 보니, 둘 중 누가 진짜 미미인지 물어보려는 것이 분명하다. 그는 베개 밑에 숨겨져 있는 하얀색 레이스 구두 한 짝과 서랍 속에 들어있는 다른 한 짝 역시 확인할 수 있었다.

구두에서 미미의 향기가 느껴졌다.

“진혁아, 다들 뭐라는 거야?”

“음료수 만들어 달래.”

“네가 설명을 해 줘야지!”

“아메리카노 네 잔 만들어 줘.”

진혁이 간단하게 말했다.

“그거야 어렵지 않지!”

단순한 요청에 백진영이 희색을 띠었다. 그는 다시 원두를 갈기 시작했다. 고소한 커피 향이 방 안을 덥혔다. 치파오를 입은 여자 셋이 뭐라 뭐라 짹짹거리는 동안 진혁은 아무렇지 않게 그들 사이를 걸어갔다.

「어어?!」

「꺅!」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진혁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단지 여자들 사이를 걸어서 지나갔을 뿐이다. 어제 미리 들었던 결혼 풍습대로 홍빠오를 뿌려 주면서 천천히 걸었다. 하지만 그 ‘느린’ 속도는 일반인들의 눈으로는 결코 파악할 수 없는 속도였다.

그는 여덟 겹의 커튼을 헤치고 서랍 속과 베개 밑의 구두를 꺼내 들어 미미에게 신겼다. 그리고 드레스를 입은 그녀를 안고 나오는 것까지 몇 초가 걸리지 않았다.

갑자기 손길이 자신을 안아 드는 것을 느낀 미미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지만, 곧 누군지를 알아본 후에 킥킥거리며 숨을 죽였다.

미미와 진혁이 그 자리를 떠난 후 15초쯤 지났을까. 이미 두 사람은 복도 저편으로 사라진 후였다. 미미의 친구가 허둥거리며 두리번거렸다.

「어디에 간 거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미미가 사라진 자리에는 새빨간 홍빠오 봉투가 놓여 있었다. 신랑이 놓고 간 것이 분명하다.

뒤늦게 그녀가 사라진 것을 깨달은 스타일 팀원들이 힘없이 삐약거렸다.

「세상에, 내가 준비해온 수수께끼는 낼 틈도 없었네.」

「케이크를 자르는 것도 빠르더니 신부를 데려가는 것도 빨라.」

「우리 회장님을 데려갈 남자라면 역시 보통은 아니어야지.」

「그나저나 아저씨, 내 프라푸치노는 언제 나와요?」

중국어를 하지 못하는 백진영은 쩔쩔매며 설명했다.

“여기 아메리카노 있습니다. 차가운 게 좋아요, 아니면 따뜻한 거로 해드릴까요?”

「아인슈페너 해 주세요!」

“진혁아. 진혁아!”

백진영은 애타게 친우의 이름을 부르짖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          ◈          ◈

복도를 걷는 동안 신부의 발이 바닥에 닿게 해서는 안 된다. 신랑의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는 선실까지 가면서 미미가 깔깔거리며 웃어젖혔다.

「진혁 씨, 사실대로 이야기해봐요.」

「예?」

「누구 매수했어요? 웨딩 슈즈가 거기에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미미 씨 냄새가 나던데요.」

「…내 발 냄새가 서랍 밖까지 날 정도로 그렇게 심하단 말이에요?」

「제 코가 예민합니다.」

「….」

미미는 입을 삐죽거렸다. 진혁은 고개를 들어 눈앞을 보았다.

환한 표정을 한 임운정과 장은효, 임진희가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식으로 정장을 차려입은 가운데 장은효만이 파란 저고리 한복을 입었다. 그런 그녀의 품 안에 낯익은 생명체가 보였다.

“미야오옹.”

목에 나비 리본을 맨 임진호가 꼬리로 장은효의 소맷자락을 탁, 탁, 탁 쳤다. 진혁이 물었다.

“…진호가 용케 목에 리본을 매고 있네요.”

“가족인데 당연히 얘도 정장을 입어야지.”

“상하이가 검역 후 바로 들어올 수 있는 도시라서 다행이지, 북경에서 했더라면 하마터면 얘 혼자 한 달 동안 격리당할 뻔했어.”

“자자, 우리가 며늘아기 되실 분께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임운정이 미리 준비해온 봉투를 내밀었다. 새빨간 비단 봉투는 장은효가 미리 골라둔 루비 목걸이와 귀걸이 세트가 들어 있어 불룩했다. 고가의 선물을 받은 두 부부가 큰돈을 들여 구한 것이다.

“감사합니다, 아버님. 어머님.”

진호가 폴짝 뛰어올라 미미의 어깨 위에 앉았다.

“진호야!”

“발톱 세우면 안 돼!”

진희가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고양이는 태연하게 어깨 위에 앉아서 자신의 앞발을 핥았다.

따끈따끈하게 어깨를 내리누르는 체중을 느끼며 미미가 웃었다.

“귀여워.”

임진혁이 단호하게 말했다.

“진호, 내려가.”

“야오옹.”

고양이는 꼬리를 살랑거리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진혁이 그 콧잔등을 한 번 손가락으로 튕겨 주었다.

“야오옹!”

항의하는 듯한 울음소리를 내며 진호가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진희는 그 고양이를 안아 올렸다.

“자, 자.”

장은효는 한순간도 시선을 떼지 않고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길에는 자랑스러움이 듬뿍 담겨있었다.

“우리 아들, 며느님을 안고 있는 자세가 아주 편안해 보이네. 팔은 아프지 않고? 이제 슬슬 내려 주어도 좋지 않아?”

“아, 네.”

안겨 있던 미미가 활짝 웃었다.

“괜찮아요!”

뒤늦게 한 손에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씩을 들고서 신부 들러리들이 나타났다.

「회장님! 이제 결혼식장으로 입장하셔야죠.」

「악단이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답니다.」

「가족분들도 이리 오세요!」

한 비서가 따라와서 그들이 말한 내용을 통역해 주었다.

「어찌나 신부를 빨리 데려가셨는지 저희가 준비한 101개의 함정을 써먹지도 못했다니까요.」

「우리가 부탁한 음료수는 사라져 버리고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게 됐어요.」

시작도 결론도 없는 이야기로 신부 들러리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들어댔다. 임진혁이 물었다.

「진영이 형은 못 봤습니까?」

스타일리스트가 대답했다.

「지금 오고 계세요.」

저쪽 복도에서 진영이 헐레벌떡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임진혁이 피식 웃으며 미미를 돌아보았다.

「우리도 이제 입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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