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409화 (408/656)

제 409화

멈추지 않고 달리자 마침내 태풍이 보일 정도로 가까워졌다.

저 너머에서 광폭하게 몰아치는 파도와 거칠게 휘몰아치는 바닷바람이 그 존재감을 강력하게 증명했다.

그는 단 한 순간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내 애검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는 혼자 피식 웃어버렸다.

머릿속에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기억은 최근에 케이크로 재현했던 애검의 모습이다. 여기에 검 모양의 케이크를 가지고 와 보았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진혁은 멈추지 않고 달려갔다.

심검(心劍)의 경지!

그 드넓은 강호에서도 현경의 경지를 초월한 절정 고수 중 심검을 사용할 수 있는 자는 그 혼자밖에 없다.

내공을 사용하여 형성해낸 거대한 검이 허공에 떠올랐다.

무림의 누군가가 보았다면 당장 제자로 삼아달라고 울부짖으며 조아릴 위용이나 아쉽게도 이곳에는 아무도 없다.

보이지 않으나 존재하는 무형의 검은 거친 소용돌이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그 자리를 유지했다.

시속 200여 킬로미터.

스포츠카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으르렁거리며 다가오던 거대한 태풍은 무형의 검과 마주쳤다.

한순간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보였다.

-휘오오오오오오오

큰 바위를 만난 시냇물이 방향을 바꾸어 흘러가듯 바다를 휩쓸어버릴 것처럼 다가오던 폭풍은 목표를 바꾸어 선회했다.

이 빌딩처럼 드높은 회오리바람이 상하이 쪽으로 올라오지는 않을 것이다. 진혁은 이 결과에 만족했다.

◈          ◈          ◈

한편 그 새벽, 해링턴 집안의 두 아들은 공항에서 출발하는 아버지를 배웅하는 중이었다.

「아버지, 저희가 같이 가지 않아도 괜찮으시겠어요?」

둘째 아들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큰아들은 킬킬거렸다.

「아버지가 어린애도 아니고. 한 번쯤 혼자 해외 나들이해도 된다.」

「평소에는 학회 전부 거절하셨잖아요.」

매번 거절했으나 이번에는 대한뇌신경학회의 초청을 승낙했다. 에드워드 해링턴은 뇌신경학회 포럼 팸플릿을 사이에 숨겨둔 영문 빵집 가이드를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이 뇌 신경학회는 갈만한 가치가 있다니까.」

로스앤젤레스에서 서울까지 13시간의 비행을 거치며 그는 꾸벅꾸벅 졸았다. 선잠을 자면서도 그는 내내 머릿속에서 베이글을 떠올렸다.

‘일주일 전부터 한국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다는 쑥 베이글.’

그 신비로운 빵을 먹을 것이다.

그러면 두뇌의 능력을 한계까지 발휘해 논문을 쓰다가 막혀있던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 번은 우연일 수 있지만 두 번, 세 번은 우연이 아니다.

쑥 베이글을 여러 번 먹어보고 자신의 몸으로 실험하는 것도 좋다.

‘그 쑥이라는 약초를 차처럼 다려 마시면 더 효과가 있으려나.’

굳이 빵이라는 형태로만 먹어야 할까?

그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쑥 가루를 따로 구해서 먹어보았는데 별로 효과는 없었다.

어쩌면 한국산 쑥은 효과가 더 좋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먹었던 것이 미국산 쑥이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에드워드 해링턴은 나름대로 이것저것 생각을 했다.

비행을 마치고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수속을 마치고 짐을 챙기면서 그는 내내 툴툴거렸다.

‘공기도 덥고, 냄새도 이상해.’

그 빵만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윌리엄이 본점 주소를 적어준 종잇조각을 주머니 속에서 내내 만지작거렸다.

<에드워드 해링턴>이라는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든 대한뇌신경학회의 직원을 만나자마자 그는 대뜸 진정한 용건부터 물었다.

「여기 이 가게를 가고 싶은데. 바로 가도 되지요?」

해외에서 온 귀한 손님을 모시느라 긴장해 있던 직원은 주소를 받아 살폈다.

「예? 예!」

한 시간 반 동안 운전해서 서울 시내에 도착한 에드워드는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제까지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일상이었는데, 갑자기 갑자기 해외에 와 있다.

‘그것도 빵 하나 때문에.’

싱숭생숭하고 마음이 착잡했다.

이곳에 오기 위해 미뤄둔 진료와 수술 일정을 생각하면 더욱더 그렇다.

타 병원에서 의사를 불러 없는 동안의 일정을 일부 소화하도록 부탁했지만, 아무래도 내키지 않았다.

사실은 그저 착각이 아니었을까?

별로 대단치 않은 빵인데, 갑자기 컨디션이 좋아졌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당시에 있었던 일을 아무리 돌이켜 봐도 그 빵 외의 다른 요인은 없었다.

‘다시 먹어보면 밝혀질 일이야.’

마침내 도착했는지 차가 멈추었다. 직원이 말했다.

「여기입니다, 선생님.」

에드워드는 설레는 마음으로 차에서 내렸다.

<해와 달, 3일간 휴무합니다>

한국어로 쓰여 있는 글자의 뜻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가게가 닫혀 있다는 사실은 파악할 수 있었다. 에드워드 해링턴은 노기 띤 표정으로 물었다.

「자네, 여기에 뭐라고 쓰여 있는 건가?」

「아, 오늘부터 사흘간 휴무입니다. 그러고 보니 신문기사에서 본 것 같네요. 이 베이커리 주인이 유명한 쉐프인데, 그 사람이 결혼식을 하면서 자기 빵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전부 초대했다고 했어요.」

「제기랄!」

에드워드는 주소가 적힌 종이를 꼬깃꼬깃 구겨서 바닥에 내팽개쳐 버렸다.

그는 이틀간 학회에 참석하고 미국으로 귀국할 예정이었다.

직원이 저명한 뇌 신경외과 의사의 분노에 놀라서 물었다.

「선생님?」

「아니, 아무것도 아닐세.」

에드워드 해링턴은 방금 내팽개쳤던 종잇조각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

「호텔로 돌아가세나.」

◈          ◈          ◈

한편 진혁은 가족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오늘 오전에 결혼식을 하기 전에 총각으로서 먹는 마지막 식사다. 아버지가 감회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아들이 드디어 오늘 장가를 드는구나.”

“어쩜 이렇게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후다닥 진행하는지, 아직도 실감이 안 나.”

조식 뷔페에는 중국식과 한국식, 서양식 아침 식사 메뉴가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한국식 두유가 아닌, 콩을 갈아 만든 담백한 중국식 두유를 마시며 진희가 중얼거렸다.

“튀김 빵이랑 이런 걸 아침에 같이 먹는구나. 우리나라랑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달라. 그러니까 저번에 빵 개발할 때 단순히 빵만 신경 쓰는 게 아니고 마실 것도 알아본 다음에 그것도 고려를 해야 했던 거지.”

“좀 맹맹하긴 한데.”

우유처럼 하얗고 맑은 두유를 보며 진혁이 말했다.

“이 유우타오라고 하는 튀김 빵을 거기에 찍어 먹기도 해.”

“대박. 그렇게 하면 맛있대?”

“한 번 먹어 봐.”

아버지는 색색의 자그마한 찐빵을 하나씩 먹어 보고 계셨다.

“이것 봐라, 여기엔 고기가 들어 있네. 이건 부추하고 고기가 같이 들어 있고.”

평범한 호빵을 아기 주먹만 하게 만든 이 호빵은 반죽에 채소를 넣었는지 호빵 표면이 녹색이었다. 한국식 호빵보다는 조금 더 작고 피가 얇다. 아버지는 한입 물면 촉촉하게 배어 나오는 육즙에 완전히 반해버렸다. 하나, 둘, 셋, 넷, 종류별로 호빵을 전부 먹어버릴 기세로 접시를 쓸어왔다. 어머니가 미간을 좁혔다.

“여보, 그렇게 많이 먹었다가 이따가 체하기라도 하면 어떡해요?”

그녀는 게살 수프와 죽 등 부드러운 음식만 몇 가지 먹었다. 아무리 음식이 호화롭고 종류가 많아도 손이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따가 태풍이 올지도 모른다고 해서 걱정이에요.”

“아, 엄마. 제가 아침에 일기예보 다시 봤어요. 태풍 안 온대요.”

“어머, 그래?”

장은효가 활짝 웃었다.

“우리 아들이 복이 많긴 많아. 선 자리는 그렇게 다 거절하더니 자기 인연을 알아서 만들어 오고 말이야. 결혼식 날에 태풍도 자연스럽게 소멸되고.”

“소멸은 아니에요.”

임진희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면서 자연스럽게 한 입 먹은 두유 그릇을 진혁이 앞으로 밀어주었다.

“그럼?”

진희는 스마트폰의 날씨 예보 기사를 그대로 읽어 주었다.

“방향을 조금 틀어서 일본 쪽으로 갔나 봐요. 규슈 쪽에 태풍 피해가 너무 심해서 재산상으로만 2억 엔 넘는 피해를 입었대요.”

“아이구. 누구 다친 사람은 없대?”

“죽은 사람은 없는데 경상자는 몇십여 명 있대요.”

묵묵히 두유를 마시고 있던 진혁이 말했다.

“많이 다쳤대?”

“길을 가다가 넘어져서 머리가 다친 노인도 있고, 유치원에서 간판이 떨어져서 애들도 몇 명 다쳤대. 그래도 이 정도 태풍에 인명피해가 없는 건 정말로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하네.”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며 진희가 조잘거렸다.

“케이크는 다 준비됐어? 아침에 확인은 제대로 했어?”

진혁이 다시 한 번 물었다. 임진희는 넉살 좋게 말했다.

“아이쿠, 물론이지요. 보름간 과외해주신 대로 제대로 만들었습니다요.”

아버지도 입에 찐빵을 문 채 대답했다.

“우리 둘 다 아침에 확인하고 왔지. 나중에 먹어보고 누가 뭘 만들었는지 맞혀 보거라.”

“예?”

진혁이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두 분이 똑같은 모양으로 만드셨어요?”

진희가 신나서 대답했다.

“그래. 전에 너하고 같이 대회 나갔던 루이스 쉐프가 자기가 어떤 모양으로 만드는지 우리한테만 디자인을 따로 줬어. 그 양쪽에 아빠 거랑 내 케이크랑 같이 세워 준댔단 말이야. 그래서 오늘 새벽부터 나가서 같이 만들었잖아.”

“과연 세계 수준 페이스트리 쉐프는 다르더라.”

“웨딩 케이크, 미미 씨가 누가 만드는지 얘기 안 해줬는데. 루이스 강 쉐프를 불렀구나.”

진희는 손으로 자기 입을 가렸다.

“그냥 못 들은 척 해줘.”

“딱히 비밀로 하려던 건 아닐걸?”

“왜 직접 만들지 않고?”

“내가 직접 만든 케이크는 매일 하나씩 먹고 있었으니까 결혼식 날에는 케이크가 아니라 자기랑 시간을 보내줬으면 좋겠대.”

진희가 입을 벌리며 눈을 가늘게 떴다.

“아흐, 달달해!”

양손으로 자기 어깨를 감싸며 소름 끼쳐 하는 모습에 어머니가 웃었다.

“징그러워하기는. 부부가 금슬이 좋으면 다 좋은 거야.”

“그래. 진혁이가 표현을 많이 하지 않아서 걱정인데 우리 며늘아기가 솔직하니까 다행이다.”

“케이크 디자인은 어떻게 했는데?”

“이따 직접 봐.”

“알았어, 알았어.”

진혁이 가족들과 식사하고 있는데 덩치 큰 백인이 어슬렁어슬렁 접근해 왔다.

「임진혁 쉐프!」

「밥 앤더슨 씨.」

“이 분 설마 진짜 밥 앤더슨 씨야?”

진희는 깜짝 놀라서 자리에서 그대로 일어났다. 엉거주춤하게 인사하고 다시 앉는 진희를 보고 임진혁이 키득키득 웃었다.

「이쪽은 제 가족들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제 쌍둥이 남매인 진희입니다.」

「가족들이 아주 똑같이 생겼네, 역시 피는 못 속인다더니.」

「자네가 만든 빵만큼은 못하지만, 음식도 아주 맛있어. 초대해줘서 고맙네.」

제멋대로 구는 예술가지만 밉지는 않다. 멀리까지 여행하면서 무리한 탓에 얼굴이 퍼렇게 떠서 창백해 보였다.

밥 앤더슨을 처음 본 가족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진혁은 알 수 있었다.

‘남의 결혼식에서 송장이 되어 드러누울 셈인가?‘

진혁은 밥 앤더슨의 어깨를 툭 툭 두드렸다. 진기를 살짝 주입해 주자 혈색이 조금 나아졌다.

「하하! 자네 얼굴을 보기만 해도 몸이 좋아지는 것 같단 말이야. 다시 가서 마저 결혼식을 축하하는 그림을 그려야겠어! 저절로 영감이 치솟는단 말이야.」

밥 앤더슨은 인사만 하고 멋대로 휙 등을 돌려 자리를 떠나 버렸다.

진희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 눈을 깜빡거렸다.

“진짜로 너랑 친분이 있어서 오신 거였어.”

“저 아저씨가 멋대로 따라다니는 거야.”

“몸이 많이 안 좋아 보이시는데. 그래서 요즘 그림을 그리지 않고 있었구나.”

“….”

◈          ◈          ◈

한편 황미미는 아침 식사를 하지 않았다. 간단하게 우유를 마시고 비스킷 두 조각을 먹은 후 결혼식을 준비했다. 기본적인 피부관리를 마치고 웨딩 속옷을 비롯한 드레스 일체를 입을 때까지 네 시간이 걸렸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화장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눈썹을 그려 주면서 찬탄을 금치 못했다.

「아가씨! 너무나 아름다우세요!」

헤어 스타일리스트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태풍도 피해 가는 아름다움이에요.」

「맞아, 태풍이 이쪽으로 오지 않아서 정말로 다행이에요.」

진혁이 보낸 메시지를 보고서 그녀가 피식 웃었다.

「내 부군이 되실 분은 정말로 선량하신 분이야.」

「무슨 일인데요?」

「이번에 태풍 때문에 피해를 본 일본에 기부금을 내고 싶다고 하시네.」

일말의 책임감을 느낀 진혁이 제안한 의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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